2021년 1월, 학술지 Soft Matter에 조금 민망하지만 꽤 진지한 연구가 실렸다. 연구 대상은 호주에 사는 웜뱃의 배설물. 질문은 단순했다. 말랑말랑한 장을 지나온 물질에 어떻게 평평한 면과 모서리가 생기는 걸까?
사진 속 동물의 둥근 얼굴을 보면 더 이상하다. 몸도 둥글고 장도 부드러운 관인데, 결과물은 작은 주사위 같은 덩어리다. 누군가 밖에서 깎아 놓은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동물의 엉뚱한 습성에서 시작해, 재료의 성질이 모양을 만드는 물리학으로 이어진다.
호주 태즈메이니아 마리아섬의 어린 웜뱃(Vombatus ursinus tasmaniensis). 사진: Charles J. Sharp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원본을 축소·JPEG 재압축했다.
1. 가장 그럴듯한 답부터 틀렸다
처음 떠올릴 만한 답은 간단하다. 출구가 네모난 것 아닐까? 별 모양 깍지로 크림을 짜면 별 모양 단면이 나오듯, 웜뱃도 마지막 순간에 모양을 찍어 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연구진의 관찰은 그 설명과 맞지 않았다. 배설물은 몸 밖으로 나오기 전, 이미 장 안에서 각진 형태를 갖고 있었다. 연구팀이 소개한 CT 관찰에서도 항문 괄약근은 둥글었다. 찾아야 할 것은 네모난 출구가 아니라, 출구에 도착하기 전에 일어나는 과정이었다.
2. 장벽은 어느 방향으로나 똑같이 늘어나지 않는다
논문은 장 조직을 살피고 잡아당기는 시험을 통해, 둘레를 따라 두께와 뻣뻣함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 관을 가로로 잘랐다고 상상하면, 그 고리에는 상대적으로 뻣뻣한 부위와 잘 늘어나는 부위가 함께 있다.
여기서 뻣뻣하다는 말은 돌처럼 단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힘을 가했을 때 변형되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고무줄도 부분마다 재질이나 두께를 바꾸면 당길 때 모양이 달라진다. 웜뱃의 장에서는 이런 차이가 수축 운동과 결합한다.
3. 부드러운 관도 모서리를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은 뻣뻣한 부분과 부드러운 부분이 번갈아 있는 탄성 고리가 수축하는 수학 모형을 만들었다. 모형에서는 부위별 움직임의 차이 때문에 윤곽에 모서리가 생겼다. 똑같이 줄어드는 원을 상상하면 놓치기 쉬운 결과다.
이를 일상적인 비유로 바꾸면, 반죽을 담은 주머니의 모든 면을 같은 방식으로 조이는 경우와 특정 부위가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경우의 차이다. 다만 이 비유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실제 논문은 조직의 성질과 수축 조건을 넣은 모형으로 모서리 형성의 한 메커니즘을 시험했다.
4. 천으로 만든 가짜 장에서도 시험했다
연구팀의 실험 소개에는 꽤 귀여운 장치도 나온다. 천으로 장을 흉내 내고, 일부에는 바느질을 더해 뻣뻣함을 달리했다. 안에는 서로 달라붙으면서도 눌러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작은 스티로폼 알갱이를 넣었다.
그냥 밀어 넣는 것만으로는 네모가 되지 않았다. 바깥쪽에 달아 놓은 부분을 당겨 근육 수축을 흉내 냈을 때 평평한 면과 모서리가 나타났다. 이 예비 실험의 재미는 여기에 있다. 그럴듯한 설명을 말로 끝내지 않고, 조건을 바꾸면 결과도 달라지는지 손으로 확인한 것이다.
5. 모양을 만드는 일과 유지하는 일
장벽이 움직인다고 아무 내용물이나 선명한 모서리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대장 뒤쪽에서 배설물의 수분이 줄어드는 과정도 함께 짚었다. 변형될 수 있으면서도 만들어진 윤곽을 유지할 만큼의 성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주 묽은 반죽에 잠깐 각을 만들어 봐도 곧 흐트러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연구진은 더 습한 조건에서는 웜뱃의 배설물이 덜 각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모라는 결과는 장의 움직임 하나만이 아니라 내용물의 상태까지 함께 봐야 이해된다.
6. 그렇다면 왜 하필 네모일까?
웜뱃은 바위나 통나무 주변처럼 눈에 띄는 곳에 배설물을 남겨 서로 소통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네모라서 굴러가지 않는 것이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지만 그럴듯한 이점과 진화적 이유의 입증은 같은 일이 아니다.
태즈메이니아대의 연구 소개에서도, 왜 이런 형태가 진화했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행동에 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 안에서 모서리가 생기는 과정이 설명됐다고 해서, 자연선택이 어떤 경로로 그 특성을 남겼는지까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7. 웃긴 질문이 좋은 실험이 되는 순간
이 연구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소재만이 아니다. 출구의 모양을 의심하고, 장 안을 관찰하고, 조직을 당겨 보고, 모형과 천 주머니로 설명을 시험했다. 질문은 우스워 보여도 확인하는 과정은 꽤 꼼꼼하다.
작은 배설물 하나가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크다. 우리가 보는 모양은 무엇으로 결정될까? 틀의 형태뿐 아니라 재료의 차이, 움직이는 방식, 수분 상태가 함께 답을 만든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동물의 가장 이상한 능력은 무엇인가요? 다음에는 그 능력의 원리를 같이 파헤쳐 봐도 재미있겠습니다.
참고 자료와 사진 출처
- Yang 외, Intestines of non-uniform stiffness mold the corners of wombat feces, Soft Matter 17, 475–488 (2021). 온라인 최초 공개: 2020년 12월 8일.
- Georgia Tech 연구팀: IgNobel for Cubed Poops — 관찰과 천 모형 실험 소개.
- University of Tasmania: Scientists get to the bottom of wombat cubed poo mystery — 수분 및 행동 연구의 남은 질문.
- 사진: Charles J. Sharp,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축소·재압축한 사진에도 동일 라이선스 적용.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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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9:37
천으로 만든 가짜 장에 스티로폼 알갱이 넣고 당겨서 실험했다는 대목에서 좀 웃었어요. 그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들었으니 결과가 네모여도 이상하지 않네요. 예전에 다큐에서 보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는데, 진화 이유는 아직도 연구 중이라는 말에 괜히 안심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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