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불편한 날에는 머리도 아프고 유난히 기운이 없다. 검사를 받아도 증상을 설명할 만한 이상이 뚜렷하지 않으면, 불편한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담적증후군’은 이런 소화기 증상과 전신 증상의 연결을 살펴보는 임상 개념이다.
대한한의학회지에 실린 손창규·최서형의 「담적증후군(U87.7): KCD-9 등재 의의와 생체의학적 해석」은 이 개념을 현대 생체의학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논문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한의학이 진료실에서 살펴온 복부의 촉감과 전신 증상을, 장-뇌 상호작용이라는 연구 주제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오래 관찰해온 임상 경험에 측정과 검증의 언어를 더하는 작업이다.
먼저 논문의 성격부터 짚고 가자. 환자에게 치료를 시행해 효과를 비교한 임상시험이 아니라, 기존 문헌을 모아 진단체계와 가능한 기전을 논의한 종설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설명에는 이미 관찰된 결과와 앞으로 확인해야 할 가설이 함께 들어 있다.
논문 제목과 초록(원문 p.60). 손창규·최서형, 대한한의학회지 2026;47(3):60–69. 원문 출처
‘담적’이라고 부를 때, 정확히 무엇을 보고 있나
논문은 담적증후군이 KCD-9에 U87.7 코드로 등재됐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같은 이름과 기준으로 진료를 기록하고 연구를 축적할 발판이 생겼다는 의미다. 한의학의 임상 개념이 공통된 기록과 연구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다는 점에서 반가운 변화다. 이제 이 토대 위에서 진단의 재현성, 기전, 치료 효과에 관한 근거를 차근차근 쌓아갈 수 있다.
저자들이 정리한 진단체계는 다음 세 요소가 함께 있는 경우다.
- 만성적인 원인불명 소화불량. 명치의 답답함·통증·화끈거림·식후 팽만감 등이 최소 6개월 이상 이어지고 일상에 지장을 주며, 내시경 등 구조적 평가에서 이를 설명할 뚜렷한 원인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다.
- 상복부 경결. 명치 아래에서 배꼽 사이를 진찰했을 때 국소적으로 단단한 저항감이나 경직이 만져지는 소견이다.
- 소화불량과 연동되는 전신 증상. 두통, 어지럼, 피로, 목·어깨·등의 결림, 불안·우울감, 흉부 불편감 등의 증상 중 하나 이상이 소화불량과 함께 나타나거나 심해지는 양상이다.
원문 Figure 1(p.62). 저자들이 제안한 세 진단 요소: 만성 원인불명 소화불량, 상복부 경결, 소화기 연관 전신 증상. 손창규·최서형(2026)
따라서 소화가 안 되고 피곤하다는 두 가지 사실만으로 담적증후군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배를 스스로 눌러보고 확진할 수도 없다. ‘6개월’ 역시 이 논문이 소개하는 기준이지, 불편해도 그때까지 진료를 미루라는 뜻이 아니다.
기능성소화불량과는 많이 겹친다. 이 논문을 이해하는 데에는 ‘기능성소화불량 환자 가운데 상복부 경결과 전신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집단을 따로 살펴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도움이 된다. 그 구분이 실제 진료에 얼마나 유용한지는 후속 연구로 확인해야 한다.
손끝의 진찰 소견을 장-뇌 연구로 연결하다
한의학의 복진은 환자가 말로 표현하는 불편함에 더해, 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살펴본다. 이 논문이 주목하는 상복부 경결도 그런 단서다. 다만 전통적인 ‘담적’ 개념을 특정 물질이 실제로 쌓였다는 설명과 바로 동일시하기보다는, 그 촉진 소견이 어떤 신체 상태를 반영하는지 연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저자들은 내장 상태가 복벽 근육의 긴장에 영향을 주는 내장-체성 반사, 국소적인 기계적 변화 등을 가능한 설명으로 논의한다. 여기에 자율신경계, 세로토닌 대사, 면역 반응을 연결해 소화기와 전신 증상을 함께 이해하려 한다.
소화기 증상과 두통·피로·정서적 불편을 함께 살펴온 한의학의 관찰은, 여러 신체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관점과 대화할 여지가 있다. 이를 구체적인 생물학적 질문으로 옮겨놓았다는 점이 이 종설의 매력이다. 저자들도 기전 그림을 확립된 병태생리보다는 후속 연구를 위한 가설적 틀로 제시한다. 어디를 더 연구할지 보여주는 지도에 가깝다.
초기 연구에서 포착한 단서들
주요 근거로 인용된 2025년 예비연구는 40~60세 여성 31명, 담적증후군 16명과 건강 대조군 15명을 비교했다. 단일 기관의 작은 표본이며, 치료 효과를 검증한 연구는 아니다. 심박변이도 일부 지표 감소, 혈중 세로토닌 대사산물인 5-HIAA 증가, 호중구 수 감소가 보고됐다.
아직은 탐색 단계의 결과다. 유의수준은 p<0.1로 설정했고 다중비교 보정은 하지 않았으며, 심박변이도 RMSSD·HF의 차이도 p<0.1 수준이었다. 확증적 결론에 앞서 더 큰 표본에서 재현할 필요가 있지만, 다음 연구에서 어떤 지표를 살펴볼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후속 연구에서는 건강인뿐 아니라 다른 기능성소화불량 환자와도 비교하면 담적증후군의 특징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면역 관련 지표도 연구를 확장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종설의 NET(호중구 세포외덫) 관련 설명은 인용된 예비논문의 준비 중 유전자발현 연구에 관한 언급과 연결돼 있어, 직접적인 기능시험 결과와 구분해 읽어야 한다.
세로토닌 대사산물인 5-HIAA의 변화는 소화기 증상과 전신 증상의 연결을 탐구할 흥미로운 단서다. 어느 조직의 어떤 변화에서 비롯됐는지, 증상과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호중구 수의 집단 차이 역시 개인의 면역저하를 뜻하는 검사 결과로 쓰기에는 이르다.
소화불량과 정서적 불편을 함께 살핀다는 점도 임상적으로 관심을 둘 부분이다. 다만 종설의 높은 불안·우울 증상 동반율은 소규모 연구와 환자 선정 방식의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연구의 기능성소화불량 수치와 직접 비교하기보다, 향후 같은 조건에서 두 집단을 살펴볼 질문으로 남겨두는 편이 적절하다.
진료실에서 가져갈 질문
환자에게는 증상의 시간 관계를 정리해 보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무엇을 먹었는지만 적기보다 식후 얼마 만에 불편해지는지, 두통이나 피로가 같은 시점에 심해지는지, 수면과 복용 약은 어땠는지 함께 기록해 진료 때 설명하는 것이다. 이 기록은 특정 진단을 스스로 붙이기보다 의료진이 증상 양상을 파악하는 데 쓰는 편이 좋다.
검사에서 구조적 이상이 없는데도 이어지는 불편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소화기 증상뿐 아니라 복부 진찰과 전신 상태를 함께 보는 한의학적 접근은 이 지점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 물론 다른 질환을 확인하는 평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 삼킴 곤란, 반복되는 구토, 토혈이나 검은 변이 있다면 신속한 진료가 필요하다. 흉통과 호흡곤란이 동반되면 소화불량으로 넘기지 말고 즉시 평가받아야 한다.
임상가에게는 익숙한 복진 소견을 공유 가능한 자료로 발전시킬 기회가 보인다. 서로 다른 진찰자가 같은 환자에서 같은 판단을 내리는지, 누르는 힘과 위치를 표준화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압통 역치와 조직의 단단함은 같은 측정값이 아니므로, 알고미터나 초음파를 도입할 때도 무엇을 정량화하는지 분명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경결이 있는 기능성소화불량 환자와 없는 환자를 직접 비교하고, 경결의 변화가 소화기·전신 증상의 변화와 함께 움직이는지 추적할 필요가 있다. 치료 선택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려면, 이 분류에 따라 실제 치료 반응이나 예후가 달라지는지도 보여줘야 한다. 특정 한약이나 침 치료가 효과적인지는 별도의 대조 임상시험이 답할 문제다.
한의학의 임상 경험에는 이처럼 연구로 이어가 볼 만한 관찰이 남아 있다. 환자가 호소하는 여러 불편을 함께 듣고, 복부에서 얻은 단서와 연결해 온 경험을 공통된 기준과 측정으로 발전시키는 일. 이번 종설은 그 작업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진찰실의 손끝에서 시작한 질문이 환자에게 더 나은 설명과 치료 선택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게 된다.
읽은 논문과 참고 자료
손창규·최서형. 담적증후군(U87.7): KCD-9 등재 의의와 생체의학적 해석. 대한한의학회지. 2026;47(3):60–69. 논문 원문
Lim 등. 담적증후군 예비연구. Healthcare. 2025;13(18):2307. 인용된 원연구
미국 NIDDK. 소화불량 증상과 진료가 필요한 징후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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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10:21
허허, 예전 시골 어른들이 '속이 안 좋으면 온몸이 다 안 좋아진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옛날엔 그 말을 그냥 위로로만 들었는데, 요즘은 진찰 손끝의 느낌까지 숫자로 옮겨보려는단 이야기를 들으니 세월 참 많이 갔습니다. 배 한 번 눌러보고 '딱 6개월 되면 그런 겁니다' 하는 건 안 되겠지만요, 허허. -
빗방울
2026.11.01 15:40
맞습니다. 단순히 "원래 그렇다"는 식의 경험담에 그치지 않고, 이를 표준화된 코드(KCD-9)로 등록하고 생체의학적 기전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정말 중요해 보입니다. 특히 장-뇌 상호작용이나 세로토닌 대사 같은 현대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면, 환자분들도 자신의 증상을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치료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글에서도 언급되었듯 아직은 가설 단계의 연구들이 많으니, 앞으로 더 정교한 데이터가 쌓여서 '느낌'이 아닌 '근거'로 증명되는 과정이 기대됩니다. 소화기 증상과 전신 컨디션의 연결고리를 찾는 연구들이 계속되어, 원인 모를 불편함에 답답해하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모든 이야기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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