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대서양 양쪽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두 권의 인쇄물이 나왔다.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는 예일대 물리학 교수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의 책 Elementary Principles in Statistical Mechanics가 출간됐고, 스위스 베른에서는 아직 특허청 심사관이던 23세 청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통계역학에 관한 첫 논문을 학술지에 실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거의 알지 못했고,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두 작업은 놀랄 만큼 같은 곳에 도착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유도했지만 결국 같은 ‘정준분포(canonical distribution)’에 이르고, 열평형을 설명하는 거의 같은 골격의 이론 체계를 세운다. 최근 arXiv에 올라온 역사물리학 논문 하나가 바로 이 평행 구조를 다시 들여다본다. 저자는 스페인의 물리학자 엑토르 지아코미니(Hector Giacomini)다.
1902년 봄, 두 권의 인쇄물
기브스의 책은 예일대 200주년 기념 출판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다. 그는 열역학을 현상론적 공리에서 세우는 대신, 역학적 계와 확률이라는 두 재료로 다시 세우려 했다. 책의 제목에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이라는 말을 붙인 것이 바로 기브스다. 이 이름은 훗날 학문 분과의 이름이 됐다.
아인슈타인의 1902년 논문은 Annalen der Physik에 실린 ‘열평형의 운동론과 열역학 제2법칙(Kinetische Theorie des Wärmegleichgewichtes und des zweiten Hauptsatzes der Thermodynamik)’이다. 그해 베른에서 아인슈타인은 대학 자리를 얻지 못해 신문에 개인 과외 광고를 내고 있었다. 수학과 물리학의 사설 강습을 학생과 중등학교 학생에게 ‘철저하게’ 가르친다는 광고였다. 논문의 저자와 광고의 주인공이 같은 사람이다.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 1895년 무렵 헬리오그라비어 초상 — Meisenbach, Riffarth & Co. 제작, 스캔 및 보정 Armin Kübelbeck,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볼츠만을 버리고, 같은 정준분포에 이르다
당시 통계물리의 주류는 볼츠만의 운동론이었다. 기체를 수없이 많은 분자가 부딪히며 날아다니는 것으로 상정하고, 충돌의 역학에서 거시적 법칙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분자의 실제 운동을 따라가는 이 접근은 강력했지만, 분자 하나하나의 세부에 이론이 붙어 있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논문이 지적하는 흥미로운 공통점은 여기다. 기브스와 아인슈타인 모두 이 길을 의도적으로 비껴간다. 대신 두 사람이 붙든 것은 일반 역학의 원리, 특히 에너지 보존과 리우빌 정리(Liouville theorem)였다. 위상공간에서 계를 대표하는 점들의 흐름은 마치 비압축성 유체처럼 부피를 보존한다는 정리다. 여기에 확률적 추론을 얹으면, 분자 하나하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도 계 전체의 열적 거동을 말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유도 경로는 같지 않다. 기브스는 앙상블, 즉 같은 거시 조건을 공유하는 무수한 가상적 계의 모음에서 출발해 그 분포를 체계적으로 분류한다. 아인슈타인은 열평형의 조건 자체에서 출발해, 에너지를 주고받는 두 계가 평형에 이르면 어떤 확률 분포를 가져야 하는지를 역으로 좇는다.
그런데 도착점은 사실상 같다. 에너지에 대한 확률이 지수적으로 감소하는 형태, 오늘 우리가 볼츠만 인자라 부르는 그 꼴이다. 같은 해 같은 질문에 서로 다른 언어로 답한 셈이다. 논문은 이를 “개념적·형식적 평행”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베낀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그 답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도란 무엇인가 — 에너지가 같아지는 곳
두 이론이 공유하는 가장 강한 주장은 온도의 정의다. 기브스와 아인슈타인 모두 온도를 “두 계가 에너지를 교환할 때 같아지는 그 양”으로 정의한다. 온도를 온도계가 가리키는 눈금이 아니라, 에너지 교환이 멈추는 평형의 조건으로 다시 정의한 것이다.
이 정의가 조용하지만 급진적인 이유는, 열역학 제2법칙을 운동론 없이 역학적으로 떠받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분자가 어떻게 튕기는지에 대한 가정을 넣지 않고도 엔트로피가 왜 증가하는지, 왜 평형이 안정한지 말할 수 있다. 온도를 ‘느낌’이나 ‘눈금’에서 떼어내 계의 역학적 구조에 붙인 이 발상이 오늘날 통계역학 교과서 첫 장의 골격이다.
반전: 정전이 된 책, 60년 묻힌 논문
같은 답에 이르렀지만 두 작업의 운명은 정반대였다. 기브스의 책은 곧바로 표준 참고문헌이 됐다. 통계역학이라는 분과의 교과서이자 원전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세대의 물리학자들이 그 책으로 배웠다.
반면 아인슈타인의 1902년 논문은 반세기 넘게 물리학 안에서도, 과학사 연구에서도 변두리에 머물렀다. 1905년의 특수상대성이론과 광전효과 논문에 가려진 탓만은 아니다. 논문이 다룬 문제의식 자체가 이후 ‘아인슈타인의 통계역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었다. 같은 결론을 먼저 혹은 더 유명하게 말한 쪽이 이겼고, 다른 쪽은 각주로 밀려난 것이다.
1910년 헤르츠의 두 편, 그리고 바젤의 사적인 만남
이 묻힌 연결을 처음 또렷하게 짚은 사람은 파울 헤르츠(Paul Hertz)다. 1910년 그가 쓴 두 편의 비평 논문은 기브스의 접근과 아인슈타인의 접근 사이에 가까운 친연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서로 다른 문헌 전통에 있던 두 작업을 같은 좌표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이 지적은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초기 통계역학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물러서게 되는 계기가 됐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방식이다. 아인슈타인은 공개 논쟁을 택하지 않고, 바젤에서 헤르츠를 만나기를 사적으로 청했다. 학술지 지면에서 반박하고 재반박하는 대신, 방 안에서 이야기하기를 원한 것이다. 논문은 이 사적인 만남이 이후 아인슈타인의 거리두기에서 중요했다고 서술한다.
1902년 2월 5일 베른 Anzeiger für die Stadt Bern에 실린 아인슈타인의 개인 과외 광고. 같은 해 그는 통계역학 첫 논문을 발표했다 — 저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아인슈타인의 “몰랐다”는 말은 믿을 수 있나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1902년 당시 기브스의 책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 채 같은 정준분포에 도달한 독립 발견의 교과서적 사례가 된다. 논문은 이 진술의 개연성을 새 자료로 다시 따진다.
저자가 동원한 것은 1902년 봄 기브스 책의 유럽 내 확산 속도에 관한 기록이다. 책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 학계에 얼마나 빨리, 어떤 경로로 퍼졌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를 통해, 아인슈타인이 그해 봄 그 책을 접할 수 있었는지를 검토한다. 다만 이것은 ‘접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의 문제이지, 그가 실제로 읽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논문은 이 지점에서 선을 긋는다. 독립 발견이었다는 아인슈타인의 진술은 부정되지도, 완전히 확인되지도 않는다.
이 논문이 스스로 인정하는 한계도 분명하다. 남아 있는 것은 책의 유통 기록과 후대의 진술이지, 1902년 아인슈타인의 책상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문서가 아니다. 또한 헤르츠의 비평이 아인슈타인의 후퇴에 실제로 어느 정도 작용했는지는 인과의 크기를 재는 문제이지, 문헌만으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과학사에서 ‘먼저’는 무엇을 뜻하나
이 사례가 남기는 질문은 우선권 다툼보다 넓다. 같은 결론에 이르는 두 경로가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그 결론의 ‘발견’으로 기록하는가. 널리 읽힌 책인가, 학술지에 먼저 실린 논문인가, 아니면 나중에 그 둘을 나란히 놓고 본 누군가의 비평인가. 헤르츠의 1910년 논문이 없었다면 두 작업의 평행성은 아마 더 오래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의 질문은 ‘몰랐다’는 진술의 무게다. 과학자의 회고는 증거가 아니라 증언이다. 그 증언을 뒷받침할 유통 기록은 찾을 수 있지만, 부재를 증명하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논문의 결론은 판정이 아니라 재평가다. 독립 발견은 여전히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지만, 그것이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같은 방정식을 서로 모른 채 세운 두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방정식을 누구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애초에 방정식에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는 편이 더 정직할까.
참고 자료
Hector Giacomini, “Gibbs and Einstein in 1902: Parallel Constructions in Statistical Mechanics”, arXiv:2610.28764 (physics.hist-ph), 2026. https://arxiv.org/abs/2610.28764v1
이미지: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 초상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1902년 베른 신문 광고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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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11:25
1902년의 두 논문이 같은 정준분포에 도달했다는 사실보다 눈에 남는 것은 운명의 차이다. 같은 답을 내놓고도 한쪽은 교과서가 되고 다른 쪽은 반세기 각주로 남았다. 발견의 우선권은 내용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이 담담하게 무섭다. 개인 과외 광고를 내던 23세와 예일의 교수가 같은 방에 있었던 셈인데, 그 방은 대서양만큼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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