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명이 네 조로 나뉘어 앉아 있다. 손에 든 것은 교수가 나눠준 유인물이 아니라 각자 스마트폰으로 찾아온 디지털 자료다. 조별 토론은 강의실에서 끝나지 않고 WhatsApp 단체방으로 이어진다. 콜롬비아의 우파테크(Universidad Pedagógica y Tecnológica de Colombia, UPTC) ‘현대물리학’ 과목에서 실제로 벌어진 장면이다. 이 수업의 이야기가 2026년 10월 19일 arXiv에 「Connectivism as an Innovative Didactic Experience in Preservice Physics Teacher Education」이라는 제목의 장(章)으로 올라왔다.
저자는 다니엘 알레한드로 발데라마(Daniel Alejandro Valderrama)와 카렌 알레한드라 구티에레스 아마야(Karen Alexandra Gutiérrez Amaya) 두 사람이다. 이들이 다루는 대상은 물리학 전공생이 아니라 물리를 가르치게 될 예비 교사 21명이다. 연구는 질적 접근(qualitative approach)으로 설계됐고, 학생들은 네 개의 협동 조로 조직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업이 ‘새로운 교수법’이 아니라 ‘교수법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그 교수법을 직접 겪게 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커넥티비즘이라는 이름의 주장
커넥티비즘(connectivism)은 조지 시먼스가 2005년에 제안한 학습 이론으로, 지식이 개인의 머릿속에만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료 사이의 연결망 위에 분포한다고 본다. 배움은 그물망의 접속을 늘리고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이 관점에서 교사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어떤 노드와 어떤 노드를 이어줄지 설계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이 논문이 시도한 것은 그 이론을 예비 물리 교사 교육에 실제로 얹어보는 일이다. 추상적인 이론 소개가 아니라, 한 학기 수업 안에서 학생들이 직접 연결망을 만들어보게 하는 경험으로 옮겼다. 이 장은 그 교실 경험 하나를 사례로 삼아 커넥티비스트 학습망이 교사 교육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한다.
수업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
학생들이 한 일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스스로 디지털 학습 자원을 골라 읽고 토론했다. 둘째, WhatsApp을 통해 조원들과 상호작용했다. 셋째, 현대물리학의 개념과 과학·기술적 응용을 연결하는 협동 보고서를 작성했다. 교재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찾아서 고르는’ 과정 자체가 과제의 일부였다는 뜻이다.
예비 교사들이 함께 자료를 검토하고 토론하는 워크숍 장면(모로코 모하메디아, 2024). 논문의 콜롬비아 수업 사진이 아니라 같은 성격의 교육 워크숍을 보여주는 참고 이미지다. — Farah Ouazizou, CC0 (Wikimedia Commons)
분석은 여섯 개의 축으로 이뤄졌다. 개념 이해, 논증, 질문하기, 비판적 사고, 개념들 사이의 관계 짓기, 그리고 디지털 자원의 활용이다. 이 여섯 축은 커넥티비즘이 강조하는 ‘연결’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확인하려는 측정틀에 가깝다. 특히 ‘개념들 사이의 관계’와 ‘질문하기’는 단순 암기로는 채워지지 않는 항목이다.
반직관적인 지점: 도구가 아니라 흔적
학교에서 스마트폰과 메신저는 보통 ‘집중을 깨는 것’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이 수업은 가장 사적인 채널인 WhatsApp을 학습 과정의 기록으로 끌어들였다. 조별 토론이 남긴 대화의 흔적은 나중에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연결했는지 되짚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도구를 통제하는 대신 도구가 남기는 자취를 교육의 재료로 바꾼 셈이다.
여기서 짚어둘 것이 있다. 이 해석은 필자의 독해이며, 논문 자체는 WhatsApp 사용을 ‘혁신’으로 규정하는 데서 그친다. 논문은 메신저 대화 로그를 어떻게 분석했는지, 로그가 분석 대상이었는지조차 초록 수준에서는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그 부분은 원문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경쟁 가설: 정말 커넥티비즘 덕분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반론은 이렇다. 학생들이 좋았다고 말한 이유가 커넥티비즘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조별 과제’여서일 수 있다. 협동 학습은 그 자체로 참여도와 만족도를 끌어올린다는 연구가 오래 쌓여 있다. 커넥티비즘은 이번에도 이름만 새로 붙은 옷일 수 있다.
두 번째 반론은 새로움 효과다. 낯선 방식으로 진행된 수업은 그 자체로 기억에 남는다. 학기 초의 신선함이 학기 말의 평가에 섞여 들어갔을 가능성을 이 연구 설계만으로는 배제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교수자 효과다. 교사 교육에서 교수자의 열의와 기대는 학생 반응에 직접 영향을 준다. 이 세 가설을 가르려면 대조군이 필요하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저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이 연구가 “이 특정한 교실 경험(this particular classroom experience)의 발견”에 기반한다고 명시한다. 단일 과목, 단일 대학, 21명, 한 학기. 질적 접근이라는 방법론 자체가 일반화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즉 이 글은 ‘이렇게 하면 된다’는 처방이 아니라 ‘이렇게 해봤더니 이런 것이 보였다’는 보고에 가깝다.
또 하나 분명히 해둘 점은 효과의 크기다. 학생들의 보고와 피드백이 협동 활동에 대해 우호적인 인식을 보였다는 것이 논문의 서술이며, 개념 이해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수치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전·사후 검사도, 통제 집단과의 비교도 초록에는 없다. 그러므로 “커넥티비즘이 물리 교사 교육의 성과를 높인다”는 문장은 이 논문이 주장하는 바가 아니다. 논문은 ‘가능성’과 ‘우호적 인식’을 말한다.
교사 교육에 남는 것
그럼에도 이 사례가 눈에 밟히는 이유가 있다. 예비 교사는 자기가 가르칠 방식을 직접 겪어본다. 연결망을 스스로 만들어본 사람만이 나중에 교실에서 그 연결망을 설계할 수 있다. 이 수업이 남기는 가장 단단한 산출물은 보고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현대물리 개념을 다루는 대학 실험실의 한 장면(필리핀 아테네오 마닐라 대학 광자공학 실험실). 논문의 수업 사진이 아니라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참고 이미지다. — Physics Department, Ateneo de Manila University, CC BY 2.0 (Wikimedia Commons)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예비 교사에게 WhatsApp 단체방은 ‘학습 도구’인가, 아니면 그냥 익숙한 일상인가. 익숙함이 학습으로 전환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리고 그 순간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이 논문은 답을 주지 않고, 그 질문이 가능한 교실 하나를 보여줬을 뿐이다.
실제로 예비 교사 교육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은 ‘가르치는 방법을 아는 것’과 ‘그 방법을 겪어본 것’ 사이의 간격이다. 강의로 협동 학습의 원리를 배운 사람은 협동 학습이 어떻게 어긋나는지 모른다. 조원 한 명이 조용히 사라지고, 한 명이 모든 자료를 독점하고, 마감 직전에 보고서가 한 사람 손으로 다시 쓰이는 과정을 겪어보지 못한 채 교단에 선다. 이 수업이 커넥티비즘을 빌려 한 일은 그 어긋남을 학기 중에 미리 겪게 만든 것이다.
물론 그 경험이 교실에서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는다. 예비 교사들은 성인이고, 자발적으로 이 과목을 택했으며, 평가받는 학생 신분이다. 중고등학교 교실의 동기 구조와는 다르다. 그래서 이 사례는 ‘전이 가능한 원리’가 아니라 ‘겪어볼 기회’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논문이 말하는 가능성도 그 범위 안에 있다.
참고 자료
Valderrama, D. A., & Gutiérrez Amaya, K. A. (2026). Connectivism as an Innovative Didactic Experience in Preservice Physics Teacher Education. arXiv:2610.25620v1 [physics.ed-ph]. 게시일 2026년 10월 19일.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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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22:26
WhatsApp 단체방이 학습 도구였는지, 혹은 그냥 익숙한 일상이었는지 묻는 대목이 특히 남는다. 조별 과제에서 실제로 도움이 된 것은 정교한 이론보다 그 방에 누가 언제 답했는지에 대한 기억인 경우가 많다. 다만 조용히 사라지는 조원과 자료를 독점하는 조원까지 겪게 만들었다면, 그 경험은 협동 학습의 원리를 아는 것보다 훨씬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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