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4일 오후, 잉글랜드 체셔주( Cheshire ) 북위치( Northwich )의 레스터 스트리트( Leicester Street )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남아 있다. 보도블록을 깐 보행로, 별장식 가로등, 그리고 오른쪽 벽돌 건물 위에 매달린 분홍색 FOR SALE 간판. 왼쪽으로는 윌킨슨( Wilko ) 매장이 보이고, 길 끝 편의시설 쪽에는 맥도날드의 노란 M이 걸려 있다. 2026년 10월 30일, 인사이더 미디어( Insider Media )는 바로 이 도시의 레스터 스트리트 인근 부지에 1만8천 제곱피트( 약 1,670㎡ ) 규모의 M&S 푸드홀( M&S Foodhall ) 신축이 승인됐다고 전했다. 13년 전 '팔려 나온 가게'가 걸려 있던 상권에, 영국 최대 식료품 체인이 다시 들어오는 것이다.
이번 주 영국 소매업 뉴스는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대형마트는 문을 열고, 할인 체인은 법정관리( administration )를 신청하고, 정부는 소상공인 재산세( business rates )를 깎겠다고 발표했다. 이 글은 그 세 가지가 같은 거리 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이유를, 영국의 상가 임대·소유 제도부터 풀어 설명한다.
1. 예산안이 바꾼 것: 1만8천 파운드의 선
이번 주 존 힐리( John Healey ) 재무장관은 첫 예산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소매·외식·레저 업종의 소규모 사업장에 적용되는 소기업 재산세 감면( small business rate relief )의 기준선을 연 매출이 아니라 과세가치( rateable value ) 기준 1만2천 파운드에서 1만8천 파운드로 올린 것이다. 과세가치는 영국 지방정부가 매년 산정하는 '건물의 가상 임대료'로, 한국의 건축물 시가표준액과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임대료 시장과 직접 연결된다는 점이 다르다.
힐리는 "7만 개 사업장이 재산세를 아예 내지 않게 된다"며 "우리 가게·식당·헬스장의 절반이 재산세를 0원 낸다"고 말했다. 나머지 사업장에 대해서는 "향후 2년간 물가상승률을 넘는 인상을 없도록" 실질 동결하겠다고 했다. 재원은 도박세 인상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영국소매협회( BRC )의 헬렌 디킨슨 대표는 이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소매업은 올해 410억 파운드의 사업세를 부담하고, 2년 만에 12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가게 7곳 중 1곳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한 핵심은 '실질 동결'의 함정이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동결은 실제로는 3.5% 인상이며, 내년 4월 소매업계 부담을 약 2억5천만 파운드 늘린다는 계산이다. 감면은 7만 개 소상공인에게, 인상은 50만 개 중대형 점포에 돌아간다는 구조다. 소매업이 경제의 약 5%를 차지하는데 사업세의 20% 이상을 내고 있다는 것도 그의 지적이다.
2. 영국의 상가 제도: 리스홀드와 프리홀드
한국의 상가 시장을 떠올리면 '보증금 + 월세 + 권리금'이 먼저 나온다. 영국의 하이스트리트는 이 세 가지가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원문 기사에는 임대차 조건이 직접 서술되어 있지 않으므로, 아래는 영국 상가 제도의 일반적 배경 설명이며 이번 기사의 사실 진술이 아님을 밝힌다.
영국 상업용 부동산의 기본 구분은 프리홀드( freehold )와 리스홀드( leasehold )다. 프리홀드는 토지와 건물을 영구 소유하는 권리, 리스홀드는 99년·125년·999년처럼 긴 기간의 사용권을 사는 것이다. 상가 임차는 보통 FRI 리스( Full Repairing and Insuring )로 계약한다. 임차인이 수리·보험·건물 유지비까지 부담하고, 임대인은 사실상 순임대료만 받는다. 즉 세입자가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거의 소유자처럼 관리하며 '지상권 사용료'를 내는 구조에 가깝다.
한국의 권리금은 영국에 그대로 대응하는 개념이 없다. 대신 상가를 인수할 때 프리미엄( premium )을 지불하고 기존 리스를 양수하는 관행이 있어, 한국의 권리금과 기능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다. 상가 매매에서는 양도세( SDLT )와 부가세( VAT ) 처리가 얽히고, 리스가 짧아질수록 자산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재융자가 어려워진다. 대형 체인은 이런 조건을 협상할 인력이 있지만, 개인 점주는 임대료 재검토( rent review )에서 통상 5년마다 인상 압력을 받는다. 이번 예산안의 재산세 논쟁이 '사업장 수' 단위로 벌어지는 이유도, 이 재산세가 임차인이든 소유자든 점포 하나하나에 붙는 고정비이기 때문이다.
3. 같은 주에 열리고, 같은 주에 닫히다
원문이 전한 업종별 움직임은 뚜렷하게 갈린다. 확장 쪽부터 보자. 알디( Aldi )는 11월 한 달 동안 잉글랜드 전역에 7개 점포를 열고, 각 점포당 최대 30개 일자리를 만든다. 이는 올해 영국 점포에 투입하는 3억7천만 파운드의 일부이며, 장기 목표는 전국 1,500개 점포다. 알디 UK의 부동산 담당 전무 조너선 닐은 "새 알디 점포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M&S도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리치필드( Lichfield )의 43만7천 제곱피트( 약 4만㎡ ) 규모 자동화 패션 물류센터는 내년 개장을 앞두고 70개 이상 직원을 채용 중이며, 완전 가동 시 600명을 고용한다. 북위치의 M&S 푸드홀은 1만8천 제곱피트 매장에 24,000 제곱피트 총면적, 최대 70개의 지역 일자리를 만든다. 전기차 충전기 8기, 자전거 주차장, 클릭앤콜 픽업대까지 포함된다. 체셔에 기반한 셀렉트 팜( Select Farm ) 파트너 40곳 이상의 신선식품을 취급한다는 점도 기사에 명시됐다.
반대편에는 할인 체인의 균열이 있다. 파운드랜드( Poundland )는 지난 목요일 법정관리인 선임 의향서( NOI )를 제출했고, 약 1만2천 명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졌다. 배리 윌리엄스 대표는 사내 메모에서 상황을 "예상치 못했고, 원하지 않았고, 완전히 피할 수 있었던 일( unexpected, unwanted and wholly avoidable )"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윌코( Wilko )와 더 레인지( The Range )를 소유한 CDS 슈퍼스토어스, 파운드스트레처( Poundstretcher )의 포트리스( Fortress ), TG 존스( TG Jones )의 모델라( Modella )가 부분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알릭스파트너스가 매각 절차를 맡았다. 총리 앤디 번햄은 현 소유주인 고든 브라더스( Gordon Brothers )에 브랜드 매각과 일자리 보호를 촉구했다.
신발 체인 슈존( Shoe Zone )은 2026년 10월 3일 마감 53주 실적에서 세전 조정손실 약 100만 파운드를 예상한다. 전년 240만 파운드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고, 매출은 1억4,910만 파운드에서 1억4,240만 파운드로 4.5% 줄었으며, 점포 수는 269개에서 251개로 감소했다. 찰스 스미스 회장은 "소비자 신뢰가 약해졌고 2025년 11월 예산안 이후 더 나빠졌다"고 밝혔다.
4. 왜 이런 변화가 생겼나 — 세금, 임금, 그리고 형식
원문이 제시하는 원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고정비다. BRC는 소매업 사업세가 410억 파운드, 2년간 추가 인건비가 65억 파운드라고 제시했다. 최저임금( National Living Wage )이 물가 이상으로 오르고 고용주 국민보험( NICs ) 부담이 줄지 않으면서, 원문은 이번 발표가 "기존 65억 파운드 위에 20억 파운드를 더한다"고 전한다. 둘째, 수요의 양극화다. 슈존 회장은 "여름과 신학기처럼 이유가 분명할 때는 잘 팔렸지만, 재량소비는 전반적으로 억제되어 있다"고 말한다. 셋째, 형식의 전환이다. 알디가 1,500개 점포를 목표로 새 매장을 여는 동안, 슈존은 211개 점포를 큰 형식( larger format )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속도는 둔화됐다. 즉 폐점과 확장이 같은 업종 안에서도 '매장 형식' 차이로 갈린다.
중요한 것은 이 기사가 '상권의 몰락'을 다루는 기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사이더 미디어는 영국 지방 도시의 부동산과 기업, 그리고 체인 확장을 다루는 비즈니스 미디어다. 알디의 투자 규모, M&S의 채용 계획이 헤드라인에 오르고, 파운드랜드는 '매각 대상'으로 서술된다. 독자가 기억할 것은, 이 기사가 자본의 관점에서 본 거리라는 사실이다.
5. 통념 뒤집기: 빈 점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용도가 바뀐다
'하이스트리트의 죽음'은 영국에서 오래된 뉴스 프레임이다. 그런데 이번 주 자료를 나란히 놓으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7곳 중 1곳이 빈 상가라는 사실과, 같은 시기에 디스카운트 식료품점이 7개씩 문을 열고, 도심 외곽에 새 물류 허브가 세워지고, 북위치처럼 과거에 '매각' 간판이 붙었던 거리에 식료품 매장이 승인된다는 사실이 공존한다.
이는 상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능이 재배치되는 과정으로 읽힌다. 의류·신발·잡화가 빠진 자리에 식료품, 편의 서비스, 클릭앤콜 픽업대가 들어온다. 파운드랜드와 슈존이 줄이는 것은 '가격과 형식이 동일한 대형 점포'이고, 알디와 M&S 푸드홀이 늘리는 것은 '목적 구매( 식료품 )와 회수( 픽업 )'다. 다만 이 재해석에는 대가가 있다. 재배치되는 자리에는 대개 더 적은 사람이, 더 낮은 임금의 일자리로 채워지고, 그 사이에 낀 개인 점주는 임대료와 세금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원문의 BRC 인터뷰는 바로 그 계층의 목소리다.
6. 한국과 비교 — 전주 한옥마을과 청주 성안길
비슷한 처지의 국내 상권으로 전주 한옥마을과 청주 성안길을 떠올릴 수 있다. 한옥마을은 관광객 증가로 임대료와 권리금이 오르며 기존 주민 생활용 가게가 밀려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사례로, 영국 하이스트리트와 달리 방문객 수요가 상권을 지탱하는 구조다. 성안길은 대형마트와 이커머스에 밀려 공실이 늘고, 청년 상인과 임대인 사이의 협상이 과제로 남은 곳이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같다면 고정비와 수요 변화가 함께 온다는 점이다. 한국은 임대료·보증금·권리금이 한 번에 발생하는 진입 장벽이 있고, 영국은 재산세와 FRI 리스의 수리 의무가 같은 역할을 한다. 다른 점은 정책 수단이다. 영국은 국가 차원의 재산세 감면 기준선으로, 한국은 지방자치단체의 상권 조례·빈 점포 활용·임대료 지원으로 대응한다. 또 영국 기사에서는 임차인이 직접 세금 인상의 수치( 3.5%, 2억5천만 파운드 )를 들고 협상 목소리를 내는 반면, 한국에서는 권리금 보호와 임대료 상한이 여전히 법적 회색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7. 사료의 한계
이 글의 근거는 인사이더 미디어의 주간 소매 뉴스 정리 기사 한 편이다. 이 형식의 기사는 여러 보도와 기업 발표를 요약하며, 인용의 무게중심이 BRC·업계 단체·기업 임원에게 있다. 반면 개인 점주, 임차인, 상가 노동자의 목소리는 원문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7곳 중 1곳 공실'과 '3.5% 인상'은 BRC의 계산이며, 정부의 공식 추계와는 다를 수 있다. 알디·M&S의 투자 계획은 기업 측 발표로, 실제 개점 시점과 지역별 조건은 이후 승인·공사 단계에서 달라질 수 있다. 파운드랜드 관련 서술도 소유주와 잠재 인수자 간의 협상 국면을 보도한 것으로, 확정된 결과가 아니다. 이 글은 영국 상가 제도의 일반 배경 설명을 일부 포함하며, 원문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은 '확인되지 않음'으로 남겨 두었다.
8. 독자에게 묻는다
만약 우리 동네 상권에서 '세금 감면'이 소상공인에게만 돌아가고, 인상은 중대형 점포에 돌아간다면, 그 거리는 유지될까. 아니면 감면을 받은 작은 가게가 대형 점포의 클릭앤콜 픽업대 옆에서 경쟁해야 하는 구조가 굳어질까. 빈 점포를 '몰락'으로 볼 것인지 '용도 전환'으로 볼 것인지, 그 판단은 결국 수치가 아니라 그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해야 한다. 당신의 동네에는 지금 어떤 간판이 걸려 있는가.
참고 자료
- "Retail wrap: High street reacts to Budget; M&S recruitment drive; Seven new stores for Aldi", Insider Media Ltd, 2026년 10월 30일 — https://www.insidermedia.com/news/national/retail-wrap-high-street-reacts-to-budget-ms-recruitment-drive-seven-new-stores-for-aldi
- 이미지: "High Street, Northwich (1)", 촬영 Rept0n1x, 2013년 11월 4일, CC BY-SA 3.0 (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 Wikimedia Commons
- 영국 상가 제도( freehold/leasehold, FRI 리스, SDLT )는 일반적 배경 설명이며 이 기사에 직접 서술된 내용이 아님.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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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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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4:42
진짜 인정함
결국 돈 많은 놈들이 싹쓸이하는 구조인듯
우리나라도 젠트리피케이션 심한 거 보면 답 없네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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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5:30
ㄹㅇㅋㅋ 결국 자본 논리라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네요
우리나라도 결국 프랜차이즈 천지가 된 거 보면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듯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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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1:49
ㄹㅇㅋㅋ 결국 개성 있는 가게들은 다 사라지고 뻔한 체인점만 남는 게 국룰인 듯 ㄷㄷ 진짜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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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5:31
그 와중에 13년 전 사진까지 가져와서 비교한 거 좀 소름돋네요.
분위기 확 바뀌는 게 체감됨 ㄷㄷ
진짜 세상 빠르게 변하는 듯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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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5:31
ㄹㅇㅋㅋ 13년 전 사진이랑 지금 상황 비교하니까
진짜 확 와닿네요 ㄷㄷ 세상 변하는 속도 무섭긴 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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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18:47
근데 세금 감면 기준 올렸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올리는 거라는 게 진짜 무섭네요 ㅋㅋ
정부 말만 믿고 들어갔다간 다 같이 망하는 구조인 듯 ㄷㄷ
모든 이야기1439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결국 대형 체인들만 살아남고 골목 상권은 다 밀려나는 그림이라 씁쓸하네요. 우리나라 상권이랑도 비슷해서 남 일 같지 않음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