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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6일 오전, 부동산 전문지 그린스트리트 뉴스(Green Street News)는 영국 소매 공실 통계를 한 장짜리 점검표처럼 내놓았다. 숫자는 놀랄 만큼 조용했다. 전체 소매 공실률이 14%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고, 고위험 지표인 '장기 공실'은 쇼핑센터 9.9%, 하이스트리트 7%, 리테일파크 4.4%였다. 표면만 보면 '변화 없음'이다.

그런데 같은 표 안에서 세 개의 숫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쇼핑센터 공실은 2021년 2분기 19.4%에서 2023년 말 17.7%로, 리테일파크는 11.5%에서 7.6%로 내려왔다. 반대로 하이스트리트는 같은 기간 14.5%에서 14.0%로 겨우 0.5%포인트 움직였다. 영국 상권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순간 숫자는 평평해지고, 세 개의 시장으로 쪼개 보는 순간 방향이 갈린다.

평평한 14%라는 숫자의 정체

이 통계의 출처는 영국 상권 데이터 회사인 로컬 데이터 컴퍼니(Local Data Company, LDC)가 내는 'GB 공실 분기 모니터'다. 전국 상위 650개 도심을 현장 조사로 훑고, 점포 수 대비 빈 점포 수를 비율로 환산한다. 그린스트리트 뉴스는 리액트 뉴스(React News)의 자매 매체로, 기사 자체가 LDC의 상업용 리포트를 요약 소개하는 성격이다.

코로나 이전 마지막 분기였던 2019년 4분기 전체 공실률이 12.1%였다. 4년이 지나 14%가 됐다는 말은, 영국 소매 점포 100칸 중 14칸이 비어 있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팬데믹 초기의 공황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같은 숫자가 '회복의 증거'이자 '정체의 증거'인 셈이다.

영국의 상가 제도: 소유와 임대가 한국과 다른 지점

영국 하이스트리트를 읽으려면 먼저 건물이 누구 것이고, 점포가 어떤 계약으로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영국에는 프리홀드(freehold, 토지와 건물의 영구 소유권)와 리스홀드(leasehold, 수백 년 단위의 장기 임차권)가 나란히 있다. 하이스트리트의 상업용 건물 상당수는 리스홀드 구조로, 건물주가 아니라 장기 임차권자가 소유자 역할을 하고, 그 아래에서 상인이 몇 년짜리 상업 임대(commercial lease)를 다시 얻는 다층 구조가 흔하다.

임대 계약도 한국과 결이 다르다. 영국 상업 임대는 보통 5년·10년 단위의 장기 계약이고, 업워드 렌트 리뷰(upward-only rent review)처럼 3~5년마다 임대료를 재산정하는 조항이 붙는 경우가 많다 — 재산정 결과가 내려가도 임대료는 오르기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상권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권리금'이 아니라 계약 기간과 임대료 부담이다. 이는 한국의 전세·보증금·권리금 구조와 정반대에 가깝다. 한국은 점포를 시작할 때 목돈(보증금+권리금)을 내고 나가면서 권리금 일부를 회수하는 반면, 영국 장기 상업 임대에서는 나가는 시점의 부채가 남는다. 다만 이번 원문에는 임대 구조나 렌트 리뷰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위 제도 설명은 일반적 배경 지식이며 기사에서 확인된 내용이 아님을 밝혀 둔다.

쇼핑센터와 리테일파크가 먼저 돌아선 이유

LDC 수치에서 공실이 가장 극적으로 줄어든 곳은 리테일파크다. 2021년 2분기 11.5%에서 2023년 4분기 7.6%로 3.9%포인트 빠졌다. 기사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무료 주차다. 운전해서 오는 고객이 주차비를 따로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는 점이 팬데믹 이후에도 발걸음과 지출을 유지시켰다. 다른 하나는 점포의 용도가 바뀐 것이다. 소매업체들이 리테일파크의 점포를 온라인 주문 배송(fulfilment), 매장 수령(click-and-collect), 반품 접수 창구로 돌려 쓰기 시작했다.

쇼핑센터도 방향이 같다. 2021년 19.4%까지 치솟았던 공실이 17.7%로 내려왔다. 기사는 대형 쇼핑센터 일부가 매각되면서 새 자산운용사와 새 전략이 들어온 점, 그리고 '라이트사이징(rightsizing)' — 상면 일부를 아예 시장에서 빼버리는 것 — 과 용도 구성의 변화를 배경으로 적었다. 점포를 채운 것이 아니라 점포의 양과 쓰임을 줄이고 바꾼 것이다.

하이스트리트만 제자리인 까닭

하이스트리트는 다르다. 2021년 2분기 14.5%에서 2023년 말 14.0%로 사실상 그대로다. 기사는 이 평평함의 원인을 '개선과 정체의 상쇄'로 설명한다. 전국 각지에서 거리 재편 작업(work to reposition high streets)이 계속됐지만, 어떤 지역의 개선은 다른 지역의 지속된 고전으로 상쇄된다는 것이다. LDC 상무이사 루시 스탠턴(Lucy Stainton)은 "최신 공실 데이터가 14%로 분기 대비 유지되는 것처럼 보여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상황은 훨씬 미묘하다"며 "이번 분기는 리테일파크와 쇼핑센터 모두 뚜렷한 개선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지역별로도 격차가 크다. 2023년 말 잉글랜드 북동부(North East)가 17.9%로 전국 최고였고, 그레이터런던(Greater London)이 10.6%로 가장 낮았다. 팬데믹 이후 가장 크게 개선된 곳은 잉글랜드 북서부(North West)로, 0.4%포인트 내려 15.6%가 됐다. 기사는 이유로 맨체스터 도심의 주요 상업 거리와 트래퍼드 센터(Trafford Centre)에 투자가 몰리며 개점 활동이 활발했다는 점을 꼽았다. 결국 '하이스트리트'라는 한 단어 안에 맨체스터처럼 살아나는 거리와 북동부처럼 계속 비는 거리가 함께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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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이스트리트의 빈 점포 전면 — Philip Halling,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장기 공실이 말해주는 진짜 신호

짧은 공실률보다 더 무거운 숫자는 2년 이상 비어 있는 점포를 세는 '장기 공실률'이다. 쇼핑센터 9.9%, 하이스트리트 7%, 리테일파크 4.4%. 쇼핑센터와 리테일파크의 전체 공실은 줄었는데 장기 공실은 모든 유형에서 늘었다고 기사는 적었다. 새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과, 빈 점포가 오래 빈 채로 남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스탠턴은 장기 공실이 "구조적 변화와 이해관계자들의 실질적 개입이 필요한 지역을 보여주는 견고한 지표"라고 진단했다. 기사가 '다음에 필요한 것'으로 제시한 것도 그래서 투자와 재생(regeneration)이다. 공실률이 평평하다는 것은 시장이 안정됐다는 신호가 아니라, 개선될 곳과 구조적으로 손을 대야 할 곳이 더 선명하게 갈렸다는 신호에 가깝다.

통념 반전: '상권 몰락'이 아니라 '용도 재편'

이 기사를 읽는 가장 흔한 오독은 '영국 상권이 망했고 하이스트리트는 죽었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LDC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다르다. 소매 공간은 줄고, 배송·수령·회원제·헬스클럽 같은 비(非)소매 용도가 리테일파크와 쇼핑센터의 빈자리를 메웠다. 스탠턴은 리테일파크에서 "식료품 대형점이 선두에 서고, 헬스클럽·헬스&뷰티·테이크아웃 외식 같은 범주의 매장이 늘고 있다"고 했다. 점포가 사라진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점포에서 하던 일이 바뀌었고 그 일을 하던 공간들이 재배치된 것이다. 기사 제목이 말하는 '회복을 식히는(stall struggles temper recovery)'의 주어는 소매업 전체가 아니라 특정 공간 유형, 즉 하이스트리트다.

동시에 이 반전에는 한계가 있다. 기사는 하이스트리트를 '전환의 대상'으로만 서술하고, 그 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하려는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이나 신규 진입 조건은 다루지 않는다. 데이터 회사와 자산운용 시장의 시선에서 쓴 기사라는 점을 감안해 읽어야 한다.

한국과 견주기: 같은 처지, 다른 계약 구조

한국에서 가장 비슷한 곳은 대도시 외곽이나 지방 중소도시의 중심 상가거리다. 서울 안에서도 2호선 주요역과 한 정거장 차이로 공실률이 갈리고, 지방 구도심에서는 빈 점포가 2년 이상 방치되는 '장기 공실'이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됐다. 쇼핑센터와 근린생활시설의 대형화, 대형마트·아울렛으로의 지출 이동, 그리고 온라인 쇼핑의 확산 — 영국 기사에 등장하는 원인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계약 구조다. 영국 하이스트리트의 빈 점포는 건물주 또는 장기 임차권자가 임대료를 못 받는 문제로 남고, 계약이 장기라 유연하게 재임대하기 어렵다. 한국은 보증금과 권리금이 시장 가격으로 작동해, 임대인이 '빈 점포를 그대로 두는' 비용과 상인이 '나가는' 비용이 다르게 계산된다. 한국 상인은 빈 점포를 버티는 비용이 권리금 회수와 맞물리고, 영국 상인은 장기 계약의 잔여 부채와 맞물린다. 같은 공실률이라도 아픈 곳이 다르다.

사료의 한계: 누구의 시선인가

이 기사의 원출처는 부동산 자산운용·투자자 독자를 겨냥한 그린스트리트 뉴스이고, 인용된 데이터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리포트를 파는 LDC다. 즉 '자산 가치'와 '임차 수요'를 보는 시선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수치는 모두 LDC의 현장 조사 기반이며, 상인의 매출·폐업률·고용 같은 지표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이스트리트가 '나아졌다/나빠졌다'를 판단하려면 그 거리에서 실제로 장사하는 사람들의 손익 데이터가 따로 필요하다. 이 글은 원문에 나온 수치 외에 다른 숫자를 쓰지 않았고, 제도 설명 부분은 일반 배경 지식임을 앞서 밝혔다.

독자에게 묻는다

영국 사례가 주는 가장 도발적인 시사점은 '상권이 죽는다'는 공포가 실제로는 '쓰임이 바뀐다'는 현상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 거리에 대해 물어야 할 질문은 "이 거리를 어떻게 살릴까"보다 "이 거리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닐까. 당신이 자주 가는 상가거리에서 지난 3년간 사라진 점포와 새로 생긴 점포는 각각 무엇이었나?

참고 자료

Retail vacancies flatline as high street struggles temper recovery — Green Street News (Jessica Middleton-Pugh), 2024년 1월 26일, greenstreetnews.com
데이터 출처: Local Data Company, Quarterly GB Vacancy Monitor (2023년 4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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