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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가 비어 있는 워싱턴 K스트리트 — 임대인은 왜 빈 점포를 그대로 두는가

빗방울 2026.10.31 17:23 12분 읽기 조회 133 · 추천 1

2026년 9월의 워싱턴 DC, K스트리트(K Street) 노스웨스트 1400번지 블록. 14번가와 버몬트 애비뉴 사이 이 한 블록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직장인들은 몇 해 전만 해도 여섯 곳 가까운 선택지를 가졌다. 지금은 두 곳뿐이다. 1401 K St. NW 1층에 있던 1만 제곱피트가 넘는 두 층짜리 베이커리 카페 '르 팽 코티디앙(Le Pain Quotidien)'은 2020년에 떠났고, 그 자리는 아직도 천장이 높고 창이 어두운 채 비어 있다. 거리 양쪽으로 종이로 덮인 유리창이 늘어선 풍경은 이 블록만의 일이 아니다.

도시 전체의 숫자는 더 차갑다. 다운타운 비즈니스 개선지구(BID, Business Improvement District)가 집계한 지난해 다운타운의 상가 공실률은 25%다. 2019년 10.3%의 두 배가 넘고, 팬데믹 이후 2년 연속 최고치다. 같은 해 말 주요 상권의 지역 전체 평균이 약 13%(부동산 자문사 도크터 앤 알렉산더 집계)였으니, 워싱턴 다운타운은 미국 대도시 평균의 두 배 수준에서 멈춰 있는 셈이다. 조지워싱턴대 부동산학 명예교수이자 부동산 데이터 기업 플레이시스 플랫폼(Places Platform)의 크리스 라인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워싱턴 다운타운은 미국의 거의 모든 다운타운에서 벌어지는 일의 극단적 사례다."

미국식 상가 임대 — 계약서가 공실을 만든다

한국 독자에게 이 기사에서 가장 낯선 대목은 임대차 구조다. 미국 상가는 대개 임차인이 5년에서 10년 단위로 장기 계약을 맺고, 임대인이 건물을 새로 지어 주는 대신 세입자가 인테리어를 직접 하는 '테넌트 인프로브먼트(TI, tenant improvement)' 방식이 흔하다. 기사에 나오는 실패 사례가 바로 그 구조의 함정이다. 르 팽 코티디앙이 나간 뒤 임대인이 공간을 '속을 비워 버리는(gutted)' 공사를 했고, CBRE의 소매 부동산 중개인 켈리 실버만은 그 때문에 '2세대 운영자'가 들어오기 더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기존 설비를 물려받아 공사비를 아끼는 이점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오래 비어 있던 식당 자리는 다시 열기까지 비용이 크다. 냉난방 설비를 갈거나 전력 계통을 올려야 하고, 세입자는 임대인에게 인테리어 비용 분담(TI 합의)을 요구한다. 개발사 로드사이드 디벨롭먼트의 리처드 레이크는 그런 건물 임대인들이 'TI 비용을 댈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임대료를 낮춰 계약하고 싶어도 못 하는 구조적 이유가 붙는다. BID 최고경영자 게런 프라이스에 따르면 많은 건물주가 대출 계약에 묶여 있어, 특정 임대료 이하로 계약하거나 건물 수입이 일정선 아래로 내려가면 대출 조건을 위반하게 된다. 그래서 빈 점포가 '방치'가 아니라 '대출 조건의 증상'인 경우가 있다.

한국의 전세·보증금·권리금 구조와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한국 임차인은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며, 자리 자체의 영업 가치를 권리금으로 사고판다. 미국에는 법으로 인정된 권리금 개념이 없고, 대신 보증금(security deposit)과 장기 임대료, 그리고 세입자가 직접 부담하는 인테리어·설비 투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임차인이 자기 돈으로 집을 고쳐 놓고 나가면 그 투자도 함께 두고 나가는 셈이라, 임대인이 공간을 헐어 버리면 다음 세입자에게는 그 비용이 고스란히 다시 발생한다.

※ 참고: 이 기사는 공실의 원인을 임대인의 자금 사정과 대출 조건으로 설명하지만, 임대차 계약의 구체적 조항이나 보증금·권리금 같은 제도 비교는 다루지 않는다. 위 제도 설명은 일반적 배경이며, 이 사건에 적용된 개별 계약 조건은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점포의 절반이 사라진 블록 — 업종 구성의 변화

기사가 그리는 변화의 방향은 '비어 감'이 아니라 '골라 남음'이다. 과거 이 블록에는 베이커리, 세탁소, 식당, 칵테일 바가 섞여 있었다. 지금 남은 두 곳의 점심집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운영자다. 반대편에서는 새로운 '트로피 빌딩'과 과거 식당·상점이 쓰던 자리가 더 비싼 임대료로 나가고 있다. 쿠시먼 앤 웨이크필드에서 DMV(워싱턴 DC·메릴랜드·버지니아) 지역 소매 임대 담당 이사인 소피 반 펠트는 "결국 비용 문제이고, 전국 브랜드만이 그 재정 부담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1층 점포의 주인이 동네 가게에서 프랜차이즈와 대형 브랜드로 바뀌는 것이다.

업종별 매출이나 점포 수를 기사는 숫자로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개점과 폐점의 방향은 기록돼 있다. 지난해 공실률은 여전히 높았지만 2024년과 같은 수준에서 멈췄고, 2년 연속으로 폐점보다 개점이 많았다. BID의 프라이스는 "전체 그림은 여전히 나쁘지만 안정되기 시작한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왜 비었나 — 재택근무, 일자리, 그리고 사무실 85%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우선 사무실 공실률이 2019년 14.8%에서 지난해 22.8%로 올랐다. 점심 수요를 만들던 직장인이 줄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2025년 3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워싱턴 DC에서 2만 6,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 노동통계국(BLS)의 분기 고용 데이터에서 DC는 알링턴 카운티와 함께 4.5%로 가장 큰 감소를 기록했다. 기사는 이 감소를 연방정부 지출 삭감(DOGE 관련 정리해고)의 여파로 설명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용도 구성이다. 라인버거가 쿠시먼 앤 웨이크필드와 함께 낸 보고서에 따르면 다운타운 부동산의 약 85%가 사무실이고, 아파트·콘도를 포함한 주거는 7.5%, 극장·박물관·공연장 같은 엔터테인먼트가 7.5%다. 일할 곳만 있고 살 곳과 놀 곳이 거의 없는 도시라는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해법은 컨벤션센터를 살리고 거리 생활을 깨우고 '놀거리' 앵커를 늘리는 것, 그리고 소매 브랜드를 계속 유치하는 일이다.

규제도 변수다. 레이크는 인허가와 검사 절차가 많고 진행 상황을 여러 부서에 걸쳐 추적하기 어렵다며, 세입자가 허가나 주류 면허를 제때 받지 못해 계약 조건을 조정해야 했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환경이 '사업하기 좋은' 분위기가 아니라며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반전 — '상권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임대인을 비난하지만, 본문이 실제로 보여 주는 것은 다른 그림이다. 공실은 죽은 거리의 표지가 아니라 재개발의 대기실에 가깝다. 기사에 따르면 워싱턴은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사무실을 주거로 바꾸는 전환(adaptive reuse)이 가장 많은 도시다. 지난해 기준으로 6,533호의 아파트가 파이프라인에 있고, 이는 전년 대비 12% 늘어난 수치다. 시장(市長) 머릴 바우저와 계획·경제개발 부시장 니나 앨버트는 노후 사무실을 주거·소매·식당·엔터테인먼트 시설로 바꾸는 데 5년 임시 재산세 동결 같은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바우저는 지난주 행사에서 "10년 뒤에는 지금보다 1만 5,000~2만 명이 다운타운에 더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환이 상권을 살리는 방향으로 작동하려면 순서가 중요하다. 레이크의 말이 핵심이다. "소매는 이끌지 않는다, 따라온다." 그는 주거가 먼저 들어와야 하고, 그 주민들이 '식료품점도 없는데 왜 다운타운에 사느냐'고 묻지 않도록 생활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가를 채우는 일은 주거 전환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상원과 시의회가 공실에 대한 각종 수치를 다르게 집계하기 때문에, 모든 통계가 같은 기준으로 비교되지는 않는다. BID의 25%는 BID 경계 안의 소매 공간 기준이고, 13%는 지역 주요 상권 전체 기준이다. 이 둘을 같은 잣대로 늘어놓으면 다운타운의 문제가 과장될 수 있다.

한국과 비교 — 대구 동성로와 워싱턴 K스트리트

비슷한 처지의 국내 상권으로 대구 동성로를 떠올릴 수 있다. 2025년 4분기 동성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6.9%로, 워싱턴 다운타운의 25%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두 곳 모두 대규모 사무실 수요가 빠져나간 뒤 빈 점포가 늘었고, 젊은 층의 유동 인구가 줄었으며, 임대인이 임대료를 쉽게 낮추지 못하는 상황이 겹쳤다. 여기까지는 같은 이야기다.

다른 점은 해법의 재원과 제도다. 워싱턴은 대출 조건에 묶인 임대인을 먼저 움직이게 하려고 세제 인센티브와 용도 전환 규제 완화를 쓴다. 반면 한국 지자체는 청년 창업자에게 임대료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빈 점포를 채우려 한다. 워싱턴의 접근은 건물 자체의 용도를 바꾸는 데, 한국의 접근은 들어갈 사람에게 돈을 대는 데 초점이 있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는 아직 판정되지 않았다. 워싱턴도 전환 사업이 실제 임대료를 낮추는지는 몇 년 더 지나야 확인된다.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선인가

이 기사는 도시의 비즈니스 개선지구(BID)와 부동산 중개·개발 업계 관계자들의 발언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BID는 상권 활성화를 위해 예산을 쓰는 조직이므로 공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규정할 이해관계가 있고, 중개인과 개발사는 임대 시장의 회복을 낙관적으로 말할 유인이 있다. 실제로 기사 후반부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낙관적이다'는 전망으로 마무리된다. 반면 세입자나 소상공인의 목소리는 직접 인용되지 않는다. 공실률 수치도 BID와 민간 자문사 집계에 의존하며, 정부의 공식 통계와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또한 기사는 워싱턴 다운타운을 '미국의 축소판'으로 일반화하지만, 이는 라인버거 한 사람의 진단이다. 다른 도시의 사정이 같은 속도로 나빠졌는지, 혹은 다른 원인으로 회복했는지는 이 기사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인용된 2만 6,000명 감소 역시 BLS 분기 데이터의 특정 기간 비교이며, 그 감소가 전부 연방정부 정리해고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독자에게 — 빈 점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워싱턴의 점포주는 임대료를 낮추지 않고 더 좋은 세입자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버티는 이유는 대출 계약이고, 버티지 못하는 이유는 이자와 세금이다. 그렇다면 도시가 먼저 손댈 곳은 임대료가 아니라 건물주의 재무 구조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주거가 먼저 들어와야 소매가 따라온다는 논리는 역설적이다. 상권을 살리려면 상권이 아니라 주민을 먼저 불러들여야 한다는 뜻이니까.

여러분이 사는 동네의 빈 점포는 어떤 이유로 비어 있을까. 임대료가 비싸서인지, 임대인이 기다리는 중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 자리에 사람이 오지 않아서인지. 다음에 종이로 덮인 쇼윈도를 지나칠 때 한번 들여다보시길.

참고 자료

· City Cast DC, "Retail Vacancies Downtown Are Still High, and Some Landlords Are to Blame", 2026년 9월 11일. https://dc.citycast.fm/business-development/downtown-retail-vacancy-landlords

· 원문에 인용된 1차 자료: Downtown BID 『State of Downtown 2025』, Cushman & Wakefield 사무실 공실 데이터, 미 노동통계국(BLS) 분기 고용 데이터, RentCafe 사무실→주거 전환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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