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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모든 이야기

2026년 2월 9일, BBC 링컨셔 지역면은 짧은 기사를 하나 내보냈다. 잉글랜드 중부 링컨(Lincoln) 시내,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나오는 세인트마크스 쇼핑센터(St Marks Shopping Centre)의 공실률이 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첫 문장은 센터 소유주의 말로 시작한다. ‘대체할 소매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little demand from retailers to replace them)’는 것이다. 2월 말 문을 닫는 토비 카버리(Toby Carvery) 식당까지 합치면, 이번에도 빈자리는 빈자리로 남는다.

세인트마크스는 낯설게 태어난 장소다. 옛 링컨 세인트마크스 역(St Marks railway station) 자리에 세워진 쇼핑센터다. 기사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데번햄(Debenhams), 아르고스(Argos), 마더케어(Mothercare) 같은 대형 체인이 연달아 철수했다. 영국 상권에서 흔히 ‘앵커 테넌트(anchor tenant)’라 부르는, 발길을 끌어오는 대형 점포들이다. 앵커가 빠지면 나머지 점포의 동선이 무너지고, 그다음에는 식당이 빠진다. 토비 카버리는 세인트마크스점을 2월 28일에 닫고 직원 재배치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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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하이스트리트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세인트마크스 쇼핑센터 입구 — David Hallam-Jones,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 Geograph Britain and Ireland)

남은 것은 ‘너무 큰 빈 점포’다

기사에서 가장 구체적인 장면은 링컨셔 소상공인연합(Lincolnshire Federation of Small Businesses)의 카트리나 피어스(Katrina Pierce)가 한 말이다. 그녀는 이 상황을 ‘완벽한 폭풍(perfect storm)’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규모다. 데번햄이나 토이저러스(Toys R Us)가 쓰던 매장의 바닥 면적(footprint)이 너무 커서, 동네에서 문을 여는 독립 소매업자는 애초에 그 공간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어스는 ‘전국 체인이 그 정도 크기의 사업에서 손을 떼면, 평범한 지역 독립업자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 입장이 못 된다’고 말했다.

이 지점이 이 기사의 핵심이다. 공실은 ‘임차인을 못 구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은 공간의 단위가 바뀌었기 때문에 생긴다. 2층짜리 대형 매장 하나를 20평 남짓의 점포 여러 개로 쪼개려면 벽을 허물고 설비를 다시 깔아야 한다. 그 공사비를 임대인이 부담할지, 임차인이 부담할지가 협상의 본론이 되고, 협상이 길어지는 동안 점포는 비어 있다. 피어스는 링컨 시내 다른 구역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도시 전체가 아니라, 특정 부지의 건물 크기라는 뜻이다.

영국의 leasehold와 freehold — 한국의 전세·보증금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 독자에게 영국 상가 시장은 먼저 제도에서 낯설다. 한국에서는 상가 임대차에서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권리금이 익숙한 축이다. 영국에는 이 세 가지가 그대로 대응하지 않는다. 우선 상가 건물 자체를 사고파는 소유권(freehold)과, 건물은 사되 그 아래 땅은 오랜 기간 빌리는 leasehold가 나뉜다. leasehold의 임대 기간은 수십 년에서 900년 넘는 것까지 다양하고, 계약서에 적힌 잔여 기간이 자산 가치를 좌우한다. 한국의 전세보증금처럼 ‘목돈을 맡기고 돌려받는’ 구조가 아니라, 권리를 사는 구조에 가깝다.

점포를 빌리는 상업 임대(commercial lease)는 보통 5년·10년·15년 단위의 장기 계약이고, 계약 기간 동안 임대료 조정 방식(rent review)이 미리 정해진다. 한국 상가처럼 2년 계약을 갱신하며 시세를 다시 보는 구조와는 계약의 리듬부터 다르다. 권리금에 해당하는 관행은 영국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대신 기존 임차인이 설비와 인테리어를 새 임차인에게 넘기는 식의 거래가 개별적으로 일어난다. 다만 이 단락의 제도 설명은 일반적 배경이며, BBC 기사 자체에는 세인트마크스의 임대 조건, 임대료 수준, leasehold 여부가 나오지 않는다. 이 글에서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다.

수치가 말하는 것 — 8,000만 파운드와 1,300실

기사에서 인용할 수 있는 숫자는 많지 않다. 소유주인 애버딘 인베스트먼트(Aberdeen Investments) 대변인은 세인트마크스의 일부를 레저 시설로 재생하는 데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지 일부를 1,300실 규모의 학생 기숙사(student accommodation)로 개발하는 데 8,000만 파운드(£80m) 이상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1,300실이다. 쇼핑센터의 연면적이 몇 제곱미터인지, 현재 공실률이 몇 퍼센트인지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추측해서 채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숫자가 ‘쇼핑센터를 살리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8,000만 파운드는 점포를 늘리는 데 쓰이지 않았다. 점포가 있던 자리 일부를 학생 기숙사로 바꾸는 데 쓰였다. 소유주는 같은 문장에서 ‘가만히 서 있지 않다(We are not standing still)’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문장이 가리키는 대상은 소매업이 아니라 임대 수요가 확실한 다른 용도다. 영국 대학 도시에서 학생 기숙사는 장기 임대가 보장되는 자산으로 취급된다. 쇼핑객의 발길을 기다리는 대신, 학기마다 계약이 갱신되는 세입자를 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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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지방 도시 상가의 빈 점포 — Roger A Smith,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 Geograph Britain and Ireland)

왜 이런 변화가 생겼나 —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했다

영국 하이스트리트의 위기는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로 설명된다. 이커머스의 성장, 재택근무로 인한 통근 수요 감소, 지방 도시 중심부의 인구 이동, 그리고 소매업에 붙는 사업세(business rates) 부담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BBC 기사에서 소유주는 ‘수십 년에 걸친 영국 경제의 충격과 격변’이라는 표현으로 그 배경을 요약한다. 세인트마크스의 경우엔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링컨은 대학 도시이고, 학생 수요가 도심 부지의 경쟁력 있는 대체 용도를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기사의 수치는 ‘쇼핑센터가 망했다’는 서사보다 ‘같은 땅이 다른 임차인을 찾았다’는 서사에 가깝다. 레저 시설과 기숙사는 모두 사람을 불러 모은다. 다만 그 사람들이 점포에서 물건을 사는 대신, 볼링을 치거나 강의를 들으러 온다. 상권의 유동인구는 유지되지만 소매 매출로 전환되는 비율은 달라진다. 남은 점포 입장에서는 이웃이 바뀐 것이고, 이 변화가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업종에 따라 갈린다. 카페와 편의점에는 손님이 늘고, 대형 의류 매장에는 손님이 줄 수 있다.

반전 — ‘상권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이다

이 기사를 ‘영국 지방 도시의 몰락’으로 읽으면 절반만 읽은 것이다. 소유주가 8,000만 파운드를 들여 기숙사를 지었다는 사실은, 이 부지에 대한 자본의 판단이 ‘철수’가 아니라 ‘재배치’였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재배치가 소매업을 대체한다는 점이다. 빈 점포는 채워지지 않고, 그 자리에는 다른 용도의 건물이 들어선다. 회계상으로는 성공적인 재생이고, 상인 입장에서는 상권의 성격이 바뀌는 사건이다.

피어스의 발언도 이 틀 안에서 읽어야 한다. 그녀는 ‘독립업자가 그 큰 자리를 못 채운다’고 했지, ‘아무도 안 온다’고 하지 않았다. 링컨 시내의 다른 구역은 잘 돌아간다는 그녀의 말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상권의 성패가 갈린다는 관찰이다. 상권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건물 단위와 블록 단위로 갈라진 여러 개의 작은 시장이다.

한국과 견주기 — 대형 앵커가 빠진 뒤의 공간

한국에도 구조가 비슷한 장면이 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대형 매장을 소규모 점포로 쪼개지 못해 오래 비어 있는 지하 상가나 구도심 쇼핑센터가 그렇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권리금이라는 변수가 더해진다. 기존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하려면 새 임차인을 구해야 하고, 새 임차인은 매출 전망이 불투명한 대형 공간에 그만한 돈을 걸기 어렵다. 영국에는 권리금 관행이 일반적이지 않아 그만큼 걸림돌이 적지만, 대신 장기 임대차 계약과 건물 소유 구조가 협상을 복잡하게 만든다.

가장 큰 차이는 ‘대체 용도’의 존재다. 링컨에서는 학생 기숙사와 레저 시설이 빈 소매 공간을 흡수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한국 지방 도시의 구도심에서는 그런 대안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기숙사로 바꾸려면 대학이 가까워야 하고, 레저 시설로 바꾸려면 인구가 받쳐 줘야 한다. 세인트마크스의 전환이 가능했던 이유는 링컨이 대학 도시였기 때문이다. 이 조건이 없는 도시에서는 같은 해법을 쓰기 어렵다.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각인가

이 기사의 1차 출처는 BBC의 지역 취재다. 인용된 목소리는 세 갈래다. 소유주인 애버딘 인베스트먼트, 업종 단체인 링컨셔 소상공인연합, 그리고 철수하는 토비 카버리. 각자 이해관계가 다르다. 소유주는 투자 실적을 강조해야 하고, 소상공인연합은 대형 체인 철수가 지역 상권에 남기는 타격을 강조해야 한다. 기사에는 임차인 측의 임대료 불만이나, 실제 공실률 숫자, 유닛별 임대 조건이 없다. 소유주가 공개한 투자액 8,000만 파운드도 회사가 제시한 값이지 제3자가 검증한 값이 아니다.

또 하나, 이 기사는 세인트마크스 한 곳을 다룬다. 영국 전체 하이스트리트의 추세를 대표하지 않는다. 같은 시기 다른 도시에서는 공실률이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다. 읽을 때는 ‘한 사례의 구조’로 받아들이는 것이 안전하다.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 동네 대형 점포가 문을 닫으면,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는 것이 좋을까. 소매업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기숙사·클리닉·문화시설처럼 다른 용도로 바꾸는 것도 상권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보는가. 그리고 그 결정은 누가 해야 하는가. 건물주, 지자체, 아니면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인가.

참고 자료

‘Perfect storm’ as retail vacancy rates rise at St Marks in Lincoln — BBC News (링컨셔), 2026년 2월 9일
https://www.bbc.co.uk/news/articles/c4g2zyjg0n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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