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일, 칠레 최남단 푼타 아레나스. 마젤란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항구 도시의 아침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 지역은 위도 46도 이남에서 인구 10만이 넘는 세계 최대 도시이자, 남위로는 가장 남쪽에 있는 대도시다. 그날 이 도시의 한쪽 끝에서 영국 요크셔 출신의 서른한 살 남자 칼 부시비가 커다란 손수레를 밀며 북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영국 헐의 자기 집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5만 8,000km 가까운 길이라고 그는 그때 계산했다. 출발지에서의 약속은 단 하나, 기계 동력을 쓰지 않고 걸음의 끊김 없이 걷는다는 것이었다. 출발은 사실 그보다 한 달 앞선 10월 5일 헐에서 떠나 대서양을 건너 이곳으로 내려온 뒤였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애초 이 여정을 12년 안에 끝낼 계획이었다.
지도 위의 선: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가
그의 '골리앗 탐험(Goliath Expedition)'이 그린 노선은 남아메리카 최남단에서 시작해 아르헨티나·페루·에콰도르·콜롬비아를 지나 중앙아메리카로 올라가고, 베링 해협을 건너 러시아를 횡단해 유럽으로 들어와 영국 헐에 닿는 회로였다. 여행은 대부분 혼자였고, 손수레가 유일한 짐꾼이었다. 이 노선이 독특한 이유는 '가장 짧은 길'이 아니라 '걸어서 이을 수 있는 길'을 골랐다는 점이다. 바다가 나오면 배를 타는 대신 얼어붙은 바다를 걸어 건너는 쪽을 택했다.
골리앗 탐험 노선도. 남아메리카 최남단에서 출발해 북미·러시아·유럽을 거쳐 영국에 닿는 경로가 표시되어 있다 —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그가 선택한 이 규칙은 지도 위에서 단순해 보이지만 대륙 단위로 옮기면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남아메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가려면 다리엔 갭을 지나야 하고, 아시아로 가려면 베링 해협에 겨울이 와야 하며, 이란과 러시아를 피하려면 카스피해를 헤엄쳐야 한다. 출발일의 그 한 걸음이 '지구에서 끊기지 않는 한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말은 듣기 좋은 구호가 아니라, 이후 28년을 규정할 행정적·물리적 족쇄의 시작이었다.
왜 지구를 걸으려 했나
칼 부시비는 1969년 3월 30일 영국 헐에서 태어났다. 학교에서 난독증으로 놀림을 받았고, 그가 스스로 '지옥'이라고 표현한 시절을 버틴 방식은 집 근처에서 새를 관찰하는 일이었다. 열여섯 살에 군에 입대해 제3대대 낙하산 연대에서 11년을 복무했다. 이 배경이 여정의 성격을 결정했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계획의 재작성을 하나의 업무처럼 다루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 여행은 '낭만'보다 '교대 근무'에 가까웠다.
원래 계획은 더 실무적이었다. 군에 3년은 더 남아 급여 일부로 탐험 자금을 대고, 나머지 기간은 휴가 형식으로 걷는 안이었다. 그러나 군은 막판에 이 합의를 취소했다. 그는 결국 후원금과 책 판권으로 여행을 꾸려야 했다.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것은 의지의 서사가 아니라 자금 구조다. 뒤에 2008년 금융위기로 후원사를 잃었을 때 그가 몇 년을 멕시코에서 대기해야 했던 것을 보면, 이 탐험의 실제 병목은 다리보다 돈과 비자였다.
다리엔과 베링: 통과 증명의 방식
중앙아메리카 구간은 생존의 문제였다. 콜롬비아 무장단체 FARC는 외국인을 미국 지원의 일부로 보는 경우가 있었고, 지역 주민들조차 그가 납치되거나 죽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파나마에 2001년 2월 들어갔으나 비자 없이 국경을 넘은 이유로 메테티에서 18일을 구금됐다. 걸음의 연속성을 내세우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위협은 지형이 아니라 출입국 관리소였다.
가장 상징적인 구간은 2006년 3월이었다. 그는 프랑스 탐험가 드미트리 키퍼와 함께 베링 해협을 걸어 건넜다. 폭 93km의 해협을 곧장 가로지른 것이 아니라, 해빙 상태 때문에 240km에 이르는 우회로를 14일에 걸쳐 통과했다. 러시아 쪽 우엘렌 마을 근처에서 국경 수비대에 붙잡혔고, 정식 통관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로 러시아 입국 금지까지 거론됐다. 5월 항소심에서 그의 청원이 받아들여져 여정이 이어졌는데, 그 배경에는 당시 부총리 존 프레스콧과 러시아 촌촌카 주지사였던 로만 아브라모비치 사이의 접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통념과 다른 지점: 걸었다기보다 '조율'했다
이야기는 흔히 '한 사람이 쉬지 않고 28년을 걸었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기록을 따라가면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은 걷는 시간이 아니었다. 2008~2010년 그는 금융위기로 후원을 잃고 멕시코에서 비용을 줄이며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 구간은 툰드라가 얼어야만 통행이 가능해 매년 늦겨울에서 초봄의 몇 주 안에만 이동할 수 있었다. 비자 유효기간 90일과 계절의 얼음, 두 제약이 모두 맞아떨어지는 창이 사실상 '1년에 한 번의 몇 주'였다.
2024년 8월 카스피해 횡단도 같은 구조의 산물이다. 이란과 러시아를 영국 여권으로 통과하는 것이 당시 위험해지자, 그는 288km에 이르는 해상을 수영으로 건너는 쪽을 택했다. 함께한 사람은 공동 수영자 앤절라 맥스웰과 아제르바이잔 국적 수영자 두 명이었고, 하루 3시간 수영을 두 차례, 31일간에 걸쳐 총 132시간을 헤엄쳐 완수했다. 지도 위의 직선에 가까운 경로를 만든 것은 용기만이 아니라 국경의 정치적 상태였다. 이 여정의 진짜 반전은 '인간이 걸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걸을 수 있도록 허락이 이어지는가'라는 질문이다.
배낭을 메고 산악 지대를 걷는 칼 부시비 — 저작자: NapoleoqqBonaparte,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경쟁하는 해석과 반론
가장 강한 반론은 '끊김 없는 걸음'이라는 규칙 자체를 묻는다. 보트 위에서 자고, 비행기를 타고 비자 문제를 풀고,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구간이 포함된 여정을 어디까지 '도보로 지구를 한 바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 반론에 따르면 이 기록은 운동 기록이 아니라 '일생을 건 수행'으로 읽어야 하며, 검증 기준이 공인되지 않은 이상 경쟁 기록으로 비교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안전과 비용에 대한 비판이다. 다리엔 갭과 러시아 툰드라, 카스피해 수영은 구조 요청조차 어려운 구간이며, 한 사람의 프로젝트를 위해 다른 사람들이 위험한 지원 역할을 맡곤 했다. 옹호 측의 반대 논리는 명확하다. 그는 공인 단체의 기록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고, 자기가 정한 규칙을 스스로 공개하며 걸었다. 다만 '공개된 규칙'과 '검증된 기록'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은 지금도 남는 쟁점이다.
사료의 한계
이 여정의 기록은 대부분 본인이 남긴 자료에 기대고 있다. 그가 2005년에 낸 책 《자이언트 스텝스》와 탐험 홈페이지, 블로그가 1차 사료 역할을 하고, 백과사전 항목도 이에 의존한다. 구간별 이동을 제3자가 확인한 GPS 로그나 독립 심사 자료는 알려진 바가 제한적이다. 즉 출발과 도착 같은 굵직한 사건은 여러 출처가 일치하지만, 날짜 단위의 세부 서술은 '기록에 따르면'으로 남겨야 한다.
2014년 미국 횡단 중 아들과 함께한 구간, 2026년 6월 유로터널 측이 안전과 운영상 이유로 요청을 거절한 일, 프랑스 정부의 특별 허가로 10월 1일 영국 해협 수영을 계획했다는 이야기 등은 그가 공개한 인터뷰와 언론 보도가 근거다. 해협 수영의 출발 시간과 장소를 24시간 동안 비공개로 둔 것도 보도에 근거한다.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사실처럼 단정하지 않는 것이 이 이야기를 정직하게 다루는 방법이다.
2026년 10월, 셰익스피어 비치에 닿다
사실 이 사연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부시비는 영국 해협을 헤엄쳐 2026년 10월 5일, 1998년 헐을 떠난 날과 정확히 28년 만에 잉글랜드 남동부 도버 남쪽의 셰익스피어 비치에 발을 디뎠다. 해변에서 그를 맞은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이자 전직 SAS 대원이었던 키스 부시비와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가 있었다. 이는 남아메리카에서 끊긴 발자국을 다시 잇는 순간이었다.
남은 구간은 도버에서 고향 헐까지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11월 2일 헐에 도착할 예정이다. 1998년 11월 1일 출발지의 한 걸음과 2026년 11월 2일 도착지의 한 걸음 사이에는, 계획서에 없던 16년이 더 들어 있다. 그 사이 그는 후원사와 비자와 계절의 얼음을 상대로 28번의 계절을 관리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이 이야기에서 가장 실용적인 교훈은 '큰 목표는 국경과 물류에서 먼저 무너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체력과 의지가 한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를 멈춘 것은 비자 90일, 계절의 해빙, 금융위기로 끊긴 후원금이었다. 오늘날 장거리 도보 여행이나 장기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사람이 먼저 확인해야 할 것도 같은 항목이다.
두 번째는 '연속성'의 정의에 대한 질문이다. 끊기지 않는다는 약속은 한 번의 실수로 깨지기 때문에, 지키려는 사람은 규칙을 끊임없이 다시 정의하게 된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예외로 둘 것인가라는 이 고민은 여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끊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참고 자료
· 칼 부시비 —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Karl_Bushby
· 푼타 아레나스 —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Punta_Arenas
· 골리앗 탐험 노선도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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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8:08
28년 걸려서 집까지 걸어온 거 ㅋㅋ 비자랑 후원금이 제일 큰 산이었다는 게 웃프다. 내일 도착한다니 좀 뭉클하네
모든 이야기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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