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2일 오전(모스크바 시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의 발사대 아래에서 세 사람이 노란 계단을 내려왔다. 흰 우주복 차림의 미국인 윌리엄 셰퍼드와 러시아인 세르게이 크리칼레프, 유리 기젠코였다. 셰퍼드는 손을 들어 사진기자들을 향해 엄지를 세웠고, 관중석에서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졌다. 이들은 아직 아무도 살아본 적 없는 집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었다. 몇 시간 뒤 소유스 TM-31이 불을 뿜으며 궤도로 올라갔고, 이틀 뒤 그들은 도킹한 우주정거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을 켰다.
그날 시작된 것이 바로 '사람이 끊임없이 우주에 살아 있는 상태'였다. 2000년 11월 2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이 타고 있었다. 이 기록은 2026년 현재까지 이어진다. 냉전이 끝난 지 10년, 우주 경쟁의 두 주인공이 같은 방에 들어간 날이었다.
발사대에서 문을 열기까지
발사 전 최종 점검을 마친 첫 승무원(앞줄 왼쪽부터 셰퍼드·크리칼레프·기젠코) — NASA,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소유스 TM-31은 2000년 10월 31일 바이코누르에서 발사됐다. 기록에 따르면 선장 유리 기젠코, 비행기사 크리칼레프, 그리고 NASA 우주비행사 셰퍼드가 탑승했다. 셰퍼드는 해군 SEAL 출신의 항공우주·기계공학자로, 이 임무의 사령관 역할을 맡았다. 크리칼레프는 이미 미르 정거장에 두 번 장기 체류한 베테랑이었고, 기젠코 역시 미르 경험이 있었다.
11월 2일 소유스는 당시 궤도에 떠 있던 유인 복합체—자랴, 즈베즈다, 유니티—와 도킹했다. 세 사람은 136일 동안 그곳에 머물며 2001년 3월 19일까지 생활했다. 첫 3주가량은 '구조와 장비 점검'이었다. 정거장은 이제 막 조립 중이었고, 산소 발생기와 생활 지원 시스템을 하나씩 깨워야 했다.
왜 하필 그해였나
ISS의 첫 모듈 자랴는 1998년 11월에 발사됐고, 유니티는 같은 해 12월 셔틀 엔데버가 가져다 붙였지만 그 후 2년 가까이 무인 상태로 궤도를 돌았다. 부품은 떠 있었지만 관리인이 없었던 셈이다. 1999년 말~2000년 초의 러시아 재정 위기와 셔틀 일정 지연으로 실제 유인 임무는 계속 밀렸다.
그 사이 정거장은 비어 있는 집처럼 골격을 드러낸 채 돌았다. 무인 우주정거장의 위험은 관성이다. 궤도가 흐트러지거나 시스템이 오작동해도 고쳐줄 사람이 없다. NASA와 러시아 연방우주국은 상주 인원을 반드시 보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래서 영구 상주라는 조건이 공식적으로 걸린 것이 이 임무였다.
첫날 밤의 첫 작업은 '살아 있는 것'
당시의 ISS는 오늘날의 완성된 정거장과 비교하면 초라한 뼈대였다. 태양전지판이 두 쌍뿐이었고, 거주 공간은 즈베즈다 서비스 모듈 한 곳에 몰려 있었다. 세 사람은 그것도 좁다고 말하지 않았다. 셰퍼드는 정기보고에서 '우리 집에 불이 켜졌다'는 취지의 보고를 했다고 전해진다.
주목할 지점은 세 사람이 모두 남자였다는 점만이 아니다. 이 첫 승무원은 냉전의 두 적국이 만든 장비를 한 방에 놓고 함께 쓴 첫번째 팀이었다. 생명유지장치 하나를 미국식으로 돌릴지 러시아식으로 돌릴지 결정하는 일 자체가 협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초기에는 산소 발생기와 물 재활용 설비의 운용 방식을 두고 조정이 필요했다. 기술 문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신뢰 문제였다.
통념과 반전: 그날의 뉴스는 셰퍼드가 아니었다
오늘날 2000년 11월 2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대부분 '세 사람이 ISS에 도착한 날'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주의 신문 지면 대부분은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2000년 11월 7일 부시와 고어의 표차 논쟁이 터지고 나서야 우주 뉴스가 밀려났다. 역사의 기억은 늘 가장 극적인 사건을 먼저 붙잡고, 조용한 시작은 나중에야 사료에서 소급된다.
반전은 다른 곳에도 있다. '영구 상주'라는 말은 당초 임시 계획이었다. ISS는 원래 2015~2020년에 수명이 끝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136일짜리 첫 체류가 끝나고 두 번째 승무원이 들어갔고, 세 번째가 이어졌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정거장에는 사람이 있다. 임시 계획이 가장 긴 기록이 된 것이 이 사건의 진짜 반전이다.
경쟁 해석과 반론
첫번째 해석: ISS의 영구 상주는 미·러 협력의 상징이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1998년 이후 국제우주정거장 협정에는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캐나다가 참여했고, 첫 승무원 구성이 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 해석은 상주가 시작된 정치적 조건을 정확히 짚는다.
반론은 그 정치가 오래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2014년 크림반도 사태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러 우주 협력은 수차례 갈등을 겪었다. 그럼에도 ISS는 계속 운영되고 있다. 때문에 어떤 연구자는 ISS를 '협력의 상징'이 아니라 손을 뗄 수 없는 공동 투자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징은 정치로 깨질 수 있지만, 이미 궤도에 올라간 인프라는 서로의 발을 잡고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사료의 한계
첫날의 장면은 대부분 NASA와 러시아 측이 배포한 공식 사진과 보도 자료에 의존한다. 발사대 아래에서 셰퍼드가 손을 들어 보인 장면은 유명하지만, 누구의 요청으로 그렇게 했는지, 당시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공식 기록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또한 첫 승무원의 일상은 비행일지와 교신 기록에 남아 있으나 공개된 범위가 넓지 않다. 이 글에서 '기록에 따르면'이라고 표기한 부분들은 공개된 위키백과 및 NASA 자료에서 확인 가능한 범위를 뜻한다. 세 사람이 실제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까지 확인하는 것은 별도의 아카이브 접근이 필요한 문제다.
2000년 12월 9일 셔틀 엔데버가 찍은 건설 중의 국제우주정거장 — NASA,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지금 우리에게 남긴 것
2000년 11월 2일 이후 ISS는 실험실이자, 외교의 장이고, 때로는 정치적 곤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유산은 숫자 하나다. 26년 동안 하루도 끊기지 않은 유인 거주. 이 기록은 어떤 단일 국가도 만들지 못했다. 미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아닌 여러 나라의 합작품이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이 사건에서 얻는 교훈은 '인류는 위대하다'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영구 상주는 거창한 비전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비어 있는 정거장에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기술적 필요에서 시작했다. 그 필요가 26년을 버틴 이유는, 그 필요를 채우는 인프라가 이미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지속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여기 있다.
참고 자료
· Expedition 1
· William Shepherd
· Sergei Krikalev
· International Space Station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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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08:11
26년 연속 유인 거주는 진짜 미친 기록임ㅋㅋ 근데 수명 2015년이었던 임시 계획이 여태 굴러가는 게 제일 웃김 ㅇㅇ 비전이 남아서라기보다 이미 궤도에 올려놓은 돈이 아까워서 그랬다는 해석이 팩트 같음ㄷㄷ -
빗방울
2026.11.02 08:41
크리칼레프 얘기가 요즘은 더 와닿습디다. 소련이 없어진 걸 저 궤도에서 전해 들었다는 사람 이야기 말입니다. 허허, 집이 바뀌는 건 문패만 다는 일인데 나라가 바뀌는 건 그 꼭대기에서도 피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두 적국의 장비를 한 방에 놓고 산소 돌리는 방식을 맞춰야 했다니,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손님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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