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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것이 손해인 게임 — 승자의 저주

빗방울 2026.11.01 08:20 9분 읽기 조회 57 · 추천 2

1971년, 석유회사 엔지니어 세 명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케이펜(Capen), 클랩(Clapp), 캠벨(Campbell). 이들은 미국 멕시코만 대륙붕 석유 채굴권 경매에서 석유회사들이 "해마다" 예상 밖으로 낮은 수익을 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이겼는데 돈을 못 번다는 것입니다. 낙찰받은 회사가 유전을 개발하고도 남는 게 적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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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멕시코만 연안의 해상 가스전 분포. 승자의 저주 개념이 처음 나온 대륙붕 채굴권 경매의 무대입니다. — 퍼블릭 도메인 (미국 에너지정보청 EIA)

왜 이기는 쪽이 손해인가

열쇠는 '공통가치 경매(common value auction)'입니다. 이 경매에서는 물건의 가치가 모든 입찰자에게 같습니다. 땅속에 석유가 얼마나 있는지는 누가 사든 똑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정확한 양을 모릅니다. 회사마다 자기 방식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어떤 회사는 1억 배럴로, 어떤 회사는 3억 배럴로 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경매는 가장 높은 값을 부른 사람이 이깁니다. 그런데 그 '가장 높은 값'은 가장 낙관적으로 추정한 사람의 값입니다.

만약 입찰자들의 추정이 평균적으로 맞다면, 가장 높은 추정은 평균보다 위에 있습니다. 즉 이긴 사람은 실제 가치보다 높게 부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기는 순간 손해가 확정됩니다.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하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유전의 실제 가치가 100억 원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아무도 100억인 줄 모릅니다. 열 개 회사가 각자 추정합니다.

추정값이 60, 70, 75, 85, 95, 105, 115, 125, 130, 140억이라면, 평균은 100억입니다. 정확합니다. 그런데 경매에서 이기는 것은 140억을 부른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100억짜리를 140억에 샀습니다. 40억을 더 낸 것입니다. 추정을 아무리 잘해도, 이기는 순간 가장 위쪽 추정값을 제시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전: 경쟁자가 많을수록 더 나빠진다

여기가 이 개념의 잔인한 부분입니다. 입찰자가 많아질수록 승자의 저주는 심해집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그중 누군가 크게 과대평가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열 명 중 최고 추정값보다 백 명 중 최고 추정값이 더 높습니다.

즉 경쟁이 치열한 경매는 더 위험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경쟁자가 많으면 좋은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통가치 경매에서는 정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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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해상 석유·가스 플랫폼. 이런 설비를 지으려면 먼저 채굴권을 사야 하고, 그 값이 개발비의 출발점이 됩니다. —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그래서 영리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입찰을 깎습니다(bid shading). 자기 추정값을 그대로 부르지 않고 낮춰서 부릅니다.

얼마나 낮출까요. '내가 이겼다는 사실'을 반영한 값까지 낮춥니다. 이기는 것이 '내 추정이 가장 높았다'는 정보이기 때문에, 그 정보를 가격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즉 이겼다는 소식은 나쁜 소식입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샀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가장 낙관적이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석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개념은 비슷한 구조가 있는 곳마다 나타납니다.

1) 주파수 경매 — 이동통신 사업자가 전파 사용권을 사는 경매입니다. 문제는 '뉴욕의 휴대폰 시장 가치'를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추정이 갈리고, 가장 낙관적인 회사가 이깁니다.

2) 검색 광고 — 클릭당 입찰가를 높게 부른 광고주가 상위에 노출됩니다. 그 광고가 실제로 그만한 수익을 내는지는 이기고 나서 알게 됩니다.

3) 프로스포츠 자유계약 — 스타 선수를 데려가려면 가장 높은 연봉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선수의 앞으로의 활약을 가장 낙관적으로 본 구단이 이깁니다. 이기는 데 성공한 구단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기업 인수합병(M&A) — 인수 대상의 시너지 가치를 가장 크게 본 회사가 이깁니다. 그래서 '인수 프리미엄'이 붙고, 인수 후 기대만큼 성과가 안 나는 일이 반복됩니다.

통계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재미있는 것은 경제학 밖에서도 이 개념이 쓰인다는 점입니다.

통계학에서는 '평균으로의 회귀' 현상을 가리킬 때 이 표현을 씁니다. 특히 전장유전체연관분석(GWAS)처럼 수많은 가설을 한 번에 검정하는 연구에서 문제가 됩니다.

수천 개 유전자를 검정하면 가장 강한 연관성을 보이는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가장 강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크게 튄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후속 연구에서 재현되지 않는 사례가 많습니다.

즉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 '가장 운이 좋았을 뿐'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구조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멈추지 않나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이걸 다 알면서 왜 경매는 계속 열리나.

답은 '적어도 이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승자의 저주는 평균적으로 손해라는 뜻이지, 모든 승자가 손해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가치가 추정보다 훨씬 컸던 경우도 있습니다. 석유를 예상보다 많이 발견하거나, 주파수 수요가 폭발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승리가 저주가 아니라 횡재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기는 순간 확률적으로 불리한 자리에 서지만, 결과는 열어봐야 압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계속 됩니다.

우리 생활에서는

이 개념은 경매장 밖에서도 쓸모가 있습니다.

1) 여러 곳에서 동시에 합격했을 때. 가장 좋은 곳을 골랐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모든 지원자가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면, 당신을 가장 높게 평가한 곳이 실제로 가장 좋은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회사가 기준이 느슨했을 수도 있습니다.

2) 연봉 협상에서. 여러 회사가 경쟁적으로 오퍼를 낼 때, 가장 높은 오퍼를 준 회사가 가장 좋은 회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회사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했거나, 가장 낙관적으로 봤을 뿐입니다.

3) 중고 거래에서. 여러 명이 입찰 경쟁을 하면 가장 비싸게 부른 사람이 납니다. 그 사람이 시세를 가장 낙관적으로 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개념이 가르치는 것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이겼다는 사실 자체가 정보입니다."

보통 우리는 '이기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내가 남들보다 낙관적이었다'는 정보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 정보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으면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영리한 입찰자는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이겨도 남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 둘은 다른 목표입니다.

여러분에게

혹시 경쟁에서 이기고 나서 이상하게 허탈했던 경험이 있나요. 물건을 낙찰받았는데 '내가 너무 비싸게 불렀나' 싶었던 적, 혹은 오퍼를 받았는데 '이 조건이 정말 좋은 건가' 의심스러웠던 적.

그 감각이 아마 승자의 저주를 몸으로 느낀 것입니다. 계산으로 배우기 전에 느낌으로 먼저 아는 개념이라, 저는 이게 경제학에서 가장 체감이 빠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무언가를 낙찰받거나 오퍼를 받으시면, '이겼다는 게 무슨 뜻일까'를 한 번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자료

  •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 공통가치 경매에서 낙찰자가 가장 낙관적 추정을 한 입찰자가 되어 실제 가치보다 많이 지불하는 현상
  • 1971년 Capen, Clapp & Campbell, Journal of Petroleum Technology vol. 23, pp. 641–653 — 미국 대륙붕 석유 채굴권 경매에서 유래
  • 입찰자 수가 늘어날수록 승자의 추정값은 n차 순서통계량이 되어 악화됨
  • bid shading — 낙찰을 전제로 사후 기대값까지 추정치를 낮춰 부르는 대응
  • 같은 구조의 사례: 전파(주파수) 경매, 클릭당 광고 입찰, 프로스포츠 자유계약, 기업 인수합병
  • 통계학에서는 '평균으로의 회귀' 맥락에서 같은 용어 사용 — 전장유전체연관분석(GWAS) 등 다중검정에서 재현성 문제
  • 본 글은 공개된 경제학·통계학 설명을 정리한 것이며, 특정 경매·투자에의 참여를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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