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체코의 월급 분포를 그린 곡선은 하나의 숫자로 요약되지 않는다. 최소임금 20,000크로나 근처에서 선이 갑자기 치솟고, 33,000에서 40,000크로나 사이에 봉우리가 있으며, 평균은 그 봉우리보다 한참 오른쪽인 50,000크로나 부근에 찍힌다. 그래프 위쪽에는 최빈값이 평균보다 40퍼센트쯤 낮다는 표시까지 붙어 있다. 임금을 "체코는 평균 몇 크로나"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 능선의 모양과 꼬리와 계곡을 전부 하나의 점으로 뭉개는 셈이다.
철학자 유헝 장(Youheng Zhang)이 2026년 10월 arXiv에 올린 논문 「특수과학에서의 분포적 반사실 의존」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세운다. 특수과학, 그러니까 경제학이나 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의 설명은 개별 사건 하나가 아니라 분포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위 수준의 상태는 결국 하위 수준의 과정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 상위 수준의 설명은 "굳이 필요 없는 것", 즉 잉여가 되는가.
한 장의 곡선이 던지는 질문
논문이 겨냥하는 대상은 흔한 환원주의적 직관이다. 임금 분포든 인지 부하든 자연선택이든, 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계산할 수 있다면 위에서 서술하는 설명은 없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논문은 이 직관이 성립하려면 매우 강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위 수준의 이야기가 상위 수준의 이야기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과 "대신해서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는 말은 다르다.
여기서 분포는 단순한 통계 요약이 아니다. 분포의 모양, 특정 구간에 몰리는 정도, 꼬리가 얼마나 길게 늘어지는지 같은 특징들이 설명의 대상이 된다. 개별 근로자의 임금을 하나하나 재구성하는 것과, 왜 분포가 그런 능선을 갖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서로 다른 작업이라는 것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체코의 2024년 월급 분포. 최빈값이 평균보다 낮은 오른쪽 꼬리 분포를 보여준다 — Kurzycz(kurzy.cz), CC BY 4.0 (Wikimedia Commons)
핵심 주장: 잉여성은 "손실 없는 대체"를 요구한다
논문의 중심 주장은 이렇다. 상위 수준 설명이 잉여하다고 말하려면 그것을 하위 수준의 설명으로 대체했을 때 아무것도 잃지 않아야 한다. 논문은 이를 "손실 없는 대체(replacement without loss)"라고 부른다. 개별 결과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같은 설명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구분은 생각보다 날카롭다. 하위 수준 모형이 각 사람의 임금을 소수점까지 재현해냈다고 하자. 그 모형이 분포의 봉우리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왜 최소임금 근처에서 선이 꺾이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재구성이지 대체가 아니다. 논문은 설명의 성패를 "결과의 일치"가 아니라 "반사실적 구조의 보존"에서 찾는다.
확률적 초월과 분포적 반사실 의존
논문은 상위 수준 상태가 하위 수준 기반에 의존한다는 전제를 인정한다. 다만 그 의존이 확률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위 과정이 무작위적이라면 상위 수준 상태는 하위 기반 위에 확률적으로 얹히는 셈이고, 이때 상위 설명의 역할은 하위 상태의 목록을 다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분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잡아내는 데 있다.
그래서 논문은 "분포적 반사실 의존(distributional counterfactual dependence, DCD)"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상위 수준 조건이 바뀌면 결과 분포, 또는 분포의 특정 특징이 달라진다는 관계다. 중요한 것은 이 관계가 상위 상태가 하위 기반에 의존한다는 사실과 별개라는 점이다. 의존 관계와 설명적 역할은 같은 층위의 문제가 아니다.
반전: 통계량을 맞추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논문은 가상의 비교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하위 수준 모형이 상위 수준 설명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환원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환원이 성립하려면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가 훨씬 까다롭다는 주장이다. 대체 모형은 설명 대상이 되는 분포와 독립적으로 명세되어야 하고, 문제가 되는 입자(grain)에서 그리고 관련된 조건들에 걸쳐 같은 반사실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반직관적인 결론이 나온다. 결과 분포의 몇몇 통계량을 똑같이 맞춰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평균과 분산을 정확히 재현하면서도 꼬리의 거동이나 조건 변화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는 모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논문은 이런 경우를 들어, "숫자가 맞았다"는 것이 "설명이 대체되었다"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
경쟁 가설: 미시 모형이면 충분하다는 반론
가장 자연스러운 반론은 이렇다. 밑의 과정을 정확히 아는 미시 모형이 있다면, 분포 수준의 설명은 그 모형에서 유도되는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논문은 이 반론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미시 모형이 분포 수준의 반사실 패턴을 보존하는지가 검증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보존하지 못한다면 그 미시 모형은 설명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설명한 것이다.
논문이 드는 사례 중 하나가 자연선택이다. 개체 하나하나의 생존과 번식을 계산하는 모형과, 형질 분포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서술하는 설명은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 다윈의 갈라파고스 핀치 부리 그림은 그 차이를 잘 보여준다. 부리의 형태는 개체의 형질이지만, 그 분포가 세대에 걸쳐 밀려가는 현상은 개체 계산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반사실 구조를 갖는다.
다윈의 항해 보고서에 실린 갈라파고스 핀치의 부리 판화 — John Gould,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임금 분포와 인지 부하 사례도 같은 방식으로 다뤄진다. 상위 수준 조건, 예컨대 최소임금 제도나 과제 난이도가 바뀌었을 때 분포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설명의 내용이 된다. 이 반응 패턴이 하위 모형에서 그대로 재현되지 않으면, 상위 설명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논문은 DCD가 비환원적 설명의 한 형태를 기술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상위 수준에 별도의 생산적 힘이 있다는 주장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설명의 근거는 반사실적 조직이지 새로운 인과적 능력이 아니다. 이 선긋기는 논문의 주장을 약하게 만드는 동시에 방어 가능하게 만든다.
다만 남는 문제가 있다. "문제와 관련된 조건"과 "적절한 입자"를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하는 점이다. 논문은 이 기준이 질문에 상대적이라고 말하지만, 그 상대성이 설명의 객관성을 어디까지 허용하는지는 열린 물음으로 남는다. 논문이 제시하는 것은 하나의 기준틀이지, 모든 사례에 적용되는 판정 절차는 아니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설명 중에는 분포를 다루는 것이 의외로 많다. "요즘 신입 연봉이 올랐다"는 말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곡선의 이동에 대한 말이고, "이 질병이 젊은 층에서 늘었다"도 마찬가지다. 그런 문장을 개별 사례의 목록으로 바꾸면 무엇이 사라지는가.
반대로 생각해 보자. 어떤 설명이 잉여라고 느껴질 때, 우리는 정말로 그 설명을 손실 없이 대체한 것일까. 아니면 결과만 같아 보이는 다른 이야기로 갈아탄 것일까. 이 논문이 던지는 질문은 철학 논문의 문법을 빌렸지만, 답은 우리가 매일 쓰는 문장들 안에 있다.
참고 자료
Youheng Zhang, "Distributional Counterfactual Dependence in the Special Sciences", arXiv:2610.34075v1 [physics.hist-ph], 2026년 10월 25일 제출. https://arxiv.org/abs/2610.34075v1
이미지 출처: 체코 임금 분포 그래프 — Kurzycz(kurzy.cz), CC BY 4.0, Wikimedia Commons. 갈라파고스 핀치 부리 판화 — John Gould,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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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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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22:48
평균의 함정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걸 반사실적 구조까지 끌고 가서 철학적으로 푸니까 신선하네요ㅋㅋ 그냥 통계 돌리는 거랑 '설명'하는 게 진짜 다른 영역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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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1:09
최빈값이 평균보다 40퍼센트 낮다는 대목에서 멈칫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평균 연봉"이라고 말할 때 실제로는 저 꼬리 끝자락 몇 명이 끌어올린 숫자를 인용하고 있었던 셈이네요. 예전에 팀 성과 평균으로 보상을 나누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몇 명의 아주 큰 값이 나머지 사람들의 몫을 결정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불공평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분포의 모양 자체가 설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은 처음 접했습니다. 혹시 최소임금이 바뀔 때 봉우리 모양도 함께 변하는 사례가 실제로 관측되나요? 그렇다면 이 개념이 통계 교과서 밖에서도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빗방울
2026.11.01 02:58
임금 분포 그래프에서 최빈값이 평균보다 40%쯤 낮다는 표시를 보고 "내가 평균보다 적게 버는 게 아니라 다들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신입 연봉이 올랐다는 말도 결국 곡선이 오른쪽으로 조금 밀린 이야기인데, 그걸 "요즘 애들은 돈 많이 받네"로 바꿔 말하는 순간 봉우리가 사라지더군요. 혹시 최소임금 같은 제도 변화가 꼬리보다 왼쪽 절벽을 먼저 움직이는지도 문제 삼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얼마 줄까"보다 "어디부터 밀까"가 더 좋은 질문이 될 것 같아서요. -
빗방울
2026.11.01 03:06
체코 임금 곡선에서 최소임금 근처가 뾰족하게 솟는 걸 보고, 우리나라 최저임금 인상 때마다 나오던 '평균은 올랐는데 체감은 그대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체감이야말로 분포의 모양을 눈금 하나로 눌러버린 결과가 아닐까 싶었고요. 평균과 분산을 아무리 잘 맞춰도 꼬리가 다르게 흔들리면 설명이 바뀐 것이라는 대목에서 멈칫했습니다. -
빗방울
2026.11.01 04:16
체코 임금 곡선 이야기에서 멈칫했습니다. 저는 최빈값이 항상 평균 근처일 거라고 어렴풋이 여겼는데,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진 꼬리 때문에 봉우리가 40%쯤 낮다는 표시를 보니 숫자 하나로 말하는 게 얼마나 거친 요약인지 실감이 나네요. 혹시 최소임금을 올리면 그 꺾인 부분이 통째로 위로 밀리는지, 아니면 봉우리 쪽만 흔들리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이야기1455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결국 숫자가 맞다고 다 설명되는 건 아니라는 거네.
데이터만 ㅈㄴ 돌린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 좀 뼈 때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