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2곡. 4세기에 걸친 건반 악보를 한 줄씩 잘라 3~6개 음짜리 창문으로 나누고, 그 창문들을 전위(transposition)·반전(inversion)·역행(retrograde)·순환 이동(cyclic shift)이 만드는 군(group)의 궤도에 올려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알프레도 곤살레스-에스피노사(Alfredo González-Espinoza)의 2026년 10월 arXiv 논문 「Symmetric Structure and Motivic Transformation in Melodies, Phrases, and Themes」는 이 질문을 실제 계산으로 밀어붙인다.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에서 포르테의 집합류, 르윈의 변형 이론까지, 음악 이론은 백 년 넘게 이 세 가지 조작을 말해 왔지만 정작 "선율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가"를 수치로 센 연구는 드물었다는 것이 저자의 출발점이다.
선율을 창문과 궤도로 바꾸는 방법
논문의 단위는 음이 아니라 창문이다. 선율을 m=3~6개의 연속 음으로 이루어진 창문들로 자르고, 각 창문을 음정 구조로 표현한 뒤 전위·반전·역행과 순환 이동이 만드는 군의 작용을 본다. 같은 궤도에 속한 창문들은 서로 변형 관계에 있으므로, 궤도의 개수는 그 선율이 실제로 쓰는 "동기 어휘"의 크기가 된다. 궤도가 적다는 것은 같은 재료를 여러 번 되돌려 쓴다는 뜻이고, 궤도가 많다는 것은 매번 새 재료를 꺼낸다는 뜻이다.
저자는 여기서 엔트로피를 두 층으로 쪼갠다. 하나는 궤도 엔트로피로, 얼마나 다양한 동기 어휘를 쓰는지를 잰다. 다른 하나는 궤도 내부 엔트로피로, 같은 궤도 안에서 그 변형들을 얼마나 고르게 배치했는지를 궤도 크기로 정규화해 잰다. 이 분해가 중요한 이유는 "반복이 많다"는 말이 두 가지 전혀 다른 작곡 행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어휘가 좁은 것과, 어휘는 넓지만 배치가 치우친 것은 같은 엔트로피 값으로 뭉개지지만 실제로는 다른 음악이다.
결과: 97퍼센트가 우연보다 반복적이다
건반 음악 852곡에서, m이 4 이상일 때 선율의 최소 97퍼센트가 대리 모형(surrogate)보다 낮은 궤도 엔트로피를 보였다. 대리 모형이란 원래 선율의 음높이 내용, 스펙트럼, 또는 한 단계 전이 확률만 보존하고 나머지 순서를 흐트러뜨린 가짜 선율이다. 즉 "음악은 원래 반복이 많다"는 반론을 없애기 위해, 음 분포와 음정 도약의 통계까지 똑같이 맞춰 놓고 비교한 것이다. 그렇게 해도 실제 선율이 더 반복적이라면, 반복은 통계의 부산물이 아니라 작곡가가 실제로 만든 구조라는 뜻이 된다.
이 설계는 논문에서 가장 튼튼한 부분이다. 음높이 구성만 보존한 대리 모형은 "그냥 그 조성의 음을 골고루 쓴 것"이라는 설명을 막고, 한 단계 전이를 보존한 모형은 "음정 도약 습관이 만든 착시"라는 설명을 막는다. 세 가지 통제를 모두 통과한 뒤에도 남는 차이라면, 남는 것은 군 구조 자체다.
시대와 장르는 어휘가 아니라 배치에서 갈린다
논문은 시대와 형식을 같은 축에 놓지 않는다. 시대(period)는 동기 어휘와 대칭 유형에서 차이를 보이고, 음악 형식(form)은 배치, 즉 궤도 내부 엔트로피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정리다. 푸가와 소나타, 주제와 경과구가 다른 것은 새 재료를 더 쓰느냐가 아니라 같은 재료를 어디에 얼마나 고르게 다시 놓느냐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구분은 음악 분석에서 흔히 뒤섞이는 "다양성"과 "전개"를 분리해 준다는 점에서 방법론적 이득이 있다.
다만 이 결과는 어디까지나 이 지표 위에서의 차이다. 귀로 듣는 전개의 긴장이 궤도 내부 엔트로피와 같은 것이라고 논문이 주장하지는 않는다. 지표가 형식 간 차이를 잡아낸다는 사실과, 그 지표가 우리가 형식이라고 부르는 미학적 경험을 담는다는 주장은 별개의 문제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전주곡·푸가·알레그로 E-flat 장조」 BWV 998 필사본 — J. S. Bach,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반전: 반복된 동기는 5도·4도로 옮겨간다
논문에서 가장 구체적인 숫자는 전위 편향이다. 되풀이되는 동기는 그 형태를 무작위로 재배열한 경우보다 1.6배 더 자주 전위되고, 5도나 4도 위아래로는 2.8배 더 자주 옮겨진다. 5도와 4도는 조성 음악에서 딸림조와 버금딸림조로 가는 거리, 즉 조바꿈의 기본 단위다. 동기가 되돌아올 때 같은 높이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조성의 이웃 조로 미끄러지는 쪽이 훨씬 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선호는 시대가 흐르면서 약해진다. 바로크에서 20세기로 갈수록, 그리고 바흐의 푸가에서 쇼스타코비치로 갈수록 5도·4도 전위의 편향이 줄어든다. 조성 문법이 약해지면 "이웃 조로 옮긴다"는 관습의 힘도 같이 약해진다는 읽기가 자연스럽다. 논문은 이 감소를 관측하지만, 그것이 조성의 해체 때문인지 다른 변형(반전·역행)의 비중이 커진 결과인지는 초록 수준에서 분리해 말하지 않는다.
민속 선율과 기악 주제는 거의 대칭이 아니다
또 하나의 반직관적 수치는 대칭의 희소성이다. 민속 악구(folk phrases)와 기악 주제(instrumental themes) 가운데 대칭적인 것은 2~10퍼센트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히 "대칭적인 주제"라고 부르는 것들은 실제로는 전체의 극히 일부다. 그런데 그 소수는 같은 음들을 무작위로 재배열한 통제군보다 1.6~5배 더 자주 대칭으로 나타난다. 즉 대칭은 드물지만 우연히 생기는 수준보다는 확실히 많다.
이 두 문장은 함께 읽어야 의미가 있다. "대칭은 드물다"만 읽으면 음악이 대칭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우연보다 많다"만 읽으면 음악이 대칭적이라는 과장이 나온다. 논문이 말하는 것은 드물지만 선택된 소수라는 쪽이다. 작곡가가 대칭을 기본 문법으로 쓰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자리에서는 의도적으로 꺼내 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쟁 가설과 반론
가장 먼저 제기될 반론은 "음악이 반복적인 것은 당연한데 무엇이 새로운가"다. 이에 대한 논문의 답은 대리 모형이다. 음높이 내용을 보존한 모형, 스펙트럼을 보존한 모형, 한 단계 전이를 보존한 모형 어느 쪽과 비교해도 실제 선율의 궤도 엔트로피가 낮았다면, 반복은 음 선택의 통계적 성질이 아니라 순서의 구조에서 나온다. 적어도 이 세 가지 통제 안에서는 반론이 막힌다.
두 번째 반론은 코퍼스 편향이다. 852곡이 건반 음악에 한정되어 있고, 네 세기를 한 상자에 담았다. 건반 악기는 화성 진행이 손가락 위치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어, 다른 악기나 성악 선율에서는 같은 편향이 약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표기 편향이다. 악보로 남은 곡만 분석 대상이 되므로, 즉흥 연주나 구전 전통은 이 셈에서 빠진다. 논문의 결론은 "건반 악보 852곡에서"라는 조건을 떼면 힘이 약해진다.
논문이 스스로 밝힌 범위와 한계
초록이 명시하는 범위는 분명하다. 창문 길이는 m=3~6이고, 다루는 조작은 전위·반전·역행과 순환 이동이며, 분석 대상은 852곡의 건반 작품이다. 이 범위를 넘는 주장, 예를 들어 "모든 음악이 군 구조로 설명된다"거나 "이 지표가 작곡의 의도를 복원한다"는 결론은 초록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저자 자신도 프레임워크가 대칭군을 가진 임의의 기호열로 확장된다고만 말할 뿐, 음악 일반에 대한 보편 법칙을 주장하지 않는다.
또 하나 남는 것은 엔트로피 추정 자체의 민감도다. 창문 길이 m을 3에서 6으로 바꾸면 궤도 수와 궤도 크기가 달라지고, 궤도 내부 엔트로피를 궤도 크기로 나누는 정규화 방식도 결과에 영향을 준다. 논문이 m≥4에서 97퍼센트라는 수치를 제시한 것은 m=3에서의 거동이 다르다는 신호로 읽히지만, 초록은 그 차이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는다. 지표의 견고성은 이 논문을 인용하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지점이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2권 푸가 17번 A-flat 장조(BWV 886)의 1743~1746년 자필 악보 — Johann Sebastian Bach,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이 논문의 진짜 매력은 음악을 수학으로 환원하는 데 있지 않다. 백 년 넘게 이론가들이 말로만 서술해 온 "동기의 변형"을, 세어 볼 수 있는 대상으로 바꿔 놓았다는 데 있다. 반복이 많다는 인상을 숫자로 만들고, 그 숫자가 우연과 구별된다는 것을 보이고, 마지막에는 그 숫자가 시대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까지 보여 준다. 이 순서 자체가 하나의 방법론적 주장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남는다. 당신이 좋아하는 곡에서 기억에 남는 한 소절은, 같은 음이 다시 오기 때문에 기억나는가, 아니면 다른 높이로 옮겨졌기 때문에 기억나는가. 그리고 그 옮김의 거리가 5도나 4도인 경우가 유난히 많다고 느껴지는가. 논문은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고 말한다.
참고 자료
Alfredo González-Espinoza, 「Symmetric Structure and Motivic Transformation in Melodies, Phrases, and Themes」, arXiv:2610.40303v1 (2026-10-29), physics.soc-ph. https://arxiv.org/abs/2610.40303v1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Bach, Prelude, Fugue and Allegro in E-flat major, BWV 998 manuscript (Public domain) · BWV 886 Well Tempered Clavier II Fugue No. 17 in A flat major (Public domain).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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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00:29
대리 모형 얘기에서 멈칫했어요. 음높이 분포와 한 단계 전이를 똑같이 맞춰 놓고도 실제 선율이 더 반복적이라는 건, 반복의 출처가 음고 통계가 아니라 '변형해서 다시 쓰는' 행동 쪽이라는 뜻이잖아요. 다만 5도·4도 전위가 2.8배라는 숫자는 조바꿈 문법이 이미 전위를 '쉬운 선택지'로 만들어 둔 결과일 수도 있어서, 시대가 갈수록 편향이 줄어드는 대목이 저는 제일 궁금하네요. 조성이 풀린 게 원인인지, 아니면 지표가 조성 안에서만 예민한 건지 초록만으로는 갈리지 않더군요. -
빗방울
2026.11.02 07:53
대칭이 2~10퍼센트뿐인데도 우연보다 1.6~5배 많은 건, 문법이 아니라 결정적인 자리에서 꺼내는 카드라는 뜻이겠네요.
모든 이야기1455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