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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생명은 얼마나 흔한가 — '나의 존재'만으로 확률을 계산하는 법

빗방울 2026.11.02 08:23 12분 읽기 조회 43 · 추천 2

지구가 태어난 뒤 5억 년. 아직 하늘에는 산소가 없고, 바다는 뜨겁고, 대륙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그 시점에 이미 생명이 있었다는 것이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추정이다. 지구의 나이 45억 년과 비교하면 9분의 1 남짓, 전체 시간의 앞쪽에 아주 이르게 생명이 등장한 셈이다. 2026년 10월 16일 arXiv에 올라온 논문 「On the foundations of anthropic reasoning: Implications for life across the universe」는 바로 이 숫자 하나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오클랜드 대학 통계학과의 브렌든 브루어, 시드니 천문연구소의 게런트 루이스, 오클랜드 대학의 제시 굿맨이다. 논문은 12쪽 분량에 그림 4개, MNRAS 양식으로 작성된 투고 예정 원고다. 주제는 천문학이지만 방법론은 통계학이고, 질문은 철학에 가깝다. 우주에 생명이 얼마나 흔한지를 우리는 대체 어떤 논리로 추정할 수 있는가.

5억 년이라는 숫자, 그리고 하나뿐인 표본

문제는 표본이 하나라는 점이다. 확인된 생명의 사례는 지구뿐이고, 우리는 그 하나를 관찰하면서 우주 전체에 대한 확률을 말하려 한다. 게다가 관찰자 선택 효과가 붙는다. 우리는 생명이 이미 탄생한 행성에서, 그것도 지적 생명체가 진화한 뒤에만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존재하지 않았던 관찰자는 논문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는 무작위로 뽑은 우주가 아니다.

논문이 인용하는 고전적 입장은 카터와 맥크리(1983)의 것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는 우주에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저자들은 이 결론을 대체로 인정한다. 다만 그 '거의 아무것도'가 정확히 얼마인지,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그런지를 확률론의 언어로 다시 쓰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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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의 돋아오름. 우리가 가진 유일한 생명 표본은 이 작은 공 하나다 — NASA/빌 앤더스,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FIC: '내가 존재한다'와 '내가 선택되었다'를 함께 조건화한다

저자들이 제안하는 틀은 전체 지표 조건화(Full Indexical Conditioning, FIC)다. 이름은 닐(2006)이 제안한 전체 비지표 조건화(FNC)에서 따왔지만 내용은 다르다. FNC는 '내 기억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전칭 명제만 조건화하고, 그것이 하필 나라는 사실은 데이터로 쓰지 않는다. FIC는 여기에 한 단계를 더 붙인다. 내가 존재한다는 명제(AE)와, 그 존재들 중에서 내가 선택되었다는 명제(AS)를 곱한다.

수식은 짧다. P(AE, AS) = P(AE) × P(AS|AE). 앞항은 FNC의 몫이고 뒤항은 자기 표집 가정(SSA)의 몫이다. 저자들은 이 분해가 철학적으로 더 깨끗하다고 주장한다. 존재 항은 '내 세부 정보를 가진 사람이 태어날 확률'을 담고, 선택 항은 '그 사람이 전체 관찰자 중 하나로 뽑힐 확률'을 담는다. 두 항을 곱하면 인구가 많은 우주를 선호하는 편향이 사라진다는 것이 논문의 핵심 주장이다.

반전: 기준 집단 문제는 좌표계 문제였다

FIC의 약점으로 늘 지적되는 것이 기준 집단 문제다. 나를 '웨일스 사람 전체'의 표본으로 볼지, '영국인 전체'의 표본으로 볼지, '인류 전체'의 표본으로 볼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논문은 웨일스 출생이라는 예를 든다. 웨일스 인구를 N_W, 미국 인구를 N_U라고 하면 우도는 N_W/(N_W+N_U)가 되고, 기준 집단을 영국과 북미로 넓히면 분모가 바뀌어 다른 값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들의 반전은 이렇다. 인구수 대신 비율로 좌표를 바꾸면 기준 집단은 사라진다. 전체 인구를 N, 웨일스 비율을 f라고 놓으면 우도는 그냥 f가 된다. 기준 집단을 넓히면 분모가 커지는 대신, 그 넓은 집단 안의 비율이 연쇄곱 규칙에 따라 여러 비율의 곱으로 쪼개진다. 결과적으로 같은 정보를 다른 좌표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기준 집단이 충분히 크기만 하면 실질적 결론이 바뀌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구체적인 숫자도 제시된다. 웨일스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옥에 갇혀 지내며 국가별 인구를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웨일스가 미국보다 인구가 많을 확률'을 균등 사전확률 2분의 1에서 4분의 3으로 올린다.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존재 사실 하나가 방향을 정해준다는 뜻이다. 다만 저자들은 이것이 정확한 추론이며, 모나코에서 태어난 사람이 모나코 인구 비율을 과대평가하게 되는 것도 같은 규칙의 결과라고 덧붙인다.

둠스데이 논증과 '마지막 인간'의 역추론

둠스데이 논증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류의 몇 번째 사람인지(출생 순번 k)에서 인류 총수가 얼마나 될지를 추정한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k는 대략 500억 정도로 계산된다. FIC를 적용하면 우도는 N이 k보다 크거나 같을 때 1/N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0이다. 전통적인 SSA 결론과 같은 형태이며, 인류 총수가 지금보다 수십 배 이상 크다는 가설을 완만하게 깎아내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우도가 인구수에 대한 정보를 담는 방식이다. 국가 예시에서는 우도에 총인구 N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둠스데이에서는 1/N이 곧 '인류 중 내가 차지하는 비율'이기 때문에 N이 직접 들어온다. 출생 순번과 총수가 같은 축 위에 있기 때문이다. 논문은 이 차이를 설명하며, 기준 집단을 인류에서 호모 속 전체로 넓히면 1/N 인자가 하나 더 붙고 절단 위치도 달라진다고 계산한다.

논문은 닐의 반론도 정면으로 다룬다. 닐은 1/N 인자 자체를 거부하고 N이 k보다 크다는 절단만 남긴다. 저자들은 그 경우와 자신들의 경우를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옳은지는 존재 항과 선택 항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라고 정리한다. 그리고 세계적 재난에서 자신이 마지막 생존자임을 알게 된 사람이 '죽음 순번 1'로 역방향 추론을 할 수 있다는 기묘한 사례도, FIC에서는 정상적인 결론이라고 인정한다.

생명의 기원 시점은 낙관의 근거가 아니다

두 번째 응용은 생명의 기원 시점이다. 생명이 지구 역사의 아주 이른 시점, 대략 5억 년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흔히 '생명이 어렵지 않다'는 증거로 읽힌다. 라인위버와 데이비스(2002)의 분석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브루어(2008)는 그 결론이 의도치 않은 정보적 사전분포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고, 스피겔과 터너(2012), 키핑(2020)이 논의를 이어갔다. 같은 데이터에 서로 다른 우도 함수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FIC는 이 불일치를 하나의 식으로 정리한다. 우도는 세 인자의 곱으로 쪼개진다. '누군가 존재한다'는 인자, '관찰자가 현재 시점에 있다'는 인자, '생명이 5억 년에 기원했다'는 인자다. 브루어(2008)의 우도는 마지막 인자만, 키핑(2020)식 우도는 뒤의 두 인자를 담고 있었고, 이 논문이 첫 인자를 추가한다. 세 우도 중 어느 것도 틀리지 않았고, 서로 다른 정보의 부분집합을 다루고 있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결론은 반직관적이다. 생명이 일찍 등장했다는 사실은 비관적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세 인자를 모두 고려하면 우도 함수는 생명 발생률이 아주 낮은 구간에서도 0에 가까운 값으로 떨어지지 않고 완만하게 남는다. 다시 말해 '지구에서 생명이 빨리 나왔으니 우주에도 흔할 것'이라는 추론은, 적어도 이 계산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붉은 하늘 역설: M형 별의 생명은 미래에 있을 수 있다

세 번째 응용은 '붉은 하늘 역설'이다. M형 적색왜성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별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G형 별 옆에 있다. 키핑(2021, 2026)은 이 사실을 형식화해, M형 별에서 생명이 발달할 확률이 낮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FIC에서도 우도는 N_G/(N_G+N_M)이라는 단순한 비율이 되어 같은 방향의 결론을 준다. 우리가 G형 별 옆에 있다는 관측은 M형 별이 우주 생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가설을 불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에 논문의 두 번째 반전이 있다. 저자들은 N_G와 N_M이 무엇을 세는지 먼저 묻는다. 관찰자 개인인가, 생명이 있는 행성인가, 문명인가. 이들은 관찰자 개인이라고 주장한다. 각 개인은 자기만의 기억과 상황을 가진 정보 묶음이고, 우주는 그런 개인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정의를 따르면 G형 별 옆에 있다는 사실은 'G형 별에 문명이 더 많다'가 아니라 'G형 별에 개인이 더 많다'는 쪽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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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형 적색왜성과 그 주변 행성의 상상도. 우주에서 가장 흔한 별이지만, 그 옆에서 생명이 흔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 STScI/랠프 크로퍼드,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시간 분포까지 넣으면 그림이 더 흐려진다. 현재 우주 나이 138억 년이라는 관측을 함께 쓰면, G형 별 생명의 시간 분포에는 약한 정보가 생긴다. 반면 M형 별 생명의 시간 분포는 우도 함수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사전분포가 독립이라면, M형 별의 생명은 오히려 우주의 먼 미래에 몰려 있을 수 있다. 적색왜성의 수명이 수조 년 단위로 길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G형 별 옆에 있다'는 사실이 M형 별 생명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이다.

반론, 그리고 저자들이 인정한 한계

경쟁 가설은 세 갈래다. 자기 지시 가정(SIA)은 나의 존재를 더 잘 설명하는 가설을 지지하며, 인구가 많은 우주를 선호하는 '오만한 철학자' 문제를 낳는다. 자기 표집 가정(SSA)은 나를 어떤 집단에서 무작위로 뽑힌 표본으로 보며, 기준 집단 문제를 낳는다. FNC는 둘을 피하려고 존재 명제만 남기지만, 논문은 FNC가 생명이 흔하다는 쪽으로 지나치게 강한 결론을 낸다고 지적한다. 저자들 계산으로 FNC는 세포 하나 관찰하지 않고도 생명 발생 확률이 0.001보다 클 확률을 99.9%로 만든다.

논문 스스로 인정한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생명 기원 계산에서 행성별 관찰자 수가 생명 기원 시점과 독립이라고 가정했는데, 저자들은 이것이 비현실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둘째, 기준 집단에 대한 결론은 직관적 논증이며 형식적 이론은 후속 연구로 남겼다. 셋째, M형 별 논의는 M형 별 행성의 물리적 거주 가능성(타터 등 2007)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순수 국소 관측 기반 추론이다. 넷째, 이 논문은 모형 비교가 아니라 모수 추정 수준에 머문다.

그래도 남는 것은 하나의 태도다. 우리 존재는 우주 생명의 풍요로움에 대해 큰 정보를 주지 않는다. 다만 '어떤 관찰자도 존재하기 어려운 우주'를 걸러낼 뿐이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묻고 싶다. 만약 우리가 M형 별 옆에서 태어났다면, 인류는 지금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까.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은 천문학의 몫일까, 통계학의 몫일까.

참고 자료

Brendon J. Brewer, Geraint F. Lewis, Jesse Goodman, 'On the foundations of anthropic reasoning: Implications for life across the universe', arXiv:2610.22896 (physics.hist-ph, astro-ph.IM), 2026년 10월 16일 제출. https://arxiv.org/abs/2610.22896

논문이 인용한 주요 선행 연구: Carter & McCrea (1983), Bostrom (2002) Anthropic Bias, Neal (2006), Lineweaver & Davis (2002), Brewer (2008) arXiv:0807.4969, Spiegel & Turner (2012), Kipping (2020, 20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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