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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예정가격을 짜준다 — 조달청 시스템이 바꾸는 계약담당자의 하루

빗방울 2026.11.05 09:51 10분 읽기 조회 25 · 추천 2

조달청이 2026년 11월 5일부터 ‘지능형 예정가격 작성지원시스템’을 모든 공공기관에 열었다. 이 발표가 바꾸는 것은 하나다. 정부가 사려는 물건의 적정 가격을 정하는 준비 작업이, 사람이 서류를 뒤지는 노동에서 AI가 후보를 좁혀 주는 검토로 옮겨간다. 규모부터 보자. 조달청은 매년 8,000건이 넘는 물품 계약에서 과거 규격서를 일일이 열고, 견적을 요청할 업체를 손으로 찾아 왔다. 이 시스템은 조달청이 약 5개월 내부 운영으로 효과를 확인한 뒤 문을 넓힌 것이다.

예정가격이란 무엇이고, 왜 어려운가

예정가격은 공공 입찰에서 ‘이 가격을 넘으면 계약하지 않는다’는 기준선이다. 너무 높으면 나랏돈이 새고, 너무 낮으면 업체가 응찰하지 않아 입찰이 무산된다. 그래서 법령은 이 가격을 정하기 전에 충분한 가격조사를 하도록 요구한다. 실무자는 세 갈래 자료를 모아야 한다. 과거에 비슷한 물건을 얼마에 샀는지(구매실례), 지금 시장에서 얼마인지(견적), 그리고 사려는 물건의 규격이 무엇인지(규격서)다. 문제는 이 셋이 서로 다른 시스템과 문서 더미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담당자는 규격서를 열어 사양을 읽고, 나라장터 공고를 검색해 유사 사업을 찾고, 그 사업에 참여했던 업체 목록에서 견적 요청 대상을 골라 메일을 보낸다. 고가 장비나 특수 규격일수록 이 과정은 며칠로 늘어난다.

이번 시스템은 그 세 단계를 한 화면에 묶는다. AI가 나라장터 입찰공고에 첨부된 규격서를 분석해 핵심 내용을 추출·요약하고, 과거 유사 사업을 자동으로 찾아 준다. 이어서 유사사업에 참여한 업체의 투찰·낙찰 이력을 분석해 견적을 요청할 업체를 추천하고, 시스템 안에서 바로 견적 요청 메일을 보낼 수 있게 했다. 구매실례 검색부터 견적 요청까지 한 곳에서 끝난다는 것이 조달청의 설명이다.

왜 지금 나왔나 — 업무 부담과 AI 전환의 교차점

배경에는 두 가지 압력이 겹쳐 있다. 하나는 계약담당자의 업무량이다. 물품 계약 8,000건이 넘는 물량을 처리하면서 가격조사에 드는 시간은 줄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정부 전반의 AI 전환 기조다. 조달청은 이 시스템 외에도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발주를 돕는 ‘공공SW AI 책임형 발주관리 플랫폼’, 수요기관의 불공정 관행을 차단하는 ‘수요기관 자체입찰 모니터링’, 조달기업 편의를 위한 ‘MAS 서류 사전검토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내부 직원이 직접 만든 ‘인하우스 AI 개발 TF’에서는 AI 에이전트 10종과 업무 프로그램 14종을 자체 개발했다. 내년에는 조달업무를 통합 지원하는 ‘지능형 공공조달 플랫폼’ 정보화전략계획(ISP)과 원자재 공급망 대응을 위한 ‘지능형 전략비축시스템’도 예고돼 있다. 즉 이번 개방은 단일 서비스 출시가 아니라 조달청 AI 로드맵의 첫 대규모 외부 공개다.

개발 방식도 눈에 띈다. 예정가격 업무를 해 온 직원들이 기획부터 검증까지 참여했고, 사용자 테스트에서 나온 개선사항을 화면 구성과 처리 절차에 반영했다고 한다. 공공 부문 AI 사업이 ‘현장과 무관한 시스템’이 되기 쉬운 점을 의식한 서술로 읽힌다. 보안 역시 자체 점검과 국가정보원 보안성 검토를 거쳐 조치를 마쳤다고 밝혔다.

핵심 내용 — 무엇이 되는가

기능은 크게 세 덩어리다. 첫째, 규격서 분석. AI가 입찰공고 첨부 규격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요약한다. 둘째, 유사사업 검색. 과거 유사 사업을 자동으로 찾아 제시하므로 과거 공고와 서류를 하나씩 열어 볼 필요가 줄어든다. 셋째, 견적 대상 추천과 요청. 유사사업 참여 업체의 투찰·낙찰 이력을 분석해 견적 요청 후보를 추천하고, 메일 발송까지 시스템에서 처리한다.

이용 조건은 이렇다. 2026년 11월 5일부터 모든 공공기관이 쓸 수 있고, 조달데이터허브(data.g2b.go.kr)에 로그인해 ‘분석 → 예정가격 작성 지원’ 경로로 들어가면 된다. 이용 매뉴얼도 함께 제공된다. 별도 설치나 비용 부담은 보도자료에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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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보도자료 ‘AI로 구매실례 검색부터 견적 요청까지 예정가격 작성 더 쉽고 빨라진다’(2026.11.5.) — 정책브리핑(korea.kr) 화면 캡처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수요기관 계약담당자가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다. 반복 검색과 견적 요청 업무가 줄고, 남는 시간을 가격의 적정성 검토에 쓸 수 있다. 반면 ‘어떤 업체에 견적을 요청할지’ 판단하던 재량은 알고리즘 추천으로 상당 부분 위임된다. 추천 목록을 그대로 쓰는 관행이 굳으면, 목록에 들지 못한 업체는 입찰 전 단계에서부터 사실상 배제된다.

중소 조달기업에게는 양면이 있다. 과거 낙찰 이력이 있는 업체는 추천 목록에 오를 확률이 높아 유리하다. 반대로 이력이 적은 신생 업체나 특수 분야 업체는 추천에서 밀릴 수 있다. 이력 기반 추천은 구조적으로 기존 강자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추천이 강제가 아니라 ‘후보 제시’라면 담당자가 다른 업체를 포함할 여지는 남는다. 보도자료는 이 지점을 명시하지 않았다.

조달청은 업무 효율과 AI 행정의 성과를 함께 얻는다. 동시에 시스템이 제시한 가격·업체 선택의 책임 문제를 안게 된다. 예정가격이 부적정하다는 지적이 나올 때, AI 추천을 따랐다는 사실이 면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감사·회계 책임자의 관점은 또 다르다. 지금까지는 담당자가 어떤 자료를 보고 어떤 업체에 견적을 요청했는지가 문서로 남았다. AI가 검색과 추천을 대신하면, 그 판단 근거가 시스템 로그 안으로 들어간다. 설명 가능성과 기록 보존이 새로운 감사 쟁점이 된다.

통념과 다른 지점 — 자동화가 아니라 ‘검토 시간의 이동’

이 시스템을 ‘AI가 예정가격을 산출한다’로 읽으면 오해다. 보도자료가 강조하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자료 수집과 후보 압축이다. AI는 규격서를 요약하고 유사 사업을 찾고 견적 대상 후보를 추린다. 최종 가격을 정하는 것은 여전히 담당자다. 조달청이 ‘보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예정가격 작성에 집중할 수 있다’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은 개발 주체다. 외부 대형 SI 사업이 아니라, 현업 직원이 참여한 내부 개발과 AI 개발 TF가 중심에 있다. 공공 AI 사업의 성패가 알고리즘 성능보다 ‘현장 업무를 아는 사람이 화면을 설계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실제로 조달청은 5개월 내부 운영에서 반복 검색·확인 업무가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다만 그 효과의 구체적 수치(건당 절감 시간, 오류율 변화)는 제시되지 않았다.

반론과 한계 — 해결하지 못하는 것

첫째, 성과 수치가 정성적이다. ‘업무 효율성이 증가하는 효과를 확인했다’는 서술 외에 절감 시간, 처리 건수 변화, 예정가격 오류율 같은 지표는 보도자료에 없다. 효과의 크기를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렵다.

둘째, 추천의 편향 가능성이다. 투찰·낙찰 이력 기반 추천은 이력이 없는 업체에 불리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보정 장치나 공정성 검토 결과는 확인되지 않음.

셋째, AI 요약의 정확도 검증 절차가 공개되지 않았다. 규격서 요약이 원문의 결정적 조건을 빠뜨리면 가격조사 자체가 어긋난다. 담당자의 최종 검토가 방어선이지만, 요약을 신뢰하는 관행이 생기면 그 방어선은 약해진다.

넷째, 시장가격 변동이 큰 품목에는 과거 실례가 오히려 함정이 될 수 있다. 원자재 가격이 급변한 시기의 낙찰 이력은 현재 적정가의 근거로 부적합하다. 시스템이 이 차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음.

다섯째, 이번 개방은 물품 계약을 중심으로 설명됐다. 용역·공사처럼 원가 계산 구조가 다른 분야에 같은 방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언급이 없다.

독자가 실제로 할 일

공공기관 계약담당자라면 조달데이터허브(data.g2b.go.kr)에 로그인해 ‘분석 → 예정가격 작성 지원’ 메뉴를 확인하고, 매뉴얼을 먼저 훑어 어떤 자료가 어떤 순서로 제시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좋다. 기존에 쓰던 과거 공고 열람·견적 요청 절차와 어디가 달라지는지 대조해 두면 실제 업무에서 덜 헤맨다.

조달기업이라면 자기 회사의 투찰·낙찰 이력이 시스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추천 목록에서 빠질 경우 어떤 경로로 견적 요청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신규 업체라면 실적 외에 규격 적합성이나 기술 역량을 어떻게 어필할지 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 낫다. AI 추천이 업체 선정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되, 담당자의 검토 시간이 줄어들수록 목록의 영향력은 커진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사료의 한계

이 글의 근거는 조달청 보도자료 한 건이다. 보도자료는 정부 기관의 입장을 담은 홍보 자료이므로, 시스템 도입에 따른 업체 간 형평성 문제, 예정가격 산정의 법적 책임 소재, AI 추천의 검증 결과에 대한 반대편 시각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조달업계 단체나 감사기관의 평가, 실제 사용자들의 사용 후기는 반영되지 않았다. ‘효과가 확인됐다’는 서술도 조달청 내부 운영 결과이므로 독립적 검증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참고 자료

· 조달청(디지털공정조달국 인공지능조달혁신과), 「AI로 구매실례 검색부터 견적 요청까지 예정가격 작성 더 쉽고 빨라진다」, 2026년 11월 5일 배포. 정책브리핑 원문

· 이용 경로: 조달데이터허브 data.g2b.go.kr → 분석 → 예정가격 작성 지원

여러분은 계약담당자의 판단을 AI가 ‘후보만 추리는’ 이 방식이 적절하다고 보나요, 아니면 가격 산정의 근거까지 AI가 제시해야 한다고 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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