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 동안 영국 전역에서 문을 닫은 상점은 약 1만 3,000곳이었다. 하루 37곳꼴로 셔터가 내려간 셈이다. 폐업이 가장 심한 곳은 잉글랜드 북부, 미들랜즈(중부 잉글랜드),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해안 소도시들이었다. 기사는 이 지역들을 '총선에서 리폼 UK가 노동당을 가장 바짝 추격한 곳'이라고 짚는다. 셔터 내리는 소리와 투표용지는 무관해 보이지만, 통계는 그 둘을 이어 붙인다.
하루 37개씩 닫는다는 숫자의 맥락
가디언은 거리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은행과 백화점 자리를 베이프(전자담배) 가게와 이발소, 북메이커(도박 베팅샵)가 메웠다. 이 세 업종은 2000년대 영국 하이스트리트의 상징이던 은행·백화점과 성격이 다르다. 객단가가 낮고, 체인화가 덜 되어 있고, 무엇보다 재고와 임금 부담이 가볍다. 즉 '채워진 간판'과 '살아 있는 상권'은 같은 말이 아니다. 공실률이 내려가도 거리의 체감은 나아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기간 영국 소매업은 국내총생산(GDP)의 5%, 고용의 10% 미만을 차지한다. 경제 비중만 보면 작은 산업이다. 그런데도 상권 몰락이 정치 의제의 중심에 오르는 것은, 소매업의 존재감이 경제가 아니라 가시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공장은 도시 외곽에 있고 사무실은 문 뒤에 있지만, 가게는 누구나 매일 지나치는 벽이다.
[[image:1]]잉글랜드 체셔주 노스위치의 하이스트리트 보행 상권 — Rept0n1x,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폐업률이 높은 곳에서 극우 지지가 늘어난 상관관계
워릭대학교의 티에모 페처(Thiemo Fetzer) 교수의 분석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폐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일수록 우익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다른 조건이 아니라 '주변 지역의 침식이 눈에 보이는 정도'가 핵심이라고 읽는다. 인터뷰에서 그는 개인 사정은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가 사는 동네가 무너지는 것'에 분노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고브(YouGov)와 조사팀 패스터 호시스(Faster Horses)의 심층 여론조사에서도 리폼 UK 지지를 고민하는 유권자의 62%가 '우리 지역이 쇠퇴하고 있다'고 답했다. 포커스 그룹 참가자의 발언은 기사에 거칠게 그대로 인용된다. 동네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영혼을 갈아버리는 일'이라는 표현이다.
페처 교수는 이것을 '비선형적 임계점(non-linear tipping point)' 뒤의 '소멸로의 연쇄(cascade into oblivion)'라고 부른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과 독일 전반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며, 특히 중간 규모 도시에 집중된다고 말한다. 대도시나 부유한 지역은 독립 소매·외식·관광이 모여 추세를 거스르지만, 그런 자원을 갖지 못한 중소 도시는 그대로 흘러내린다는 것이다.
영국 상가의 소유·임대 구조 — leasehold라는 장부
이 기사는 임대 제도의 세부 구조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다만 '임대료와 공과금이 급등했다', '상업용 부동산 가치에 매기는 사업세(business rates)가 오프라인에 불리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배경 설명은 원문 밖의 일반론이므로, 제도 부분은 '확인된 사실'과 '배경 설명'을 나눠 쓴다.
영국 상가의 기본 틀은 leasehold(임차권)다. 건물 전체의 소유권(freehold)은 지주가 갖고, 상인은 보통 수년에서 수십 년 단위의 임차권을 사서 그 기간 동안 점포를 쓴다. 한국의 전세처럼 목돈을 맡기고 돌려받는 구조가 아니라, 기간 사용권을 사는 구조에 가깝다. 때문에 임차권 만료가 가까워질수록 그 권리의 시장 가치는 급격히 떨어지고, 계약 갱신 조건(rent review, 상향만 되는 조항 등)이 상인의 장사 수명을 좌우한다.
한국의 권리금은 '장사 자리'에 붙는 영업 가치이고, 영국의 임차권은 '부동산 사용권'이라는 법적 자산이다. 회계상 자산으로 계상되는 반면, 한국의 권리금은 제도권 밖 관행에 가깝다. 상업용 임대료에는 부가가치세(VAT)가 붙고, 사업세는 임차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도 한국의 재산세 구조와 다르다. 기사가 지적한 '사업세가 창고를 유리하게 만든다'는 불만은 이 구조에서 나온다.
온라인 25% 시대 — 손님이 사라진 게 아니라 이동한 것
숫자는 더 분명하다.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소매 매출에서 온라인 비중은 2006년 3% 미만에서 현재 25%를 넘어섰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 전환을 가속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보다 영국인이 더 온라인 쇼핑을 한다'는 대목이다. 미국은 배송 거리가 길어 택배 비용이 높지만 영국은 국토가 좁다. 물류 조건이 갖춰진 나라일수록 오프라인 매장의 필요성이 먼저 무너진다는 역설이다.
수요 측 요인도 겹친다. 2010년대 실질임금은 사실상 정체했고, 인플레이션은 40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고, 소비는 물건에서 경험으로 옮겨갔다. '피크 스터프(peak stuff)'라는 표현처럼 물건 소비 자체가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금리, 세금 인상, 규제, 최저임금 인상이 겹쳐 소매업의 이익 여력은 얇아졌다.
스스로 만든 악순환 — 주 1회도 안 가는 사람들
기사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원인이 외부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인의 절반 가까이가 하이스트리트나 쇼핑 지역에 주 1회도 가지 않는다. 방문을 막는 이유로 꼽히는 것도 스스로를 강화한다. '볼 만한 가게가 없다'와 '빈 매장이 너무 많다'는 서로를 먹여 살린다. 손님이 줄어 가게가 닫히고, 가게가 닫혀 손님이 더 줄어든다.
이 위에 공공서비스 축소가 겹친다. 교통·치안·의료·사회서비스 투자 부족, 노숙자 증가, 그리고 상점 절도 급증이다. 기사에 따르면 2025년 6월까지 1년간 상점 절도 신고는 13% 늘어 50만 건을 넘었다. 페처 교수는 온라인 쇼핑 확산이 사회적 고립과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방문을 더 줄이는 되먹임 고리를 지적한다. '사람들이 서로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는 그의 표현이 이 글의 정서를 대신한다.
반전 —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일 수 있다
그러나 '상점 수 감소 = 상권 몰락'이라는 등식은 반만 맞다. 같은 거리에서 은행 지점은 문을 닫았지만 그 자리는 카페와 미용실, 체육 시설, 임대 사무소가 메웠다. 소매업 비중이 줄고 서비스·외식·주거가 유입되는 것은 용도 전환이다. 지표는 '상점 수'로 측정되지만 독자가 체감하는 것은 '거리의 활기'이고, 이 둘은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기사도 이 가능성을 인정한다. 독립 소매와 외식, 관광이 밀집한 곳은 추세를 거슬렀다는 대목이다. 문제는 그 반전이 '대도시와 부유한 지역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전환은 일어나지만 격차를 따라 함께 일어난다. 그래서 '회복된 거리'의 사진은 '회복되지 않은 거리'의 분노를 더 크게 만든다.
한국과 비교 — 전세·권리금 구조가 만드는 다른 속도
한국의 골목상권과 가장 다른 점은 한국의 임차 구조가 퇴거 비용을 높인다는 것이다. 상인은 보증금과 권리금을 걸고 들어가기 때문에, 장사가 어려워도 손실을 확정하기 어려워 버티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폐업은 느리게 누적되지만, 한 번 무너질 때는 권리금이 증발하는 충격이 크다. 영국식 임차권은 계약 만료 시점이 오면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되므로, 거리의 변화가 더 빠르고 더 눈에 띄게 진행된다.
비슷한 처지의 국내 상권으로는 동성로나 명동처럼 보행 중심 상권을 들 수 있다. 공통점은 온라인 전환과 임대료 상승이라는 압력, 그리고 '체인과 저가 업종이 고급 수요를 밀어내는' 업종 교체다. 다른 점은 한국은 재개발·재건축이라는 출구가 제도적으로 열려 있고, 영국은 그 출구가 임차권 시장과 지방정부 예산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각인가
이 기사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비즈니스면 기사이고, 구조적으로 노동당 정부에 비판적인 구도를 취한다. '수년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레벨링 업은 실현되지 않았다', '5월 지방선거 전에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서술은 정책 성과를 평가하는 프레임이다. 리폼 UK의 지지 상승을 '설명되는 현상'으로 다루면서도, 그 정치 세력의 정책 대안은 검증하지 않는다.
수치의 출처도 층이 다르다. 폐업 수와 온라인 비중은 공식 통계(ONS 등)에 기반하지만, 페처 교수의 분석은 상관관계이며 인과관계가 아니다. 폐업률이 높은 곳은 애초에 산업 구조가 취약하고 소득이 낮을 가능성이 크고, 그 조건 자체가 극우 지지를 낳는 요인일 수 있다. 기사는 이 반론을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독자에게
한국의 상권 정책은 대개 '빈 점포를 얼마나 채울 것인가'를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영국의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다르다.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그리고 그 채움이 누구의 분노를 키우는가다. 베이프 가게로 채운 간판은 공실률 지표를 낮추지만 거리의 체감은 낮추지 못한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최근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업종은 그 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가?
참고 자료
- Doom loop of decline: how struggling high streets fuel far-right sympathies in UK — The Guardian, 2026년 1월 29일 —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26/jan/29/doom-loop-of-decline-how-struggling-high-streets-fuel-far-right-sympathies-in-uk
- Thiemo Fetzer, 상점 폐업과 우익 포퓰리즘 지지 상관관계 연구 — Economics Letters (2025) — sciencedirect.com
- ONS 소매판매 온라인 비중 통계 — ons.gov.uk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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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13:26
베이프 가게랑 이발소로 간판 채워놓고 공실률 좋아졌다고 하는 거, 우리 동네도 똑같음. 지표는 살았는데 사람은 안 다님. 개인 사정은 괜찮은데 동네가 무너지는 게 화난다는 대목이 제일 오래 남네. 그 분노가 어디로 가느냐가 진짜 문제인 것 같음. -
빗방울
2026.11.01 17:35
상권 몰락이 정치로 넘어가는 경로 중에 '가시성'이라는 대목이 제일 눈에 남네요. 공장은 외곽에 있고 사무실은 문 뒤에 있는데 가게는 매일 지나치는 벽이라서, 경제 비중 5%짜리 산업이 선거 의제를 흔드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거리가 살아 있다'는 건 결국 빈 점포가 몇 개인가보다 사람이 걸어다니는 이유가 몇 개인가로 봐야 하는 걸까요? 지자체 통계도 공실률 대신 보행량 같은 걸로 바뀌는 곳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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