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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엔 6칸, 5월엔 2칸 — 홍콩 퀸즈로드의 빈 점포가 사라진 방식

빗방울 2026.11.01 21:25 9분 읽기 조회 83 · 추천 2

2023년 1월, 홍콩 중환(中環, Central)의 중심 가로인 퀸즈로드 센트럴(Queen's Road Central, 홍콩섬 북쪽 해안을 따라 동서로 뻗은 중환의 대표 상업가로)에는 임대 가능한 대로변 1층 점포가 약 6칸 있었다. 그해 5월 17일 부동산 서비스 회사 JLL이 낸 발표에 따르면, 같은 거리에서 임대 가능한 점포는 2칸으로 줄어 있었다. 넉 달 남짓 사이에 네 칸이 계약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네 칸은 홍콩 전체 상권의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같은 발표에서 중환 대로변 점포 공실률은 2022년 3분기 11.9%에서 2023년 1분기 10.5%로 두 분기 연속 내려갔지만, 같은 기간 중환 대로변 임대료는 전분기 대비 1.7% 오르는 데 그쳤다. 빈 점포는 줄었는데 임대료는 거의 그대로였다. 이 간극이 이 기사의 진짜 내용이다.

무엇이 바뀌었나 — 11.9%에서 10.5%로

JLL은 중환의 대로변 1층 점포(업계 용어로 하이스트리트 스트리트 숍, high street shop) 공실률이 두 분기 연속 개선되어 2023년 3월 말 10.5%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직전 저점은 2022년 3분기의 11.9%다. 회복의 명목상 이유로 제시된 것은 중국 본토와의 국경 재개방과 그에 따른 경제 회복이다.

여기에 근거가 되는 관측이 붙는다. JLL 홍콩 리테일 총괄 올리버 통(Oliver Tong)은 중국 본토가 국경 재개방을 발표한 뒤 1분기에 소매 브랜드들이 부동산 결정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인 업종을 특정했다. 갤러리, 명품 패션 브랜드, 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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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로드 센트럴 거리 풍경, 2024년 12월 — Alexkom000, CC BY 4.0 (Wikimedia Commons)

홍콩의 상가 임대 제도 — 한국의 전세·보증금·권리금과 무엇이 다른가

이 발표에는 계약 구조가 직접 나오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음으로 밝혀 둔다. 다만 기사에 적힌 한 줄이 제도적 차이를 드러낸다. 임대료는 홍콩달러로 평방피트(제곱피트)당 월 140달러로 제시되어 있었다. 한국이 ㎡당, 그것도 대개 보증금과 월세를 나눠 말하는 것과 달리, 홍콩은 면적 단위가 평방피트이고 호가를 한 숫자로 던지는 관행이 흔하다.

일반적 배경을 덧붙이면 이렇다. 홍콩의 상업용 부동산은 토지가 대부분 정부 소유에서 장기 임차권(리스)으로 풀린 구조여서, 건물 소유권 자체가 기한이 있는 권리로 거래된다. 그래서 한국식 전세(임차인이 목돈을 맡기고 월세를 면제받는 구조)나 권리금(기존 임차인의 영업권·시설을 새 임차인이 사는 돈)에 대응하는 관행이 시장의 기본 문법이 아니다. 개별 건물별로 조건이 달라 일반화는 위험하다.

이 차이는 상인에게 실제로 다른 부담을 만든다. 한국에서는 목 좋은 자리에 들어갈 때 큰 목돈이 먼저 필요하고, 그 목돈이 권리금과 보증금에 묶인다. 홍콩에서는 진입 장벽이 대부분 매달 나가는 임대료에 집중된다. 매출이 꺾이면 즉시 아픈 구조다.

JLL 발표에 나온 실제 사례를 보자. 중환 퀸즈로드 9번지의 갤러리아(The Galleria) 2층에서 임대인이 점포 9칸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총 면적 9,221평방피트, 점포별 면적은 726평방피트에서 1,400평방피트 사이다. 이 점포들은 현재 모두 공실이었고, 임대료는 평방피트당 월 140홍콩달러로 총 임대료가 120만 홍콩달러를 넘는 수준으로 제시됐다.

1제곱피트는 약 0.093㎡다. 9,221평방피트를 ㎡로 옮기면 약 857㎡가 된다. 평방피트당 140달러를 ㎡당으로 환산하면 약 1,507홍콩달러다. 원화 환산은 이 기사에 없으므로 하지 않는다. 숫자 자체보다 눈여겨볼 것은 위치다. 문제가 된 9칸은 대로변이 아니라 건물 2층이었고, 랜드마크·프린스 빌딩·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빌딩과 보행 육교로 이어지는 입지였다.

JLL은 이 공급이 나온 배경을 따로 설명한다. 핵심 중환에서 임대 가능한 대로변 점포 자체가 줄어들자, 임대인이 2층 공간을 꺼내 놓았다는 것이다. 올리버 통은 중간 규모 점포의 공급이 희소하기 때문에 임대료 총액이 작은 저층 상업 공간이 중소 소매업자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평방피트당 140달러, 그 2층에는 누가 들어오나

JLL이 회복 국면에서 가장 활발한 업종으로 지목한 것은 갤러리, 명품 패션 브랜드, 시계다. 이 세 업종은 공통점이 있다. 면적당 매출이 높고, 임대료 부담을 매출로 상쇄할 수 있는 쪽이다. 그리고 관광객과 자산가의 소비에 민감하다.

새로 내놓은 2층 9칸의 업종 제안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JLL은 이 공간이 주얼러, 카페, 뷰티, 라이프스타일 같은 업종에 적합하다고 적었다. 대로변 1층을 차지한 것은 고가 브랜드이고, 한 층 올라가야 하는 공간에는 그보다 작은 자본의 업종을 배치하겠다는 구도다.

왜 지금인가 — 국경, 그리고 관광 의존도의 차이

원인으로 제시된 것은 하나로 명확하다. 국경 재개방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설명하는 대비가 이 발표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JLL 홍콩 리서치 선임 디렉터 캐시 청(Cathie Chung)은 중환의 소매 시장이 팬데믹 기간에 다른 핵심 상권보다 상대적으로 견조했다고 평가하며 그 이유를 들었다. 관광 소비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관광 의존도가 낮아서 버틴 동네가, 국경이 열렸다고 해서 가장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2023년 1분기 중환 대로변 임대료 상승률은 전분기 대비 1.7%에 그쳤다. 관광이 돌아오는 것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곳은 관광지이고, 중환은 그 지점이 아니었다.

청은 임대 심리가 개선되었으니 중환 공실은 더 내려갈 것이며 임대료의 본격적 반등은 하반기에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즉 이 발표는 이미 일어난 회복의 보고이면서,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예측을 담고 있다.

반전 — 상권 몰락도 부활도 아닌, 용도 전환

이 기사를 "홍콩 상권이 살아났다"로 읽으면 절반만 맞다. 빈 점포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임대료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점포를 채운 주체는 명품·갤러리·시계였고, 그 아래층에서는 중소업자에게 2층 공간을 권하는 상담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같은 동네에서 층에 따라 서로 다른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몰락도 부활도 아니라 재배치다. 대로변 1층이라는 희소 자원을 최고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업종에 몰아주고, 남은 수요를 위층으로 밀어내는 방식이다. 상권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상인의 구성이 바뀌는 것이다. 통계상 공실률은 개선되고, 그 개선을 누리는 주체는 이전과 다르다.

한국과 견주면 — 명동의 두 가지 숫자

한국에서 비교적 가까운 사례는 서울 명동이다. 명동도 관광 의존도가 높고, 대로변 1층과 이면·상층의 임대 조건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동네다. 한국에서는 이 간극이 보증금과 권리금이라는 형태로 앞당겨 나타난다. 좋은 자리의 권리금을 먼저 치러야 하고, 그 목돈이 사업의 첫 부담이 된다.

같은 점은 두 곳 모두 입지가 층과 위치로 위계화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부담의 시점이다. 한국 상인은 들어갈 때 큰 돈을 내고, 홍콩 상인은 나가는 동안 매달 큰 돈을 낸다. 그래서 경기 침체가 왔을 때 버티는 방식도 다르다. 전자는 목돈을 회수하지 못한 채 버티고, 후자는 임대료를 못 내면 바로 밀려난다.

주의할 것은 이 비교가 JLL 발표의 내용이 아니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경 설명이라는 점이다. 이 기사에는 한국 상권이나 명동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각인가

이 발표는 JLL이 낸 보도자료다. JLL은 이 기사에서 임대 대리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2층 9칸의 임대를 직접 중개하고 있다. 즉 좋은 소식과 함께 자기 상품을 소개하는 문서다. 공실률 하락과 임대 심리 개선은 자기 사업의 명분이 되는 서사이고, 임대료가 1.7%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덜 좋은 숫자도 같은 문서에 들어 있다. 이 점은 오히려 신뢰도를 높이는 요소로 볼 수 있다.

다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 숫자는 한 분기, 한 회사의 집계이며 점포 단위 표본이 크지 않다. 거리 전체 통계처럼 읽으면 안 된다. 또한 "임차인들이 서둘렀다"는 관측은 중개사의 체감이고, 실제 계약 체결 건수와 업종 구성 변화로 검증되지 않았다.

독자에게 — 빈 점포가 줄면 상권은 나아진 것인가

공실률 10.5%는 개선이다. 그런데 그 개선은 대로변을 명품과 갤러리로 채우고, 밀려난 수요를 2층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골목의 카페와 수선집이 사라지고 같은 자리에 시계 매장이 들어왔다면, 우리는 그것을 상권의 회복이라고 불러야 할까. 여러분 동네의 대로변에서 최근 가장 먼저 문을 연 가게는 어떤 업종인가.

참고 자료

JLL, "Vacancy rate of Central's high street shops improve after mainland China's reopening", 2023년 5월 17일. https://www.jll.com/en-hk/newsroom/vacancy-rate-of-centrals-high-street-shops-improve-after-mainland-chinas-re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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