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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죽었다" — 배에 남은 건 조난 신호뿐이었다

빗방울 2026.11.03 01:59 13분 읽기 조회 18 · 추천 2

1948년 2월 3일, 인도네시아 사마랑에서 발행되던 네덜란드어 신문 《데 로코모티프(De locomotief)》에 바다 괴담이 한 편 실렸다. 제목은 ‘우랑 메단의 비밀’. 말라카 해협을 지나던 네덜란드 상선이 조난 신호를 보냈고, 구조에 나선 배가 승무원 전원이 눈을 뜬 채로 죽어 있는 선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같은 해 3월 13일 이 신문은 3회 연속 기사의 마지막 회를 싣고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우리는 이 ‘바다의 미스터리’에 관한 다른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 이 이야기 전체가 허구, 흥미 위주의 해양 로맨스처럼 보일 수 있다.” 사건을 보도한 신문 자신이 그 진위를 의심했다는 뜻이다.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 1940년부터 따지면 이미 86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손에 쥔 1차 사료는 이렇게 몇 장의 신문 지면뿐이다.

최초 보도는 솔로몬 제도 근처에서 시작됐다

현재 가장 널리 퍼진 판본은 말라카 해협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출발점은 태평양 남서쪽이다. 1940년 10월, 트리에스테 지역지 《일 피콜로(Il Piccolo)》의 해사 담당 기자 실비오 스케를리(Silvio Scherli)가 ‘바다의 드라마(I drammi del mare)’ 연재에서 처음 이 사건을 다뤘다. 스케를리는 선박 무선 통신사 출신의 프리랜서 기자였다. 그가 전한 첫 조난 신호는 “증기선 우랑 메단에서 SOS. 단파 무선을 가진 배는 의사를 연결해 달라. 긴급”이었고, 두 번째 전문은 “아마 2등 항해사 사망. 다른 선원들도 죽은 듯. 의료 상담 불필요. SOS 긴급 지원 군함 요청”이었다. 마지막으로 잡힌 것은 “선원들이……”에서 끊긴 미완성 문장이었다.

한 달 뒤 영국 《데일리 미러》와 《요크셔 이브닝 포스트》가 AP 통신 명의로 이 이야기를 전했고, 배의 위치는 솔로몬 제도 부근으로 적혀 있었다. 구조선의 이름은 없었고, 조난 신호의 문구도 나중 판본과 달랐다. 즉 대중에게 알려진 ‘말라카 해협 + 1948년 2월’ 조합은 최초 보도가 아니라 8년 뒤 개작된 버전이다. 사건의 장소가 바뀌고 시간이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것이 검증된 사고 기록이 아니라 반복 개작된 이야기라는 첫 번째 단서다.

1948년 판본이 추가한 세 가지

《데 로코모티프》의 1948년 연재는 스케를리를 출처로 밝히며 앞선 판본에 없던 요소를 붙였다. 첫째, 구조에 나선 배가 미국 선적의 ‘실버 스타(Silver Star)’와 ‘시티 오브 볼티모어(City of Baltimore)’라는 이름을 얻었다. 둘째, 구조대가 승무원 전원이 등을 대고 쓰러진 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모습으로 발견됐다는 시신 묘사가 들어갔다. 셋째, 배에 실린 것은 부실하게 적재된 황산(‘oil of vitriol’)이었고 파손된 용기에서 나온 독가스가 선원들을 죽였다는 증언이 추가됐다. 이 증언은 마샬 제도 타옹이 환초까지 헤엄쳐 살아남은 독일인 선원이 죽기 전 선교사에게 전했다는 형식으로 전달된다.

이 세 요소가 지금 우리가 아는 ‘우랑 메단’의 거의 전부다. 그리고 이 셋 모두 최초 보도 이후에, 한 사람의 기자 계보를 통해 들어왔다. 게다가 이 판본은 배의 항로를 ‘중국의 작은 항구에서 코스타리카로’, 세관 당국을 일부러 피해 갔다고 설명한다. 항로와 화물이 모두 세관을 피하는 설정이라는 점은 뒤에 나오는 밀수·화학무기 가설의 출발점이 되지만,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독립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말라카 해협 위치. 사건이 벌어졌다고 주장되는 해역이지만 1940년 최초 보도는 솔로몬 제도 부근을 가리켰다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Strait of Malacca highlighted.png)

선박 등록부에 없는 배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배 자체의 존재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여러 연구자가 로이드 선급 등록부(Lloyd's Register)와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의 선박 등록 기록을 뒤졌지만 ‘우랑 메단’이라는 선박은 나오지 않는다. 로이드 해사 정보국에 사고 조사 기록도, 침몰 사고 신고도 없다. 이름의 구성도 수상하다. ‘우랑(orang)’은 말레이어로 ‘사람’, ‘메단(Medan)’은 수마트라 동부의 도시 이름이다. 즉 ‘메단 사람’이라는 뜻에 가까운 이름은 실제 선명이라기보다 이야기를 지어낼 때 붙기 쉬운 이름이다.

구조선 쪽도 사정이 나쁘다. 로이 밴턴(Roy Bainton) 같은 연구자는 ‘실버 스타’의 정체를 어느 정도 특정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배의 항해일지에는 우랑 메단을 구조하거나 예인을 시도한 기록이 없다. 서류와 기록이 모두 비어 있다는 것은, 사건이 ‘기록이 소실된 사건’이 아니라 ‘기록이 애초에 만들어진 적 없는 사건’일 가능성을 가리킨다.

가설 1: 황산과 독가스 — 화물의 문제

가장 유명한 설명은 화물 자체가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황산이 적재 중에 깨져 바닷물과 화물창에서 반응했고, 발생한 이산화황 같은 자극성 가스가 밀폐된 선내에 차면 승무원이 숨졌다는 흐름이다. 시신에 눈에 띄는 외상이 없었다는 묘사와는 비교적 잘 맞고, 이후 화재와 폭발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약점은 두 가지다. 첫째, 황산 화물 사고라면 선사·보험사·항만 당국의 피해 조사 기록이 남아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둘째, 이 가설은 마샬 제도에서 살아남았다는 익명의 독일인 선원 증언에 사실상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그 증언의 출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케를리 한 사람이다. 증언과 결론이 같은 입에서 나온 셈이다.

가설 2: 청산가리와 니트로글리세린 — 밀수설

더 정교한 판본은 화물이 단순 산업용 화학품이 아니라 청산화칼륨(청산가리)과 니트로글리세린의 조합이었다고 본다. 청산염이 바닷물과 만나 사이안화수소를 내뿜어 선원을 급사시키고, 이어 니트로글리세린이 불을 붙여 폭발했다는 이중 반응 시나리오다. 시신의 외상 없음, 갑작스러운 전원 사망, 화재, 침몰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한 번에 설명한다는 점에서 이야기 구조상 가장 매력적인 가설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화물 목록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배의 등록 기록이 없으니 화물 명세도 없고, 선원 명단도 없다. 따라서 이 설명은 ‘입증된 원인’이 아니라 사건의 빈칸을 그럴듯하게 채우는 추론이다. 청산가리와 니트로글리세린을 함께 싣는 일이 실제 항만에서 어떤 검사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따져보면, 등록조차 없는 배가 그런 화물을 대규모로 실었다는 설정은 운항 현실과 거리가 있다.

가설 3: 일산화탄소 — 보일러와 화재

빈센트 개디스(Vincent Gaddis)가 제시한 설명은 화물이 아니라 기관부를 의심한다. 보일러 손상으로 감지되지 않은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 일산화탄소가 선내로 퍼졌고, 잠든 선원들이 외상 없이 죽었으며 불씨가 커져 배가 불탔다는다. 일산화탄소 중독은 실제 해상 사고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인이며, ‘눈을 뜬 시신’이라는 묘사와도 비교적 무리 없이 연결된다. 다만 이 이야기가 유행한 1948년 무렵에는 이미 시신이 거꾸로 서 있거나 개까지 죽어 있었다는 과장이 붙기 시작했고, 가설 자체는 최초 보도에 없던 장면들을 설명하기 위해 나중에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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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4: 화학무기 이전 — 전후 밀무역설

가장 최근 유행하는 판본은 태평양 전쟁 말기 중국에 보관돼 있던 독가스(타분 등)가 일본군에서 미군 쪽으로 넘어갔고, 공식 기록이 남지 않도록 미등록 선박에 실려 조용히 운반되던 중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다. ‘선적국이 없고 세관을 피했고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전 판본의 설정과 잘 맞물린다.

약점은 뚜렷하다. 이 가설에는 배의 이름조차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전후 처리된 화학무기 운반 기록과 실제로 대조된 연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독가스 운반은 통상 군 수송선과 별도 보안 절차를 거쳤다는 점에서, 민간 등록 선박이 무명 상태로 실어 나를 수 있었는지도 검증되지 않았다. 즉 이 가설은 검증 불가능한 사건 위에 검증 불가능한 음모를 얹은 구조다.

반전: 사건은 늘 ‘기자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우랑 메단을 처음 기사로 만든 사람은 스케를리였다. 1940년 첫 보도에서 시작해 1948년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신문까지, 모든 버전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1948년 《데 로코모티프》는 1940년 《일 피콜로》 사진을 그대로 복사해 실었고, 앞선 판본에 없던 생존자 증언을 그가 직접 전하는 선교사와 연결해 넣었다. 그런데 정작 신문은 “다른 자료가 없다”, “저자는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보증한다”는 문장을 같은 지면에 실었다. 사건은 여러 목격자에 의해 검증된 게 아니라, 한 명의 취재원이 반복해서 각색한 소재였다.

여기에 상업적 반복의 흔적이 겹친다. 1952년에는 미국 해안경비대 발행 《Proceedings of the Merchant Marine Council》까지 이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다. 정부 기관 간행물에 실렸다는 사실은 이후 ‘미 해안경비대가 기록한 사건’이라는 신뢰감의 근거가 되었지만, 원문은 새로운 조사가 아니라 이미 유통되던 기사를 재수록한 것이었다. 회람 인쇄가 사실의 증거로 둔갑하는 과정이 이 사건에서 특히 선명하다.

말라카 해협의 위성 이미지.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해역 중 하나로, 대형 사고와 대규모 수색이 있었다면 기록이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 NASA MODIS, 퍼블릭 도메인 (Strait of Malacca (MODIS 2025-08-25).jpg)

미해결인 것과 해결된 것

여기서 구분해야 한다. 해결된 것은 사실 하나다. 이 사건을 뒷받침하는 동시대의 독립 기록, 즉 선박 등록, 사고 보고, 구조선 항해일지, 보험 청구 중 어느 것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 부재는 몇몇 연구자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검증 결과다. 즉 현재의 증거 수준으로 볼 때 이 이야기가 실화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고, 거의 모두가 ‘사실이라면 왜 기록이 없나’라는 질문에 막힌다.

반대로 풀리지 않은 것도 분명히 남는다. 이 이야기가 어떤 실제 사고에서 자라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창작이었는지 스케를리의 의도를 확인할 자료는 없다. 1940년 최초 보도의 취재원이 ‘상선 해기사 출신의 인물’로 적혀 있는데, 그가 누구였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가 아니라 ‘존재 여부가 미해결인 사건’이라는 점이 정확한 현재 위치다.

사료의 한계와 덧씌워진 이야기

사료 검토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후대 덧붙임이다. 원형이라 할 1940년 판본에는 이름이 붙은 구조선도, 시신이 눈을 뜨고 있었다는 묘사도, 황산 화물도, 개 사체도 없다. 이런 디테일은 대부분 포티언(Forteana) 계열 출판물과 1950~60년대 잡지에서 이야기가 소비되면서 붙었다. 디테일이 구체적일수록 실제 기록에서 멀어지는, 괴담 확산의 전형적인 경로다.

또 하나의 한계는 신문 지면 자체의 성격이다. 《일 피콜로》의 ‘바다의 드라마’ 연재는 사고 보고서가 아닌 흥미물 코너였다. 네덜란드어 신문의 1948년 기사도 마지막 회에 “궁금한 점에 답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사실 기록이 아니라 사실의 형식을 띤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직하다.

그래서 왜 아직도 회자되는가

이 이야기가 살아남은 이유는 무섭기 때문만이 아니다. 배는 발견되었지만 이름이 없고, 시신은 있었지만 사인 기록이 없고, 신문은 보도했지만 출처를 신뢰하지 않았다. 모든 증거가 ‘거의 있다’에서 멈춘다. 그 빈칸을 각 시대가 자기 방식으로 채웠다. 냉전기에는 화학무기 밀수가, 근래에는 밀수·해적·기상이변 같은 실용적 설명이 들어왔다. 사료가 없는 이야기는 반증되기 어렵고, 반증되지 않는 이야기는 계속 재생산된다.

오늘날 이 사건을 검증한다는 것은 새로운 진실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이미 돌고 있는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됐고 무엇이 나중에 붙었는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이 사건은 해양 괴담이 아니라 사료 비평의 교재로 읽을 때 가장 유용하다. 같은 구조는 지금도 SNS에서 조난·실종 관련 소문이 퍼질 때마다 반복된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등록 기록도, 사고 보고서도, 구조선 항해일지도 없는 사건을 우리는 ‘미스터리’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출처 미확인 이야기’라고 불러야 할까요?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이 책이었는지, 다큐멘터리였는지, 아니면 인터넷 게시물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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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Wikipedia, “SS Ourang Medan” — https://en.wikipedia.org/wiki/SS_Ourang_Medan (2026-11 조회)
  • 《De locomotief: Samarangsch handels- en advertentie-blad》, 1948년 2월 3일·2월 28일·3월 13일 연재 (Wikipedia 항목이 인용한 원문 신문)
  • 《Il Piccolo》(트리에스테), 1940년 10월 ‘I drammi del mare’ 연재, 실비오 스케를리
  • 《Proceedings of the Merchant Marine Council》(미국 해안경비대), 1952년 5월호 재수록
  • Brian Dunning, “The Death Ship SS Ourang Medan”, Skeptoid — https://skeptoid.com/episodes/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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