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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한 AI 기업은 학계를 향해 약속을 했다. 해답을 한꺼번에 쏟아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여 뒤인 10월, 그 기업은 거의 400편에 달하는 논문을 한 번에 공개했다. 수학자 네스토르 기예른(Nestor Guillen)이 11월 3일 arXiv에 올린 에세이 'It is time for a New Deal for mathematics'는 바로 이 장면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 400편 가운데 틀린 논문도, 읽을 수 없는 논문도 있었고, 무엇보다 방법론과 프롬프트, 사용한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짧다. arXiv 판본은 7쪽, 그림 1장이다. 그런데 이 짧은 글에는 아주 오래된 계약 하나가 등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과학자·대학·정부·산업 사이에 맺어진, 이름은 없지만 모두가 그 안에서 살아온 그 계약이다.

400편의 논문, 그리고 공개되지 않은 10,000번의 실패

기예른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어떤 연구소가 '우리가 큰 문제 10개를 풀었다'고 발표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배운 것인가. 그 10개를 풀기 전에 10,000개를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다면, 성공 10건은 지식이 아니라 광고에 가깝다. 그는 이런 발표가 방법론도, 데이터도, 프롬프트도 공개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에세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내부 모델의 결과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과학자들에게 비밀유지계약(NDA)을 서명하게 하고,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놓고 그 권고는 무시하며, 슈퍼 PAC과 로비에 수천만 달러를 쓴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논문이 인용한 2026년의 보도들과 함께 제시된다. 기예른은 이를 '추출(extraction)'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한다. 데이터를, 부를, 그리고 정치적 권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사업 모델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수학자의 감정이 아니라 수학자의 계약이다

에세이의 진짜 표적은 AI 기업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몇 년간의 논쟁이 '수학자가 어떤 기분인가'에 지나치게 집중되었다고 본다. 두려움, 소외감, 정체성의 위기 같은 주제들이다. 물론 그 감정은 실재한다. 그러나 기예른은 그 감정이 물질적인 것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논문 편수 할당, 인용 지수, 상의 권위, 오래된 유명 미해결 문제에 대한 과도한 배분. 이것들은 감정이 아니라 인센티브 구조다.

그는 현재의 체제를 '수학 1.0'이라고 부른다. 논문과 정리의 할당량에 대한 집착, 천재 숭배, 상의 과대평가, 그리고 '유명한 난제'에 대한 편향. 이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산업·정부 사이에 맺어진 더 큰 협약의 일부이며, 그 협약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진단이다. 수학자들이 마주한 것은 AI 기업 하나가 아니라, 그 협약의 붕괴라는 것이다.

부시가 설계한 계약, 그 계약에 새겨진 양도 조항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다. 국립과학재단(NSF)의 탄생에 관여하고, 정부·대학 연구소·산업 사이의 분업 구도를 설계한 사람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뉴딜에는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1945년 무렵 상원의원 킬고어(Kilgore)는 연방 자금으로 나온 특허를 정부가 완전히 소유하자는 법안을 냈고, 부시는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부시가 이겼다. 오늘날 연방 지원으로 만들어진 특허에 대해서도 부분적 공공 소유 조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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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바 부시, 1938년 — Harris & Ewing,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기예른은 부시의 구상이 나름대로 오랫동안 작동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 구상에는 처음부터 양도 조항이 새겨져 있었다. 구글의 페이지랭크는 NSF가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지원한 연구에서 나왔다. 강화학습과 이미지 처리의 기초 연구도 민간 자본이 외면하던 시절 NSF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문제는 그 아이디어가 사업과 벤처 자본의 세계로 넘어간 뒤, 수학자와 과학자가 그 구현 방식에 대한 발언권을 잃고 직접적 이익도 거의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은 씨앗을 공공의 돈으로 키워 사유지에 심은 셈이다.

반직관적 결론: 수학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자원 보유자다

여기가 이 에세이에서 가장 흥미로운 반전이다. 시각예술이나 출판처럼 이미 타격을 입은 직업군과 달리, 수학자와 과학자에게는 다른 창작 직업에 없는 무기가 하나 있다. LLM은 우리의 도구, 우리의 이론, 우리의 방법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기술이 왜 지금 이런 모습인지, 이것이 필연이 아니라 특정 기업이 선택한 한 가지 구현일 뿐임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수학자다.

기예른은 이 능력을 '자원'이라고 부른다. LLM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통제할 잠재력, 그리고 이 기술이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명료하게 설명할 능력.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수학자들은 이 자원을 사실상 거저 넘겨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계약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아무것도 아닌 값에 팔아넘긴'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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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관련된 직업들', WPA 포스터, 1938년경 — Blanche L. Anish,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경쟁 가설: 적응하라, 개방하라, 소유하라

이 진단에 반대하는 논리는 몇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기술 변화는 늘 있었고 전문화와 재훈련으로 적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기예른의 반박은 이 변화가 다른 종류라는 쪽이다. 그는 AI 기업이 자기 사용자와 경쟁하는 구도를 제안하고 있다고 본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우리 제품을 쓰라'는 것이다. 적응이 아니라 종속이라는 지적이다.

둘째, 오픈소스 모델과 공공 컴퓨팅으로 충분하다는 가설이다. 이에 대해 에세이는 대안적 비전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 비판은 넘치는데 대안은 비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집단적 소유와 규제의 길이다. 그는 연방 지원 연구에 의존한 기업의 부분적 공공 소유, 대형 기술기업에 대한 특별세, 정부의 라이선스료 부과, 또는 킬고어 법안 수준의 개혁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놓자고 제안한다. 원자력 초기 규제처럼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다만 어느 쪽도 정답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이 글은 실증 연구가 아니다. 데이터도, 통제 실험도, 회귀분석도 없다. 저자 자신이 '현실적이면서도 완결된 새로운 사회 계약을 나는 알지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다'고 쓴다. 에세이의 힘은 진단과 문제 제기에 있고, 처방의 구체성에는 분명한 공백이 남는다. 인용된 2026년의 사건들 또한 독자가 원문을 확인해야 하는 주장의 형태로 제시된다.

흥미로운 각주도 있다. 그는 이 에세이를 쓰면서 LLM을 교정과 브레인스토밍에 사용했다고 밝힌다. 본문은 직접 타이핑했고, LLM이 만든 교정 보고서를 손으로 실행했다는 것이다. AI를 비판하는 글을 AI로 다듬은 셈인데, 그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이 솔직함이 오히려 글의 논지를 흔들지 않는 이유는, 그가 비판하는 것이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소유와 통제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기예른이 마지막에 권하는 행동은 거창하지 않다. 신뢰하는 동료 서너 명과 이메일 스레드나 단체 대화방을 열고, 블로그를 쓰고, 수학 밖의 친구에게 AI가 자기 일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물어보라는 것이다. 전체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하려다 얼어붙지 말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 하나를 하라는 것. 그는 조직되지 않은 거대한 수학자 집단이 핵 생성(nucleation)을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독자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공적 자금으로 길러진 기술이 수조 원의 사적 가치가 되었고, 그 기술이 다시 공공의 연구 조건을 규정하기 시작했다면, 우리가 요구할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논문 편수와 인용 지수를 넘어, 연구의 결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묻는 계약을 우리는 설계할 수 있는가.

참고 자료

Nestor Guillen, 'It is time for a New Deal for mathematics', arXiv:2611.04213v1 [math.HO], 2026년 11월 3일, 7쪽 1그림. https://arxiv.org/abs/2611.04213v1

원문 에세이는 2026년 11월 2일 https://birdsnfrogs.github.io/2026/11/02/A_New_Deal_For_Mathematics.html 에 먼저 게재되었다. 테렌스 타오의 'Math 2.0' 글(https://terrytao.wordpress.com/2026/10/10/math-2-0/)도 에세이의 출발점으로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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