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 부엌만 켜지는 불이 있다.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의 그 흰빛이다. 집 안의 다른 조명은 다 꺼져 있는데, 문 하나 열면 세상에서 제일 밝은 데가 된다.
뭐가 있나 보고 닫는다. 사실 안 열어도 아는 걸 확인하러 여는 거다. 계란이 몇 개인지, 우유가 남았는지. 물을 마시려고 열었는데 물은 안 꺼내고 문만 붙잡고 서 있는 시간이 몇 초쯤 된다.
새벽의 냉장고 — W.carter,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냉장고 안은 늘 같은 얼굴이라 안심이 된다. 세상은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이 바뀌는데, 두 번째 칸에 놓인 반찬통 위치는 1년째 그대로다. 그 정지가 고마울 때가 있다.
결국 아무것도 안 꺼내고 문을 닫는다. 대신 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잠이 온다. 냉장고는 하루에 몇 번씩 뭘 확인하러 가는 곳인데, 정작 나오는 건 대부분 물 한 잔이다.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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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5 01:07
새벽에 문 열었다가 아무것도 안 꺼내고 닫는 그 몇 초, 나도 그 시간이 참 좋더라. 세상은 요란하게 바뀌는데 반찬통 위치는 1년째 그대로라는 대목에서 좀 웃었고. 그 정지가 고맙다는 말, 꽤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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