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에 금속 구슬 사슬을 담습니다. 한쪽 끝을 잡아 컵 밖으로 끌어내리고, 바닥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사슬이 스스로 컵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중력이 당기니까요. 그런데 다음 장면이 이상합니다. 사슬이 컵 위로 솟아오릅니다. 그것도 컵 테두리에 닿지 않고, 공중에 뜬 채로 둥근 아치를 그립니다.
떨어지는 힘만 있다면 사슬은 테두리를 타고 흘러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위로 튀어 오릅니다. 무언가가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현상은 '뉴턴의 구슬(Newton's beads)' 또는 '체인 분수(chain fountain)'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2013년까지 물리학의 열린 문제였습니다.
먼저, 무엇이 보이는가
현상을 정확히 서술하면 이렇습니다.
1) 사슬의 끝을 컵 밖으로 끌어내려 놓으면, 사슬이 스스로 흘러나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사이펀이 빨아들이는 것처럼요.
2) 사슬은 컵 테두리를 넘어서는 높이까지 솟습니다. 작은 구슬 사슬에서는 테두리와의 사이에 뚜렷한 틈이 생깁니다.
3) 컵을 높이 올릴수록 사슬이 더 높이 솟습니다.
세 번째가 결정적입니다. 실험에 따르면 컵을 지면에서 30미터 높이에 두고 사슬을 충분히 길게 하면, 사슬 아치는 컵 위 약 2.1미터까지 올라갑니다.
즉 떨어지는 거리가 길수록 더 높이 솟습니다. 이 관계가 나중에 이론의 검증 도구가 됩니다.
왜 어려운가: 당기는 힘만으로는 안 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떨어지는 부분이 위쪽 사슬을 당기니까, 그 힘으로 사슬이 튀어 오른다.'
그런데 이 설명은 스스로 모순입니다. 사슬을 당기는 힘은 아래 방향입니다. 아래로 당기면 사슬은 테두리에 붙어 흘러내릴 뿐, 위로 솟지 않습니다.
공중에 뜬 아치를 만들려면 위쪽으로 향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테두리에서 밀어 올리는 힘이 아니라, 사슬이 컵 안쪽에서 이미 위로 밀려 올라오는 힘입니다.
즉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컵 안의 정지해 있는 사슬 더미가, 움직이는 사슬을 위로 밀어 올리는가?'
진짜 답: 사슬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
2014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존 비긴스와 마크 워너가 이 문제를 풀어 왕립학회 논문집에 발표했습니다. 논문 제목은 'Understanding the Chain Fountain'입니다.
핵심 논리는 이렇습니다. 사슬은 구슬이 서로 연결된 구조입니다. 더미에서 사슬 한 구슬을 들어 올리려면, 그 구슬은 회전해야 합니다. 연결된 이웃 구슬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슬의 연결부는 완전히 유연하지 않습니다. 구슬 사슬은 각 연결부에 굽힘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슬을 세우려면 '구부러짐을 강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작용-반작용이 발생합니다. 사슬을 구부리려는 힘이 사슬 더미를 아래로 누르고, 그 반작용으로 더미가 사슬을 위로 밀어 올립니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정지해 있는 사슬 더미로부터 오는 변칙적 반작용력(anomalous reaction force)'입니다. 그리고 이 힘의 크기는 사슬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예측했습니다.
예측과 검증: h₂ ∝ h₁
여기서 이론이 숫자로 시험됩니다. 컵 높이를 h₁, 사슬이 솟는 높이를 h₂라고 하면, 이론은 h₂가 h₁에 비례한다고 예측합니다.
왜 그럴까요. 컵이 높을수록 떨어지는 사슬이 더 빠릅니다. 속도가 커지면 구부러짐을 만드는 힘도 커지고, 그 반작용으로 위로 미는 힘도 커집니다.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면, 높이에 비례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비긴스와 워너는 실험으로 이 비례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즉 '현상을 설명했다'에서 끝나지 않고 '숫자를 맞혔다'입니다. 이것이 이 논문이 주목받은 이유입니다.
사슬 분수. 사슬이 컵 테두리에 닿지 않고 공중에서 아치를 그립니다. 떨어지는 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입니다. (CC BY 4.0)
보조 요인: 구슬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튄다
논문은 또 다른 요인도 언급합니다. 사슬 구슬은 컵 안에서 정지해 있는 다른 사슬들 위를 옆으로 끌리며 지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움직이는 구슬이 정지한 연결부에 부딪히며 위로 튀어 오를 수 있습니다. 이 효과도 사슬의 움직임에 기여합니다.
다만 저자들은 이것이 주된 원인은 아니라고 명시합니다. 즉 여러 효과가 겹쳐 있고, 그중 하나가 주역입니다.
반전: 이 문제는 '2013년에 유행한 장난'이 아니다
여기서 시간선이 재밌습니다. 이 현상은 오래 알려져 있었습니다.
2009년 과학 진행자 스티브 스팽글러가 TV에서 구슬 사슬과 점탄성 액체로 이 현상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2012년 국제청소년물리토너먼트(IYPT)에서는 '구슬 사슬(string of beads)' 문제가 공식 출제 과제로 나왔습니다. 즉 고등학생들이 풀어야 할 열린 문제였습니다.
대중적 확산은 2013년 스티브 마울드의 유튜브 영상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현상을 보여주고 자기 설명을 제시했고, 이것이 BBC 방송에 나가면서 케임브리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즉 '유튜버의 장난 → 학술 논문'으로 이어진 경로입니다. 그래서 이 현상은 '마울드 효과(Mould effect)'라고도 불립니다.
반전 2: 우주에서도 시험했다
더 최근의 일도 있습니다. 2025년, NASA 우주비행사 도널드 페티트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무중력 환경에서 구슬 사슬 실험을 했습니다. 목적은 마울드의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중력에서 실험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중력이 항상 개입합니다. 사슬을 당기는 힘, 더미를 누르는 힘, 낙하 속도가 모두 중력과 얽혀 있습니다. 무중력에서는 중력을 뺀 나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즉 책상 위 장난감 하나가 우주정거장까지 갔습니다. 이건 이 현상이 '재밌는 트릭'이 아니라 실제로 정리되지 않은 물리라는 뜻입니다.
반전 3: 물이 아니라 '점탄성 액체'에서도 나타난다
현상의 범위도 넓습니다. 같은 자기 사이펀 효과가 점탄성 유체(viscoelastic fluid)에서도 관찰됩니다. 대표적으로 폴리에틸렌글리콜처럼 긴 고분자로 이루어진 액체입니다.
즉 '구슬 사슬'이라는 특정 물체의 성질이 아니라, '긴 연결 구조가 스스로 흘러나오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고분자 사슬이 얽힌 액체가 컵 밖으로 스스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확장이 중요한 이유는, 현상의 원리를 '금속 구슬의 강성'에만 묶어둘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액체 쪽은 메커니즘이 완전히 같지는 않고, 별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균형: 완전히 끝난 문제인가
여기서 조심해야 합니다. 비긴스-워너의 설명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모델이지만, '반작용력의 정확한 기원'에는 논쟁이 남아 있습니다.
논문 자체가 '이 힘의 가능한 기원을 제안한다'고 표현합니다. 즉 현상은 재현되고, 비례 관계도 확인됐지만, 미시적 메커니즘은 모델입니다.
그래서 2025년 ISS 실험이 의미가 있습니다. 중력을 뺀 조건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가 모델을 시험합니다. 만약 무중력에서 아치가 사라진다면, 설명의 일부를 수정해야 합니다.
비긴스·워너의 논문 「Understanding the Chain Fountain」 첫 페이지. 2014년 왕립학회 논문집 게재. (출처: arXiv:1310.4056, 인용 목적 발췌)
왜 이 이야기가 재밌는가
1) 준비물이 유리컵과 사슬뿐이다. 거대장비도, 슈퍼컴퓨터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2013년까지 답이 없었습니다. 물리에서 '쉬운 실험 =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2) 직관이 정확히 반대로 작동한다. 우리는 '떨어지니까 당겨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기는 힘으로는 위로 솟는 현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아래에서 위로 미는 힘입니다.
3) 답이 '구부러짐'에 있다. 사슬이 휘어야 하기 때문에 더미를 누르고, 그 반작용으로 떠오릅니다. 즉 '제약 조건이 힘을 만든다'는, 물리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직관적이지 않은 구조입니다.
4) 장난이 논문이 된다. 유튜버의 영상 → 물리 토너먼트 문제 → 왕립학회 논문 → 우주정거장 실험. 호기심의 경로가 이렇게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사슬을 떨어뜨리면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 사슬이 컵 위로 솟는 것은, 떨어지는 무게가 위쪽을 당겨서가 아닙니다. 컵 안의 사슬 더미가 아래에서 밀어 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힘의 정체는 '사슬이 구부러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너무 뻔해서 아무도 설명하지 않은' 현상을 하나 떠올려 보실 수 있나요? 이 사슬처럼 준비물은 간단한데 답이 없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댓글로 남겨주세요.
참고 자료
- Biggins, J. S. & Warner, M. (2014), "Understanding the Chain Fountain",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A 470(2163), arXiv:1310.4056
- 핵심 주장 — 사슬 구슬이 움직이려면 굽힘 제한 때문에 회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지한 더미로부터 변칙적 반작용력이 발생. 크기는 사슬 속도의 제곱에 비례
- 예측과 실험 — 컵 높이 h₁에 대해 사슬 아치 높이 h₂가 비례
- 실측 — 컵을 지면 30미터에 두면 아치가 컵 위 약 2.1미터까지 상승
- 2012 IYPT 'string of beads' 공식 문제, 2013 스티브 마울드 영상, 2025 도널드 페티트의 ISS 무중력 실험
- 점탄성 유체(폴리에틸렌글리콜 등)에서도 유사한 자기 사이펀 현상 관찰
- 본 글은 공개된 논문과 실험을 정리한 것이며, 반작용력의 미시적 기원에는 여전히 논의가 있습니다.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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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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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0 22:36
ㄹㅇㅋㅋ
그냥 장난감 수준인 줄 알았는데 NASA까지 등판하는 거 보고 소름 돋았음
진짜 기본이 제일 무서운 것 같네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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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0 22:49
ㄹㅇㅋㅋ 유튜버 영상 하나가
결국 우주까지 가는 루트 타는 거 진짜 킹받게 신기함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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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1:53
ㄹㅇㅋㅋ 그냥 심심풀이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결국 우주까지 진출하는 거 보면 진짜 광기인듯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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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3:34
ㄹㅇㅋㅋ
그냥 컵이랑 사슬만 있으면 되는데
학계가 10년 넘게 머리 싸맨 게 진짜 웃음벨임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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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1:52
당기는 힘이 아니라 밀어 올리는 힘이었다니 진짜 반전이네요ㅋㅋ
직관이랑 정반대라는 게 소름 돋음ㄷㄷ
물리는 진짜 파면 팔수록 이상한 구석이 많은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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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3:40
마지막에 점탄성 액체 이야기 나오는 게 진짜 소름이네요ㅋㅋ 단순한 사슬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물리 법칙의 일부였다는 게 진짜 신기함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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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0.31 04:07
ㄹㅇㅋㅋ
사슬에서 액체로 확장되는 거 보고 진짜 소름 돋음ㄷㄷ
결국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게 진짜 물리의 무서운 점인 듯함
모든 이야기1502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와 이게 우주정거장까지 갔다고요ㅋㅋ
진짜 뜬금없는 곳에서 논문 나오는 거 보면 물리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음
단순한 게 제일 어렵다는 말이 딱 맞는 듯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