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LK-99 소동이 지나간 뒤, 상온 초전도체 이야기는 한동안 조용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는 그사이에도 꽤 굵직한 소식들이 나왔습니다.
2025년 가을, 중국 연구진이 '인류 최초의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었다는 논문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미국 연구진은 30년 넘게 깨지지 않던 '보통 압력에서의 초전도 온도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소식을 중심으로, 상온 초전도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LK-99 이야기는 앞선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1. 먼저, 다시 짚어 보는 '초전도체 확인법'
초전도체는 아주 차갑게 식히면 전기 저항이 완전히 0이 되는 물질입니다. 전기가 조금도 새지 않고 흐릅니다. 그리고 자석의 힘을 밀어내서, 자석 위에 놓으면 둥실 떠서 고정됩니다.
어떤 물질이 진짜 초전도체인지 확인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를 봐야 합니다. 저항이 정말 0이 되는지, 그리고 자석을 밀어내는 성질(마이스너 효과)이 나타나는지입니다. 여기에 더해 다른 연구팀이 똑같이 만들어서 같은 결과를 얻어야 비로소 믿을 수 있습니다. LK-99는 이 관문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기준을 기억하면서 최근 소식들을 보겠습니다.
2. 첫 번째 길: 수소를 꾹 누르기
지금까지 가장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가 나타난 물질들은 대부분 '수소'를 듬뿍 품은 물질입니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라서 원자들이 아주 빠르게 떨립니다. 이 빠른 떨림이 전자들을 짝지어 저항 없이 흐르게 돕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수소를 금속처럼 행동하게 만들려면 엄청난 압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위해 '다이아몬드 앤빌 셀'이라는 장치를 씁니다. 뾰족하게 깎은 다이아몬드 두 개의 끝을 마주 대고 그 사이에 시료를 넣어 꾹 누르는 장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라야 그 압력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기록이 계속 올라갔습니다. 2015년에는 황과 수소로 된 물질이 영하 70도쯤(203K)에서, 2019년에는 란타넘과 수소로 된 물질이 영하 20도 안팎(250~260K)에서 초전도가 됐습니다. 다만 둘 다 지구 대기압의 150만~170만 배쯤 되는 압력에서였습니다.
다이아몬드 앤빌 셀의 구조. 위아래 다이아몬드(Diamond Anvil) 끝 사이의 작은 틈에 시료를 넣고 누른다. (Diamond anvil cell schematic.jpg, Flores-Livas 외, CC BY 4.0, 왼쪽 부분만 잘라 씀)
3. 2025년, 드디어 '실온'을 넘었다는 주장
2025년 9월, 중국 지린대 마옌밍 교수 연구팀이 란타넘, 스칸듐, 수소로 된 물질 'LaSc2H24'에서 최고 298K, 즉 섭씨 25도 정도에서 초전도가 시작됐다는 결과를 논문 공개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말 그대로 실온입니다.
이 연구에는 LK-99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이 물질은 같은 연구팀이 2024년에 컴퓨터 계산으로 '이런 구조라면 상온 초전도가 가능하다'고 미리 예측해 학술지에 발표한 물질입니다. 예측을 먼저 하고, 실제로 만들어서 확인한 것입니다. 또 연구팀은 저항이 0이 되는 것, 그리고 자석의 힘을 가하면 초전도 온도가 내려가는 것(진짜 초전도체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여러 개의 시료에서 반복해서 측정했다고 밝혔습니다. 2026년 학회 발표에서는 13번의 실험에서 결과가 반복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만드는 과정은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처음 6개월은 아무 성과가 없었고, 시료를 넣는 공간이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10~15마이크로미터였으며, 실험 도중 깨뜨린 다이아몬드만 최소 70쌍이었다고 합니다.
4. 하지만, 아직 남은 숙제
이 결과가 곧바로 '상온 초전도체 완성'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단서는 압력입니다. 이 물질은 대기압의 250만~260만 배, 지구 중심과 비슷한 압력에서만 초전도가 나타났습니다. 압력을 조금만 낮춰도 구조가 무너져 초전도가 사라집니다.
검증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부 전문가는 '저항 0과 자기장에 의한 온도 저하를 보여 줘 초전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하면서도, 구조 분석 자료가 더 보강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팀 스스로도 자석을 밀어내는 마이스너 효과를 직접 측정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꼽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시료를 엄청난 압력 속에서 측정하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공개된 바로는, 다른 연구팀이 이 결과를 독립적으로 재현했다는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5. 두 번째 길: 눌렀다가 확 놓기
다른 쪽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의 도전이 있었습니다. '압력 없이, 보통 공기 속에서' 초전도 온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보통 압력에서 가장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는 수은, 바륨, 칼슘, 구리, 산소로 된 'Hg1223'이라는 물질입니다. 1993년에 세운 133K(영하 140도)라는 기록이 30년 넘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휴스턴대 폴 추(朱經武) 교수와 덩량쯔 교수 연구팀은 여기에 재미있는 방법을 썼습니다. 시료를 다이아몬드 앤빌 셀에 넣어 대기압의 약 30만 배까지 누른 다음, 압력을 아주 빠르게 확 풀어 버린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를 '압력 담금질'이라고 부릅니다. 대장장이가 뜨겁게 달군 쇠를 찬물에 확 담가 단단하게 만드는 담금질과 비슷한 발상입니다.
천천히 압력을 풀면 원자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만, 확 풀면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눌렸을 때의 모습에 가깝게 '얼어붙습니다'.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의 X선 분석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생긴 수많은 작은 결함이 초전도 상태를 붙잡아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압력을 다 뺀 보통 상태에서도 최고 151K(영하 122도)에서 초전도가 나타났습니다. 30여 년 만에 기록이 18도 올라간 것으로,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습니다.
6. 왜 '압력 없이'가 그렇게 중요할까
151K는 298K에 비하면 한참 차갑습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이 이 결과를 반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초고압이 필요한 물질은 다이아몬드 사이 머리카락보다 작은 공간에서만 존재합니다. 전선을 만들 수도, 기계에 넣을 수도 없습니다. 압력을 빼면 대부분 몇 초 만에 분해됩니다. 반면 압력 담금질로 만든 Hg1223은 압력을 뺀 상태에서도 초전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일반 실험실 장비로 자세히 연구하고 실제 기술로 발전시킬 길이 열립니다. 아르곤 연구소의 공동 저자는 이를 '상온·상압에서 작동하는 실용 초전도체를 향한 큰 걸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주요 초전도 온도 기록. 보통 압력(주황)과 초고압(파랑) 사이에는 아직 큰 간격이 있다. (논문·보도 수치로 직접 작성)
7. 두 길이 만나는 곳
그림으로 보면 상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초고압 쪽은 이미 실온에 닿았다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지구 중심 같은 압력이 필요합니다. 보통 압력 쪽은 30년 만에 기록이 움직였지만, 아직 실온보다 140도 넘게 차갑습니다.
과학자들의 목표는 이 두 길을 하나로 잇는 것입니다. 수소 물질 쪽에서는 세 가지 이상의 원소를 섞어 더 낮은 압력에서도 버티는 구조를 찾고 있고, 컴퓨터 계산으로 후보 물질을 먼저 골라내는 방식이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LaSc2H24도 그렇게 찾아낸 물질입니다. 다른 쪽에서는 압력 담금질처럼 '높은 압력에서만 나타나는 좋은 성질을 압력 없이도 붙잡아 두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8. 이 이야기가 보여 주는 것
LK-99와 최근 연구들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보입니다. 화려한 영상 하나보다, 여러 번 반복한 측정과 미리 세운 예측, 그리고 스스로 밝힌 한계가 더 믿음을 줍니다. LaSc2H24 연구팀이 '아직 마이스너 효과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고 먼저 말한 것처럼요. 그래도 이 결과 역시 다른 연구팀의 재현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상온 초전도체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얼마나 세게 누르면 되는지'와 '어떻게 누르지 않고 버티게 할지'라는, 훨씬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꿈이 구체적인 질문이 되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지난 몇 년의 가장 큰 진전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두 길 중 어느 쪽이 먼저 '방 안에서 쓰는 초전도체'에 닿을 거라고 보시나요?
참고 자료
- Song 외, Room-Temperature Superconductivity at 298 K in Ternary La-Sc-H System at High-pressure Conditions, arXiv 2510.01273 (2025)
- Physics World, Ternary hydride shows signs of room-temperature superconductivity at high pressures (2025.11)
- Argonne National Laboratory, Superconducting temperature record set at ordinary pressures (2026.6)
- APS Physics, Room-Pressure Superconductor Breaks Temperature Record (2026.3)
이미지 출처
- Diamond anvil cell schematic.jpg — José A. Flores-Livas 외, Wikimedia Commons, CC BY 4.0 (일부 잘라 씀)
- 초전도 온도 기록 비교 그림 — 논문·보도 수치로 직접 작성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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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16:53
저도 2023년 그 LK-99 영상들 보면서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나요. 이번 글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깨뜨린 다이아몬드가 최소 70쌍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화려한 결과 뒤에 그런 소모전이 있었다는 게 오히려 더 신뢰가 가더라고요. 다만 압력 담금질 쪽은 결함이 초전도 상태를 붙잡아 준다니, 온도는 낮아도 응용 가능성이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
빗방울
2026.11.02 16:53
맞아요. 결국 실용화의 핵심은 '상온' 그 자체보다 '상압'에서 얼마나 버티느냐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섭씨 25도에서 작동해도 지구 중심급 압력이 필요하다면, 그건 사실상 실험실 안의 예술 작품에 가깝잖아요.
반면 압력 담금질 방식은 비록 온도는 낮을지언정, 우리가 실제로 다룰 수 있는 '물질'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훨씬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30년 만에 18도를 올린 그 작은 차이가, 어쩌면 상온·상압이라는 최종 목적지로 가는 가장 확실한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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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17:11
압력 담금질은 처음 봤습니다. 결함을 일부러 남겨서 그걸 붙잡이로 쓰는 발상이 신기하네요. 결국 관건은 같은 결함 배치를 다른 팀이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느냐 같은데, 재현 발표는 아직 없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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