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COMMUNITY모든 이야기

1911년 8월 22일 화요일 아침,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화가 루이 베루가 그림을 그리러 왔습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유명한 그림 앞에 이젤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벽에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쇠못 네 개만 덩그러니 박혀 있었습니다.

사라진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였습니다.

지금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입니다. 해마다 1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 그림을 보러 루브르에 가고,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30초 남짓 바라보고 돌아섭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명성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도난 사건에서 시작됐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m_as.jpg

도난 직후 루브르의 모나리자 자리. 그림을 걸어 두던 쇠못 네 개만 남아 있다. (Mona Lisa stolen-1911.jpg, Public domain)

1. 도난 전의 모나리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명작이었다

모나리자는 1500년대 초에 그려졌습니다. 다빈치가 프랑스로 건너갈 때 직접 가져갔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프랑스 왕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 뒤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나라의 재산이 되었고, 1797년부터 루브르에 걸렸습니다.

물론 도난 전에도 귀한 그림이었습니다. 1800년대 여행 안내서는 이 그림을 루브르에 있는 다빈치 작품 가운데 가장 이름난 것으로 소개했고, 1910년 미국의 한 잡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명성은 주로 미술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모나리자는 루브르에 걸린 수많은 명작 가운데 하나에 가까웠습니다.

2. 범인은 흰 작업복을 입고 걸어 들어왔다

도난이 일어난 건 하루 전인 8월 21일 월요일이었습니다. 이날은 루브르가 문을 닫는 날이라 관람객이 없었습니다.

범인은 빈첸초 페루자라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루브르에서 그림 액자를 손보고 유리 보호 상자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모나리자의 보호 상자를 만드는 데도 참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이 상자를 어떻게 여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날 아침 7시쯤, 페루자는 다른 직원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박물관 직원들이 입는 흰 작업복을 입고 있어서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모나리자가 걸린 방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그는 그림을 쇠못에서 떼어 냈습니다. 그리고 근처 계단으로 가져가 유리 상자와 액자를 떼어 버리고 그림만 챙겼습니다.

흔히 '작업복 속에 그림을 숨겨 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페루자는 키가 160cm 정도였고, 그림은 가로 53cm, 세로 77cm쯤 되는 나무판입니다. 옷 속에 숨기기엔 너무 컸습니다. 그는 직원용 문으로 나가려 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배관공이 그를 직원으로 생각하고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세계적인 명작은 그렇게 박물관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3. '노트르담 탑을 훔치는 게 더 쉽겠다'던 박물관

당시 루브르는 경비가 허술했습니다. 휴가 중이던 박물관장은 예전에 '모나리자를 훔친다고? 노트르담 성당 탑을 훔쳐 간다는 말과 같다'며 큰소리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하루아침에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도난 사실이 알려지자 루브르는 일주일 동안 문을 닫았고, 경찰 60여 명이 박물관을 뒤졌습니다. 수사 책임자는 '쉬는 날이라 누가 드나들었는지 다 아니 2~3일이면 끝난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2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엉뚱한 사람들도 붙잡혔습니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용의자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그의 친구였던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나중에 혐의를 벗었습니다. 그 젊은 피카소가 바로 나중의 그 피카소입니다.

4. 경찰은 그림 바로 위에서 보고서를 썼다

사실 경찰은 페루자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루브르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조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사는 그의 설명을 그대로 믿고 돌아갔습니다. 더 기막힌 건, 형사가 보고서를 쓰며 기대고 있던 탁자 아래 빈 공간에 모나리자가 숨겨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단서도 있었습니다. 페루자는 버리고 간 유리판에 엄지 지문을 남겼고, 그는 예전에 다른 일로 체포된 적이 있어 경찰 기록에 지문과 사진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의 이름을 대조 명단에 넣는 것을 빠뜨렸습니다. 결정적인 증거가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셈입니다.

m_bs.jpg

빈첸초 페루자. 경찰 기록에 남아 있던 사진이다. (Vincenzo peruggia.jpg, Public domain)

5. 사람들은 '빈 벽'을 보러 몰려들었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루브르가 다시 문을 열자, 사람들이 모나리자가 걸려 있던 빈자리를 보려고 몰려든 것입니다. 그림이 아니라 그림이 없는 벽을 보려고 줄을 섰습니다.

신문들은 이 사건을 매일같이 다뤘습니다. 기사가 잘 팔리니 신문사들은 제보에 현상금까지 걸었고, 2년 동안 수백 건의 엉터리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모나리자와 가상 인터뷰를 하는 기사가 실렸고, 이 사건을 놀리는 노래와 영화도 나왔습니다. 세계 곳곳의 신문에 모나리자의 얼굴이 실렸습니다. 미술관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 그 얼굴을 알게 된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6. 2년 만에 피렌체에서 나타나다

페루자는 그림을 2년 동안 파리의 자기 방 트렁크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러다 1913년, 그림을 들고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제리에게 '레오나르도'라는 가명으로 연락해 그림을 팔겠다고 했습니다.

제리는 피렌체의 유명한 우피치 미술관 관장 조반니 포지를 불러 그림을 확인했습니다. 진짜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림을 안전하게 맡아 둔 뒤 경찰에 알렸고, 페루자는 1913년 12월 묵고 있던 호텔에서 체포됐습니다.

되찾은 모나리자는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에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서 전시됐습니다. 피렌체에서는 그림을 보려는 사람이 수만 명이나 몰려 경찰이 밀려났다는 기사가 미국 신문에 실릴 정도였습니다.

m_cs.jpg

1913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되찾은 모나리자를 살펴보는 사람들. (Monalisa uffizi 1913.jpg, Public domain)

7. 애국심이었을까, 돈이었을까

페루자는 재판에서 '애국심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의 미술품을 빼앗아 갔다고 알고 있었고, 모나리자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해 고향 이탈리아로 돌려보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를 영웅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큰 구멍이 있습니다. 앞에서 봤듯 모나리자는 나폴레옹이 빼앗은 게 아니라, 다빈치가 직접 프랑스로 가져간 그림입니다.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250년쯤 전의 일입니다. 게다가 정말 애국심이었다면 그림을 이탈리아 미술관에 기증했을 텐데, 그는 팔려고 했습니다. 도난 넉 달 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곧 큰돈을 벌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법원은 애국심이라는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가벼운 벌을 내렸습니다. 1년 15일 형을 받았고, 항소한 끝에 실제로는 7개월만 복역했습니다. 한때 '천재 도둑'으로 상상됐던 그는, 정체가 드러나자 오히려 실망스러운 평범한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모나리자의 명성을 연구한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은 그를 전형적인 '실패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배후에 사기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나리자 가짜를 여러 점 만들어 두고 진짜가 사라진 틈에 비싸게 팔려 했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1932년 한 기자의 잡지 기사 하나에만 근거하고 있고, 다른 증거로 확인된 적은 없습니다.

8.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것

모나리자가 위대한 그림이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그림은 모나리자 말고도 많습니다. 그중에서 하필 모나리자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된 데에는, 그림 자체의 힘뿐 아니라 이 황당한 사건과 그것을 매일같이 퍼 나른 신문의 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림이 아니라 빈 벽을 보러 몰려들었다는 장면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무언가가 유명해지는 데에는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가만큼,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얼마나 많이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100년도 더 전의 이 사건은, 오늘날 화제와 관심이 만들어지는 방식과도 꽤 닮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도난 사건이 없었다면, 모나리자는 지금처럼 유명해졌을까요?

참고 자료

이미지 출처

  • Mona Lisa stolen-1911.jpg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Vincenzo peruggia.jpg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Monalisa uffizi 1913.jpg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모든 이야기1488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글쓰기
총 1488개의 이야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