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월 15일 낮 12시 30분, 미국 보스턴 노스엔드의 커머셜 스트리트. 며칠째 영하 17도 근처에 머물던 기온이 그날 갑자기 영상 5도까지 올라, 사람들은 외투 단추를 풀고 점심을 먹으러 나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이들, 고가철도 아래에서 쉬던 짐마차꾼, 소방서 2층에서 카드놀이를 하던 소방관들. 그 순간 항구 옆에 서 있던 거대한 강철 탱크에서 기관총 같은 소리가 연달아 울렸습니다. 리벳(철판을 잇는 굵은 못)이 하나씩 튕겨 나가는 소리였습니다.
몇 초 뒤 거리를 덮친 것은 물이 아니라 당밀이었습니다.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뽑고 남은 검고 진한 시럽, 흔히 '끈적함'의 대명사로 쓰이는 바로 그 액체입니다. 영어에는 'molasses처럼 느리다'는 관용구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 당밀은 사람이 뛰어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왔습니다.
사고 전의 당밀 탱크. 오른쪽 뒤편의 원통형 구조물이 높이 15m, 지름 27m의 저장 탱크이고, 왼쪽은 보스턴 고가철도다. (Public domain)
1. 숫자로 보는 그날: 1만 2천 톤짜리 파도
탱크에 들어 있던 당밀은 약 870만 리터(8,700㎥), 무게로는 약 1만 2천 톤이었습니다. 당밀은 물보다 40%가량 무겁습니다(1㎥당 약 1.4톤). 같은 높이에서 쏟아져도 물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탱크가 터지자 이 덩어리는 가장 높은 곳이 약 8m에 이르는 파도가 되어, 시속 약 56km로 거리를 쓸고 지나갔습니다.
파도는 탱크의 강철판을 옆 고가철도의 기둥에 처박았고, 지나가던 전차를 선로에서 잠시 들어 올렸으며, 건물을 기초째 밀어냈습니다. 트럭 한 대는 항구 바다로 날아갔습니다. 몇 블록이 60~90cm 깊이의 당밀에 잠겼고, 21명이 숨지고 약 150명이 다쳤습니다. 말과 개도 많이 죽었습니다.
사고 직후의 노스엔드.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바닥 전체가 당밀로 번들거린다. 왼쪽이 고가철도. (Public domain)
2. 첫 번째 반전: 끈적한 것이 왜 빨랐나
가장 이상한 대목은 속도입니다. 오랫동안 '시속 56km'라는 목격담은 과장으로 의심받았습니다. 액체가 흐르기 싫어하는 정도를 점성이라고 부르는데, 꿀이나 당밀처럼 점성이 큰 액체는 천천히 흐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하버드대 연구팀은 1919년 신문 기사, 옛 지도, 당일 기상 기록을 모으고, 차갑게 식힌 옥수수 시럽을 사고 현장 축소 모형에 흘려 보는 실험까지 했습니다. 결론은 목격담이 믿을 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쇠는 온도였습니다. 사고 이틀 전 배가 새 당밀을 싣고 왔는데, 파이프로 옮기기 쉽게 하려고 데워서 넣었습니다. 데운 당밀은 점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탱크가 터진 순간 쏟아진 것은 '묽어진 당밀'이었고, 거기에 1만 2천 톤의 무게가 실렸으니 빠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당밀이 힘을 받을수록 묽어지는 성질(전단 담화, 케첩을 흔들면 잘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도 속도를 보탰다는 설명이 자주 덧붙습니다. 다만 하버드 연구가 중심에 둔 것은 이 성질보다 온도 변화 쪽이었다는 점은 구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3. 두 번째 반전: 빨랐던 것이 왜 사람을 놓아주지 않았나
같은 온도가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습니다. 넓게 퍼진 당밀은 보스턴의 한겨울 공기에 빠르게 식었고, 해가 기울면서 점성이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휩쓸어 갈 만큼 빨랐던 액체가 몇 분 뒤에는 젤리처럼 굳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붙잡은 것입니다. 당시 신문은 끈끈이에 붙은 파리처럼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말들을 묘사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대는 근처 부두에 정박한 훈련선 USS 낸터킷의 해양학교 생도 116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무릎까지 차는 당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생존자를 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수색은 나흘 만에 중단되었고, 일부 희생자는 항구로 쓸려 갔다가 서너 달 뒤에야 발견되었습니다. 많은 사망자의 사인은 당밀이나 잔해에 의한 압사와 질식이었습니다. 하버드 연구도 당밀이 빠르게 식어 굳은 것이 질식 전에 사람을 꺼내는 일을 방해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찢어진 탱크 철판이 고가철도 구조물에 걸려 있다. 파도의 힘이 강철 기둥을 휘게 했다. (Public domain)
4. 회사의 주장: 무정부주의자의 폭탄
당밀은 왜 이렇게 많이 쌓여 있었을까요. 당밀을 발효시키면 에탄올(술의 주성분이자 화약 제조에 쓰이는 원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탱크 주인은 퓨리티 증류회사였고, 1917년 이 회사를 사들인 모회사가 미국산업알코올(USIA)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이 알코올의 일부는 군수품 제조에 쓰였습니다.
회사는 바로 이 점을 근거로 무정부주의자들이 탱크를 폭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실제로 무정부주의자의 폭탄 테러가 잇따랐기 때문에, 이 주장은 완전히 터무니없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폭발물의 흔적보다 탱크 자체의 결함을 보여 주는 증거가 훨씬 많았다는 점입니다.
5. 법원이 찾은 진짜 원인: 갈색 페인트로 가린 균열
주민 119명이 USIA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매사추세츠주에서 가장 이른 집단소송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법원이 지정한 감사관 휴 W. 오그든은 3년에 걸친 청문 끝에 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드러난 사실은 이렇습니다. 탱크 건설을 감독한 사람은 회사 재무 담당자 아서 젤이었는데, 그는 건축이나 공학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완공 후 물을 채워 새는 곳을 확인하는 기본 시험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탱크를 채울 때마다 신음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경고도 무시했습니다.
당밀이 너무 많이 새자 회사는 새는 자국이 보이지 않도록 탱크를 갈색으로 칠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흘러나온 당밀을 받아 집에서 쓸 정도였습니다. 2014년 현대 공학으로 다시 분석한 연구는 탱크 강판이 당시의 느슨한 기준으로도 필요한 두께의 절반에 불과했고, 망간이 부족해 잘 깨지는 강철이었으며, 균열이 리벳 구멍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습니다. 1915년에 지어진 뒤 가득 채운 것은 여덟 번뿐이었는데, 채웠다 비웠다를 반복하는 힘이 탱크 아래쪽 맨홀 덮개 주변의 피로 균열(같은 곳에 힘이 반복될 때 조금씩 자라는 금)을 키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날의 날씨는 마지막 방아쇠였습니다. 하루 사이 기온이 20도 넘게 오르며 탱크 안 당밀이 팽창했고, 발효로 생긴 이산화탄소가 내부 압력을 더 높였을 수 있습니다. 회사는 결국 62만 8천 달러(2025년 가치로 약 1,170만 달러)를 배상했고, 사망자 유족은 1인당 약 7천 달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6. 왜 하필 그 겨울이었나: 금주법과의 경주
사고 바로 다음 날인 1919년 1월 16일,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18조가 비준되었습니다(시행은 1년 뒤). 여러 저술가는 회사가 금주법이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알코올을 만들어 두려고 무리하게 당밀을 채워 넣었다고 봅니다. 이 해석은 정황에 기댄 것이어서, 회사의 의도를 직접 보여 주는 문서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함께 적어 둡니다.
숫자 하나도 엇갈립니다. 현장의 기념 명판은 파도 높이를 40피트(약 12m)로 적고 있지만, 위키백과 등 여러 자료는 최고 약 25피트(8m)로 적습니다. 목격담에 기댄 재난 기록에서는 이런 차이가 흔하며, 정확한 최고 높이는 지금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7. 그 뒤: 냄새, 그리고 바뀐 규칙
청소에는 몇 주가 걸렸습니다. 소방선이 바닷물을 뿌려 당밀을 씻어 내고 모래를 뿌려 흡수시켰지만, 항구 바닷물은 그해 여름까지 갈색이었습니다. 구조대와 구경꾼이 묻혀 간 당밀은 지하철 승강장, 전차 좌석, 공중전화 수화기, 집 안까지 퍼졌습니다.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더운 여름날이면 그 일대에서 당밀 냄새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더 오래 남은 것은 제도입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건축 관련 법규가 바뀌어, 이런 구조물에는 면허를 가진 건축가와 토목기술자의 검토가 필요해졌습니다. '돈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아는 사람'이 서명해야 한다는 원칙이 피로 쓰인 셈입니다. 탱크 자리는 지금 랭곤 파크라는 공원이 되었고, 2019년 100주기 때 지표 투과 레이더로 확인해 보니 야구장 아래 약 51cm 깊이에 탱크의 콘크리트 기초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8.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것
당밀 홍수는 흔히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재난'으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황당한 것은 당밀이 아니었습니다. 경고음은 매번 들렸고, 새는 자국은 페인트로 덮였고, 전문가 대신 재무 담당자가 공사를 맡았습니다. 날씨는 이미 한계에 와 있던 구조물을 마지막으로 밀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사고가 나자 회사가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외부의 적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평범한 물질도 양과 온도와 구조가 맞아떨어지면 무기가 된다는 것, 그리고 큰 사고는 대개 한 번의 불운이 아니라 여러 번 무시된 작은 신호의 합이라는 것. 100년 전 보스턴의 끈적한 오후가 남긴 교훈은 지금의 공장, 다리, 건물에도 그대로 통합니다.
여러분 주변에도 '저거 저래도 괜찮나' 싶은데 다들 그냥 지나치는 구조물이 있나요? 혹은 당밀 홍수처럼 재료가 너무 의외라서 기억에 남는 사고를 알고 계신가요?
참고 자료
- Wikipedia, Great Molasses Flood
- Stephen Puleo, Dark Tide: The Great Boston Molasses Flood of 1919, Beacon Press, 2004
- Edwards Park, 'Without Warning, Molasses in January Surged Over Boston', Smithsonian, 1983
- Nicole Sharp 외, 하버드대 당밀 홍수 유체역학 연구, 2016
이미지 출처
- North End molasses tank.jpg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BostonMolassesDisaster.jpg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Boston 1919 molasses disaster - el train structure.jpg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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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16:01
당밀이 빨랐던 것보다 몇 분 만에 젤리처럼 굳어서 사람 못 빠져나오게 한 게 더 소름이다 ㄷㄷ 같은 온도가 앞뒤로 반대로 작동한 거잖아 ㅋㅋ 그날 날씨가 최고의 공범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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