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 미국의 한 물리학과 대학원생은 자기 지도교수가 회의실에서 돌아오는 표정을 먼저 읽었다. 논문이 배경으로 적어 둔 장면은 그런 종류의 사건들이다. 연구비 심사 패널은 예정된 날에 열리지 않았고, 어떤 곳에서는 취소되었고, 대학들은 채용과 연구 지출을 동결했다. 실험실의 장비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실험실을 다음 학기까지 굴러가게 해 주던 행정적 전제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이 변화는 논문 한 편의 서론이 아니라, 지금 미국 물리학과 건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Meagan Sundstrom, Ian Olivant, Eric Brewe가 2026년 10월 30일 arXiv에 올린 논문 “Existential dread”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예산이 줄었다는 뉴스는 많지만, 그 예산이 줄어들 때 실험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먼저 부서지는지는 잘 세어지지 않았다.
심사 패널이 열리지 않은 봄
논문이 정리하는 변화는 세 갈래다. 연구비(grant funding)가 삭감되었고, 연구비 심사 패널이 지연되거나 취소되었고, 일부 대학이 채용과 연구 지출을 동결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층위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험실에서는 하나의 사슬로 연결된다. 심사가 밀리면 결정이 밀리고, 결정이 밀리면 다음 학기의 학생 인건비와 장비 주문이 밀린다.
저자들이 이 사슬에서 주목한 것은 돈의 총액이 아니라 사람의 순서다. 논문은 물리 연구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과학기술의 진전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 과학자 훈련에 필수적이라고 못 박는다. 학부생,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은 지도교수와의 연구 경험을 통해 실험 설계, 데이터 분석, 과학적 의사소통, 협업 문제 해결 같은 기술을 익힌다. 즉 연구비는 논문을 만드는 비용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만드는 비용이다.
논문이 물은 것: 직급별로 무엇이 달라졌나
연구진은 이 변화를 학부생,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부교수(associate professors)에게 직접 물었다. 설문 응답을 직급별로 나눠 본 이유는 분명하다. 같은 삭감이라도 정년 트랙 교수에게는 논문 생산의 문제이고, 아직 자리가 없는 훈련 단계 연구자에게는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과의 방향은 한쪽으로 쏠린다. 논문은 학계 연구자 대다수가 자기 연구에 대한 영향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보고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들이 쓰는 표현이 논문 제목이기도 한 “실존적 공포(existential dread)”다. 연구 하나가 안 될까 봐 불안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훈련받고 있는 이 직업 자체가 유지될지에 대한 불안이다.
케냐 나이로비 케냐타대학교의 물리학 실험동. 연구비 삭감은 장비 목록이 아니라 이런 건물 안의 사람 순서를 바꾼다. — Timothy A. Gonsalves,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가장 많이 나온 세 가지 대답
논문이 꼽는 빈도 높은 응답은 세 가지다. 이미 확보한 연구비의 상실, 앞으로 연구비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그리고 고용 불안(job insecurity)이다. 세 항목은 시간 축이 다르다. 첫째는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 둘째는 미래에 일어날지 모르는 일, 셋째는 지금 자신의 신분에 대한 판단이다.
이 셋이 한 사람 안에서 겹칠 때 문제의 성질이 바뀐다. 연구비가 끊기면 실험이 중단되고, 실험이 중단되면 논문이 밀리고, 논문이 밀리면 다음 자리를 얻을 확률이 낮아진다. 즉 예산 삭감은 한 학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경력 경로 전체의 기울기를 바꾼다. 논문이 “연구 훈련 파이프라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전: 돈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다음 사람’
예산 삭감을 떠올리면 보통 이미 자리를 잡은 교수의 연구가 줄어드는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논문이 직급 간 차이를 논의하는 방식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삭감의 충격은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보다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더 크게,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이 지점이 반직관적이다. 연구비가 줄면 논문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예측 가능한 손실이다. 그러나 훈련 단계의 사람이 실험실을 떠나면 그 손실은 몇 년 뒤에야 통계로 나타나고, 나타날 때는 되돌릴 방법이 없다. 논문은 이 차이를 직급별 응답의 형태로 보여 주며, 그것이 물리학 연구 훈련 파이프라인에 갖는 함의를 논의한다.
경쟁 가설: 정말 예산 때문인가
가장 먼저 나올 반론은 인과의 문제다. 이 논문은 설문 연구이지, 예산 변화를 무작위로 배정한 실험이 아니다. 응답자가 느끼는 부정적 영향에는 예산과 무관한 요인, 예컨대 학계 전반의 고용 구조나 개인의 경력 단계에 따른 일반적 불안이 섞여 있을 수 있다. 같은 시기에 다른 분야도 같은 압력을 받았다는 점도 대조군 없이는 구분되지 않는다.
두 번째 반론은 자기 보고의 한계다. “영향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실제 연구 중단 건수나 이탈률 같은 객관적 지표와 같지 않다. 세 번째 반론은 표본의 문제다. 설문에 응답한 사람은 이미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수 있고, 응답하지 않은 사람의 침묵은 데이터에 남지 않는다. 논문은 이 지점들을 지우지 않고 직급별 차이와 함의를 논의하는 수준에서 결론을 세운다.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저자들이 밝히는 범위는 분명하다. 이 연구는 학계 물리 연구자, 그것도 설문에 응답한 학부생,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부교수를 대상으로 한다. 산업계로 나간 물리학 전공자나, 응답하지 않은 연구자, 그리고 미국 밖의 연구자는 이 표본에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결과를 “물리학 전체의 상태”로 확장하면 과잉 해석이 된다.
또 하나의 한계는 시점이다. 논문이 다루는 변화는 2025년 초에 시작된 것이고, 게시 시점은 2026년 10월이다. 예산의 변동은 몇 해에 걸쳐 나타나므로, 이 설문은 긴 적응 과정의 한 시점을 찍은 사진에 가깝다. 지금의 인식이 1년 뒤에도 같은 방향일지는 이 데이터만으로 알 수 없다.
2017년 4월 22일 워싱턴 DC의 ‘과학을 위한 행진’. 연구비와 과학 정책은 이렇게 거리로 나온다. — Bob Burch, CC0 (Wikimedia Commons)
독자에게: 실험실이 멈추는 방식
이 논문이 남기는 것은 숫자 하나가 아니라 순서다. 예산이 줄면 가장 먼저 멈추는 것은 장비 주문이고, 그다음이 심사 일정이고, 마지막이 사람의 진입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단계의 손실은 가장 늦게, 가장 조용히 기록된다. 논문이 “실존적 공포”라는 무거운 단어를 제목으로 쓴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상황으로 옮겨 보면 질문이 하나 더 생긴다. 연구비가 줄어드는 뉴스를 볼 때 우리는 보통 논문 수와 과제 선정률을 본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사라지는 대학원생 한 명, 박사후연구원 한 명은 어디에 기록되고 있을까. 여러분이 속한 실험실이나 회사에서, 예산이 줄 때 가장 먼저 조용해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참고 자료
Meagan Sundstrom, Ian Olivant, Eric Brewe, “Existential dread”: Student and faculty views on the impact of changes in federal science funding to physics research, arXiv:2610.41699v1 (2026-10-30), physics.ed-ph.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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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18:29
설문이 자기 보고라는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데도 제목을 "실존적 공포"로 붙인 게 은근 신기함. 보통 논문은 이런 표현 안 쓰잖아. 근데 현상 자체는 납득됨. 연구비 끊기면 논문은 몇 편 덜 나오는 걸로 끝나지만, 대학원생 한 명이 중간에 관두면 그 사람 경력은 그걸로 끝이니까. 예전에 지도교수가 과제 떨어지고 일주일 동안 말 없던 거 생각하면 순서가 딱 맞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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