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말, 인터넷에 짧은 영상 하나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자석 위에 놓인 회색 돌 조각이 한쪽 끝은 자석에 붙은 채, 다른 쪽 끝이 살짝 들려 있었습니다. 영상과 함께 퍼진 말은 이랬습니다. '한국 연구진이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만들었다.'
그 뒤 몇 주 동안 세계가 들썩였습니다. 과학자들은 밤새 실험을 했고, 사람들은 '떠 있는 돌' 밈을 만들었고, 주식시장에서는 관련 종목이 치솟았다가 떨어졌습니다. 그 돌의 이름이 LK-99입니다. 누구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일도 있었다'는 마음으로 그해 여름을 돌아보려 합니다.
연구진이 공개한 LK-99 시료. 유리관 밖으로 나온 회색 덩어리가 LK-99다. (LK-99-samplecomingoutoftube.png, 이석배 외, CC BY 4.0)
1. 초전도체가 뭐길래
전선에 전기를 흘리면 일부는 열로 새어 나갑니다. 휴대폰 충전기가 뜨거워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기가 지나갈 때 방해하는 힘, 즉 '저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물질은 아주 차갑게 식히면 이 저항이 완전히 0이 됩니다. 전기가 조금도 새지 않고 흐르는 것입니다. 이런 물질을 초전도체라고 합니다. 1911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가 수은을 영하 269도 가까이 식혔을 때 처음 발견했습니다.
초전도체에는 또 하나의 신기한 성질이 있습니다. 자석의 힘을 밀어내서, 자석 위에 놓으면 둥실 떠오릅니다. 그냥 뜨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딱 고정된 듯 떠 있습니다.
액체질소로 차갑게 식힌 진짜 초전도체가 자석 위에 완전히 떠 있는 모습. (Levitating HTS BSCCO piece (Meissner effect).jpg, CC BY-SA 3.0)
2. '상온 초전도체'는 과학자들의 오랜 꿈
문제는 온도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초전도체는 모두 아주 차갑게 식혀야 작동합니다. 보통의 공기 압력에서 가장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것도 영하 120도 정도입니다. 더 따뜻한 온도에서 작동하는 물질도 있긴 하지만, 지구 깊은 속처럼 엄청난 압력으로 눌러야만 합니다.
만약 그냥 방 안 온도, 그냥 보통 공기 압력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가 있다면 어떨까요? 전기를 먼 곳까지 손실 없이 보내고, 병원의 MRI 장비를 훨씬 싸게 만들고, 자기부상 열차를 쉽게 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상온·상압 초전도체'는 물리학에서 가장 큰 꿈 중 하나로 불립니다.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1911년 초전도 현상을 처음 발견한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 (Kamerlingh Onnes signed.jpg, Public domain)
3. 24년을 붙잡은 연구
LK-99라는 이름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L과 K는 이 물질을 연구한 이석배 대표와 김지훈 연구원의 성에서 따왔고, 99는 연구를 시작한 1999년을 뜻합니다. 두 사람은 고려대 고(故) 최동식 교수의 이론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2008년 퀀텀에너지연구소를 세워 연구를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2023년 7월 22일,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 두 편이 누구나 볼 수 있는 논문 공개 사이트에 올라왔습니다. 납, 구리, 인, 산소로 이루어진 이 물질이 최고 127도까지, 보통 공기 압력에서 초전도체처럼 작동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만드는 방법을 꽤 자세히 공개했다는 점입니다. 재료를 섞어 오븐 같은 장치에서 925도로 굽는 방식이었습니다.
4. 전 세계가 함께 실험한 여름
만드는 방법이 공개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중국, 인도, 유럽의 연구실들이 거의 동시에 LK-99를 만들어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험 과정을 인터넷에 생중계하는 연구자도 있었고, 사람들은 누가 성공했는지 정리한 표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했습니다.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중국의 한 대학 연구진이 작은 조각이 반쯤 뜨는 영상을 올리자, 중국의 한 동영상 사이트에서 하루 만에 가장 많이 본 영상이 됐습니다. 미래를 놓고 돈을 거는 해외의 한 예측 사이트에서는 'LK-99가 재현될 확률'이 한때 60%까지 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초전도체 관련 주식들이 크게 올라, 한국거래소가 투자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꺼번에 받은 건 드문 일이었습니다. 물리학 용어를 처음 들어 보는 사람들까지 '마이스너 효과'가 뭔지 찾아보던 여름이었습니다.
5. 범인은 '불순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8월 중순까지 결과를 내놓은 15곳이 넘는 연구실 가운데 진짜 초전도 현상을 확인한 곳은 없었습니다.
대신 흥미로운 설명이 나왔습니다. LK-99를 만드는 과정에서 '황화구리'라는 다른 물질이 섞여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황화구리는 104도 근처에서 성질이 확 바뀌면서 전기 저항이 갑자기 변합니다. 연구진이 초전도의 신호로 본 '저항이 뚝 떨어지는 현상'이 바로 이 온도 근처에서 나타났습니다. 또 황화구리는 자석을 약하게 밀어내는 성질이 있어, 작은 조각이 반쯤 뜨는 모습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실험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나왔습니다.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LK-99 결정을 처음으로 만들어 보니, 초전도체는커녕 전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 '부도체'였습니다. 2023년 8월 16일,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다'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6. 한국 학계의 정리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논란이 시작되자마자 검증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위원회는 넉 달 동안 국내 8개 기관의 실험과 신뢰할 만한 해외 14개 연구진의 결과를 모아 검토했고, 2023년 12월 '공개된 데이터와 재현 실험을 종합할 때 LK-99가 상온·상압 초전도체라는 근거는 없다'는 결론을 담은 백서를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이후에도 연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이석배 대표는 2024년 1월 공개 석상에서 LK-99가 초전도체라는 입장을 유지했고, 같은 해 3월 연구진은 LK-99에 황을 더한 새 물질 'PCPOSOS'를 미국물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했습니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가가 많았고, 지금까지 과학계가 이 물질들을 초전도체로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7. 그래도 남은 것들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었다고 해서, 그해 여름이 아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선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전 세계가 생중계로 지켜봤습니다. 주장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만들어 보고,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따져 보고, 결국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불과 몇 주 만에 벌어졌습니다. 만드는 방법을 공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황화구리가 어떻게 초전도체 흉내를 내는지 밝혀낸 것도 그 자체로 새로운 지식입니다.
그리고 상온 초전도체라는 꿈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도 확인했습니다. 과학자들이 밤을 새워 실험한 것도, 사람들이 처음 듣는 물리 용어를 검색한 것도, 결국 '혹시 정말이라면?' 하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8. 이 이야기가 보여 주는 것
과학에서 '틀린 주장'은 생각보다 자주 나옵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도 상온 초전도체를 주장한 논문이 학술지에서 철회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틀린 주장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틀렸을 때 그것을 빨리 확인하고 바로잡을 수 있느냐입니다. LK-99의 여름은 그 바로잡는 과정이 얼마나 빠르고 공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사례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과학 소식이 영상 하나로 얼마나 빨리 퍼지고 돈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도 보여 줬습니다. '반쯤 뜬 돌'을 볼 때 '완전히 떠서 고정되는가', '저항이 정말 0인가'를 물어볼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남은 작은 과학 상식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그해 여름 LK-99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상온 초전도체는 언젠가 정말 나올까요?
참고 자료
- Wikipedia, LK-99
- 뉴시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 백서 발표 (2023.12.13)
- 뉴시스, 이석배 소장 연세대 행사 발표 (2024.1.9)
- 노컷뉴스, PCPOSOS 미국물리학회 발표 (2024.3)
이미지 출처
- LK-99-samplecomingoutoftube.png — 이석배·김지훈·김현탁 외, Wikimedia Commons, CC BY 4.0
- Levitating HTS BSCCO piece (Meissner effect).jpg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 Kamerlingh Onnes signed.jpg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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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16:51
황화구리 하나가 온 세계를 속였다는 결말이 묘하게 웃프다.
모든 이야기1490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