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서 가장 흔히 듣는 말 중 하나가 '펀치력은 스피드에서 나온다'입니다. 물리 시간에 배운 운동에너지 공식(질량 곱하기 속도의 제곱, 나누기 2)을 떠올리면 그럴듯합니다. 속도는 제곱으로 들어가니, 손만 빨라지면 위력이 껑충 뛸 것 같습니다. 반대로 '팔로만 치지 말고 몸으로 쳐라'는 코치의 잔소리도 체육관마다 있습니다.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2026년 6월 arXiv에 올라온 조지프 L. 나탈레(Joseph L. Natale)의 논문 'Improving Punching Power: Reconsidering the roles of initial strike velocity and effective mass'(arXiv 2607.18276)는 이 질문을 고등학교 물리 수준의 충돌 계산으로 다시 따져 봅니다. 결론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실제 사람이 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손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타격에 실리는 몸의 질량을 늘리는 쪽이 같거나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샌드백 앞에서 자세를 지도하는 복싱 코치. 1940년대 미 육군 통신단 사진. (Public domain)
1. 먼저 알아야 할 말: '유효질량'
주먹을 뻗을 때 내 몸무게 70kg이 전부 상대에게 부딪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먹과 팔뚝, 그리고 어깨와 몸통 일부가 얼마나 단단하게 이어져 함께 움직이느냐에 따라, 충돌 순간 실제로 상대를 미는 데 참여하는 질량이 달라집니다. 이것을 '유효질량'이라고 부릅니다. 팔만 휘두르면 팔 무게 정도만, 발끝부터 허리와 어깨를 한 덩어리로 묶어 치면 그보다 훨씬 큰 질량이 실립니다.
논문이 모은 기존 연구를 보면 복싱, 쿵푸, 가라테, 종합격투기를 막론하고 측정된 유효질량은 대개 5kg 안팎이고, 가장 높게 보고된 한 연구 계열에서도 약 30kg 정도입니다. 체중 70kg인 선수라면 몸무게의 5~10% 정도만 타격에 싣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이 비율에는 늘릴 여지가 많지 않을까?
2. 당구공으로 시작하는 계산
저자가 쓰는 모델은 가장 단순한 형태입니다. 질량 m인 공(주먹과 함께 실린 몸)이 속도 v로 날아와, 가만히 서 있는 질량 M인 공(상대)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부딪힐 때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가정합니다. 이것을 1차원 탄성 충돌이라고 하며, 운동량 보존과 에너지 보존 두 식만 풀면 맞은 쪽이 밀려나는 속도 V가 나옵니다. V = 2m/(m+M) × v.
이 식은 일상에서 이미 본 현상들을 설명합니다. 당구에서 흰 공으로 같은 무게의 공을 정면으로 맞히면 흰 공이 그 자리에 딱 멈추고 맞은 공만 굴러가는 '스톱샷'이 나옵니다. m과 M이 같을 때 식에 넣어 보면 맞은 공이 들어온 공의 속도를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가벼운 쪽이 무거운 쪽을 치면 가벼운 쪽이 튕겨 나오고, 무거운 쪽이 가벼운 쪽을 치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갑니다.
뉴턴의 요람. 같은 질량의 공끼리 부딪히면 친 공은 멈추고 운동이 그대로 다음 공으로 넘어간다. (Newtons Cradle.jpg, CC BY-SA 4.0)
3. 속도는 '곱하기'일 뿐이다
식을 다시 보면 속도 v는 맨 끝에 곱해져 있을 뿐입니다. 손을 두 배 빠르게 하면 상대가 밀려나는 속도도 정확히 두 배가 됩니다. 이것만 보면 속도가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입니다. 질량은 m+M이라는 분모에도 들어 있어서, 늘려도 효과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m과 M이 같은 상태에서 유효질량을 두 배로 늘려도, 상대가 밀려나는 속도는 약 1.3배밖에 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론상 몇 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폭'입니다. 프로 복싱과 종합격투기에서 측정된 주먹 속도는 대략 초속 8~10m입니다. 아마추어도 초속 4m보다 느리게 치는 경우는 드물고, 프로라도 초속 10m를 꾸준히 넘기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기네스 기록에 시속 45마일(초속 20m 이상)짜리 주먹이 있긴 하지만, 실전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속도는 아닙니다. 저자는 현실적인 하한을 초속 6m, 평범한 상급 수준을 초속 10m로 잡고, 훈련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속도의 폭을 약 1.67배로 봅니다.
4. 계산이 뒤집히는 지점
이제 두 가지를 같은 조건에서 비교해 봅니다. 상대의 유효질량을 70kg으로 두고, 처음에는 유효질량 5kg, 주먹 속도 초속 6m로 친다고 합시다. 식에 넣으면 상대는 초속 약 0.80m로 밀려납니다. 여기서 속도만 초속 10m로 올리면 초속 약 1.33m가 됩니다. 앞에서 본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폭'을 다 쓴 결과입니다.
그런데 속도는 그대로 두고 유효질량만 5kg에서 8.75kg으로, 즉 3.75kg만 더 실어도 똑같이 초속 약 1.33m가 나옵니다. 몸무게의 약 7%에서 약 12.5%로 올리는 정도입니다. 기존 연구에서 보고된 30kg까지 실을 수 있다면 같은 초속 6m로도 상대는 초속 약 3.6m로 밀려납니다. 손 속도를 아무리 올려도 닿기 어려운 숫자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속도가 지배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바로 이 비교에서 나옵니다. 속도는 곱하기라서 강력하지만, 사람이 늘릴 수 있는 폭이 좁습니다. 질량은 효과가 둔하지만, 지금 실리는 양이 너무 적어서 늘릴 여지가 큽니다.
논문의 식과 수치 범위로 직접 계산한 비교. 상대의 유효질량 70kg, 1차원 탄성 충돌 가정. (직접 작성)
5. 왜 '맞은 쪽이 밀려나는 속도'를 재나
펀치의 위력을 무엇으로 잴지도 논란거리입니다. 힘, 에너지, 충격량 등 여러 후보가 있는데, 저자는 맞은 쪽이 충돌 직후 얼마나 빠르게 밀려나는지를 기준으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상대의 질량이 정해져 있다면, 상대가 받은 충격량(질량 곱하기 속도 변화)은 밀려나는 속도가 클수록 커지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갑자기 젖혀지는 정도와 이어지는 지표이기도 해서, 논문은 머리의 직선 가속도가 뇌진탕의 주요 위험 요인이라는 연구도 함께 인용합니다.
이 기준에는 덤도 있습니다. 주먹이 맞는 순간 뒤로 튕겨 나오면 내 유효질량이 상대보다 작았다는 뜻이고, 주먹이 멈칫 서면 둘이 비슷했다는 뜻입니다. 코치가 미트를 받으며 느끼는 '묵직함'이 바로 이 반동의 크기를 몸으로 읽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미트에서 나는 '팡' 소리가 크다고 유효질량이 큰 것은 아니며, 그 소리는 오히려 속도를 가늠하는 단서로 쓰는 편이 낫다고 저자는 적습니다.
6. 저자가 스스로 밝힌 한계
이 논문의 가장 큰 약점은 모델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이고, 저자도 이를 숨기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은 점 하나가 아니고, 주먹과 몸통은 부딪힐 때 찌그러지고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저자는 탄성 충돌 모델이 타격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다만 가장 단순한 모델 안에서도 '속도가 전부'라는 통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고 밝힙니다. 에너지가 완전히 흡수되는 충돌로 바꾸면 밀려나는 속도가 절반이 되지만, 속도와 질량을 비교하는 논리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도 덧붙입니다.
두 번째 약점은 유효질량을 재는 표준 방법이 아직 없다는 점입니다. 연구마다 측정 장비와 정의가 달라서, 5kg이나 30kg 같은 숫자를 그대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로, 훈련으로 유효질량을 1.75배 넘게 늘릴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저자 스스로 근육량을 최대로 늘려도 이 배율은 1.5배 정도에서 멈춘다고 적었고, 근육을 키우기보다 기술을 바꾸는 쪽을 권합니다. 끝으로 이 논문은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전 공개 논문이며, 저자 한 명이 격투 컨설팅 회사 소속으로 쓴 글이라는 점도 감안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7. 이 논문이 보여 주는 것
이 논문은 새로운 이론을 내놓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충돌 공식 하나에, 실제 선수들이 낼 수 있는 숫자의 범위를 넣어 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속도는 제곱이니까 속도가 왕'이라는 직관이 흔들립니다. 공식이 말하는 '이론상 몇 배'와, 현실이 허락하는 '실제로 몇 배'는 다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건 격투기에만 해당하는 교훈이 아닙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따질 때, 변수의 효과가 얼마나 강한지와 함께 그 변수를 실제로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는 것. 이미 한계 근처까지 올라온 변수보다, 효과는 둔해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변수가 더 큰 차이를 만들 때가 많습니다. 코치들이 수십 년 동안 '몸으로 쳐라'라고 말해 온 것은, 어쩌면 이 계산을 몸으로 먼저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운동을 해 보신 분들은 어떠셨나요? 손이 빨라졌을 때와 몸을 싣는 법을 익혔을 때, 어느 쪽에서 더 큰 차이를 느끼셨나요?
참고 자료
- Joseph L. Natale, Improving Punching Power: Reconsidering the roles of initial strike velocity and effective mass, arXiv 2607.18276 (2026)
- OpenStax, University Physics Volume 1, 1차원 탄성 충돌 단원
이미지 출처
- Penn State Boxing Coach Demonstrates on Heavy Punching Bag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Newtons Cradle.jpg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 속도·유효질량 비교 그림 — 논문의 식과 수치로 직접 작성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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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16:29
미트 소리 크고 유효질량 크다는 얘기, 그건 처음 들었습니다. 스톱샷 비유는 이해됐고요.
모든 이야기1484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