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30일 오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드니프로강 좌안의 도시 오레슈키를 25대의 버스와 구급차 9대가 떠났다. 태운 사람은 누워서 이동해야 하는 환자와 94세 노인, 그리고 만 1세 유아까지 포함된 주민들이었다. 버스는 러시아 점령지를 가로질러 흑해 연안의 러시아 도시 아나파로 향했고, 이튿날 러시아 국방부가 제공한 항공기 편으로 벨라루스의 고멜에 내렸다. 다시 버스를 타고 북쪽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주 국경 검문소를 넘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월 31일 X(옛 트위터)에 '오레슈키 주민들이 체르니히우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을 통과했다. 이들 모두 필요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버스에서 내린 주민 류보프는 로이터통신에 '버스에 오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두려웠고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른다. 밤마다 잠을 못 자며 어떻게 될지 걱정했다. 그런데 모든 게 잘 풀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지난 1년 사이 몸무게가 20kg 줄었다며 '기력이 다 빠졌다'고 했다. 발레라라고만 밝힌 주민은 AFP통신에 '빵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텃밭을 일궜고, 있는 대로 먹었다. 이제 와서야 왔구나 싶다'고 말했다. 이 장면이 지난 한 주의 국제 뉴스에서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인도적 구호가 아니라 전쟁 4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당국이 한 도시에서 손을 맞잡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2024년 5월 15일 러시아 공격 이후 파괴된 헤르손의 주거 건물. 오레슈키가 속한 헤르손주의 전쟁 피해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사진: 우크라이나 국가경찰(National Police of Ukraine), CC BY 4.0, 위키미디어 공용.
무엇이 일어났나 — 광산밭을 뚫고 1,700km를 돈 버스
유엔총회 계기로 시작된 중재는 지역 단위 휴전으로 구체화됐다. 10월 23일 휴전이 발표됐고, 러시아 국방부는 텔레그램을 통해 모스크바 시간 27일 오전 4시(그리니치표준시 01시)부터 헤르손 방면 포격을 중단한다고 알렸다. 우크라이나 측 협상 대표인 드미트로 루비네츠 인권감독관은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 협상팀 대표로서 우리 측이 약속을 이행하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응답했다. 10월 30일에는 루비네츠와 러시아 측 대응자인 야나 란트라토바 인권위원이 크림반도 아르먄스크를 출발해 함께 오레슈키에 들어가 구호품을 전달했다.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가 러시아 점령지에 발을 디딘 것은 루비네츠가 처음이다.
규모는 다음과 같다. BBC는 주민에게 탈출용으로 주어진 시간이 네 시간이었고 버스 25대에 750명이 탈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10월 30일 성명에서 구호대가 안전하게 750명 이상을 대피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측이 맞이한 인원에 대해서는 수치가 엇갈린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총리 세르히 코레츠키는 앞서 527명이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가 나중에 그 수치가 바뀔 수 있다며 사과했다. 알자지라 기자 오드리 매칼파인은 정확한 숫자가 '우크라이나 측이 상당히 감추고 있는 비밀'이라고 전했다. BBC는 국경에서 맞은 대원들이 약 500명을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우크라이나 총리실·구호단체·언론이 서로 다른 숫자를 말하고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왜 이렇게까지 어려웠나. 유엔 등 국제기구 자료를 인용한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오레슈키는 2022년 2월 침공 초기에 러시아에 점령됐고 2023년 카호우카 댐 붕괴로 홍수 피해까지 겹쳤다. 전쟁 전 인구 2만4,000명이던 도시에는 현재 미 정부 추산 1,700~2,000명이 남아 있다. 가스와 전기, 상수도가 끊긴 상태다. 드니프로강을 잇던 교량은 파괴됐고, BBC는 강변에 지뢰가 매설됐다는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도시를 떠나는 길은 지뢰와 드론 공격에 노출돼 있었다. 세 주 전에 탈출한 한 주민은 BBC에 24km에 이르는 지뢰밭을 걸어서 통과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 진지가 5km 앞에 있는데도 주민들은 먼저 러시아 점령지를 지나 흑해로, 다시 벨라루스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돌아와야 했다. 직선거리로 몇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1,700km 넘게 우회한 셈이다.
왜 하필 지금인가 — 유엔총회의 우연과 겨울
이 휴전이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성사된 데는 몇 가지 조건이 겹쳤다. 첫째는 계기다. 백악관에 따르면 멜라니아 트럼프는 9월 유엔총회 기간 중 자신이 참석한 행사에서 오레슈키의 상황을 접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지도부와 협의를 시작했다. 둘째는 압력의 시한이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기와 난방, 물이 끊긴 도시에서 겨울을 나는 것은 사실상 생존 문제다.
셋째는 전쟁의 구조적 정체다. 4년 8개월간 전선은 거의 굳어졌고, 전면적 협상은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실패했다. 이 상황에서 국지적이고 인도적인 사안부터 손을 대는 '작은 휴전'이 양측 모두에 부담이 적은 선택지로 떠올랐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10월 30일 러시아 국영 TV에서 오레슈키 상황은 '고립된 사례로, 우크라이나의 광범위한 평화 과정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반대로 타스 등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앞서 이 휴전이 향후 유사한 국지 휴전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크렘린의 발언도 전했다. 같은 정부가 하루 사이에 '선례'와 '확대 해석 금지'를 함께 말한 셈인데, 이는 국지 휴전을 인도적 명분으로 활용하면서도 전쟁 종결 논의로 번지는 것은 막겠다는 이중적 태도로 읽힌다.
누가 중재했나 — 백악관과 바티칸의 경쟁하는 서사
이 사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휴전 그 자체보다 '누가 만들었는가'를 둘러싼 서사 경쟁이다. 백악관은 멜라니아 트럼프가 중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성명에서 '오레슈키 주민들은 제한된 전기를 쓰고 지뢰가 깔린 도로에서 살며 정기적인 군사 공격을 견디고 있다. 나의 개입이 없었다면 도시에 인도적 지원을 들여보내고 노인들을 대피시키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루비네츠도 그녀와 그 팀에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고, 러시아 관리들도 합의를 확인했다.
바티칸은 다른 이야기를 내놓았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백악관 발표 다음 날 1면 기사로 '오레슈키를 위한 인도적 휴전'을 다루며, 교황 레오 14세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지도자들과 통화해 정전을 촉구한 끝에 성사됐다고 강조했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교황은 10월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통화해 오레슈키의 심각한 인도적 상황에 대한 깊은 우려를 전하고 식량과 의료 지원을 위한 휴전을 요청했다. 통화 시점은 그가 폐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때였다. 사흘 뒤인 10월 19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통화했다. 교황의 특사 마테오 주피 추기경은 9월 말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당국에 오레슈키 상황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서사는 서로 모순된다기보다 같은 결과에 서로 다른 공을 세우려는 경쟁에 가깝다. 백악관은 미국의 외교적 성과를, 바티칸은 인도적 영향력을 부각하려 한다. 다만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양측이 실제로 합의문에 서명했는지, 휴전 조건이 어떤 문서로 남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언론에 나온 것은 발표와 통화 기록, 그리고 당사자들의 회고뿐이다.
각국의 입장 — 병렬로 놓고 보면
우크라이나는 이 사건을 '러시아 점령지의 인도적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쓰고 있다. 젤렌스키는 루비네츠를 치켜세우면서도 '러시아가 일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진정한 인도적 참상을 알리는 데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이 휴전이 전쟁의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10월 31일 밤 러시아 공격으로 드니프로주에서 20만 가구 이상, 키이우주에서 8만 가구 이상이 정전됐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인도적 작전을 자신의 통제력 과시로 활용한다. 러시아 국방부는 대피용 항공기를 제공하고 도로 제설과 지뢰 제거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란트라토바는 러시아로 가기를 원한 주민들도 버스로 옮겨 크림반도 심페로폴의 임시 수용시설로 데려갔다고 전했다. 이는 '주민들이 러시아를 선택했다'는 메시지를 만들려는 의도로 읽힌다. 다만 어느 쪽으로 몇 명이 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은 영부인의 인도적 중재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유세스 측은 휴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24일 영상에서 영부인의 역할을 치켜세웠다. 바티칸은 인도적 외교의 독자적 채널을 과시했다. 벨라루스는 자국 영토를 경유지로 제공하면서 인도적 관문 역할을 부각했고, 벨라루스 관영 매체는 고멜에서 구조대와 의료진, 적십자 자원봉사자들이 대피 주민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과 서방 동맹국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이들이 관심을 쏟은 것은 같은 시기 별개로 진행된 군사 지원 문제였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PAC-3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500발 구매(21억 달러 규모)를 승인했다. 젤렌스키는 이를 환영하면서도 인도에 수년이 걸릴 수 있다며 '미국과 유럽 파트너, 전 세계 다른 파트너들의 창고에 PAC-3가 충분히 있다. 2026~2027년 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즉시 공급해 달라'고 촉구했다. 인도적 휴전과 군사 지원 확대가 같은 주에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반전 — 휴전은 도시 안에서만 유효했다
통념과 다른 지점은 이 휴전이 '평화의 시작'이 아니라 '구호 창구'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휴전 기간에도 전쟁은 계속됐다. 10월 31일 러시아 브랸스크주 주지사는 우크라이나 드론이 클리모보 마을을 공격해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발전소와 철도 시설, 가스 공급 시설을 공격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시장 세르게이 소뱌닌은 수도로 향하던 드론 850여 대를 방공망이 대부분 격추했다고 밝혔다. 휴전은 오레슈키와 그 주변에만 적용됐다.
더 흥미로운 것은 주민들의 증언이다. 알자지라 기자 매칼파인에 따르면 오레슈키 인근 주민들은 양측이 군수 물자를 다시 보충하는 정황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투가 계속될 것에 대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인도적 휴전이 군사적 재정비의 시간으로도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다. 크렘린이 휴전을 '선례'라고 부르면서도 확대 해석을 경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휴전은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전쟁의 리듬 속에 끼어든 예외적 정지였다.
또 하나의 반전은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인 인원이 애초 예상보다 적다는 점이다. 750명을 태울 수 있는 버스가 갔지만, 우크라이나 측이 확인한 귀환 인원은 500명 안팎이다. 나머지는 러시아로 갔거나 남기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수백 명은 파괴된 도시에 남았다. 루비네츠는 남기로 한 주민들도 필요한 인도적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피는 선택이었고, 선택의 결과는 갈라졌다.
한국과의 연결 — 직접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한국은 이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 오레슈키에 한국인 주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 기업이 이 도시에 투자한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직접적 경제·안보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솔직히 말할 수 있다. 다만 세 가지 간접적 함의는 짚을 만하다.
첫째,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인도적·비살상 지원을 해 온 국가다. 이런 국지적 휴전은 지원 물자의 통로가 만들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둘째, 이번 사례는 '인도적 사안을 매개로 한 제한적 협력'이 전면 휴전 협상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대화 채널이 끊긴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선례다. 다만 크렘린이 직접 확대 해석을 경계했듯, 이 사례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셋째, 미국의 외교적 개입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정상 간 협상이 교착된 상황에서 영부인이나 종교 지도자 같은 비공식 채널이 인도적 사안에서 실질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외교의 주체와 형식이 다변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 가지 더. 같은 시기 미국의 패트리엇 판매 승인은 한국의 방산·안보 환경에도 간접적으로 닿는다. 동맹국 대상 무기 판매의 우선순위와 생산 일정은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준다. 다만 이번 사안에서 한국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반론 —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 휴전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첫째, 인도적 휴전은 때로 '전쟁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러시아가 구호 작전에 협력함으로써 점령지 주민을 방치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일부 상쇄하고, 점령 통치의 정당성을 이미지로 보완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이번 작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러시아군이 안전 통로를 제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둘째, 오레슈키만 구한 것이 나머지 전선의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같은 시기 드니프로 기차역 공격으로 14명이 숨지는 등 민간인 피해가 계속됐다. 한 도시에 집중된 관심이 다른 지역의 위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중재 주체를 둘러싼 논쟁 자체가 사안의 본질을 흐린다는 시각도 있다. 누가 공을 세웠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왜 4년 8개월이 지나서야 이 도시에 구호가 들어갔는가라는 질문이다.
사료의 한계
이 글에서 확인해야 할 한계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대피 인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527명, 500명 안팎, 750명 이상 등 수치가 출처마다 다르다. 우크라이나 총리도 자신의 발표를 번복했다. 둘째, 중재 과정의 구체적 내용은 당사자 발표에 의존한다. 백악관과 바티칸의 서사는 각각 자기 진영의 성과를 강조한 것이고, 합의문 원본이나 협상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셋째, 러시아 측 발표는 러시아 국방부와 인권위원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며, 독립적 제3자 확인은 제한적이다. 넷째, 휴전은 11월 1일 일요일 종료 예정이었으나 이 글 작성 시점에서는 아직 종료 여부와 연장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휴전이 유지됐다'는 서술은 보도 시점까지의 사실이다. 다섯째, 교황 레오 14세의 통화 내용은 바티칸 기관지 보도를 인용한 것이며, 통화의 실제 영향력은 확인할 수 없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한 도시의 인도적 휴전은 성공했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휴전이 '작은 성공'인지, 아니면 '큰 문제를 가리는 작은 성공'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정책 결정자라면, 이런 국지적 휴전을 더 확대하는 데 자원을 쓸 것인가요, 아니면 전면적 평화 협상에 집중할 것인가요? 그리고 한 도시에 구호가 들어오기까지 4년 8개월이 걸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나요?
참고 자료
- BBC, 'Evacuees from Russian-occupied Oleshky arrive in Ukraine', 2026-10-31, https://www.bbc.co.uk/news/articles/cqx2818elrnzo
- Al Jazeera, 'Evacuees from Russian-occupied Oleshky arrive in Ukraine via Belarus', 2026-10-31, https://www.aljazeera.com/news/2026/10/31/hundreds-from-russian-occupied-oleshky-land-in-belarus-en-route-to-ukraine
- Al Jazeera, 'Oleshky evacuees leave for Russia as ceasefire holds', 2026-10-30, https://www.aljazeera.com/news/2026/10/30/aid-convoy-enters-besieged-ukrainian-town-oleshky
- Al Jazeera, 'Melania or the pope: Who brokered Russia-Ukraine ceasefire in Oleshky?', 2026-10-27, https://www.aljazeera.com/news/2026/10/27/melania-or-the-pope-who-brokered-russia-ukraine-ceasefire-in-oleshky
- Wikimedia Commons, 'Destructions in Kherson after Russian attack, 2024-05-15 (01).jpg', National Police of Ukraine, CC BY 4.0
댓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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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1:37
1,700km 우회했다는 대목에서 한참 멈칫했습니다. 지도로는 강 하나 건너는 거리인데, 그 하루 사이에 94세 노인과 1세 아이가 버스에서 얼마나 긴장했을지 상상이 안 되네요. 저는 '휴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전투가 멈추는 것부터 떠올리는데, 이번엔 전투가 멈춘 게 아니라 길이 열린 것에 가까웠다는 게 오래 남습니다. 버스는 750명분이었는데 우크라이나 쪽에서 확인된 사람은 500명 안팎이라니, 남은 분들은 그 겨울을 어떻게 나게 될까요. -
빗방울
2026.11.01 02:39
직선거리 몇 킬로미터를 1,700km 돌아서 갔다는 대목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같은 강 건너편인데도 강이 국경이 되면 그렇게 멀어지는군요. '대피는 선택이었고, 선택의 결과는 갈라졌다'는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습니다. 남은 사람들 소식은 앞으로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요. -
빗방울
2026.11.01 03:26
버스를 타기 전까지 밤마다 잠을 못 잤다는 류보프 씨 얘기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직선으로 몇 킬로미터 거리를 1,700km 돌아 돌아왔다는 대목도 오래 남네요. 그런데 버스는 750명을 태울 수 있었는데 실제로 넘어온 사람은 500명 남짓이라는 게 걸립니다. 남은 사람들은 그 좁은 도시에서 다시 겨울을 맞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
빗방울
2026.11.01 03:46
버스 25대가 갔는데 국경을 넘은 사람은 500명 안팎이라니, 남은 분들 이야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저는 '떠날 수 있게 되면 다 떠난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텃밭을 일구며 4년을 버틴 사람에게는 그 선택도 쉽지 않았겠네요. 겨울이 오기 전에 하루라도 더 일찍 창구가 열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빗방울
2026.11.01 04:48
1,700km를 돌아 겨우 제 땅에 닿았다는 대목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지도로는 강 건너 몇 킬로미터인데, 강이 끊기면 나라 하나를 통과해야 하는 거리였던 셈이죠. 수치가 750명, 500명, 527명으로 갈리는 것도 마음에 남습니다. 사람이 숫자처럼 정리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라, 늦게 확정되는 걸 기다려보고 싶네요. 저는 처음에 휴전이 길게 이어질 줄 알았는데 도시 안에서만 유효했다는 대목이 가장 뜻밖이었습니다. -
빗방울
2026.11.01 04:58
"빵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그 한마디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4년 8개월 동안 이 도시는 뉴스에서 거의 지워져 있었는데, 다시 이름이 나온 게 750명이 버스에 타는 순간이었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남네요. 휴전은 오늘 끝나는 예정이라던데, 남기로 한 1,000여 명은 그다음 날을 어떻게 맞았을지 궁금해집니다. -
빗방울
2026.11.01 05:02
직선거리 몇 킬로미터를 1,700km 돌아서 가야 했다는 대목에서 한참 멈칫했습니다. 94세 노인과 만 1세 유아가 같은 버스에 탔다는 것도, 그 옆에서 누군가는 남기로 선택했다는 것도요. '모든 게 잘 풀렸다'는 말이 왜 이렇게 무겁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휴전이 오늘 끝난다는데, 그 뒤에도 버스 한 대가 더 떠날 수 있을까요? -
빗방울
2026.11.01 05:18
1,700km 우회했다는 대목에서 한참 멈칫했습니다. 강 건너 5km 거리를 가려고 세 나라를 도는 길이라니, 지도 없이 소식만 듣던 주민들에겐 버스 네 시간이 기적처럼 느껴졌을 것 같네요. 다만 750명 태울 버스가 갔는데 500명 안팎만 넘어왔다는 게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지금 무엇으로 겨울을 나는지 궁금해집니다. -
빗방울
2026.11.01 06:30
1,700km를 돌아서 겨우 몇 킬로미터 건너편에 닿았다는 대목에서 한참 멈칫했습니다. 지도 위 직선거리와 실제로 걸어야 하는 길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고요. 버스 25대가 갔는데 우크라이나 쪽에서 확인된 사람은 500명 안팎이라는 부분도 마음에 남습니다. 남은 사람들 이야기는 이제 누가 전하게 될까요. -
빗방울
2026.11.01 06:54
1,700km를 돌아서 들어온 사람들 이야기를 읽다가 엉뚱하게도 이민 가방 챙기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분들은 네 시간 안에 살던 곳을 정리해야 했다는 거잖아요. 버스에 남은 자리가 있었는데도 도시에 남은 수백 명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휴전이 오늘로 끝난다는데, 연장됐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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