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미터 떨어진 손전등, 2밀리미터 구멍 두 개
주차장 끝이나 체육관 벽면에서 15~50미터 떨어진 자리에 작은 손전등 하나를 세워 둔다. 손전등 앞에는 지름 2~6밀리미터짜리 원형 구멍을 뚫은 마스크를 씌운다. 관측자는 그 반대편에서, 지름 2밀리미터 구멍 두 개를 5~20밀리미터 간격으로 뚫은 불투명 마스크를 쓴 작은 망원경을 손전등 쪽으로 들이댄다. 접안부를 들여다보면 손전등은 더 이상 점광원이 아니다. 밝고 어두운 줄무늬, 즉 간섭 무늬가 시야를 가로지른다.
이 장면은 에릭 프리드먼과 미셸 고먼이 2026년 10월 22일 arXiv에 올린 논문 「From Venus to the Parking Lot: A Flexible Stellar Interferometry Experiment」(arXiv:2610.30669)의 도입부다. 두 사람은 앞선 논문에서 금성을 대상으로 간섭계 실험을 보여 주었고, 이번 편은 그 실험을 행성의 가시성이나 대기 시잉(seeing)과 무관하게, 실내에서도 야외에서도 돌아가게 만든 확장판이다.
무엇을재는가 — 각지름이라는 하나의 숫자
간섭계가 재는 것은 별의 지름이 아니라 각지름, 즉 지구에서 본 하늘 위의 크기다. 두 구멍을 통과한 빛이 접안부에서 겹치면, 광원이 점이 아니라 일정한 각크기를 가진 원반일 때 무늬의 선명도가 떨어진다. 광원의 각지름이 무늬 간격에 견줄 만큼 커지면 무늬가 흐려져 사라진다. 그래서 구멍 사이 거리를 바꿔 가며 무늬가 언제 흐려지는지를 보면 광원의 각지름을 역산할 수 있다.
논문에 실린 수치로 계산해 보면 규모가 잡힌다. 파장을 550나노미터로 두면 구멍 간격 20밀리미터에서 무늬 간격은 약 2.8×10⁻⁵라디안, 각도로는 6초각 남짓이다. 한편 50미터 앞의 지름 2밀리미터 구멍은 4×10⁻⁵라디안(약 8초각), 15미터 앞의 지름 6밀리미터 구멍은 4×10⁻⁴라디안(약 83초각)이다. 재려는 대상의 각크기가 무늬 간격보다 크고 작은 경계에 걸쳐 있으니, 간격을 조금씩 바꾸면 무늬가 흐려지는 지점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
반전 — 천체로는 불가능한 검증이 여기서는 가능하다
논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검증에 관한 것이다. 저자들은 학생들이 광원의 각지름을 추정한 뒤, 그 값을 단순한 기하학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손전등까지의 거리를 줄자로 재고 구멍 지름을 재면 답이 이미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논문은 이 확인이 천체를 대상으로는 불가능한 검사라고 명시한다.
이것이 이 실험의 성격을 바꾼다. 진짜 별을 상대로 하면 학생은 “무늬가 흐려졌다”는 관찰에서 숫자를 얻지만, 그 숫자가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금성의 각지름을 교과서 값과 비교하는 것이 전부다. 반면 손전등은 정답을 이미 알고 있는 문제다. 간섭계라는 도구 자체를 채점할 수 있는 셈이고, 그래서 이 실험은 관측 활동이라기보다 계측기 교정에 가깝다.
두 구멍을 지난 단색광이 만드는 간섭 무늬의 실제 사진. 줄무늬 간격은 구멍 사이 거리에 반비례하고, 광원의 각크기가 커지면 무늬의 선명도가 떨어진다 — 워런 레이원,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왜 하필 실내에서도 되는가
천체 간섭계가 어려운 이유는 간섭 자체가 아니라 조건이다. 망원경이 별을 따라 계속 움직여야 하고, 대기 요동이 파면을 흔들며, 하늘이 어두워야 한다. 논문이 내세우는 확장판의 요점은 이 세 가지를 전부 없앨 수 있다는 데 있다. 손전등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추적이 필요 없고, 실내라면 대기라는 매질 자체가 없으며, 밝기는 관측 시간을 늘리거나 줄여 맞출 수 있다.
대신 조건이 느슨해진 만큼 광원도 조잡해진다. 논문은 손전등 앞에 원형 마스크를 씌워 “인공 확장 광원”을 만든다. 완벽한 균일 원반이 아니라, 구멍 크기로 정의되는 각크기를 가진 흉내일 뿐이다. 그 흉내가 충분히 원반처럼 행동하는지가 실험의 성패를 가르는데, 마스크 지름을 2~6밀리미터로, 거리를 15~50미터로 잡은 폭이 바로 그 여유를 만든다.
반론 — 그 무늬는 간섭이 아니라 회절일 수 있다
가장 먼저 나올 의심은 무늬의 정체다. 구멍 하나만으로도 회절 무늬가 생기고, 마스크 가장자리에서도 빛이 퍼진다. 접안부에 줄무늬가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두 구멍 사이의 간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구분하는 기준은 간격의 의존성이다. 두 구멍 사이 거리를 넓히면 간섭 무늬는 촘촘해지고, 구멍 하나의 회절 무늬는 구멍 지름에만 반응한다. 논문은 구멍 간격을 5~20밀리미터 범위에서 바꾸는 절차를 실험의 핵심으로 두므로, 이 변화가 곧 대조 실험이 된다.
더 정밀한 반론은 가간섭성(coherence)에 관한 것이다. 손전등은 별과 달리 점광원이 아니고, 필라멘트의 크기와 마스크 구멍의 크기가 부분적 가간섭을 만든다. 무늬의 선명도가 광원의 각크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인지, 손전등 자체의 공간적 가간섭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논문은 마스크 구멍 지름을 바꿀 수 있게 설계해 이 둘을 분리하려 하지만, 두 효과가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실험 설계의 부담으로 남는다.
평면파 두 개가 겹칠 때 생기는 간섭의 시뮬레이션. 밝은 띠와 어두운 띠의 간격은 두 파동이 이루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 제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논문이 스스로 인정한 한계
저자들이 분명히 적어 둔 한계는 검증의 방향에 관한 것이다. 손전등 실험에서 얻은 각지름은 기하학으로 확인되지만, 그 확인이 가능한 이유는 대상이 인공 광원이기 때문이다. 논문은 이 점을 장점으로 제시하면서 동시에, 이 실험이 실제 천체 관측을 대체하지는 않는다는 경계를 긋는다. 별의 각지름은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얻어야 한다.
수치에서 따라오는 한계도 있다. 구멍 간격이 20밀리미터일 때 분해 한계는 6초각 남짓이므로, 이보다 훨씬 작은 각크기를 가진 광원은 무늬가 흐려지는 지점을 좁은 범위 안에서 찾아야 한다. 간격 범위가 5~20밀리미터로 제한된 이상, 각지름 측정의 여유도 그만큼 좁다. 논문은 이 실험을 정밀 측정이 아니라 직관을 만드는 사전 실습, 혹은 방법 자체에 대한 정량적 점검으로 규정한다.
독자에게 — 당신이라면 무엇을 바꿔 볼 것인가
이 실험의 값은 장비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2밀리미터 구멍 두 개와 손전등, 그리고 줄자만으로 “우리가 별의 크기를 어떻게 아는가”라는 질문의 한 줄기가 손에 잡힌다. 학교 실습에서 흔히 빠지는 것은 정답을 아는 문제를 스스로 채점하는 단계인데, 이 논문은 그 단계를 실험의 중심에 놓았다.
더 알고 싶은 지점도 분명하다. 마스크 구멍을 원형이 아니라 틈으로 바꾸면 무늬는 어떻게 달라질까. 손전등 대신 두 색이 섞인 광원을 쓰면 무늬의 선명도가 색마다 다르게 흐려질까. 그리고 실내에서 얻은 각지름과 같은 대상을 야외 한밤중에 얻은 값이 정말 같은 숫자로 나올까. 당신이라면 이 셋 중 무엇을 먼저 시험해 보겠는가.
참고 자료
Eric J. Friedman, Michelle Goman, “From Venus to the Parking Lot: A Flexible Stellar Interferometry Experiment”, arXiv:2610.30669v1 (2026-10-22), 분류 physics.ed-ph.
논문 원문: https://arxiv.org/abs/2610.30669v1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Michelson 간섭계 무늬 사진(Warren Leywon, CC BY-SA 4.0), 평면파 간섭 시뮬레이션(퍼블릭 도메인).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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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3:16
고등학교 때 손가락 두 개로 눈을 가리고 손전등을 보면 줄무늬가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했는데, 그게 두 틈 사이 간섭이었네요. 망원경 없이도 가능한 실험이라 반가웠습니다. 혹시 야외에서 하면 대기 흔들림이 무늬를 얼마나 망칠까요? 정답을 아는 문제로 채점해 본다는 대목에서 한참 웃었습니다. -
빗방울
2026.11.01 03:24
주차장에서 손전등으로 별의 크기를 재는 실험, 읽다가 고등학교 물리실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이중슬릿 무늬 폭만 재고 끝났는데, 정답을 아는 문제를 스스로 채점한다는 발상은 확실히 다르네요. 궁금한 건 실내 값과 한밤중 야외 값인데, 혹시 습도나 미세먼지가 낀 밤에는 무늬 선명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나요? -
빗방울
2026.11.01 05:00
주차장 끝 손전등은 정답을 이미 아는 문제라는 대목에서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시험을 잘 보는 것보다 자기 답을 채점할 줄 아는 게 어렵다는 말이 떠올랐거든요. 혹시 구멍 대신 틈을 써서 한쪽 방향으로 간격을 늘리면 간섭과 회절을 더 쉽게 갈라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면 손전등 실험을 야외까지 한 번에 이어 볼 수 있을 것 같아 물어봅니다. -
빗방울
2026.11.01 05:46
읽다가 고등학교 때 실험실 창가에 손전등 세워두고 겨우 무늬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땐 줄무늬가 나오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거기서 멈췄는데, 거리와 구멍 지름으로 정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이 실험의 핵심이라는 대목이 마음에 남네요. 혹시 구멍 간격을 더 넓혀 6초각보다 작은 무늬까지 밀어붙이면 손전등 자체의 가간섭성 때문에 먼저 무늬가 죽지는 않을까요? -
빗방울
2026.11.01 06:06
주차장에서 줄자로 정답을 먼저 재 두고 그 다음에 간섭무늬로 같은 숫자를 다시 얻는다는 부분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저는 별의 크기를 재는 일이 무조건 '모르는 값에 도전하는' 쪽인 줄 알았는데, 정답을 아는 문제로 도구를 먼저 채점한다는 발상이 신선했어요. 혹시 손전등 대신 레이저 포인터를 쓰면 필라멘트 크기 때문에 생기는 부분 가간섭 문제가 조금 줄어들까요? 그렇다면 간격을 더 좁혀서 6초각보다 작은 값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아 궁금해집니다. -
빗방울
2026.11.01 06:10
주차장에서 손전등 들고 줄자로 거리 재는 장면이 왠지 반갑네요. 저는 간섭계라고 하면 거대한 천문대 장비부터 떠올렸는데, 정답을 미리 아는 문제를 채점하는 쪽이 오히려 핵심이라는 대목에서 멈칫했습니다. 혹시 손전등 대신 빨강·초록 두 색 LED를 쓰면 무늬가 색마다 다르게 흐려지는 걸 눈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
빗방울
2026.11.01 08:10
정답을 아는 문제로 기구를 채점한다는 대목이 제일 좋았음. 실제 별로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실험은 되는데 검산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잖아. 주차장에서 줄자 들고 구멍 마스크 붙이는 것만으로 그 빈틈이 메워진다는 게 은근 신기함. 한지는 2미리 구멍을 손으로 뚫으면 가장자리가 지저분해질 텐데, 그게 숫자에 얼마나 흔들림을 줄지 궁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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