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숙성하면 맛이 좋아지지만, 쇠고기 한 덩이를 3주 동안 매달아 두는 동안 고기 무게는 계속 줄고 창고와 전기 요금은 계속 나간다. 농촌진흥청이 싱가포르에서 시험한 ‘적외선 소고기 숙성장치’는 이 거래를 뒤집는 시도다. 건식숙성(드라이에이징)에 3주쯤 걸리던 시간을 2일 이내로 줄이면서, 대신 수율(원육 대비 남는 고기 양)은 24시간 숙성 76.5%에서 48시간 숙성 70.6%로 떨어졌다. 시간을 버는 대신 고기를 내준 셈이고, 이 발표의 알맹이는 그 맞바꿈을 실제 시장에서 받아들일지 확인해 보겠다는 데 있다.
무엇이 바뀌는가
적외선 숙성장치는 적외선으로 고기에 열을 전달하면서 숙성에 필요한 온도·습도 같은 환경을 정밀하게 조절한다. 통상적인 건식숙성은 낮은 온도에서 오래 두며 표면 건조와 자연 효소 작용을 기다리는데, 이 장치는 그 대기 시간을 설비로 압축한다. 2026년 3월 27일부터 10월 23일까지 싱가포르의 프리미엄 식품 유통업체 쿨리나마켓(Culina) 현지 시설에 장치를 설치하고, 현지에서 조달한 원육으로 실제 숙성시험을 돌린 것이 이번 발표의 내용이다. 시험에 쓴 부위는 Beef Chuck Tender, 즉 부채살·목심 부위로 가격이 비교적 낮은 컷이다.
왜 지금 싱가포르인가
농촌진흥청은 이 기술을 국내 시연장에 세워두지 않고, 수입 쇠고기가 넘치는 도시국가의 유통업체 안에 집어넣었다. 실증을 ‘장치가 작동하는가’가 아니라 ‘그 나라 시장에서 팔리는가’로 정의한 것이다. 싱가포르는 쇠고기를 거의 전량 수입하며, 호주산과 미국산이 가격 경쟁력을 쥐고 있다. 그래서 시험 설계도 그 조건에 맞춰졌다. 원육 입고 → 계량 → 숙성 → 트리밍(불필요한 지방·표면 제거) → 최종 중량 측정 → 절단·조리 → 관능평가까지 단계별로 기록을 남기는 실증 체계를 현지에 세웠고, 7월 27~29일에는 전문가 22명(바이어·셰프)과 일반 소비자 28명, 모두 50명을 대상으로 24시간 숙성육과 48시간 숙성육을 같은 조건으로 조리해 비교 평가했다.
숫자로 본 시험 결과
- 기간: 2026년 3월 27일 ~ 10월 23일, 싱가포르 Culina 현지 시설
- 시험 조건: 24시간 숙성 대 48시간 숙성, 부위는 부채살·목심(Beef Chuck Tender)
- 중량 감소율: 14.1%(24시간) → 16.3%(48시간)
- 최종 수율: 76.5%(24시간) → 70.6%(48시간)
- 소비자 평가: ‘육질이 매우 부드럽다’ 64.3%, ‘다시 먹고 싶다’ 82.1%
- 선호: 24시간보다 향이 진한 48시간 숙성을 선호
시험에 쓴 원육이 1kg 안팎으로 국내 실험의 3kg 안팎보다 작았기 때문에, 국내 실험 수율 75%보다 낮은 70.6%가 나왔다고 원문은 설명한다. 다만 관행 건식숙성의 수율이 50~65%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장치는 ‘빠르고 손실이 적은’ 쪽에 서 있다. 숙성 시간을 늘릴수록 수분이 날아가고 표면이 말라 트리밍에서 잘려나가는 양이 늘어난다는 일반 원리도 시험 수치에 그대로 나타났다.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식당과 정육·유통업체가 얻는 것은 시간과 회전율이다. 3주짜리 재고를 2일짜리 재고로 바꾸면 냉장 창고 면적, 운영 자금, 주문 대응 속도가 모두 달라진다. 농가가 얻는 것은 판로다. 특히 싱가포르 현지 평가에서 ‘호주산 대비 한우의 가격 부담’이 지적되며 1등급 이하 한우에 적용할 필요가 언급됐는데, 등급이 낮아 가격을 못 받던 물량을 숙성으로 부가가치를 붙여 수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잃는 쪽은 원육이다. 48시간 숙성은 고기 무게의 16.3%를 숙성 과정에서 내주고, 트리밍까지 끝나면 최종 수율은 70.6%다. 같은 1kg을 들여도 접시에 남는 양은 24시간 숙성보다 적다. 소비자는 이 선택을 가격으로 치른다. 숙성육은 부드럽고 향이 진하지만, 손실분은 결국 가격에 얹힌다. 원문은 가격 수용도 조사가 아직 예정 단계라고 밝히고 있어, 소비자 부담은 아직 숫자로 확인되지 않았다.
보도자료 원문 화면(정책브리핑 korea.kr) — 정책브리핑(korea.kr) 화면 캡처
통념과 다른 지점
첫째, ‘오래 숙성할수록 좋다’는 통념에 이 시험은 조건을 붙인다. 전문가와 소비자가 48시간 숙성의 향을 더 높게 봤지만, 그 대가는 수율 6%포인트 하락이었다. 맛의 개선과 원가의 악화가 같은 실험 안에서 동시에 측정됐다는 것이 이 자료의 가장 실무적인 부분이다. 둘째, 이 사업의 병목은 장치가 아니라 원육 쪽에 있을 수 있다. 원문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일본산 ‘Liquid KOJI’(누룩곰팡이 포자 용액)가 판매 중이어서 풍미 미생물 활용이 용이하다고 적었다. 숙성의 향을 만드는 재료가 일본산 제품이라는 뜻이고, 한국산 숙성 기술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장치·원육·부재료를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셋째, 시장 반응의 근거가 인구 구성에 기대고 있다. 원문은 싱가포르 인구에서 중국계가 75%를 차지해 숙성향이 강한 48시간 숙성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는데, 이는 50명 표본의 평가와 결합된 해석이지 별도의 통계 검증을 거친 결론은 아니다.
이 정책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
원문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은 ‘확인되지 않음’으로 남긴다. 장치의 가격, 설치·유지 비용, 전력 소비량, 숙성 1회당 원가가 모두 제시되지 않아, 유통업체가 투자 대비 이익을 계산할 근거는 아직 없다. 한우·한돈 원육의 국내산 물량 확보와 수출 검역·위생 요건, 냉동·냉장 물류비도 다뤄지지 않았다. 또 시험은 유통업체 한 곳, 부위 하나, 표본 50명 규모다. 82.1%라는 재구매 의향은 시식 직후의 반응이며, 실제 매대에서 가격표를 보고 집어 드는지를 뜻하지는 않는다. 농촌진흥청도 숙성 시간·부위·마블링 수준별 추가 실증과 시식 행사를 통한 구매·재구매 의향 및 가격 수용도 조사를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두었다.
독자가 확인할 것
일반 소비자에게 당장 신청할 제도는 없다. 이번 발표는 기술 실증 결과이지 지원 사업이나 인증 제도가 아니다. 다만 업계 종사자라면 두 가지를 지켜볼 만하다. 하나는 농촌진흥청이 다음 단계로 예고한 부위·마블링별 실증 결과와 최적 숙성 조건 확립이고, 다른 하나는 싱가포르 현지 시식 행사 이후 나올 가격 수용도 조사다. 이 두 숫자가 나와야 이 기술이 ‘시연’에서 ‘상품’으로 넘어가는지 판단할 수 있다. 문의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수확후관리공학과(063-238-4101), 수출농업기술과(063-238-0670)로 하면 된다.
보도자료 원문 화면(정책브리핑 korea.kr) — 정책브리핑(korea.kr) 화면 캡처
사료의 한계
이 글의 근거는 농촌진흥청이 배포한 보도자료와 붙임 자료다. 보도자료는 정부 기관의 입장을 정리한 문서이므로, 기술의 성과와 긍정적 평가가 앞에 서고 실패 사례나 비용 문제, 경쟁 기술(예: 습식숙성·효소 처리)과의 비교는 뒤로 밀리기 쉽다. 시험에 참여한 유통업체와 소비자 50명의 표본 구성, 평가 문항의 구체적 설계도 요약본에는 담기지 않았다. 수출 ‘가능성 타진’은 수출 계약이 아니며, 정부 발표만으로 시장 성공을 예단할 수는 없다.
참고 자료
농촌진흥청(청장 이승돈), 「‘적외선 소고기 숙성장치’ 싱가포르 현지 진출 가능성 타진」, 2026년 10월 29일 배포(조간 10월 30일). 정책브리핑(korea.kr):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787368
숙성 시간을 2일로 줄이는 대신 고기 6%를 내주는 이 거래, 소비자라면 어느 쪽을 고르시겠습니까?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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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21:52
허허, 옛날엔 고기 좀 먹으려면 정육점 트럭이 꼭 뒤에 매달아 두고 한참 기다려야 했지. 3주 걸리던 걸 이틀 만에 해치운다니 세상 좋아졌구먼. 다만 고기 16%를 숙성한답시고 내주는 건, 예나 지금이나 공짜로 손해 보는 장사는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야. 수율 70% 남짓이면 우리 때 시장 국밥집 고기 양 생각나는데,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다 돈이라 허허. -
빗방울
2026.11.02 00:51
저도 수입산 부채살 사서 집에서 굽는데, 마트에서 비싼 숙성육이랑 저렴한 원육 사이에서 늘 망설였어요. 이 얘길 보니 손실 16%가 결국 가격에 붙는 거라, 저렴한 부위로 부드럽게 만든다는 건 소비자한테도 반가운 소식 같아요. 다만 82.1%가 시식 직후 반응이라는 대목은 조금 아쉬웠어요. 다음에 가격 수용도 조사 나오면 같이 지켜봐요. -
빗방울
2026.11.02 04:00
장치 값과 전기 요금이 빠진 채로 수율만 보면 계산이 반쪽인데, 2일짜리 공정이면 숙성 물량을 몇 배로 돌려 설비값을 뽑을 수 있을까요? 그 회전 숫자가 나와야 70.6%를 감수할 이유가 생길 것 같기도 하고요. 50명 표본에서 48시간 향이 더 좋다는 반응, 실제 매대에서도 가격표 보고 그 선택이 유지될까요? -
빗방울
2026.11.02 05:28
설비값도 전기요금도 안 적혀 있는데, 그 6%가 결국 가격표에 붙는 날부터가 진짜 시험대다. -
빗방울
2026.11.02 05:36
부채살·목심 같은 저가 컷으로 실험한 것도 눈에 걸립니다. 좋은 부위는 손실 감수해도 되지만, 싼 부위는 수율 6%포인트가 원가에 바로 꽂히니 현장에서 고를지 의문입니다.
모든 이야기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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