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COMMUNITY모든 이야기

공실 54.4%인 강남역 — 임대료가 안 내려가는 상권의 구조

빗방울 2026.11.02 12:26 8분 읽기 조회 19 · 추천 2

2023년 6월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지상으로 올라서면 건물마다 내걸린 임대문의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1층 상가 세 칸이 모두 비어 있는 건물도 있었다.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 명을 넘는다는 강남대로에서, 간판 대신 임대 안내문을 단 1층 점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조선비즈가 같은 달 15일 전한 르포는 이 장면에서 출발해, 강남역에서 9호선 신논현역 방향으로 약 500m 구간의 1층 상가 57곳 가운데 영업 중인 곳이 31곳, 곧 54.4%에 그쳤다고 기록했다.

숫자로 잡힌 한 거리의 초상

목격과 통계는 방향이 같았다. 한국부동산원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 자료에서 강남대로 상가 공실률은 2023년 1분기 11.6%로, 직전 분기보다 0.8%포인트 올랐다. 반대로 명동은 43.5%에서 37.6%로, 신촌·이대는 9.1%에서 6.9%로 내려갔다. 서울숲처럼 새로 뜬 상권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해 가는 사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번화가의 공실률은 홀로 뒤로 갔다. 회복의 계절에 유일하게 식지 않은 거리였던 셈이다.

강남역이라는 땅

강남은 한자로 ‘강의 남쪽’을 뜻하는 이름으로, 한강 이남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강남역은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신분당선이 교차하는 환승 거점이며, 강남대로를 따라 사무실과 상가, 학원, 병원, 유흥시설이 몇 겹으로 겹쳐 있는 곳이다. 출구 번호 하나가 곧 상권의 얼굴을 바꾼다는 말이 통하는 지역이고, 몇십 미터만 걸어도 임대료의 층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 거리의 공실은 보통의 상권 침체와 읽는 법이 다르다. 사람이 없어서 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넘치는데 점포의 문턱이 높아서 비는 것이다. 르포가 확인한 것도 그 지점이다. 임대 안내문이 붙은 가게는 손님이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이 아니라,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길 위에 있었다.

s_Gangnam-station-entrance-12-20181121-143234.jpg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2번 출입구, 뒤편으로 상가 간판이 이어진다 — LE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왜 비었나 — 임대료라는 고정비

업계가 첫 번째로 꼽는 원인은 임대료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당시 매물로 나온 강남대로 1층 전용면적 168㎡(51평) 상가는 보증금 10억 원, 월 임대료 5,000만 원이었다. 임대료와 별도로 관리비가 월 수백만~수천만 원 붙는다. 통계로도 강남대로의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2023년 1분기 1㎡당 10만 6,900원으로, 강남 평균(5만 7,500원)의 두 배였고, 서울에서는 1㎡당 18만 9,200원인 명동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여기에 업종 규제의 완화가 겹친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강남역이 “유동인구가 많아 수요가 뒷받침되는 데다 일반적인 상권과 달리 웬만한 업종은 허가가 나는 곳”이라고 짚었다. 허가가 잘 나고 사람이 많으면 임대인 입장에서는 굳이 값을 내릴 이유가 없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매출이 나도 고정비가 남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두 사람의 계산이 어긋나는 구조다.

나간 업종, 들어오지 못한 업종

기사가 이름을 밝힌 사례는 화장품과 신발이다. 2015년 리뉴얼 오픈한 에스쁘아 강남점은 2023년 5월 24일 영업을 종료했고, 10번 출구 인근의 신발 멀티숍 슈마커도 그 전해 말 강남점의 문을 닫았다. 자본력이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철수는 이 상권의 문제가 개인 점포의 생존 문제가 아니라는 신호로 읽힌다. 다만 어떤 업종이 그 자리를 새로 채웠는지에 대한 통계는 이 기사에 담겨 있지 않다. 업종 구성의 변화를 수치로 확인하려면 별도의 자료가 필요하다.

반전 — 죽은 상권이 아니라, 비싼 상권

통념과 어긋나는 대목은 여기다. 보통 공실이 늘면 상가 가치가 떨어지고 임대료도 따라 내려간다. 그런데 강남역에서는 그 사슬이 작동하지 않는다. 고준석 대표는 “보통은 공실이 늘어날수록 상가 가치가 떨어지지만, 강남역 상권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며 “강남역 건물주들은 자본력이 있어 공실에 큰 타격이 없다”고 말했다. 중개업계도 “공실이 발생한다 해도 임대료를 내리는 건물주는 찾기 힘들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 거리의 공실은 ‘상권의 죽음’이 아니라 ‘낮은 회전율’에 가깝다. 비어 있는 시간은 길어지지만, 그 시간을 버티는 비용을 임대인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은 조정되지 않는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의 진단도 같은 방향이다. “임대료가 높다 보니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소비자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사람은 많지만, 그 사람들이 굳이 여기서 소비할 이유는 줄어들었다.

한국 상가 임대 구조를 읽는 법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한국 상가 임대의 기본 구조를 알아야 한다. 먼저 보증금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돌려받는 돈이지만, 계약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사실상 건물주에게 무이자로 맡긴 자금이다. 월세는 매달 나가는 고정비이고, 관리비는 임대료와 별도로 붙는다. 권리금은 기존 임차인이 확보한 장사 자리와 시설, 단골에 대해 새 임차인이 따로 치르는 돈으로, 법적으로 보호 장치가 있어도 협상의 영역이 크다.

공실률은 전체 점포 중 비어 있는 비율이다. 다만 공실률이 조금 올랐다고 해서 곧 임대료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임대인이 버틸 자금이 있으면 시세를 유지한 채 빈 점포를 오래 들고 가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역 상가의 공실 54%는 매출이 아니라 그 버티는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다른 거리와 비교하면

같은 시기 서울 안에서도 방향은 갈렸다. 명동은 여전히 높은 공실률이었지만 전 분기보다 5.9%포인트 빠르게 내려갔고, 신촌·이대도 2.2%포인트 개선됐다. 강남역만 0.8%포인트 올랐다. 기사는 성수동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조 사례로 언급하면서, 상권 자체의 특색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실었다. 특색이 곧 임대료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관점이다. 다만 임대료와 공실률을 같은 기준으로 맞춘 다른 지역의 상세 수치는 이 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이 기사가 말하지 않는 것

르포는 2023년 상반기의 한 시점을 찍은 사진이다. 인용된 진단은 부동산 중개업계와 상권 컨설팅 업계의 시각에 기대고 있어, 건물주 쪽의 사정이나 소상공인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게 담겼다. 공실의 원인을 ‘임대인의 고집’으로만 정리하면, 유동인구의 소비 패턴 변화나 온라인 소비의 확산 같은 더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 또 1층 57개 점포라는 표본은 거리 전체를 대표하는 값이 아니라, 한 구간을 걷고 센 기록이라는 점도 함께 읽어야 한다. 이후 이 거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이 기사만으로는 알 수 없다.

독자에게 묻습니다

사람이 가장 많이 지나가는 거리에 가게가 가장 많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임대료를 낮춰서 채우는 것이 답인지, 아니면 그 가격을 지불할 만한 새로운 용도를 찾는 것이 답인지.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비싼데 비어 있는’ 가게를 본 적이 있다면, 그 자리는 왜 채워지지 않았을까.

참고 자료

모든 이야기1451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글쓰기
총 1451개의 이야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