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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일,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 체인으로 불리던 던햄스(Debenhams)가 청산을 발표했다. 그날 밤 124개 매장이 거의 동시에 운영을 멈췄다. 상점 단위로 보면 하나의 공실 통계가 아니라, 도시마다 하나씩 있던 '그 거리의 앵커'가 사라진 사건이었다. 4년이 지난 2024년, 부동산 컨설팅 회사 세빌스(Savills)가 3분기 보고서에서 그 자취를 세어 내놓았다.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5%는 새 임차인이 들어왔거나 계약이 확정됐고, 4분의 1가량은 용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3분의 1가량은 여전히 비어 있다.

숫자로 본 영국 상가의 2024년 3분기

세빌스가 정리한 이번 분기의 핵심 수치는 이렇다. 전국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영국의 도심 상가 거리 일반을 가리키는 말)의 평균 임대료는 최근 4개 분기 평균 주당 27.77파운드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 대비 0.4% 오른 수치지만, 5개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이 이어진 끝의 값이다. 부동산 컨설팅사 PMA가 집계한 미드 마켓 상위 임대료는 27.80파운드로 2023년 대비 0.9% 올랐다. 두 기관의 숫자가 거의 붙어 있다는 점은, 적어도 영국 주요 상권에서 임대료가 '바닥을 다지고 조금씩 위로' 가는 국면이라는 신호로 읽힌다.

공실률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 하이스트리트 공실은 2023년 말 17.7%에서 이번 분기 17.6%로 사실상 제자리였고, 쇼핑센터 공실은 같은 기간 14.0%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방문객 수(풋폴)도 3분기에 하이스트리트가 0.5% 늘고 쇼핑센터가 1.2% 줄어드는 데 그쳤다. 세빌스는 이 정도 변동은 계절성과 공휴일 배치 탓이라고 잘라 말한다.

영국의 상가 임대 제도 — 보증금도 권리금도 없는 계약

한국 독자가 이 숫자를 읽으려면 먼저 제도부터 알아야 한다. 영국 상가는 대부분 리스홀드(leasehold, 건물만 장기 임차) 또는 프리홀드(freehold, 토지와 건물을 함께 소유) 구조 위에서 '상업용 임대차(commercial lease)'로 거래된다. 임차인은 보통 5년에서 15년 단위의 계약을 맺고, 갱신 시점에는 '업계 관행 임대료(open market rent)'로 다시 협상한다. 한국의 전세보증금처럼 목돈을 맡기는 구조가 아니고, 매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 프리미엄을 받는 권리금 제도도 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신 임차인이 나중에 계약을 중도에 깨면 남은 기간 임대료를 책임지는 조항이 붙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세빌스 보고서는 임대료 수준과 공실률, 투자 거래액만 다룰 뿐 리스 구조나 계약 관행을 설명하지 않는다. 위 제도 설명은 영국 상업용 부동산의 일반적 배경이며, 이번 기사의 내용이 아니다. 즉 '왜 영국은 보증금 없이 계약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이 보고서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업종 구성 — 2만 8,543개가 문을 열고 2만 5,115개가 닫혔다

영국 유통 데이터 기업 LDC(Local Data Company)의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전국 유통 공간에서 새로 문을 연 점포는 2만 8,543곳, 닫은 점포는 2만 5,115곳이었다. 순감은 3,428곳. 숫자만 보면 '3천 개 넘게 사라졌다'이지만, 세빌스는 이 순감이 전년 동기보다 16% 개선됐고, 무엇보다 전국 공실률을 끌어올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왜일까. 닫힌 점포들이 하이스트리트나 쇼핑센터가 아니라, 단독 매장이나 소규모 근린 상가(parade) 쪽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영국의 상권 지도는 '도심 상가가 무너지는 중'이 아니라 '강한 위치와 약한 위치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는 중'으로 읽어야 한다. 세빌스도 임대료가 주요 상권과 공실이 높은 2차 상권 사이에서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명시했다.

1제곱미터가 아니라 '쓰임'이 바뀌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공실의 질이다. 세빌스는 현재 빈 점포 가운데 하이스트리트 32.8%, 쇼핑센터 38.9%가 '3년 이상 비어 있는 장기 공실'이라고 밝혔다. 3년 넘게 임차인이 없는 공간은 두 가지 경우다. 인허가 절차가 길게 늘어지고 있거나, 아니면 원래 용도로는 더 이상 쓸 수 없어 용도 전환을 기다리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실제 '운영 가능한 공실'은 17.6%라는 표시보다 낮을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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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영국 서머싯주 토턴(Taunton) 노스스트리트의 던햄스 매장. 폐점 뒤 판자로 막힌 채 남아 있었다 — Geof Sheppard,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지점에서 통념이 뒤집힌다. '영국 상권이 죽었다'는 진단은 공실률 하나만 보면 맞아 보이지만, 세빌스의 데이터는 그 공실의 상당 부분이 이미 다른 용도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던햄스 옛 매장의 4분의 1가량이 실제로 용도를 바꿨다는 대목이 그 증거다. 쇼핑센터에서조차 3년 이상 빈 공간이 38.9%라는 것은, 오히려 '용도 전환의 대기열'이 그만큼 길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래서 왜 이런 변화가 생겼나 — 재택근무와 금리의 두 축

세빌스가 직접 제시하는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하이브리드 근무(hybrid working)다. 보고서는 '재택과 사무실 출근이 섞인 근무 방식이 정착하면서 도심은 2019년 수준의 유동인구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즉 풋폴 회복을 기다리는 전략 자체가 틀렸다는 뜻이다. 둘째는 금리다. 영국 중앙은행은 2024년 9월 기준금리를 5%로 동결했고, 8월의 0.25%포인트 인하는 4년 만의 첫 인하지만 대출 비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세빌스는 소비자 신뢰가 '10월 예산안 발표 전까지 취약하다'고 진단하며, 가계 저축률이 2024년 상반기 10%까지 올라 장기 평균 7.7%를 웃돈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임대료가 오르는데 공실이 줄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차를 원하는 사업자는 '잘 팔리는 위치'에만 몰리고, 그렇지 않은 위치는 협상 대상에서 빠진다. 세빌스는 이를 '양극화(polarisation)'라고 부르며, 투자 시장의 가격 차이도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한국과 비교 — 대구 동성로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한국에도 비슷한 처지의 상권이 있다. 대구 동성로는 수년째 높은 공실률과 청년 창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이 함께 거론되는 대표적인 도심 상권이다. 두 곳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대형 앵커 점포가 빠지면서 유동인구가 줄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소규모 식음료나 체험형 매장이라는 점이다.

다른 점은 계약 구조에서 갈린다. 한국은 보증금과 권리금이 시장 가격의 일부로 작동하기 때문에, 점포를 비워 두는 비용이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다르게 배분된다. 반면 영국은 계약 기간이 길고 보증금이 없어, 임대인이 공실을 '버티는' 유인이 상대적으로 크다. 세빌스가 '3년 이상 공실'을 따로 집계하는 이유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이 비교는 제도 일반론이며, 이번 보고서가 한국 상권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사료의 한계 — 이 글은 누구의 시각인가

이 보고서는 세빌스가 자사 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낸 마케팅 성격의 리서치다. '임대료가 5개 분기 연속 올랐다'는 서술은 세빌스가 중개한 신규 계약에 기반하고 있으며, 보고서 스스로 '당연히 잘 팔리는 위치 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인정한다. 즉 전국 평균이 아니라 '세빌스가 중개한 계약의 평균'으로 읽어야 한다. 반면 공실률과 LDC·CRR(유통 연구센터)의 개폐점 수치는 외부 데이터라 상대적으로 중립적이다. 투자 대목은 더 조심해야 한다. 3분기 쇼핑센터 거래액이 1억 7,100만 파운드에 그쳤는데도 '연간 20억 파운드 달성이 가능하다'고 전망하는 것은, 매도자와 중개사에게 유리한 서술이다.

독자에게

영국 상권의 공실 17.6%는 '몰락'의 숫자가 아니라 '대기'의 숫자에 가깝다. 문제는 그 대기가 3년, 5년으로 늘어날 때다. 여러분 동네에서 오래 비어 있는 큰 건물을 떠올려 보시라. 그 건물은 새 임차인을 기다리는 중인가, 아니면 애초에 다른 용도로 바뀌어야 하는 건물인가. 그리고 그 판단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고 있는가.

참고 자료

  • Savills, 「Spotlight: Shopping Centre and High Street – Q3 2024」, 2024년 10월 31일 — https://www.savills.co.uk/research_articles/229130/368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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