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흙과 마른 풀잎, 그늘의 구멍가장자리에 어린 웜뱃 한 마리가 앞발을 디디고 앉아 있다. 상체는 한 마리의 작은 몸통인데, 뒷다리보다 앞다리가 훨씬 굵고 발톱은 몸 폭을 거의 닮을 만큼 길다. 왼쪽 어둠 속에는 성체의 털이 반쯤 걸쳐 보인다. 몸길이 1미터 안쪽, 무게는 다 자라면 20~35킬로그램에 이르는 유대류의 유년기다.
무엇을 찍었나
호주 태즈메이니아주 마리아섬의 보통웜뱃(Vombatus ursinus tasmaniensis) 새끼다. 태즈메이니아 아종은 본토 아종보다 몸집이 조금 크고 털이 더 길다는 점으로 구분된다. 사진 속 새끼는 아직 갓 나온 상태를 지나 어미의 굴 주변을 배회하는 단계로 보이고, 화면 왼쪽 테두리에 잘린 성체가 붙어 있다.
마리아섬의 어린 보통웜뱃 — Charles J. Sharp,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누가 언제 만들었나
영국 사진가 찰스 J. 샤프(Charles J. Sharp)의 야생 촬영물로, 그는 스스로 소유한 작업(own work)임을 명시하고 자기 사이트 sharp photography를 출처로 달았다. 4012×3491픽셀 원본을 위키미디어 공용이 CC BY-SA 4.0 조건으로 배포한다. 장비나 촬영 일자에 대한 정보는 이 사진의 서술문에 없다.
이 몸의 설계도 — 땅을 파는 기계
웜뱃과 유대류의 차이 가운데 사진에서 바로 읽히는 것은 앞발의 비율이다. 앞다리 발톱은 굴을 파는 삽처럼 굵고, 어깨 근육이 붙는 뼈가 넓게 자리한다. 웜뱃은 앞발로 흙을 긁어내고 뒷발로 밀어내며, 굵은 꼬리는 밀어내기 힘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이 조합으로 길이 20미터가 넘는 굴을 파고, 굴 입구로 들어온 포식자에게 뒷부분의 단단한 골반 판을 들이대 버티는 방어를 한다.
또 하나는 문장이 지탱하는 이빨이다. 설치류처럼 앞니가 계속 자라는 구조를 갖지 않고 두 개의 위쪽·아래쪽 앞니만 있어, 뿌리에서 계속 자라는 치아로 지하의 거친 뿌리를 갈아낸다. 유대류 가운데 이와 비슷한 치아 배열로 땅을 파는 생활을 하는 종은 드물고, 웜뱃은 호주 대륙에서 그 자리를 단독으로 차지한 경우로 설명된다.
대사의 반전 — 가장 느린 몸이 가장 많은 배설물을
웜뱃의 대사율은 같은 크기의 다른 포유류보다 낮다. 먹이인 풀과 뿌리의 소화는 매우 느리게 이뤄지고, 장 통과 시간은 며칠 단위로 기록된다. 이 느린 소화가 유명한 결과를 만든다. 장에서 수분이 거의 다 흡수된 배설물은 알갱이로 뭉쳐 나오는데, 2021년 발표된 연구는 장 벽의 탄성 차이가 배설물을 모서리가 여덟 개인 각진 형태로 눌러 만든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사진이 보여주는 동물과 이 소문은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둘 다 같은 느린 몸에서 나온 것이다.
이 사진이 보여주지 않는 것
첫째, 사진은 흙 위의 한 순간이다. 굴 내부의 구조도, 어미와 새끼의 관계도, 이 동물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 왼쪽 성체의 위치는 굴 입구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촬영 각도 때문에 거리와 방향은 확정할 수 없다. 둘째, 배경의 어둠은 굴 안쪽일 수도 있지만 그늘진 흙더미일 수도 있다. 셋째, 색과 노출은 촬영자가 후처리했을 가능성이 있고, 사진 서술문에는 그 과정이 적혀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이 개체의 나이는 추정일 뿐 측정된 값이 아니다.
독자에게
이 어린 몸의 가장 큰 특징은 사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위가 아니다. 발톱과 어깨가 땅을 파기 위한 구조라면, 그 몸이 사는 굴은 어떤 식으로 지탱되고 유지될까. 굴 속에서 새끼는 무엇을 배우며 자라는가. 사진 밖의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시면 좋겠다.
참고 자료
- 원본: Wikimedia Commons — Common wombat juvenile, Maria Island
- 저작자: Charles J. Sharp (Sharp Photography), CC BY-SA 4.0
- 분류: Vombatus ursinus tasmaniensis, 마리아섬(태즈메이니아)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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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6 07:37
어미 등짝만 걸치고도 삽처럼 굵은 앞발을 세워 놓은 게, 굴 속에선 이 작은 몸이 제일 단단한 존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야기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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