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4일, 뉴욕의 부동산 개발사 소어 에퀴티스(Thor Equities)는 시카고 루프(Loop, 시카고 도심의 고층 업무지구)의 모퉁이 건물 하나를 되샀다고 발표했다. 주소는 17 E. Monroe St. — 1871년 대화재 이후 다시 세워진, 시카고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 중 하나인 팔머 하우스 힐튼(Palmer House Hilton)의 1층과 지하다. 면적은 6만 8,000제곱피트(약 6,300㎡). 값은 520만 달러였다.
같은 공간은 2015년 소어가 리파이낸싱할 때 감정가 9,260만 달러로 평가됐다. 2021년 회사가 6,200만 달러 규모의 상가 담보대출을 갚지 못하면서 시작된 포클로저(foreclosure, 담보 부동산을 경매로 넘겨 채권을 회수하는 절차) 끝에, 2023년 특별서비서 LNR 파트너스가 법원 경매에서 2,950만 달러에 가져갔다. 그리고 3년 뒤 소어는 그 건물을 자기 손에 다시 넣었다. 7월 말 온라인 경매의 시작가가 190만 달러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거래는 팔 사람에게도 살 사람에게도 '정리'에 가까웠다.
숫자만 보면 화려한 부동산 투기극이지만, 이 사건의 진짜 내용은 건물이 아니라 건물 아래 1층에 있다. 로비의 샹들리에가 아니라, 그 로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나치는 유리 쇼윈도들의 이야기다.
35%만 열린 유리문
소어가 되찾은 6만 8,000제곱피트 가운데 실제로 임차인이 들어와 있는 면적은 35% 수준이다. 모자 브랜드 리즈(Lids), 신발 브랜드 크록스(Crocs), 원단 업체 무드 패브릭스(Mood Fabrics) 같은 몇 안 되는 체인점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모닝스타의 부동산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푸트로는 2026년 6월 답사 후 '거의 완전히 비어 있었다. 순수 상가 공간은 사실상 황량했다'고 전했다.
2025년 기준 루프 전체 상가 공실률이 약 28.5%(스톤 리얼 에스테이트 집계)였으니, 팔머 하우스의 35% 임차율은 업무지구 평균보다도 한참 나쁘다. 시카고 도심 한복판, 지하철역과 백화점이 도보 거리에 있고 하루 수천 명이 호텔 로비를 지나는 자리인데도 그렇다.
시카고 먼로 스트리트의 팔머 하우스 힐튼 정문. 유리문 안쪽으로 1층 상가가 이어지고, 오른쪽 쇼윈도는 불이 꺼진 채다 — Tony Hisgett, CC BY 2.0 (Wikimedia Commons)
미국 상가 임대는 왜 '세 놈의 임대료'로 불리나
한국 독자에게 이 35%라는 숫자가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임대차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가는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권리금이라는 세 축으로 움직인다. 권리금은 장사가 되는 자리, 즉 '자리 자체의 가치'를 돈으로 사고파는 관행이다. 문을 닫는 임차인이 다음 사람에게서 그 값을 받고 나가는 구조이므로, 임차인에게는 나가는 순간 회수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는 축이 다르다. 대표적인 형태가 트리플 넷 리스(triple net lease, NNN)다. 임차인이 월세 외에 건물세(property tax), 보험료, 공용부 유지비까지 세 가지를 따로 부담한다. 여기에 영업이 잘 되든 안 되든 5년, 10년 단위로 계약 기간을 채워야 하고, 중도 해지에는 위약금이 붙는다. 상가 임대차에서 임차인이 지는 위험이 한국보다 훨씬 크고, 그만큼 임차인은 유동 인구와 앵커 테넌트를 훨씬 까다롭게 본다.
임대인 쪽 사정도 다르다. 소어가 팔머 하우스를 2005년에 인수한 뒤 호텔, 상가·사무실·주차장, 기계설비 구역의 세 필지로 쪼갠 것도 이런 구조에서 나온 선택이다. 필지를 나누면 각각을 따로 담보로 잡고, 따로 CMBS(상업용 부동산 저당증권)로 유동화해 팔 수 있다. 한국의 상가 건물주가 통상 건물 하나를 통째로 담보로 잡는 것과는 운용 방식이 다르다. 다만 이번 기사에서 팔머 하우스의 개별 점포가 어떤 형태의 리스(순수 NNN인지, 임대료와 일부 비용만 받는 그로스 리스인지)로 계약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위의 NNN 설명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일반의 배경 설명이지, 이 건물의 계약 조건이 아니다.
남은 세입자가 들려주는 것
35%라는 임차율은 흔히 '상권이 죽었다'로 읽힌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임차인의 이름을 보면 그림이 조금 달라진다. 리즈는 모자, 크록스는 신발, 무드 패브릭스는 원단이다. 셋 다 공통점이 있다. 가격대가 낮고, 재고를 매장에 쌓아야 하며, 인터넷으로 사면 실물 확인이 필요한 물건을 판다.
팔머 하우스가 있는 모퉁이는 시카고의 대표적인 사무실·호텔 밀집 구역이다. 오전에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 오후에는 관광객, 저녁에는 호텔 투숙객이 지나간다. 이런 유동 인구는 화장품이나 구두를 충동구매하는 사람은 많아도, 원단을 재단하러 오거나 신발 창고를 뒤지러 오는 사람은 아니다. 즉 이 상가는 처음부터 '로비를 지나는 사람'에게 팔 수 있는 물종으로 채워져 있었고, 그 물종이 온라인으로 빠져나가면서 가장 먼저 비어버린 것이다.
소어가 발표한 계획은 그래서 '다른 업종을 끌어온다'는 한 줄로 요약된다. 회사 CEO 조 싯은 '우리는 이 자산을 잘 안다. 전략적 리싱과 재포지셔닝을 통해 상당한 가치를 끌어낼 기회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업종을 노리는지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임대료가 아니라 '필지'가 문제였다
여기서 통념이 한 번 꺾인다. 팔머 하우스 상가가 비어 있는 이유를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만약 그랬다면 임대인이 값을 내려서라도 채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 자산의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소유 구조였다.
소어는 2005년 인수 후 건물을 세 필지로 쪼갰다. 2018년에는 이 호텔을 3억 3,320만 달러 규모의 CMBS 대출로 묶어 수십 명의 투자자에게 팔았다. 그런데 2020년 대출이 부도 나면서 문제가 터졌다. 채권자들은 소어가 필지를 쪼갠 사실을 제대로 고지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2024년 뉴욕 연방법원에서 JP모건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즉 담보물을 회수하려면 어떤 필지까지 넘겨받는 것인지부터 법정에서 다투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사이 상가는 주인 없는 공간이 됐다. 호텔 본체는 2022년 포클로저 판결까지 났지만 별도의 라이선스 계약 분쟁 때문에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고, 2026년 1월에는 대출이 '회수 불가(non-recoverable)'로 선언되며 서비서가 이자 지급을 중단했다. 건물 전체가 소송 서류에 묶여 있는 동안, 1층 유리문을 채울 사람을 찾을 주인은 사실상 없었다. 상권의 몰락이 아니라 소유권의 교착이 빈 점포를 만든 것이다.
이 사건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같은 일이 시카고에서 한 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루프에서는 2018년 가격보다 83% 낮게 팔린 옛 그루폰 본사, 95% 할인으로 거래된 스트리터빌의 의료 오피스 빌딩, 대규모 할인으로 넘어간 웨스트 루프 오피스 타워 같은 거래가 잇따랐다. 팔머 하우스 상가의 520만 달러는 그 흐름의 한 사례일 뿐이다.
이 '헐값 매수' 흐름에는 공통된 계산이 있다. 새로 짓는 비용보다 기존 건물을 사서 고치는 비용이 싸고, 도심에는 이미 지하철·전기·수도·소방이라는 기반시설이 깔려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 시카고에서 벌어지는 일은 '상권의 종말'이라기보다 자산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 가깝다. 값이 싸진 만큼 새로운 주인은 예전 주인이 감당하지 못했던 리모델링과 유치 비용을 쓸 여유가 생긴다.
한국의 상가와 겹쳐 보이는 지점
한국에도 이 구조와 닮은 자리가 있다. 서울 을지로입구와 명동 사이, 대형 호텔과 백화점이 늘어선 구간의 지하 상가와 1층 점포들이다. 겉으로는 유동 인구가 넘치지만, 실제로 문을 연 점포를 세어 보면 리스 갱신을 포기한 자리가 눈에 띈다. 임대료가 높아서라기보다, 건물주가 재개발이나 용도 변경을 기다리며 빈 채로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같은 점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기대는 상가의 취약함이다. 다른 점은 그 빈자리를 메우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권리금이라는 제도가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에 '자리값'이라는 완충 지대를 만들어, 주인이 바뀌어도 장사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그런 완충 장치가 없어서, 소유권이 흔들리면 임차인은 계약 기간을 들고 나가고 공간은 그대로 남는다. 팔머 하우스의 35%는 그 차이가 만들어낸 숫자일 수 있다.
이 기사를 읽을 때 염두에 둘 것
이번 사건을 다룬 기사들은 대부분 부동산 전문 매체의 보도다. 크레인스 시카고 비즈니스는 소어의 인수를 다루면서 '할인 매수'라는 프레임을 썼고, 더 리얼 딜은 소어가 '클리어런스 세일 가격'에 건물을 되찾았다고 표현했다. 이 매체들은 상업용 부동산 거래와 소송을 주로 다루므로, 관점이 자연히 자산 가격과 소유권 분쟁에 맞춰져 있다. 1층에서 실제로 장사하는 임차인들의 목소리, 혹은 이 공간을 찾던 시민들의 경험은 이 기사들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숫자의 시점이다. 9,260만 달러는 2015년 감정가이고, 2,950만 달러는 2023년 경매 낙찰가이며, 520만 달러는 2026년 9월의 거래가다. 서로 다른 시점의 값을 나란히 놓으면 '95% 폭락'처럼 보이지만, 각 값이 매겨진 맥락(담보 평가, 법원 경매, 사적 거래)은 서로 다르다. 기사에 명시된 값만 인용했고, 그 외의 추정은 하지 않았다.
독자에게
팔머 하우스의 1층은 지금도 열려 있다. 다만 그 안에 들어설 다음 가게가 무엇이어야 이 자리가 다시 살아날지는 아무도 답을 내지 못했다. 호텔 로비를 지나는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것은 커피와 기념품뿐일까. 아니면 이 건물은 애초에 '상가'가 아니라 '호텔의 부속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일까.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유동 인구는 넘치는데 유리문만 비어 있는 자리가 있나요? 그 자리가 비어 있는 이유는 임대료 때문인가요, 아니면 주인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참고 자료
· Rachel Herzog, 「Palmer House owner takes back hotel's retail space at a big discount」, Crain's Chicago Business, 2026년 9월 8일 — 원문
· Hunter Cooke, 「Thor Equities takes back retail portion of Palmer House at steep discount」, The Real Deal, 2026년 9월 8일 — 원문
· Bisnow Chicago, 「Thor Equities Reacquires Retail Portion Of Palmer House After Losing It To Foreclosure In 2023」, 2026년 9월 — 원문
댓글6
-
빗방울
2026.11.01 01:03
필지를 쪼갠 게 유동 인구보다 더 큰 원인이었다는 대목에서 잠깐 멈칫했습니다. 저는 빈 상가를 보면 늘 임대료부터 의심하는 편인데, 여기선 소유 구조가 먼저였네요. 팔머 하우스 로비는 지나가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열린 쇼윈도보다 불 꺼진 유리가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혹시 필지를 다시 하나로 합치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일까요? -
빗방울
2026.11.01 01:39
35%라는 숫자보다 '필지가 쪼개져서 소송에 묶였다'는 대목에서 멈칫했습니다. 임차율 문제가 아니라 주인이 누구인지부터 법정에서 다투는 상황이라니, 문 닫은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했겠다 싶었어요. 저는 오히려 이 자리가 '호텔 부속 공간'으로 돌아가는 쪽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로비를 지나는 사람을 길게 붙잡을 물건은 커피와 기념품 정도니까요. -
빗방울
2026.11.01 03:56
팔머 하우스 로비는 시카고에 갔을 때 잠깐 들렀던 곳이라 반가웠습니다. 그때 천장 그림만 올려다보고 1층 쇼윈도는 세어보지 않았는데, 그 자리가 이렇게 오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니요. 무드 패브릭스가 남아 있는 게 특히 흥미롭습니다. 재단하려 온 사람만 들어오는 가게라면, 오히려 로비 유동인구와 상관없이 자기 손님을 지키고 있는 셈이니까요. 앞으로 들어올 가게가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을 겨냥한다면 이 자리도 다시 채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빗방울
2026.11.01 04:10
읽다가 멈칫한 건 '임대료가 아니라 소유권'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주인이 소송에 묶여 있으면 값을 내릴 사람조차 없다는 말이 생각보다 무섭네요. 혹시 이런 경우엔 상가를 매각하지 않고 호텔 쪽에서 흡수해 로비나 연회 공간으로 쓰는 게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까요? -
빗방울
2026.11.01 06:12
권리금 이야기에서 멈칫했습니다. 미국은 그 완충 지대가 없어서 주인이 흔들리면 유리문이 그대로 남는다는 대목이, 을지로 지하상가를 걸을 때 보던 셔터 내려진 자리들과 겹쳐 보이네요. 저는 저 빈 상가들이 임대료 인하만 되면 바로 차겠거니 했는데, 주인이 법정에 묶여 있는 동안은 값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혹시 소유권 분쟁이 끝나면 커피숍이나 팝업 같은 짧은 임대가 먼저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지도 궁금합니다. -
빗방울
2026.11.01 07:24
값이 9200만→520만으로 떨어졌다니까 상권이 죽은 줄 알았는데, 실은 필지 쪼개고 CMBS로 묶은 소유구조가 발목 잡은 거였네 ㄷㄷ 로비 지나가는 사람 상대로 원단이랑 신발 파는 매장만 남은 것도 납득됨. 문 닫은 게 손님 없어서가 아니라 주인이 없어서라니 좀 씁쓸하네 ㅇㅇ
모든 이야기1478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