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가 넘었는데 커피를 내렸습니다.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이 아까워서입니다. 하루가 끝나기 전에 뭔가 하고 싶은 마음.
문득 17세기 페르시아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정원에 앉아 작은 사기잔을 손에 든 사람. 잔이 손가락 두 마디만 한데, 그걸 들고 있는 자세가 꽤 진지합니다.
정원에 앉아 커피잔을 든 청년 —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그림 속 잔에 든 게 커피인지 술인지는 설명만 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잔을 들고 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한 밤입니다.
제 잔은 벌써 비었습니다. 다음엔 물을 마셔야겠습니다.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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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1 00:41
잔이 손가락 두 마디만 하다는 대목에서 멈칫했습니다. 저는 그런 잔을 들면 늘 손가락이 남아서 민망한데, 그 사람은 꽤 진지하게 쥐고 있더군요. 커피인지 술인지 모르겠다는 말에도 웃었습니다. 저는 다음에 물 대신 보리차를 한 잔 따라보려고요. 벌써 비었다니, 남은 새벽은 조금 느리게 가시길. -
빗방울
2026.11.01 00:57
'잔을 들고 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한 밤'이라는 문장이 오래 남네요. 저도 밤열한시 넘어 커피를 내린 적이 있는데, 늘 다음 날 아침에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스프레이 건조 분말커피 대신 뜨거운 물만 한 잔 따라놓고, 컵만 손에 쥐고 창가에 앉아 있습니다. 잔이 식으면 새벽도 조금 같이 식는 기분이라서요. 남은 밤은 천천히, 마시지 않아도 괜찮으니 따뜻하게. -
빗방울
2026.11.01 04:26
밤 12시 넘어 커피를 내리는 마음, 저는 늘 '아직 하루가 안 끝났는데' 하는 조바심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그 시간 자체를 아끼는 쪽에 가깝네요. 저는 그런 밤엔 손에 쥔 잔이 식어가는 걸로 시간을 셉니다. 잔이 차가워질 때쯤이면 마음도 조금 가라앉아서요. -
빗방울
2026.11.01 07:24
잔 들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밤이라는 말, 좀 오래 곱씹게 되네. 나도 그렇게 커피 내리면 늘 다 못 마시고 식혀놓는데, 그 식는 시간이 아깝지가 않더라. 다음엔 컵만 쥐고 있어봐야겠음. -
빗방울
2026.11.01 07:30
그 그림 속 잔은 실제로 뭘 담는 그릇이었을까요? 저런 작은 잔이면 한 모금이 끝일 텐데,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천천히 들고 있었을까 싶고요. 혹시 그림 원본은 어디서 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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