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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6일, 영국 패션산업 전문지 드레이퍼스(Drapers)가 반기 결산을 냈다. 올해 1월 영국 전역에서 동시에 법정관리에 들어간 클레어스(Claire's), 러셀 앤 브롬리(Russell & Bromley), LK 베넷(LK Bennett), 디 오리지널 팩토리 숍(The Original Factory Shop). 이어 2월에 퀴즈(Quiz), 5월에 래들리(Radley)와 브랜드앨리(BrandAlley)가 무너졌다. 결과는 3,618명의 일자리 소멸, 그리고 영국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도심 중심 상업거리)에 남은 거의 400개의 빈 점포다.

숫자를 풀어 보면 이렇다. 클레어스가 154곳, 디 오리지널 팩토리 숍이 137곳, 퀴즈 40곳, 러셀 앤 브롬리 23곳, 래들리 21곳, LK 베넷은 매장 9곳과 백화점 내 입점 코너 13곳. 해고 인원은 디 오리지널 팩토리 숍 1,180명, 클레어스 1,335명이 각각 몫을 차지했고, 추가로 300명의 일자리가 위태로운 상태다. 드레이퍼스가 2월에 같은 집계를 처음 냈을 때가 1,567명이었으니, 넉 달 만에 두 배를 넘어섰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사가 '상권이 망했다'는 서사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빈 점포 400개는 사실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 자리에 다른 업종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드레이퍼스는 글 마지막에서 이렇게 쓴다. "브랜드들이 셔터를 내리고 패션이 하이스트리트의 공간을 식음료(F&B) 같은 업종에 내주면서, 패션업체가 재정적으로 버티는 일은 상상력과 존재 이유에 점점 더 달려 있게 됐다." 즉 이 400개의 빈 자리는 소멸의 기록이자 용도 전환의 진행표다.

영국의 상가는 '빌린 땅'이다 — leasehold와 freehold

이런 변화를 한국 감각으로 읽으려면 먼저 영국의 부동산 제도가 낯설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영국은 토지와 건물을 나눠 소유하는 이원 구조가 오래 남아 있다. 프리홀드(freehold, 토지의 완전 소유권)와 리스홀드(leasehold, 장기 임차권)다. 상가의 경우 상당수 매장·건물이 99년이나 125년, 길게는 999년짜리 리스홀드로 거래된다. 임차인은 그 기간 동안 사실상 소유자처럼 건물을 사고팔 수 있지만, 땅에 대한 권리는 프리홀더(지주)에게 있고, 지대(ground rent)와 서비스 차지를 따로 낸다.

한국의 상가 임대차와 비교하면 차이가 선명하다. 한국은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는 전세·반전세·월세의 세계이고, 목 좋은 자리를 얻으려면 앞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주는 관행이 있다. 영국에는 권리금이 제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상업용 임대차는 대개 FRI(full repairing and insuring) 리스로 맺어진다. 임차인이 수리·보험·세금까지 다 부담하는 구조다. 리스 기간은 5년·10년·15년 또는 그 이상이며, 중간에 나가려면 조건이 붙는다. 계약을 끊을 수 있는지 여부는 기사에 나오지 않아 이번 사건과의 직접 연관은 확인되지 않음을 밝혀둔다. 다만 400개의 점포가 한꺼번에 비어도 건물주가 당장 파산하지 않는 이유는 이 구조에 있다 — 점포를 '빌려 쓰는' 쪽이 수리비까지 지는 계약이 흔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보는 이 장소가 바로 러셀 앤 브롬리의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 매장이 있던 거리 일대다. 드레이퍼스는 기사 중간에 "러셀 앤 브롬리의 코번트 가든 매장"이라는 사진 캡션을 달았다. 런던의 대표 관광·쇼핑 지구 한가운데서 수십 년간 신발을 팔던 영국 브랜드가 셔터를 내렸다는 것, 그것이 이 기사의 상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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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번트 가든 마켓의 야외 카페. 패션이 빠진 자리에 식음료가 들어오는 흐름을 보여주는 장면 — mattbuc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왜 지금 무너졌나 — 매출이 아니라 '값'이 문제였다

영국소매협회(BRC)의 경제학자 하비르 딜런(Harvir Dhillon)의 진단이 이 기사의 핵심 수치를 담고 있다. "판매 물량은 버텼는데 판매 금액은 버티지 못했다. 대규모 할인, 높은 비용, 신중해진 소비자 때문에 많은 업체가 더 팔면서도 돈을 못 벌고 있다. 이미 여유가 없던 브랜드들에게는 그것이 결정타였다."

드레이퍼스는 원인을 비용 구조에서 찾는다. 2025년 가을 예산에서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Rachel Reeves)는 고용주 부담 국민보험료를 13.8%에서 15%로 올렸고, 최저임금(내셔널 리빙 웨이지)도 시간당 16~17세 45펜스, 18~20세 85펜스, 21세 이상 50펜스씩 인상했다. 여기에 새 비즈니스 레이트(business rates) 배수가 더해졌다. 비즈니스 레이트는 상가 건물의 임대가치를 기준으로 매기는 지방세로, 한국의 재산세와는 계산 방식이 다르고, 영국 소매업계가 수십 년간 '온라인 업체는 내지 않는다'며 불만을 제기해 온 세금이다.

한 패션업체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가게를 차릴 때 임대료와 임금은 계산에 넣는다. 그런데 그 밖의 운영비가 올라서 인건비에까지 퍼졌다." 남성복 업체 CEO의 말은 더 직설적이다. "비용이 오를 때 잘라서 성공할 수는 없다. 소매업은 유지비가 아주 비싼 사업이다. 정부는 비용을 계속 기업에 밀어넣고 있다. 기업은 은행이 아니다. 그러니 결과는 정해져 있다."

슈퍼드라이(Superdry) 공동창업자 겸 CEO 줄리언 던커턴(Julian Dunkerton)의 진단은 조금 다르다. "지는 것은 특정 비즈니스 모델이다. 업계가 작아진 게 아니다. 옷과 가방은 여전히 같은 양이 팔린다. 문제는 어떻게 파느냐이므로 적응해야 한다." 즉 임대료·세금이라는 외부 비용과, 적응하지 못한 내부 구조가 겹친 것이 이 반기의 풍경이다.

옷가게가 빠진 자리에 들어오는 것

드레이퍼스가 명시한 업종 변화는 하나다. 패션이 식음료(F&B)에 공간을 내주고 있다는 것. 정확한 업종별 비율이나 증가 수치는 원문에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이 방향은 카페·레스토랑이 옷가게보다 높은 임대료를 견딜 수 있는 이유와 맞물린다. 옷가게는 쇼핑객의 '방문 동기'가 필요하지만, 카페는 그 자체가 방문 동기다. 같은 ㎡라도 하루에 몇 번 회전하느냐가 다르다.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대응물이 있다. 명동이나 성수, 홍대처럼 유동인구에 기대는 상권에서도 패션 편집숍이 빠진 자리를 카페·디저트·뷰티 매장이 채운다. 다만 한국은 보증금과 권리금이 그 자리 배분의 첫 관문이라 '누가 들어오느냐'가 자본력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고, 영국은 리스 조건과 비즈니스 레이트, 그리고 지방정부의 용도 허가(planning permission)가 그 관문 노릇을 한다.

반전 — 이 기사는 누구의 시점인가

여기서 한 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드레이퍼스는 패션업계 전문지다. 이 기사의 화자는 대부분 업계 경영자와 애널리스트다. "인지도 높은 오래된 이름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빅 플레이어들이 다 사들이고 있다" 같은 말은 거리보다 업계 안방의 목소리다. 노동조합이나 임차인의 목소리, 혹은 그 3,618명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전환이 하나 있다. 무너진 브랜드 중 래들리와 LK 베넷은 미국 사모펀드 고든 브라더스(Gordon Brothers)가, 러셀 앤 브롬리는 넥스트(Next)가 인수했다. 넥스트는 러셀 앤 브롬리의 지식재산권(IP)을 사들였고, 이미 문을 닫은 매장 중 한 곳은 '넥스트 산하'로 다시 열렸다. 드레이퍼스가 링크로 연결한 기사 제목이 그것을 보여준다. 한 백화점 CEO는 이렇게 비판한다. "사모펀드가 낡은 장사 방식을 사서 되살리려 하고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바로 광기의 정의다."

즉 이 400개의 빈 점포가 전부 비극은 아니다. 브랜드는 죽고 간판과 IP는 사고팔린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매장에서 일하던 사람과 거리의 활기가 가장 먼저 잘려 나간다는 점이다. "패션은 변덕스럽다. 10~20년 전의 대박 이익은 다시 안 나오겠지만 소매업의 자리는 여전히 있다"는 한 신발업체 상무의 마지막 말이 이 기사의 정서를 요약한다.

한국 비교 — 명동과 코번트 가든은 같은 병인가

가장 가까운 한국 사례는 명동이다. 2020년대 초 공실률이 30~50%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들어 관광 회복과 함께 다시 채워진 동네다. 같았던 점은 주력 업종의 교체다. 명동에서도 오래된 패션 매장과 은행이 빠지고 화장품·식음료·체험형 매장이 들어왔다. 달랐던 점은 수요의 성격이다. 코번트 가든은 런던 시민과 유럽 관광객이 섞여 있고,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훨씬 높다. 관광이 꺾이면 명동 쪽이 먼저 흔들린다.

제도적 차이도 크다. 한국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임대료 인상률 상한(5% 수준)이 있다. 영국의 상업 리스에는 그런 일률적 상한이 없고, 계약 개별 조건이 전부다. 그래서 '버틸 수 있는 임차인'과 '못 버티는 임차인'의 갈림길이 제도보다 계약서에 적혀 있다.

사료의 한계

이 기사는 2026년 상반기(1~6월) 집계다. 하반기 실적은 아직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패션 업종만의 집계다. 400개라는 숫자는 영국 전체 하이스트리트 공실의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다. 같은 기간 다른 업종에서 몇 개가 문을 닫았는지, 몇 개가 새로 열었는지는 이 기사로 알 수 없다. 또 400개 중 얼마가 실제로 다시 임대됐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기사는 "빈 유닛"이라는 표현만 쓴다 — 빈 방이 영구적인지 일시적인지 이 자료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둔다.

독자에게 — 당신 동네의 빈 점포는 어떤가

한국에서도 '빈 점포'가 뉴스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숫자가 '상권 몰락'인지 '용도 전환'인지는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보면 갈린다. 명동이 화장품 가게로 채워진 것이 회복인지, 다른 거리의 쇠퇴가 옮겨온 것인지는 누구도 확실히 답하지 못한다. 영국의 400개 빈 자리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아는 동네에서 패션 가게가 빠진 자리에는 지금 무엇이 들어와 있나? 그 자리의 임대료는 누가 올렸나?

참고 자료

드레이퍼스(Drapers), "High street's 2026 administration toll: 3,618 jobs and 400 shops lost", 2026년 6월 26일. https://www.drapersonline.com/news/the-high-streets-half-year-score

이미지: mattbuck / Wikimedia Commons, "London MMB M7 Covent Garden.jpg", CC BY-SA 3.0, 2012년 9월 3일 촬영. Commons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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