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York)는 영국 북부 노스요크셔의 인구 20만 남짓한 도시다. 이 도시의 중심가에 있는 셰임블스(The Shambles)는 14세기 정육점 골목이 그대로 남은 좁은 길로, 지금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 레스토랑이 늘어선 관광 명소가 됐다. 2025년 여름 영국 소상공인 대출 플랫폼 파운딩서클(Funding Circle)이 정리한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영국의 중심 상업거리) 데이터에서 요크는 다른 도시들과 조금 다른 기록을 하나 남겼다. 이 도시만 유일하게 방문객의 지출이 주민의 지출을 넘어섰고, 도심 전체 지출의 40%가 관광객 주머니에서 나왔다. 같은 기간 런던의 점포 공실률은 7.4%, 요크는 9.2%였다. 반면 뉴포트(Newport)는 19%, 브래드퍼드(Bradford)는 18%에 달했다.
영국 하이스트리트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10년째 반복돼 왔다. 그런데 같은 시기의 데이터를 도시별로 쪼개 보면, 몰락과 회복이 아니라 용도가 바뀌는 과정이 보인다. 이 글은 그 변화가 어떤 제도 위에서 일어나는지, 한국의 상가 임대 구조와 무엇이 다른지를 짚는다.
도시마다 갈라진 두 개의 하이스트리트
파운딩서클이 인용한 센터포시티즈(Centre for Cities)의 자료에 따르면, 영국 도심은 국토 면적의 0.1%에 불과하지만 대면 소비 지출의 9.1%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 힘이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런던·케임브리지·옥스퍼드·브라이턴·요크·에든버러 같은 도시는 점포 공실률이 10% 아래로 내려갔고, 뉴포트·브래드퍼드·블랙풀 같은 도시는 5곳 중 1곳이 비었다.
기사가 제시한 상관관계는 단순하다. 지역 소득이 1% 오르면 하이스트리트 공실률은 0.8%포인트 내려간다. 평균 소득이 다른 지역보다 25% 높은 레딩(Reading)과 밀턴킨스(Milton Keynes)는 공실률이 낮고 업종도 다양하다. 반대로 소득이 낮고 소매업만 남은 위건(Wigan), 허더즈필드(Huddersfield)는 대형 교외 쇼핑센터인 메트로센터(Metrocentre)나 메도홀(Meadowhall)로 발길을 빼앗기고 있다. 임대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거리를 찾아올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사러 오는가의 문제라는 뜻이다.
영국의 상가 임대 제도: 리스홀드와 프리홀드
한국 독자에게 가장 낯선 부분이 여기다. 영국의 상가는 대개 두 가지 권리 형태로 나뉜다. 프리홀드(freehold)는 토지와 건물을 영구히 소유하는 권리이고, 리스홀드(leasehold)는 일정 기간(상가의 경우 흔히 10~25년)만 사용권을 사는 방식이다. 상가 임차인은 보통 이 리스홀드 계약의 남은 기간을 사들이는 식으로 들어오고, 계약 갱신 시 임대인이 업워드 온리(upward only) 조항으로 임대료를 올리는 구조가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 왔다.
한국의 전세·보증금·권리금 구조와 비교하면 차이가 선명하다. 한국은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내며, 장사 자체의 가치인 권리금을 따로 거래한다. 영국의 리스홀드 상가에는 한국식 권리금 개념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혀 있지 않고, 대신 남은 리스 기간과 임대차 계약 조건이 자산 가치처럼 거래된다. 이 구조에서는 계약 기간이 짧을수록, 임대인이 조건을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을수록 점포의 장기 투자가 어려워진다.
한 가지 분명히 해둘 점은 이 기사가 임대 제도나 임대료 수준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제도 설명은 영국 상가 시장의 일반적 배경이며, 기사 본문에서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임대료” 관련 서술은 없고, 원인으로 제시된 것은 소득·관광·주거 인구·업종 구성이다.
줄어든 소매, 늘어난 식음료
기사가 강조하는 업종 변화는 세 갈래다. 첫째, 식음료다. 런던·맨체스터·요크에서는 지출의 25% 이상이 식음료 업소로 향한다. 둘째, 뷰티·웰니스다. 맨체스터·뉴캐슬·브라이턴처럼 젊은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네일숍, 바버숍, 피트니스 스튜디오가 늘었다. 셋째, 프리미엄 소매다. 리즈(Leeds)에서는 상점가에서 쓰는 돈 3파운드 중 1파운드가 프리미엄 소매점에서 나갔다.
소비 데이터도 방향을 가리킨다. 영국 소비자 신뢰 조사(딜로이트) 기준으로 2025년 2분기 필수품 소비는 4.6%포인트 줄었지만, 의류·신발은 6.6%포인트, 휴가·호텔은 4.7%포인트, 외식은 2.8%포인트 늘었다. 같은 분기 12개 여가 항목 중 11개에서 지출이 늘었고, 외식(+9.3%포인트)과 술집·바(+9.2%포인트)가 가장 컸다. 반대로 가구·홈웨어(-3%포인트), 대형 가전(-4%포인트), 전자제품(-4.6%포인트)은 줄었다. 집에 들여놓는 물건은 온라인으로, 집 밖에서 경험하는 일은 거리로 이동한 셈이다.
요크의 반전: 손님이 주민보다 많이 쓴다
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요크다. 조사 대상 도시 중 유일하게 방문객 지출이 주민 지출을 넘었다. 도심 지출의 40%가 외부인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 도시의 상권이 지역 소득이 아니라 왕복 여행의 동기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다. 요크는 중세 성벽과 대성당(요크민스터)이라는 관광 자원, 그리고 셰임블스 같은 골목 풍경을 임대료가 아니라 콘텐츠로 쓰는 도시다.
이 지점에서 통념이 한 번 뒤집힌다. “관광지 상권은 관광객이 떠나면 무너진다”는 우려는, 관광객 비중이 높은 요크가 그 시간 동안 낮은 공실률을 유지했다는 사실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적어도 2025년 상반기 데이터에서는 관광 의존이 약점이 아니라 업종 개편의 여력이었다.
[[image:1]]요크 셰임블스의 상점 거리. 14세기 정육점 골목이 지금은 카페와 기념품점으로 바뀌었다 — John M Wheatley,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geograph.org.uk 2971409)
왜 이런 변화가 생겼나: 이커머스와 재택근무
기사가 직접 제시한 요인은 세 가지다. 첫째, 지역 소득이다. 소득이 높은 곳은 공실이 낮다. 둘째, 관광과 문화 자산이다. 셋째, 업종 구성의 다양성이다. 소매만 남은 도시는 발길을 교외 쇼핑센터에 내줬다.
이커머스와 재택근무는 배경으로만 등장한다. 전자제품과 가전 같은 비교적 무거운 물건의 지출이 줄고 외식·여가가 늘어난 것은 온라인 구매가 대체한 영역과 거리에서만 가능한 영역이 갈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다만 이 기사에는 재택근무와 방문객 수를 직접 연결한 수치가 없다. 그 연결은 확인되지 않음으로 남겨둬야 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명동과 성수 사이
비슷한 처지의 국내 상권으로 명동을 들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과 유동 인구에 기대는 구조, 화장품·기념품 같은 단일 업종의 높은 비중, 관광이 끊기면 급격히 비는 점포라는 특징이 요크와 닮았다. 다른 점은 제도다. 한국은 보증금과 권리금이 거래되기 때문에 임차인이 “장사 가치”를 사고팔 수 있고, 임대인이 세입자를 바꿀 때도 권리금 협상이 끼어든다. 영국의 리스홀드 상가에서는 남은 계약 기간과 조건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용도 전환의 속도다. 영국 지방자치단체는 상가를 주거나 사무실로 바꾸는 절차를 비교적 유연하게 운영해 왔고, 기사도 “소매만으로는 살릴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한국은 용도 변경과 건축 규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갱신 요건이 겹쳐 같은 방식의 전환이 느리다. 성수동처럼 제조업 골목이 카페와 편집숍으로 바뀐 사례가 있지만, 그것은 임대인이 아니라 임차인과 기획자가 만든 변화에 가깝다.
사료의 한계: 누가 쓴 자료인가
이 기사의 출처는 소상공인 대출 플랫폼이다. 데이터 자체는 센터포시티즈와 딜로이트에서 인용했지만, 기사의 결론 방향은 분명하다. “하이스트리트는 죽지 않았고, 변화하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라는 메시지는 대출 상품을 파는 회사의 마케팅 맥락과 맞물린다. 실제로 글 후반부는 소상공인 대출 안내로 이어진다.
또 하나, 기사에 실린 도시별 공실률 표는 순위 번호가 뒤죽박죽으로 배열돼 있어 표를 그대로 인용하기보다 수치 자체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임대료 수준, 계약 기간, 상가 소유 구조는 이 기사에 없다. 영국 상가 제도에 대한 더 정확한 내용은 별도의 1차 자료로 확인해야 한다.
독자에게
상권이 살아나는 조건을 “임대료가 싸졌는가”로만 묻는다면, 요크와 위건의 차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거리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러 머무는가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이 늘어난 가게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가장 많이 사라진 가게는? 그 변화를 “경기”로 설명하시겠습니까, “용도”로 설명하시겠습니까.
참고 자료
Funding Circle, “Reviving the UK high street: where it’s working – and why”, 2025년 7월 30일. https://www.fundingcircle.com/uk/resources/news/reviving-uk-high-street/
Centre for Cities, “Checking out: the varying performance of high streets across the country”. https://www.centreforcities.org/publication/checking-out-the-varying-performance-of-high-streets-across-the-country/
이미지: The Shambles, York — John M Wheatley,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geograph.org.uk 2971409).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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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2 07:27
명동이랑 요크 비교하는 대목 ㄷㄷ 관광객 끊기면 그대로 비는 구조가 똑같다는 거 ㅇㅇ 근데 영국은 남은 리스 기간이 권리금 자리를 대신한다는 게 좀 부럽네. 한국은 용도 바꾸는 속도가 느려서 셰임블스처럼 골목이 카페촌으로 변하는 데 한참 걸리겠지. 요크 공실률 9.2%는 런던 7.4%보다 높긴 한데 뉴포트 19%보면 그게 낫다는 게 웃기다 ㅋㅋ -
빗방울
2026.11.02 08:19
명동 얘기 나와서 그런데, 나는 관광 의존 상권에서 제일 위험한 변수가 업종 다양성이 아니라 '주민이 거리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봄. 손님 지출이 40%를 넘으면 공실률이 낮아도 그 골목은 주민한테는 없어도 되는 길이 되고, 다음 위기 때 붙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돼서. 요크 성벽 안쪽 골목이 주민 생활 쪽이랑 어디서 갈라지는지 궁금하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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