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2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글 점자의 날(11월 4일)을 앞두고 경기도 구리시의 점자 표시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를 찾아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이 방문이 실제로 가리키는 변화는 의례적인 기념일 행사보다 앞선 두 개의 날짜에 있다. 2025년 4월 1일 시행된 화장품법 개정으로 시각·청각 장애인이 쓸 수 있도록 용기·포장 기재사항을 점자 또는 음성·수어영상 변환용 코드로 표시하는 길이 열렸고, 2026년 10월 20일에는 이를 어떻게 표시할지 정한 「화장품의 점자 표시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정됐다. 즉 이번 발표는 새 의무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열린 선택지를 업계가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막 정리한 시점의 점검이었다.
왜 하필 지금, 점자인가
화장품은 라벨을 읽지 못하면 안전하게 쓸 수 없는 품목이다. 내용물 이름, 사용 부위, 전성분, 사용기한이 모두 작은 글씨로 포장에 인쇄돼 있고, 색이나 형태가 비슷한 제품이 많아 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시각장애인에게 이 라벨은 사실상 백지에 가깝다. 샴푸와 린스처럼 용기 모양까지 비슷한 제품을 헷갈리면 세정제를 머리에 붓거나 린스를 몸에 바르는 일이 생긴다.
식약처 보도자료 화면 — 정책브리핑(korea.kr) 화면 캡처, 공공저작물
제도는 두 단계로 움직였다. 먼저 2025년 개정 화장품법이 표시 수단을 넓혔다. 점자 외에도 음성·수어영상으로 변환되는 코드, 쉽게 말해 종이 라벨에 인쇄된 큐알(QR) 코드도 같은 효력을 갖는 표시로 인정한 것이다. 다음으로 2026년 10월 가이드라인이 표시 방법을 정리했다. 점자 크기와 위치, 점역 검수 절차, 큐알 코드를 쓸 때 안내하는 정보의 범위 같은 실무 기준이 여기에 담겼다. 식약처는 이 과정을 ‘식의약 안심 60대 과제’의 하나로 관리한다고 밝혔다.
제도가 실제로 정한 것 — 수치와 시행일
보도자료와 붙임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숫자와 날짜를 그대로 옮긴다.
- 법적 근거: 화장품법 개정, 2025년 4월 1일 시행. 용기 또는 포장 기재사항을 점자, 또는 음성·수어영상 변환용 코드로 표시할 수 있도록 함.
- 실무 기준: 「화장품의 점자 표시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2026년 10월 20일 제정·배포.
- 현장 행사: 2026년 11월 2일(월) 15:00~16:30, 이닛컴퍼니(주) — 점자 표시 화장품 브랜드 ‘프롬리에’ 책임판매업체, 경기도 구리시.
- 참여 범위: 식약처(처장·바이오생약국장·화장품정책과장), 책임판매업체(이닛컴퍼니, 브리브컴퍼니, 아모레퍼시픽), 제조사(한국콜마, 코스메카코리아), 점역사(한빛맹아원)와 점자라벨 제조사(성신그래픽스).
- 시연 절차: 점자 라벨 제작 → 부착 → 점역사 검수. 처장이 이 세 단계를 직접 확인했다.
- 실제 적용 사례: 점자 스티커와 종이형압(종이에 형을 눌러 점자를 새긴 방식), 엠보싱(용기 표면을 눌러 올린 방식)이 함께 쓰인다. 붙임에는 프롬리에 4종, 리브엠 4종, 마몽드 2종, 에스쁘아 2종 등 12개 제품 예시가 실렸다.
주목할 점은 이 조항들이 모두 ‘할 수 있다’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표시하지 않아도 처벌할 근거가 없고, 표시하면 법이 그 방식을 인정해 준다는 구조다.
누가 무엇을 얻고, 누가 무엇을 부담하는가
시각장애 소비자는 가장 직접적으로 얻는다. 다만 얻는 것은 ‘모든 제품의 점자’가 아니라 ‘점자를 붙이기로 한 제품의 점자’다. 어떤 브랜드가 참여하는지 미리 알 수 없으므로, 매장에서 손으로 확인해야 하는 상황은 당분간 이어진다. 청각장애인과 저시력자는 큐알 코드 쪽에서 이득이 크다. 코드를 찍으면 글자 크기를 키우거나 음성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브랜드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점자 스티커는 라벨 제작과 부착 인력이 추가로 들고, 검수까지 거쳐야 한다. 생산량이 적을수록 개당 단가가 올라간다. 반면 큐알 코드는 이미 인쇄 중인 라벨에 그림 한 칸을 더하는 수준이라 비용 차이가 크다. 법이 두 방식을 동등하게 인정한 배경에는 이 비용 격차가 있다.
대형 화장품사와 제조사는 규모의 경제로 점자 라벨 단가를 낮출 수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오히려 점자 표시를 품질 신호로 쓸 여지가 생긴다. 아모레퍼시픽처럼 여러 브랜드를 가진 회사가 일부 제품에 먼저 적용하는 방식이 그래서 나온다.
점역사와 점자라벨 인쇄사는 새 수요를 얻는다. 다만 점역 검수를 누가 책임지는지가 쟁점이다. 보도자료에서도 처장이 “포장재 구입이나 점자 검수 등 업계의 어려움”을 직접 언급했다.
정부는 법을 만든 주체이면서 집행의 부담은 업계에 넘겼다. 의무화 없이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 구조라, 참여 업체 수가 성과 지표가 된다.
통념과 다른 지점 — “점자 의무화”가 아니다
이 뉴스를 “화장품 점자 표시가 의무화됐다”로 읽기 쉽다. 그러나 원문이 말하는 것은 자율표시다. 제목에도 ‘자율표시 지원 행보’라고 적혀 있고, 본문도 표시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라고 표현한다. 의무화였다면 시행일과 과태료 조항이 함께 나왔을 것이다. 여기에는 시행일도, 벌칙도 없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점자와 큐알 코드를 나란히 둔 구성이다. 통상 점자 표시 논의는 점자만을 다루지만, 이번 제도는 화면과 음성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코드를 동등한 대안으로 인정했다. 시각장애인 전체에게 점자가 유효한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점자를 배우지 않은 시각장애인, 노안이 심한 고령자, 문해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는 코드와 음성이 더 실용적일 수 있다.
세 번째는 현장 방문의 성격이다. 처장이 라벨 제작부터 부착, 점역사 검수까지 전 과정을 봤다는 서술은 홍보 문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병목이 어디인지 확인하는 절차다. 점자 표시에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단계는 인쇄가 아니라 검수다. 점역 오류가 하나라도 있으면 제품명이 다른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
첫째, 자율표시의 한계다. 참여하지 않는 브랜드의 제품에는 아무 표시도 없다. 소비자는 매장에서 “이 제품은 점자가 없다”는 사실만 알 수 있고, 그것이 법 위반인지 아닌지도 구분할 수 없다. 보도자료에는 자율표시 참여 업체 수나 비율, 목표치가 제시되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음.
둘째, 점자 표시의 정보량 문제다. 용기 표면에 들어갈 수 있는 점자는 몇 글자 수준이다. 제품명과 사용 부위 정도가 한계이고, 전성분이나 사용기한 전체를 담기는 어렵다. 이번 가이드라인이 어떤 항목을 필수로 담도록 했는지는 보도자료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음. 가이드라인 원문을 봐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셋째, 큐알 코드의 접근성이다. 코드는 스마트폰과 카메라, 그리고 앱이 있어야 작동한다. 고령 시각장애인이나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점자보다 진입 장벽이 높다. 음성 안내가 어떤 속도와 형식으로 제공되는지도 원문에 없다.
넷째, 비용의 귀착점이다. 포장재 단가 상승분이 소비자가격으로 전가될지, 업계가 흡수할지는 정해진 바가 없다. 소량 생산 브랜드가 늘어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표시를 포기하는 경우, 제도는 규모가 큰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굳어진다.
다섯째, 검수 체계다. 점역사 검수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가 원문에 명시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정해지지 않으면 업체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독자가 실제로 확인할 것
시각장애 소비자라면 매장에서 용기 측면이나 뚜껑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 실질적인 방법이다. 스티커형은 표면이 도드라지고, 종이형압은 라벨 판지에 눌린 점이 남는다. 큐알 코드가 붙은 제품은 코드 옆에 안내 문구가 있는지 먼저 살피면 좋다. 화장품 매장 직원에게 점자 표시 제품 목록을 문의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직 통일된 목록은 없다.
업계 종사자라면 식약처가 2026년 10월 20일 배포한 가이드라인 원문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표시 위치와 점자 규격, 검수 절차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점자 라벨 제작과 검수를 어디에 맡길 수 있는지도 함께 확인할 사항이다.
일반 소비자라면 같은 브랜드 안에서 점자 표시 제품과 아닌 제품이 섞여 있다는 점을 기억할 만하다. 구매할 때 점자 표시 여부가 선택 기준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업체에 전달되는 신호가 된다.
이 자료를 읽는 태도
이번 글의 근거는 식약처가 배포한 보도자료와 붙임 자료다. 보도자료는 정부 기관이 자기 정책을 설명하는 문서이므로, 정책의 취지와 성과가 중심에 놓이고 반대편 시각은 담기지 않는다. 이 글에서도 점자 표시의 필요성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업계가 실제로 어느 정도 부담을 지고 있는지, 소규모 업체가 참여를 포기한 사례가 있는지는 원문에 없다.
또한 이 자료는 정책의 형성 과정이 아니라 실행 현장을 다룬다. 2025년 법 개정과 2026년 가이드라인 제정에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왜 의무화 대신 자율표시를 택했는지는 별도의 국회 회의록이나 규제심사 자료를 봐야 한다. 보도자료만으로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참고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 「식약처장, 화장품 점자·QR코드 자율표시 지원 행보」, 2026년 11월 2일 배포 15:00. 담당: 바이오생약국 화장품정책과(과장 김지연). 정책브리핑(korea.kr) 보도자료 —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787592
화장품법 개정(2025년 4월 1일 시행), 「화장품의 점자 표시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2026년 10월 20일 제정). 붙임 1 현장방문 및 간담회 개요, 붙임 2 점자 표시 화장품 예시.
여러분은 화장품을 고를 때 라벨을 얼마나 꼼꼼히 읽으시나요? 점자가 붙은 제품을 매장에서 본 적이 있다면, 그 경험을 들려주세요.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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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3 06:53
샴푸·린스 헷갈리는 얘기 공감했습니다. 점자 스티커는 매장에서 손끝으로 확인해야 하니 결국 브랜드가 붙여줘야 소용이 있는데, 참여율 목표치가 없다는 대목이 걸립니다. 큐알만 붙은 제품은 스마트폰 없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백지겠고요.
모든 이야기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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