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7일, 부산시는 국비 71억 원과 지방비 59억 원, 합쳐 134억 원을 침체한 전통시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발표문 안에서 시장은 “최근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으로 인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지원의 단위는 “시장”이 아니라 “곳”이다. 전통시장·상점가 31곳에 30억 원, 주차장 개보수 6곳에 4억 원, 자율상권 2곳에 5년간 각각 최대 50억 원. 이 숫자를 나눠 보면 상권 하나에 도달하는 액수가 손에 잡힌다.
이 글은 그 134억 원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따라가며, 한국 상권이 지금 겪는 변화가 “죽음”인지 “교체”인지를 따져 보려 한다.
한 장의 표에서 읽히는 배분 구조
발표의 골격은 네 덩어리다. 중소벤처기업부 공모로 뽑힌 ‘2025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공모사업’이 5개, 그 대상이 31곳이고 여기에 30억 원이 들어간다. 사업 내용은 특성화시장 육성(문화관광형, 첫걸음 기반조성), 시장경영패키지 지원, 지역 상품전시회 등이다. 단순하게 나누면 한 곳당 1억 원 안팎이지만, 성격이 다른 사업들이 섞여 있어 실제 편차는 훨씬 크다.
문화관광형 시장으로는 서구 충무동새벽시장·해안시장과 수영구 망미중앙시장이, 첫걸음 기반조성은 수영구 남천해변시장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시장경영패키지에는 26곳이 들어갔는데, 이 사업은 각 상인회가 공동 마케팅과 상인 교육을 자율적으로 설계한다. 남구 못골골목시장, 부산진구 양정시장, 북구 창선상가, 동구 부산남문시장, 부산진시장, 초량전통시장 6곳은 4억 원을 나눠 주차장 개보수 비용 등을 받는다.
주목할 것은 마지막 줄이다. 2024년 4월 선정된 동구 ‘초량이음 자율상권’과 남구 ‘유앤남구 대학로 자율상권’은 2025년부터 5년간 각각 최대 50억 원을 받는다. 두 곳만으로 1년 예산을 훌쩍 넘는 규모다. 분산형 소액 지원과 집중형 대규모 지원이 한 발표 안에 공존하는 셈이다.
부산의 시장은 어떤 곳인가
부산 해운대시장의 골목 — 상가가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부산 시장의 전형이다. brya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부산은 대한민국 남동부의 최대 해양 도시이자 영남권의 중심이다. 항만 물류와 해상 무역으로 성장한 도시라 상권의 결도 서울과 다르다. 서울의 상권이 지하철역과 오피스 유동인구를 축으로 삼는다면, 부산은 시장과 항구, 해변, 대학가가 각각 독립된 생활권을 이룬다. 시장이 살아남는 조건도 다르다. 배후 주거지의 인구가 두텁거나, 관광객이 들를 만한 서사가 있거나, 둘 다여야 한다.
충무동새벽시장과 해안시장은 남포동·자갈치 일대의 관광 동선 안에 있다. 새벽에 문을 여는 시장이라는 정체성이 있어 아침 관광객과 지역 주민을 동시에 상대한다. 망미중앙시장은 수영구의 주거 배후를 끼고 있고, 남천해변시장은 광안리 해변과 가까워 여름철 유동인구에 크게 의존한다. 여섯 곳의 주차장 개보수 대상은 대부분 오래된 골목시장이다. 차 한 대 대기 힘든 골목이야말로 지금 시장이 겪는 구조적 불편의 핵심이다.
왜 지금 돈이 필요한가 — 네 가지 압력
첫째는 임대료다. 시장 안 점포는 대부분 개인 소유 건물의 임차 형태라 임대차 계약이 2~3년 단위로 갱신된다. 상권이 관광지화되면 임대료가 먼저 오르고, 그 상승분은 장사가 잘 되는 점포가 아니라 가장 약한 임차인에게 먼저 닿는다. 둘째는 유동인구의 이동이다.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이 생필품 구매를 흡수하면서 시장의 ‘일상 구매’ 기능이 줄었고, 남은 수요는 식사와 간식, 체험 쪽으로 옮겨 갔다.
셋째는 업종 포화와 차별성 상실이다. 전국 어느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닭강정·떡볶이·커피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 매출은 단기간에 오르지만, 옆 시장과 구별되는 이유는 사라진다. 넷째는 정책 의존이다. 시장 활성화 예산은 지자체와 정부 공모에 묶여 있어, 선정되면 시설이 좋아지고 떨어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 134억 원은 그 네 번째 압력에 대한 응답이지, 앞의 세 가지를 직접 건드리는 처방은 아니다.
업종 구성은 어떻게 바뀌고 있나
이번 발표문에는 업종별 증감 통계가 없다. “특성화시장 육성”과 “시장경영패키지”라는 사업 이름에서 읽히는 방향만 확인된다. 즉 생필품 판매에서 먹거리·체험·관광으로의 무게 이동이다. 문화관광형 시장에 뽑힌 세 곳이 모두 바다와 관광 동선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 그 방향을 뒷받침한다. 다만 “어떤 업종이 몇 개 늘고 몇 개 줄었는지”를 이 기사만으로 수치로 말할 수는 없다. 비교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죽은 상권인가, 바뀐 상권인가
“전통시장이 죽었다”는 진단은 절반만 맞다. 청과·정육·건어물 같은 생필품 점포는 실제로 줄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식당, 카페, 체험 공방, 야시장형 노점이 늘어난다. 상권의 매출 총액이 줄지 않아도 구성이 바뀌면 기존 상인은 “손님이 없다”고 느낀다. 손님은 다른 물건을 사러 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교체가 임대료 상승과 함께 진행된다는 점이다. 새 업종이 들어온 자리의 임대료가 오르면, 원래 있던 상인은 나가고 새 임차인만 남는다. 상권이 살아나는 것과 그 상권의 오랜 주인이 살아남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권리금·보증금·공실률 — 알아야 할 임대 구조
한국 상가 임대는 세 층으로 되어 있다. 보증금은 계약 종료 시 돌려받는 담보금이고, 월세는 매달 내는 사용료다. 권리금은 그 점포의 위치와 단골, 시설 투자에 붙는 프리미엄으로, 새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별도로 지급하는 돈이다. 시장 안 점포는 권리금이 낮은 대신 월세 협상 여지도 작고, 반대로 관광 상권화된 골목은 권리금이 급등해 신규 진입이 어려워진다.
공실률은 전체 점포 중 비어 있는 비율이다. 시장은 일반 상가건물과 달리 소유 구조가 파편화되어 있어 공실이 통계로 잘 잡히지 않는다. 문 닫힌 점포가 몇 달씩 방치되다가 철거되거나 창고로 쓰이는 동안, 옆 점포는 ‘빈 골목’ 이미지를 함께 뒤집어쓴다. 주차장 4억 원이 6곳에 배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접근성은 개별 점포가 해결할 수 없는 공공재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같은 시기에 대구는 전통시장 76곳에 35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을 진행한 바 있고, 서울은 골목상권에 AI 기반 점포 처방을 도입하는 등 지원 방식이 갈린다. 부산이 시설과 주차, 브랜드 개발 쪽에 무게를 두는 반면, 수도권은 데이터와 컨설팅 쪽으로 기울었다. 어느 쪽이 효과적인지 이 기사만으로 판단할 근거는 없다. 직접적인 비교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료가 말하지 않는 것
이번 발표는 지자체의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선정된 사업의 성과, 즉 지원 이후 매출이나 점포 수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담겨 있지 않다. 예산 배분표는 있지만 집행 결과표는 없다. 부동산업계나 프랜차이즈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상권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임대료 상승과 업종 교체가 함께 진행된다면, 그 수혜자가 누구인지는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또한 134억 원 중 상당 부분이 시설과 주차장 등 물리적 개선에 쓰이므로, 상인의 매출로 직결되는지는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
시장 안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해 온 상인의 이름은 이 기사에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숫자로 요약된 상권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사는 동네의 시장은 지난 5년 사이 무엇이 바뀌었나. 새로 생긴 가게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사라진 가게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134억 원이 우리 동네에 배정된다면, 당신은 그 돈을 어디에 쓰게 하겠는가.
참고 자료
- 연합뉴스, 「부산시, 전통시장 상권 활성화 134억원 투입」, 2025년 1월 7일 — https://www.yna.co.kr/view/AKR20250107026300051
- 위키백과, 「부산광역시」 — https://ko.wikipedia.org/wiki/부산광역시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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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3 10:29
저도 동네 시장에서 비슷한 걸 봤어요. 떡집이던 자리에 카페가 들어오고, 오래된 건어물 가게는 셔터가 내려간 채였죠. 글에서 말한 주차장 얘기도 그렇고, 시설 개선은 눈에 보이는데 그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살아남는지는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특히 자율상권 두 곳에 50억씩 몰리는 구조는 조금 의문이에요. 골목시장 31곳이 나눠 갖는 30억과 비교하면, 돈이 어디로 향하는지 다르게 읽히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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