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1일,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 평일 낮인데 보행로에는 서너 명만 걸어가고, 왼쪽 유리 쇼윈도는 불이 꺼진 채 사람이 비치는 거울처럼 서 있다. 영국 최대 유통 거리 중 하나가 이렇게 비어 버린 봄, 넥스트(Next)의 최고경영자 사이먼 울프슨(Simon Wolfson)은 BBC에 한 문장을 던졌다. 코로나 봉쇄가 촉발한 온라인 쇼핑 전환이 "수천 개의 전통적 유통 일자리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일자리는 "지속 불가능(unviable)"해질 것이라는 예고였다.
가디언은 같은 기사에서 그해 1월부터 8월까지 영국에서 거의 12만 5,000개의 일자리가 유통 부문에서 사라졌다고 전했다. 매장은 닫히고, 회사는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지목한 원인이 임대료가 아니라 세금의 형평성이었다는 점이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의 빈 쇼윈도와 숫자 한 줄
코로나 봉쇄 첫 주의 옥스퍼드 스트리트(2020년 3월 21일) — Stephen Richards, CC BY-SA 2.0 (Geograph Britain and Ireland / Wikimedia Commons)
기사 본문의 수치는 서두의 12만 5,000명이 거의 전부다. 2020년의 봉쇄 자체는 손님이 거리에서 사라지는 사건이었고, 울프슨의 발언은 그 뒤에 남을 구조적인 문제를 겨눈 것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웹 쪽 변화는 영구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었다. 창고 직원과 택배 기사에게는 일이 생기지만, 매장 안 판매직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같은 기사에 나오는 택배사 요델(Yodel)의 채용 계획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크리스마스 전 3,000명 가까이 뽑는다지만, 실제 근로자가 되는 사람은 450명이고 나머지 2,500명은 자영업자로 고용돼 최저임금·유급 병가·휴가의 보증을 받지 못한다. 허메스(Hermes)도 7월에 1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든다 했지만 대부분이 같은 형태였다.
영국 가게의 고정비는 세 축으로 움직인다
한국 독자에게 낯선 것은 영국 점포의 비용 구조다. 영국 상업용 부동산은 땅과 건물을 영구 소유하는 프리홀드(freehold)와, 일정 기간(흔히 99·125·999년)의 사용권만 사는 리스홀드(leasehold)로 나뉜다. 점포를 운영하는 사업자는 보통 임대인과 장기 상업용 리스(commercial lease)를 맺고 정해진 임대료를 낸다. 한국의 전세처럼 목돈을 맡기고 돌려받는 구조도, 권리금처럼 ‘자리’ 자체를 사고파는 관행도 제도로 자리 잡지 않았다. 대신 소박하게 말해 부동산을 보유한 쪽에 사업세(business rates, 영국의 상업용 재산세)가 매겨지고, 그 세금은 대개 임대료에 얹혀 점주에게 전가된다.
그래서 영국 점주의 고정비는 임대료, 사업세, 인건비 세 축이다. 이 기사가 다루는 것은 셋째 축도 첫째 축도 아닌, 두 번째 축의 배분 방식이다. 다만 원문 기사는 구체적인 사업세율, 개별 점포의 보증금이나 리스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위 제도 설명은 일반적 배경이며, 넥스트 매장의 실제 계약 조건은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음이다.
그가 제안한 것은 임대료 인하가 아니었다
울프슨의 주장은 산술적으로 단순하다. "지난 6~7년 사이 창고 가격은 엄청나게 올랐고 가게 가격은 엄청나게 떨어졌는데, 둘의 사업세는 똑같이 유지됐다." 그는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쓰는 창고의 사업세를 30~50% 올리면 "손실의 일부를 메울 수 있고, 그것이 공정하다"고 말했다. 즉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세 부담이 뒤집힌 상황을 바로잡자는 쪽이었다.
같은 기사에는 영국 독립 소매업협회(Bira)가 다른 각도로 경고한 내용이 나온다. 재무장관이 예산안을 취소하면서 3월 31일에 끝날 예정이던 사업세 감면 연장을 미루자, 대량 폐점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Bira의 앤드루 굿에이커 대표는 "유동인구와 매출이 적어 많은 유통 일자리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쪽은 창고에 더 걷자 하고, 다른 쪽은 가게에 덜 걷자 한다. 둘은 같은 세금 제도를 반대 방향에서 밀고 있는 셈이다.
업종 구성 — 이 기사는 말하지 않는다
원문에는 옥스퍼드 스트리트의 점포가 어떤 업종으로 바뀌었는지, 점포 수나 공실률이 얼마인지에 대한 수치가 없다. 대신 기업별 감원 목록이 기사 안의 타임라인으로 붙어 있다. 6월 셔츠 브랜드 TM 르윈(TM Lewin)이 66개 점포를 모두 닫고 약 600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7월 존 루이스(John Lewis)는 50개 점포 중 8곳을 폐쇄해 1,300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발표했다. 8월 마크스 앤드 스펜서(Marks & Spencer)는 7,000개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 목록은 업종 구성의 변화가 아니라 대형 체인이 매장망 자체를 줄이는 과정의 기록이다.
따라서 이글에서 "옷가게가 카페로 바뀌었다"거나 "공실률이 몇 퍼센트"라고 쓰는 것은 원문 근거가 없다. 기사가 말하는 변화는 거리의 업종 지도가 아니라, 같은 브랜드가 같은 도시에서 운영하는 매장 수의 방향이다.
코로나가 앞당긴 것, 이미 진행 중이던 것
울프슨 본인도 봉쇄가 원인이 아니라 촉매라고 말한다. "웹으로의 전환은 영구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사는 이를 두고 팬데믹이 유통 행동의 변화를 가속했다고 정리한다. 처음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 본 영국인들이 그 경험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다.
이 대목은 오늘의 눈으로 보면 조심해야 한다. 2020년 9월의 판단은 봉쇄 직후의 실적을 근거로 한 예측이었고, 그 뒤 몇 년 동안 온라인 비중은 다시 조정 국면을 거쳤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구조 — 창고는 커지고 가게는 작아지는데 세제는 두 곳을 같은 잣대로 재는 것 — 는 봉쇄 여부와 무관하게 남는 문제다.
통념과 다른 지점 — 이 인터뷰의 화자는 누구인가
이 기사를 "상권 몰락"의 증거로 읽으면 절반만 읽는 것이다. 울프슨은 하이스트리트가 무너진다고 한탄하려고 인터뷰한 사람이 아니다. 넥스트는 가디언 자신의 표현대로 위기에서 가장 회복력 있는 브랜드 중 하나로 나왔고, 울프슨은 봉쇄 직전 두 번째로 이익 전망치를 올렸다. 인터뷰는 어느 유통업체의 실적을 말하는 자리이기도 했고, 그래서 구조조정이 업계 전체의 불가항력처럼 서술된다.
같은 기사에서 재무장관의 겨울 일자리 대책을 두고 그가 "매우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며 고용주가 조금 더 부담하고 근로자는 조금 덜 받아야 한다고 말한 대목도 함께 읽어야 한다. 매장직의 미래와 지원금의 축소를 같은 목소리로 설명하는 사람의 진단에는, 지금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시점이 빠져 있다. 실제로 기사에는 그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목소리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한국의 상가와 겹치는 곳 — 보증금과 권리금이 가르는 경계
비교할 국내 상권은 서울의 골목형 상점가, 그중에서도 대학가·중심지 쪽이다. 한국 상가도 온라인 쇼핑과 공실·임대료 문제를 겪는다는 점은 같다. 다른 점은 비용의 순서다. 한국에서는 보증금과 권리금이라는 두 개의 목돈이 첫 관문이어서, 장사가 안 되면 임차인이 먼저 망가지고 빈 점포가 골목에 남는다. 영국에서는 계약서상의 리스 기간과 사업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점주가 세금 대신 계약서에 묶이는 나라와, 계약서 대신 목돈에 묶이는 나라. 같은 "가게가 안 팔린다"는 증상이 서로 다른 제도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이 이 기사를 한국식으로 읽었을 때 가장 크게 어긋나는 지점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세금을 누가 내느냐다. 영국의 사업세는 건물 보유자에게 매겨지고 임차료에 얹혀 내려간다. 한국의 재산세·종합부동산세는 건물주에게 남고, 상인에게는 별도의 부가세와 지방세가 붙는다. 울프슨이 말한 "창고와 점포의 세율이 뒤집혔다"는 논쟁을 한국에 그대로 옮겨오기 어려운 이유다.
남는 질문 — 가게의 세금을 낮추면 거리가 살까
이 기사의 한계는 분명하다. 화자 한 명의 인터뷰이고, 수치도 전국 유통 부문의 감원 규모 하나뿐이며, 그가 제안한 창고 사업세 인상이 실제로 얼마를 걷을지에 대한 계산은 없다. 하지만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온라인으로 옮겨간 매출의 무게가 늘었는데, 그 무게를 지지하던 창고와 점포의 세제는 여전히 예전 잣대로 재고 있지는 않은가. 가게의 세금을 낮추는 일과 창고의 세금을 올리는 일 가운데, 거리에 남는 것은 어느 쪽인가.
독자 여러분은 동네에서 한때 성업하던 가게가 비어 있는 자리를 떠올릴 때, 그 원인을 임대료로 기억하시나요, 아니면 세금이나 인건비로 기억하시나요.
참고 자료
"Online shopping makes many high street jobs unviable, says Next boss" — The Guardian, 2020년 9월 25일 —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20/sep/25/online-shopping-makes-high-street-jobs-unviable-say-next-boss
사진: "Oxford Street in the time of Covid-19", Stephen Richards, CC BY-SA 2.0, Geograph Britain and Ireland — Wikimedia Commons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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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3 09:34
옛날 시장 푼전 한가운데 서서 장사하는 집은 세금도 쥐꼬리였지요. 허허, 그런데 요즘은 창고가 대궐만 해지고 골목 가게는 셋방살이 신세인데 세금 고지서는 옛날 장부 그대로라니. 창고 요금을 좀 올려서 저울을 맞추자는 얘기는, 우리 세대 말로 하면 "떼어 먹은 건 갚아야 한다"는 소리인 셈이지요. 다만 그 창고 주인네가 올려도 결국 손님 물건값에 얹힐 테니, 그 저울질이 누구 몫인지는 한 번 더 따져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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