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경기도와 도내 지자체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기도는 오는 7월까지 도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지원을 맡을 '경기시장 상권진흥원'을 세우고, 1차 추경예산안에 58억6300만원을 편성했다. 함께 도는 '2019 경기도 희망상권 프로젝트'를 열어 시설 개선과 콘텐츠 발굴,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하고 선정된 사업지에는 최대 10억원을 넣기로 했다. 같은 시기 의정부시는 상권활성화 예산을 5억원에서 11억원 이상으로 늘렸고, 구리시는 중소벤처기업부 사업에 뽑혀 5년간 80억원을 받게 됐고, 수원시는 전국 처음으로 전통시장 활성화 재단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한 지자체가 아니라 도 단위에서, 그것도 여러 시가 동시에 움직였다는 점이 이 장면의 핵심이다. 개별 시장 하나를 미화하거나 간판을 바꾸는 사업이 아니라, 권역별 상권의 특수성을 고려한 지원 체계를 새로 만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숫자만 보면 넉넉해 보이는 이 예산들이 실제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가 이 글의 질문이다.
상권은 왜 스스로 회복되지 않는가
상권이 무너지는 과정은 대개 극적이지 않다. 특정 가게 하나가 망해서가 아니라, 손님이 조금씩 줄고, 그 손님을 견디던 가게가 순서대로 문을 닫고, 빈 점포가 늘고, 거리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다시 손님이 줄어드는 나선이 문제다. 이 나선은 개별 점주의 노력만으로는 끊기 어렵다. 가게 한 곳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고, 거리 단위의 정비·홍보·동선 설계는 공공이나 상인 조직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권 활성화' 사업은 늘 비슷한 도구를 쓴다. 간판과 파사드 정비, 공용 화장실·주차장 같은 편의시설, 야시장이나 축제 같은 콘텐츠, 그리고 상인 교육이다. 이 기사의 사업들도 시설 개선, 콘텐츠 발굴, 경관·광고물 보완, 상생협력상가 조성, 상인대학 같은 항목으로 짜여 있다. 문제는 이런 사업이 거리의 겉모습을 바꾸는 데는 빠르게 효과를 내지만, 임대료와 유동인구라는 근본 변수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경기도가 권역별 지원을 택한 이유
기사는 진흥원 설립의 배경으로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동서남북 각 지역별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도내 특성'을 들었다. 경기도는 한 덩어리로 묶기 어려운 지역이다. 서울과 맞닿은 과밀 상권, 신도시의 계획형 상업지구, 그리고 인구가 빠져나가는 외곽의 시장이 한 도 안에 나란히 있다. 서울의 인구가 빠져나가며 만들어진 신도시들은 넓은 아파트 단지와 그 사이에 끼워 넣은 상가 블록을 갖고 있는데, 이 구조는 상권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아파트 단지 안의 상가는 배후 세대의 소비를 독점하는 대신 그 세대의 인구 구조에 그대로 묶인다. 아이를 키우던 세대가 나이를 먹으면 학원이 빠지고, 그 자리를 병원과 편의점이 채우고, 다시 그 자리마저 비면 상가는 회복할 동력이 없다. 반대로 도심 역세권 상가는 배후 세대가 아니라 통과하는 사람에 의존하기 때문에 교통 인프라 변화에 민감하다. 의정부역 일대에 GTX-C 노선 착공 예정이라는 소식과 함께 태영프라자 재건축 계획이 겹친 것은 이 민감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정부: 예산 두 배, 그리고 역세권이라는 카드
의정부시는 상권활성화와 지역선도시장 육성사업을 위해 11억원 이상의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는 전년 5억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이 예산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이미지 개선, 상권활성화 홍보 지원 등에 쓰인다. 눈여겨볼 것은 시가 돈을 늘리면서 동시에 대형 상업시설이라는 외부 요인까지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데오거리로 대표되는 기존 상권의 기사에 실린 사진이 바로 그 거리의 모습이다.
역세권 개발과 기존 상권은 늘 함께 언급되지만, 그 관계는 자동으로 상생이 되지 않는다. 새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오면 유동인구가 늘지만, 그 인구가 흡수되는 곳은 새 시설의 임차 공간일 수 있고, 기존 골목은 오히려 통과 동선만 나눠 받을 수 있다. 기존 상권과 새 시설 사이의 보행 동선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실제 결과를 가른다. 사업 항목으로 '동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이 늘 아쉬운 지점이다.
구리: 5년 80억이 걸린 시험
구리시는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상권활성화 사업에 최종 선정돼 향후 5년간 총 80억원의 사업비를 받는다. 기사는 환경 정비와 주택 재정비 등 인프라가 구축되는 중인 구리시에서 이 사업이 상권의 자생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활력 넘치는 행복상권'이라는 구호 아래 거리·체험·사람을 아우르는 특화 상권을 만들겠다는 구성이다.
기사가 강조한 '자생력'이라는 단어가 실은 가장 어려운 목표다. 80억원은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데 쓰기엔 큰 돈이지만, 거리의 구조를 바꾸기엔 작은 돈이다. 결국 5년 뒤 사업이 끝났을 때 상인 조직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가 판정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시설은 5년 후에도 남지만, 인력과 조직은 예산이 끊기면 사라지기 십상이다.
수원: 재단을 세우면 무엇이 달라지나
수원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를 전담할 재단을 세우려 한다. 못골종합시장과 수원역전시장 등 현재 22곳의 전통시장이 있는 도시에서, 시가 직접 맡던 지원 사업과 정부 보조금을 한곳에 모아 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예산 40억원과 시예산 40억원이 투입되는 만큼, 시장 지원을 넘어 인근 지역 경제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기대도 함께 적혀 있다.
수원 지동시장 입구의 아케이드와 상가 거리. 수원시는 2019년 22곳의 전통시장을 묶어 지원할 전담 재단 설립을 추진했다. — De-Shao Liu,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재단 설립이라는 선택은 행정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소재의 문제다. 시청 부서가 하던 일을 재단으로 옮기면, 예산 집행은 더 유연해질 수 있지만 시의회와 주민의 통제는 한 단계 멀어진다. 전담 조직이 생기면 '왜 이 시장에 돈이 먼저 갔는지'를 설명할 의무도 함께 생긴다. 재단의 성패는 시설 사업의 성과가 아니라 배분 기준을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산: 상인 교육이라는 가장 값싼 카드
안산시는 경기도일자리재단과 '소상공인 역량강화 지원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교육프로그램 '상인대학'을 통해 경영컨설팅과 경영환경개선비용 지원을 연계하기로 했다. 재단은 이달 중 3개의 참여상권을 모집하고 다른 시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네 도시 중 가장 적은 재정으로 접근한 사례이고, 그래서 가장 검증이 필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상인 교육은 비용이 적게 들고 홍보하기 좋지만, 효과를 측정하기 가장 어렵다. 매출이 늘면 교육 덕분이라 하기 쉽고, 줄면 업황 탓으로 돌리기 쉽다. 교육이 의미를 가지려면 수강 상인이 실제로 어떤 원가 구조를 확인했고, 어떤 메뉴·가격·재고 결정을 바꿨는지가 남아야 한다. 참여 상권을 3개로 좁힌 것은 오히려 사례를 깊게 볼 수 있는 조건이다.
상가 임대차라는 구조적 배경
이 글에 등장하는 사업들이 다루지 않는 변수가 임대차 구조다. 한국의 상가 임대차는 보통 세 가지 돈으로 설명된다. 임차인이 들어갈 때 내는 보증금, 매달 내는 월세, 그리고 기존 임차인이 장사 자리의 가치를 인정받아 다음 임차인에게 받는 권리금이 그것이다. 권리금은 법이 정한 가격표가 아니라 시장에서 형성되는 값이고, 이 값이 높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장사가 잘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권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이 구조다. 매출이 줄어도 월세는 계약대로 나가고, 장사가 어려워지면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폐업을 결심하는 상인에게 남는 것은 손실의 크기이지 선택의 자유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상권 활성화 사업이 간판과 축제에 집중하는 동안, 정작 부담은 임차인의 매달 고정비에 남아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실률 역시 임대인의 수익과 임차인의 부담 사이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상권 정책은 필연적으로 임대차 시장과 부딪힌다.
권리금과 보증금, 월세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지역마다 다르고 공식 집계도 제한적이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인 구조로만 설명하며, 특정 지역의 수치를 추정해 제시하지 않는다.
통념을 뒤집어 보기: 죽은 상권은 없다
'골목상권이 죽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많은 경우 상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업종 구성이 바뀐 것이다. 가격 경쟁력을 잃은 소매점이 빠지고 그 자리를 배달 전문점, 편의점, 무인 매장, 학원, 병원이 채운다. 매출 총액은 유지되거나 늘어도, 남은 업종이 지역 주민의 일자리와는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권 활성화 사업이 지향하는 '골목의 정서'와 실제로 돈을 버는 업종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기사에는 어떤 업종이 늘고 어떤 업종이 빠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다. 따라서 업종 구성 변화의 방향을 이 기사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자체들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하나의 정책 대상으로 묶어 다룬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적이다. 서로 다른 소비 구조를 가진 두 공간에 같은 사업 도구를 쓰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이 기사에는 다른 지역이나 해외의 유사 사례가 비교 자료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비교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같은 기사 안에서 네 도시의 접근이 이미 갈린다는 점은 읽어볼 만하다. 의정부는 역세권 개발과 연결하고, 구리는 중앙정부 공모 사업비를 축으로 삼고, 수원은 전담 조직을 만들고, 안산은 교육과 컨설팅으로 접근한다. 재정 규모는 구리(80억)와 수원(80억)이 크고, 의정부(11억)와 안산(소규모 협약)이 작다. 자금의 크기와 조직의 형태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료의 한계
이 기사는 경기도와 지자체가 발표한 계획을 정리한 성격이 강하다. 예산 편성과 협약 체결은 사실이지만, 사업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 존재할 수 없다. 기사에 등장하는 '기대된다',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표현은 대부분 사업 주체의 설명을 옮긴 것이며, 독립적인 검증을 거친 결론이 아니다. 상권 활성화 사업의 효과를 다룬 연구들은 대체로 단기 매출보다 이용자 구성과 점포 존속률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 기사에는 임차인 단체나 상인회의 목소리가 직접 인용되어 있지 않다. 부동산 개발 계획과 함께 보도된 점을 감안하면, 개발 기대감이 상권 정책의 서사에 섞여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2019년이라는 시점도 유의해서 읽어야 한다. 이 계획들은 이후 몇 년간의 외부 충격과 정책 환경 변화를 거치며 상당 부분 수정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2019년의 예산 액수가 아니라, 상권 문제를 어떤 도구로 풀려 했는가라는 발상의 구조다.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사는 동네의 상권은 지난 5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나. 간판이 예뻐졌는데 손님이 그대로인 거리와, 낡았지만 사람이 끊이지 않는 거리 중 어느 쪽이 더 살아 있다고 느끼는가. 상권에 10억원이 들어온다면 당신은 그것을 시설에 쓸 것인가, 임대료 부담을 낮추는 데 쓸 것인가.
참고 자료
- 매일경제, 「경기도 각 지자체 뭉쳐 골목상권 살리기 나선다」, 2019년 5월 10일. https://www.mk.co.kr/news/realestate/8808988
- 이미지: 「Ji-dong Market, Suwon 2018-09-01」, De-Shao Liu,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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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3 16:37
동네 상권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네요. 저희 동네에도 간판은 새로 달았는데 반 건너편은 여전히 빈 점포가 그대로인 골목이 있어서, 이 글이 짚은 '겉모습은 빨리 바뀌고 임대료·유동인구는 그대로'라는 대목에서 좀 멈칫했습니다. 10억이 생긴다면 저는 시설보다 월세 쪽에 쓰고 싶어요. 그래야 그 자리에 남아 있으려는 사람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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