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일, 영국소매연합(British Retail Consortium, 이하 BRC)은 11개 산업의 세금과 이익을 나란히 놓은 보고서를 냈다. 결과는 한 줄로 요약된다. 영국에서 소매업과 외식·숙박업(호스피탈리티)이 세전이익 1파운드당 각각 72펜스, 82펜스를 세금으로 내는 업종이 됐다는 것이다. 11개 산업 평균은 50펜스, 은행권은 40.5펜스다.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산업이 가장 얇은 마진으로 버티는 산업이라는 뜻이고, 그 비용이 끝내 점포의 셔터와 가격표로 내려온다는 것이 BRC의 주장이다.
이 숫자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규모다. 두 업종은 2025/26년에 사업재산세(business rates)와 고용주 국민보험, 부가세 등을 합쳐 620억 파운드(약 108조 원, 1파운드 1,750원 기준)를 냈다. 그런데 이들이 창출하는 것은 세금만이 아니다. 전국 우편번호마다 점포를 두고, 학력이나 경력이 없는 사람이 처음 일자리를 얻는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세금이 오르면 그 통로부터 좁아진다.
1. 편의점 하나가 서 있는 자리 — 영국 상가의 세 축
영국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영국의 도심 주상가를 부르는 말)의 점주가 매달 내는 고정비는 세 갈래다. 임대료, 사업재산세, 인건비다. 한국의 상가가 보증금·월세·권리금 세 갈래로 움직이는 것과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속이 다르다. 영국은 건물과 땅을 영구 소유하는 프리홀드(freehold)와, 99년·125년·999년처럼 긴 기간의 사용권만 사는 리스홀드(leasehold)로 부동산 권리가 갈린다. 점포 사업자는 보통 수년 단위의 상업용 리스를 맺고 그 안에서 장사를 한다. '장사 자리' 자체를 사고파는 권리금 관행은 제도로 자리 잡지 않았고, 그 자리에 사업재산세가 들어온다.
사업재산세는 건물의 가상 임대료인 과세가치(rateable value)에 세율을 곱해 매긴다. 임차인이든 소유자든 점포를 점유하는 쪽이 부담한다는 점에서, 계약금과 보증금으로 시작하는 한국의 임차 구조와 출발점이 다르다. 다만 이번 기사는 개별 점포의 보증금이나 리스 조건, 세율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위 제도 설명은 영국의 일반적 배경이며 이번 사안의 계약 조건은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음이다. 이 기사가 다루는 것은 세 축 가운데 뒤의 두 개, 사업재산세와 인건비다.
2. 2년에 21만 5천 개 — 사라진 일자리의 크기
BRC는 2024년 예산이 두 업종의 고용 비용에 수십억 파운드를 더했다고 본다. 그 결과로 제시한 수치가 소매업 122,000개, 호스피탈리티 93,000개다. 합치면 2년 만에 21만 5천 개다. 헬렌 디킨슨 BRC 대표는 성명에서 '지난 2년간 10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이 숫자를 다시 요약했다.
이 숫자의 무게는 어디에 붙는가. 두 업종이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일자리'라는 점이다. 자격증도 경력도 없는 사람이 처음 월급을 받는 자리, 학기 중에 시간을 쪼개 일하는 자리,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늘어나는 자리가 여기 있다. 세금은 매출이 아니라 고용 단위에 붙기 때문에, 마진이 얇아지면 가게는 먼저 사람 수를 줄인다. 임대료처럼 협상할 수 없는 비용이 사람의 수를 정하는 구조다.
3. 빈 점포 일곱 곳 중 한 곳 — 세금이 만든 풍경
BRC가 내놓은 풍경은 더 직접적이다. 소매업과 호스피탈리티가 사업재산세 전체 징수액의 거의 3분의 1을 부담하는데, 그 결과 전국의 하이스트리트 상가 7곳 중 1곳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거리 위에서 이 비율은 구체적인 장면이 된다. 같은 블록에 문을 연 가게 넷, 셔터가 내려간 가게 하나, 그 옆에 다시 임대 안내판이 걸린 자리 하나.
버밍턴 어딩턴 하이스트리트 — 상점이 늘어선 영국 도심 주상가의 전형. Paul Collins,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 geograph.org.uk)
버밍턴 어딩턴 하이스트리트 — 상점이 늘어선 영국 도심 주상가의 전형. Paul Collins,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 geograph.org.uk)
사업재산세는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옛 세금'으로 불려 왔다. 1990년 지방세 개편 때 도입된 이래, 2013년 이후에는 물가가 아니라 별도로 고시되는 배율(multiplier)로 인상 폭이 정해져 왔다.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징수하고 지방에 배분하는 구조라, 점주 입장에서는 '내 거리의 서비스'와 연결되지 않는 비용으로 체감된다. BRC와 UKHospitality가 요구한 것은 바로 이 배율에서 대형 고가 부동산에 적용되는 높은 쪽(high-value multiplier)에서 상가 소매·외식 사업을 빼 달라는 것이다.
4. 왜 지금인가 — 물가 3.1%와 예산일 사이
기사가 이 보고서를 10월 1일에 다룬 데는 이유가 있다. 영국 물가상승률은 3.1%로, 영란은행 목표치 2%를 웃돈다. BRC는 여기서 세금 인상이 물가를 더 밀어 올릴 위험을 짚는다. 세금이 오르면 점주는 가격표를 고치거나, 사람을 줄이거나, 투자를 미룬다. 어느 쪽을 택하든 거리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배경에는 몇 해에 걸친 압력이 겹쳐 있다. 코로나 이후 회복이 더뎠고, 최저임금과 고용주 부담은 계속 올랐으며, 소비는 온라인으로 옮겨 갔다. 여기에 정부가 스스로 '하이스트리트 부흥'을 국정 목표로 내건 점이 겹친다. 세금을 걷는 손과 거리를 살리는 손이 같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다.
5. 반전 — 몰락이 아니라 압박의 방향이 바뀐 것
통념은 '영국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쪽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실제로 측정한 것은 매출의 붕괴가 아니라 비용 구조의 왜곡이다. 세전이익 1파운드당 72펜스, 82펜스라는 비율은 번 돈의 대부분이 이익으로 남기 전에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업종이 바뀌어도, 점포가 다른 용도로 전환돼도, 이 비율이 유지되는 한 새로 들어온 사업자도 같은 압력에 놓인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상권 몰락'은 거리의 소멸을 말하고, '비용 왜곡'은 거리에 남은 사업의 수익성이 눌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 기사는 후자를 전자처럼 서술한다. 빈 점포 7곳 중 1곳은 두 현상이 겹친 결과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어느 쪽이 원인인지는 갈리지 않는다.
6. 한국과 견주면 — 상가 임대료와 지방세의 다른 배선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비교 대상은 서울의 골목상권, 그중에서도 임대료와 공실이 동시에 문제가 되는 대학가나 구도심 상권이다. 예컨대 신촌이나 대전 성심당 일대처럼 유동인구는 줄고 임대료는 버티는 거리에서는, 점주가 먼저 체감하는 것이 '월세'와 '권리금'이다. 한국에서는 재산세가 건물 소유자에게 매겨지고, 임차인은 그 비용을 월세에 반영된 형태로 부담한다. 반면 영국은 점유자가 사업재산세를 직접 내고, 그 액수가 매출이 아니라 부동산 가치에 연동된다.
같은 점은 세금이 결국 임차인의 손익을 누른다는 사실이고, 다른 점은 그 세금이 얼마인지 점주가 협상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권리금은 시장에서 형성되고 협상되지만, 영국의 사업재산세는 관청이 고시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임대료를 깎아 달라'는 요구보다 '세율 체계를 바꿔 달라'는 로비가 먼저 나온다. 이 기사의 성격도 그 로비의 일부다.
7. 사료의 한계 — 누구의 계산인가
이 기사는 BRC의 분석을 그대로 전하는 보도다. 등장하는 수치, 즉 72펜스·82펜스, 620억 파운드, 122,000개·93,000개, 7곳 중 1곳은 모두 BRC가 산출한 값이며, 기사는 이를 검증하거나 반대편 수치와 나란히 놓지 않는다. 세율과 감면 기준선은 정부가 정하고, 그로 인한 부담은 업계가 추정한다. 추정의 기준연도와 산식은 이 기사에 실려 있지 않다.
또 하나의 한계는 장소의 부재다. 어느 도시의 어느 거리인지, 어떤 업종이 어떤 점포를 대체했는지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전국 단위 평균과 비율만 있다. 평균은 개별 거리의 사정을 지운다. 낙후한 북부의 하이스트리트와 관광지의 번화가가 같은 7분의 1 안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8. 독자에게
영국은 세금을 점포의 '자리'에 매기고, 한국은 '사람이 낸 이익'에 더 가깝게 매긴다. 두 방식 모두 장사를 어렵게 만들 수 있지만, 어려움이 꺾이는 지점은 다르다. 만약 우리 동네 상권에도 지금과 다른 기준의 세금이 매겨진다면, 우리는 임대료를 먼저 탓할까, 세금을 먼저 탓할까. 그리고 그 답을 정할 때, 우리는 편의점 주인의 계산서를 본 적이 있는가.
참고 자료
· High street tax burden 'costing jobs and pushing up prices', says BRC — Talking Retail, 2026년 10월 1일. 원문 링크
· 이미지: Shops on Erdington High Street — Paul Collins, CC BY-SA 2.0, Wikimedia Commons(geograph.org.uk 6698128).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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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3 17:31
세금이 자리에 붙으면 점주는 임대료를 탓할 수 없어서, 더 조용히 셔터를 내리는 거겠죠.
모든 이야기1659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