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면 김치통 뚜껑이 살짝 부풀어 있고, 통을 열자 마늘과 고춧가루 냄새 위로 자극적인 시큼한 냄새가 끼어 있습니다. 한 주 전에는 고소했던 배추가 이제는 한 입에 물면 잇몸이 얼얼할 만큼 시큼합니다.
"그냥 상한 거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실은 그게 김치가 제대로 익어가는 중이라는 표시입니다. 문제는 그 시큼함이 언제부터, 왜, 얼마나 빨리 오는가입니다.
흔한 설명이 빠뜨리는 것
"김치는 익으니까 시어진다"는 설명은 틀리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익는다는 게 무슨 화학 반응이고, 왜 그것이 수소 이온 농도, 즉 pH를 떨어뜨리는지는 그 문장 안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세균이 당을 먹어서 산을 만든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이 정도면 맞습니다. 다만 어떤 종이 언제 그 일을 하며, 왜 그 산이 나쁜 세균만 골라 죽이는지까지 가야 냉장고 앞에서 생기는 일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하면 시큼하다"는 쪽도 절반만 맞습니다. 산이 많아 시어지는 것과 부패로 냄새가 지독해지는 것은 서로 다른 현상이며, 김치가 시어지면 오히려 부패균이 설 자리가 줄어듭니다.
당 하나가 젖산 두 개가 되는 반응
[[image:1]]전통방식으로 담근 장독대의 김치독 — Joriola,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배추 절이기에 들어가는 당, 이를테면 포도당 한 분자가 젖산균(젖당이나 포도당을 젖산으로 바꾸는 세균)의 세포 안으로 들어갑니다. 세균은 이 당을 해당(포도당을 피루브산으로 쪼개는 과정)과 발효 경로로 처리해 최종적으로 젖산 두 분자를 내놓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산물이 이산화탄소뿐이라는 점, 그러니까 이 반응이 위로 가며 전자를 새로 만들어내지 않고 균 내부의 산화·환원 균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산소가 없어도 균은 계속 살 수 있고, 우리는 밀폐된 김치통 안에서도 발효가 진행되는 것을 봅니다.
생성된 젖산은 분자당 수소 이온을 하나씩 내놓습니다. 배추와 무 속의 물로 이온이 풀려나면서 김치 국물의 수소 이온 농도가 올라가고, 그 역수에 로그를 취한 값인 pH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숫자로 보는 시큼함 — pH 6에서 4로
갓 절인 배추 김치의 pH는 대략 6 안팎, 잘 익은 김치는 4.2 정도까지 내려갑니다. pH가 1.8 떨어졌다는 것은 수소 이온 농도가 약 10^1.8, 즉 60배 넘게 진해졌다는 뜻입니다. 혀가 느끼는 시큼함이 감칠맛을 덮는 지점이 이 부근입니다.
이 계산에는 흔한 착각이 하나 붙습니다. "pH 4면 산이 4%"라는 식의 해석은 틀립니다. pH는 로그 눈금이고, 4.2와 4.7 사이의 차이는 겉보기 0.5가 아니라 농도비로 약 3배입니다. 그래서 김치가 하루 사이에 시다 못해 쏘는 맛으로 바뀌는 일이 흔합니다.
또 하나, pH만으로 시큼함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젖산은 김치에 들어 있는 다른 산보다 분자당 수소 이온을 내놓는 비율(해리도)이 높아, 같은 총산량이라도 pH를 더 낮춥니다. 요거트와 김치의 pH가 비슷한데도 맛이 다른 이유의 일부가 여기에 있습니다.
pH 4.7 근처에서 일어나는 미생물 교체
발효 초기에는 류코노스틱 같은 균이 먼저 늘어나며 이산화탄소와 젖산을 냅니다. 이때 뚜껑 아래에 기포가 잔뜩 끼는 것, 뚜껑을 열자 톡 쏘는 탄산감이 오는 것은 이 단계의 부산물입니다.
산이 쌓여 pH가 4.5를 지나면, 산에 약한 다른 미생물 대부분은 효소가 변성되어 활동을 멈춥니다. 남는 것은 산에 강한 젖산균이고, 이 균이 계속 산을 더합니다. 즉 김치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넣은 양념이나 소금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산이라는 자기 방어 장치입니다.
소금은 이 교체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경주를 관리합니다. 소금 농도가 낮으면 잡균이 먼저 자리를 잡아 냄새가 나고, 너무 높으면 젖산균까지 억제되어 익지 않습니다. 김치에서 소금이 "보존제"라기보다 "누가 먼저 자리를 잡을지 정하는 관문"인 이유입니다.
온도가 시어지는 속도를 몇 배로 바꾼다
[[image:2]]잘 익은 배추김치 — Jeremy Keith, CC BY 2.0 (Wikimedia Commons)
발효는 화학 반응이므로 온도가 오르면 빨라집니다. 흔히 인용되는 경험칙으로는 온도가 10도 오를 때 반응 속도가 2~3배가 됩니다. 이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실온 20도에서 하루 걸리던 발효가 여름철 30도 부엌에서는 반나절도 안 되어 지나칠 수 있습니다.
김치냉장고가 0도 근처에서 김치를 붙잡아 두는 것은 이 속도를 늦추는 일입니다. 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거의 멈추게 하는 것이므로, 먹기 직전에 조금씩 꺼내 먹으면 한 통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온이 모든 것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0도 근처에서도 반응은 아주 느리게 이어지므로, 석 달을 묵힌 김치는 다시 꺼내도 처음 상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속도만 늦출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이 틀리는 경우
첫째, 산이 많으면 무조건 좋다는 설명은 틀립니다. pH가 너무 낮아지면 젖산균 자기 자신도 억제되어 발효가 멈추고, 대신 산에 강한 곰팡이와 효모가 표면에 자리를 잡습니다. 하얗게 핀 막이나 끈적한 국물은 대개 이 단계의 신호입니다.
둘째, 냉장고에 넣으면 안전하다는 통념도 위험합니다. 산소가 있고 뚜껑이 헐거우면 산에 강한 호기성 곰팡이가 자랄 수 있고, 위로 뜨는 가스가 빠지지 않아 통이 부풀면서 국물이 넘치는 일도 생깁니다.
셋째, "시큼해지면 다 익은 것"이라는 추정은 온도와 소금 농도에 따라 어긋납니다. 낮은 온도에서 오래 익힌 김치는 pH가 같은데도 산이 더 부드럽게 느껴지고, 고온 발효는 같은 pH에서도 자극이 강합니다. 맛은 pH 하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냉장고 앞에서 쓰는 판단 세 가지
하나, 뚜껑을 열었을 때 가스가 많이 모였다면 익는 속도가 빨랐다는 뜻이므로 작은 통으로 나눠 냉장 보관합니다. 통이 가득 찰수록 국물이 넘칠 위험이 커집니다.
둘, 표면에 막이나 거품이 생겼다면 시큼한지보다 곰팡이인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냄새가 시큼하고 국물이 맑으면 발효가 진행된 것이고, 곰팡이 냄새나 끈적임이 있으면 그 부위를 걷어내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통째로 폐기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셋, 사 오는 즉시 먹을 양과 묵힐 양을 나눕니다. 온도가 낮을수록 시어지는 속도가 느려지므로, 오래 보관하려면 냉장고 안에서도 가장 차가운 칸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독자에게
여러분의 김치통은 지금 어느 단계입니까? 뚜껑을 열었을 때 기포가 올라오는지, 국물이 맑은지 탁한지 한번 살펴보면 발효가 어디쯤 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혹시 겨울에 담근 김치가 여름보다 덜 시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온도 때문인지 소금 때문인지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배추김치 발효 중 pH와 산도 변화에 관한 국내 식품 연구 문헌의 일반 서술
- Leuconostoc 등 젖산균의 당 발효 경로 및 젖산 생성에 관한 미생물학 교재의 일반 서술
- Wikimedia Commons: 'Jarre à kimchi - Corée du sud.JPG' (Joriola, CC BY-SA 3.0), 'Korean cuisine-Kimchi-08.jpg' (Jeremy Keith,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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