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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모든 이야기

호주 멜버른 남동쪽, 부티크가 늘어선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 아르마다데일(Armadale). 한국으로 치면 압구정로데오나 청담동 편집숍 거리에 가까운 이 거리 앞에서, 2026년 초 상업부동산 조사기관 피츠로이스(Fitzroys)는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이 거리의 주인이 더 이상 패션 매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츠로이스가 멜버른 주요 쇼핑 스트립 37곳을 실사해 만든 「워크 더 스트립(Walk the Strip)」 보고서에서, 가장 큰 임차 업종은 의류·잡화가 아니라 외식이었다. 화장품과 가방을 진열하던 유리창 뒤로 차양이 내려오고 테이블이 들어서는 일이, 이 도시에서는 이제 예외가 아니라 흐름이 됐다.

같은 거리, 다른 주인

기사에 등장하는 거리는 한 곳이 아니다. 고급 부티크로 알려진 아르마다데일 하이 스트리트, 독특한 개성으로 불리는 채플 스트리트(Chapel Street), 브런즈윅(Brunswick)의 시드니 로드(Sydney Road)처럼 멜버른 안에서도 성격이 다른 상권들이 함께 언급된다. 이들은 원래 전통 소매, 특히 패션이 중심인 거리였지만 지금은 외식·서비스·웰니스를 축으로 하는 복합 동네 허브로 이동 중이라고 기사는 정리한다. 패션 소매업체들은 보장된 유동 인구와 확립된 상권을 갖춘 대형 쇼핑센터로 옮겨 가고, 그 자리에 호텔, 바, 레스토랑, 카페, 각종 생활 서비스, 웰니스 업체가 들어오고 있다.

멜버른 피츠로이 브런즈윅 스트리트의 상가 거리 — Mat Connolley, CC BY 2.5 (Wikimedia Commons)

호주의 상가 임대는 어떻게 돌아가나

한국 독자에게 가장 낯선 부분은 아마 임대 구조일 것이다. 멜버른의 하이 스트리트 상가는 대개 매장을 소유한 임대인이 건물을 임차인에게 빌려주고, 임차인은 정해진 기간의 리스(lease)에 서명하는 구조다. 한국의 상가임대차처럼 보증금을 크게 걸고 월세를 내는 방식과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호주에서는 임대 기간이 계약서에 명시된 고정 기간으로 정해지고, 상업용 임대에는 한국의 권리금처럼 「자리가 가진 장사 권리」를 따로 사고파는 관행이 일반적이지 않다. 다만 기사는 보증금·권리금·리스 기간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위 설명은 호주 상업 임대의 일반적 배경이며, 이 기사의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기사가 실제로 다루는 것은 임대 조건의 법적 세부보다, 어떤 업종이 몇 년짜리 계약으로 들어오는가다.

피츠로이스의 제임스 록우드(James Lockwood)는 “5년 또는 5~10년짜리 새 리스에 탄탄한 임차인 프로필이 붙으면 투자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가를 사는 사람의 눈에는, 옷가게보다 샌드위치집이 더 ‘안전한 세입자’로 보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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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피츠로이 브런즈윅 스트리트 — JLL이 임차 수요가 강한 상권으로 꼽은 거리다. — Mat Connolley, CC BY 2.5 (Wikimedia Commons)

수치로 본 멜버른 상권

기사가 제시한 숫자는 몇 가지다. 2025년 워크 더 스트립 보고서 기준으로, 무니 폰즈(Moonee Ponds)의 퍼클 스트리트(Puckle Street)는 최근 수년간 수천 채의 주거용 아파트가 들어선 뒤 공실률이 2.4퍼센트에 그쳤다. JLL 데이터에 따르면 멜버른 도심(CBD)의 소매 공실률은 2021년 16.7퍼센트까지 올랐다가 2025년 하반기 5.01퍼센트로 내려왔고, 동네 상가센터(neighbourhood shopping centre)는 7.74퍼센트에서 2.44퍼센트로 떨어져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 됐다. 기사는 이 수치를 “소매의 부활”이 아니라 “임차인의 교체”로 읽는다.

왜 옷가게는 나가고 식당은 들어오나

이유는 네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이커머스다. 도시계획 연구자 후지에 라오(Fujie Rao)는 “많은 상품을 이제 온라인에서 살 수 있다면, 디지털화하기 어려운 것은 경험 — 외식, 카페, 개인 웰니스 서비스 — 이다”라고 설명한다. 둘째, 생활비 압박이다. 록우드에 따르면 서비스 업종은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상대적으로 버티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음식에 돈을 쓴다. 생활비가 높아도 머리를 하고 손톱을 관리한다. 그런 서비스 업체는 계속 살아 있다.”

셋째, 인구와 재택근무다. 인구 증가, 빠른 주거 개발, 재택근무 정책이 함께 작용해 사람들이 집 근처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상권은 팬데믹 이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낮 시간대 활기를 되찾았다. 록우드는 “상점 위와 주변에 사는 사람이 많으면 그 상권이 잘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넷째, 방문 패턴의 차이다. JLL의 애너벨 맥팔레인(Annabel McFarlane)은 식료품·외식 같은 ‘하루 필요(daily needs)’ 업종이 시간대와 요일에 걸쳐 꾸준한 유동 인구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패션 소매의 들쭉날쭉한 방문과는 다르다.

상권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

“멜버른 상권이 무너졌다”는 통념은 이 기사와 어긋난다. 공실률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고, 렌트 수요는 북쪽 브런즈윅 스트리트(피츠로이), 스미스 스트리트(콜링우드), 하이 스트리트(노스코트) 같은 곳에서 강하다. 서쪽의 푸츠크레이(Footscray), 선샤인(Sunshine), 워리비(Werribee) 같은 지역도 사회기반시설 개선과 인구 증가로 새 상권으로 떠오르며 내부 북쪽 상권과 경쟁하고 있다. 바뀐 것은 ‘무엇을 파는가’이고, ‘장사가 되는가’는 아니다. 다만 이 해석은 임대인과 부동산 중개업체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업종 교체로 밀려난 기존 임차인의 사정, 특히 자리와 단골을 잃은 소규모 점포주들의 이야기는 이 글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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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 폰즈 퍼클 스트리트 — 인근에 아파트 수천 채가 들어서며 공실률 2.4퍼센트를 기록한 상권. — Bidgee,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한국의 상권과 겹치는 곳

한국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진행 중이다. 서울 신촌이나 홍대입구처럼 젊은 유동 인구를 먹고 자라던 상권에서 패션·화장품 매장이 빠지고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 무인 매장이 들어오는 흐름은 여러 번 관측된 바 있다. 임대료가 버티지 못해 옷가게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를 마진이 높고 회전이 빠른 외식이 채우는 구도까지 같다. 다른 점은 두 가지다. 호주는 리스 기간을 길게 잡아 임차인과 임대인이 장기 계약으로 위험을 나누는 반면, 한국은 보증금과 권리금이 자리 자체의 가치를 형성해 새 업종이 들어오는 비용이 다르게 계산된다. 또 멜버른은 도심으로 사람을 모으는 대신 동네 상권으로 사람을 붙잡는 정책(교통 거점 인근 주택 30만 호 공급 계획)을 택했지만, 한국의 지자체 상권 정책은 아직 유동 인구 유입에 더 무게를 둔 경우가 많다.

이 기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글의 출처인 CommercialRealEstate.com.au는 이름 그대로 상업용 부동산 업계 매체이고, 인터뷰에 응한 피츠로이스와 JLL은 모두 임대·투자 자문 회사다. 조사 보고서도 피츠로이스가 직접 만든 것이다. 따라서 “상권이 건강하다”는 결론에는 임대인 관점이 일부 섞여 있다고 봐야 한다. 업종 교체가 곧 다양성의 상실인지, 아니면 동네 주민의 일상에 더 맞는 진화인지는 이 기사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기사가 인용한 공실률은 원자료(JLL, 워크 더 스트립)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도 옷가게 자리에 식당이 들어오고 있나요? 그 변화를 ‘상권의 쇠퇴’로 느끼는지, 아니면 ‘동네가 살아나는 것’으로 느끼는지 궁금하다. 자주 가던 가게가 사라졌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이었나요?

참고 자료

The reinvention of Melbourne’s high streets — CommercialRealEstate.com.au, 2026년 3월 23일. 원문 링크

인용 수치 출처: Fitzroys 「Walk the Strip」 2025 보고서, JLL 호주 리서치, 기사 내 인터뷰(제임스 록우드, 애너벨 맥팔레인, 후지에 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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