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원판 두 장을 마주 붙이고 그 사이에 연마재를 뿌린 뒤, 손으로 앞뒤로 문지른다. 특별한 장치도, 정밀한 각도계도 없다. 그런데 몇 시간을 문지르고 나면 두 원판의 표면은 서로 정확히 맞물리는 구면으로 수렴한다. 정확도는 수십 나노미터,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수천 분의 일이다. 망원경을 만드는 아마추어 연마사들이 100년 넘게 해온 일이고, 대형 천문대의 주경도 같은 원리로 깎인다. 문제는 이 과정이 본질적으로 무작위하다는 점이다. 손은 떨리고, 압력은 매번 다르고, 연마재 입자는 제각기 다른 자리에서 깨진다. 무작위한 손놀림에서 어떻게 광학적 완벽이 나오는가.
프레스턴 법칙 하나에서 출발한다
에마누엘 샨(Emmanuel Schaan)이 2026년 11월 arXiv에 올린 논문 「From Rock Tumbling to Telescope Mirror Grinding」은 이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푼다. 출발점은 1927년 프레스턴이 유리 연마에서 찾아낸 경험 법칙이다. 단위 시간당 깎여 나가는 재료의 양은 그 지점에 가해진 압력과 표면의 상대 속도에 비례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마재 입자가 어떻게 유리에 흠을 내는지, 유리가 어떤 미세 균열로 떨어져 나가는지는 이 법칙 안에 들어 있지 않다.
논문의 주장은 이 거친 법칙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연마 동작이 가진 대칭성, 즉 원판을 앞뒤로 미는 운동이 어느 방향으로든 평균적으로 같은 통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프레스턴 법칙에 넣으면, 이 과정이 도달할 수 있는 안정한 형상이 무엇인지가 기하학적으로 결정된다. 그 답이 평면과 구면이다. 다른 곡면은 이 문지르기 운동의 평형이 되지 못한다.
왜 하필 구면인가
직관적으로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두 원판이 서로 맞물려 문질러지려면, 모든 접촉점에서 두 면이 같은 방식으로 닿아야 한다. 한쪽이 볼록하면 반대쪽은 같은 반경으로 오목해야 하고, 그 조건이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성립하는 형상은 구면뿐이다. 원통면은 축 방향과 그 직각 방향에서 곡률이 달라 문지르는 방향에 따라 깎이는 양이 달라지고, 결국 그 차이가 스스로를 지워버린다.
여기서 논문이 강조하는 것은 이 구면이 설계된 결과가 아니라 남는 결과라는 점이다. 연마사는 구면을 만들려고 구면을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고르게 문지른다. 나머지는 운동의 대칭성이 알아서 정리한다. 광학 연마가 수백 년 동안 장인의 감각에 의존해온 이유이자, 동시에 감각이 없어도 되는 이유다.
4미터 주경을 연마하는 모습. 니콜라스 U. 메이올 망원경의 주경으로, 연마는 손이 아니라 기계가 하중과 행정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표면의 수렴 원리는 같은 프레스턴 법칙 위에 있다 — NOIRLab/AURA/NSF, CC BY 4.0 (Wikimedia Commons)
두 개의 시계가 일을 나눈다
논문의 핵심은 시간 척도의 위계다. 표면에는 두 종류의 결함이 있다. 손톱으로도 못 느끼는 작은 요철과, 원판 전체가 휘어 있는 큰 스케일의 편차다. 작은 요철은 연마 시간 척도 T_grind 위에서 지수적으로 사라진다. 반면 큰 스케일의 구면 이탈은 그 자리에서 깎여 없어지는 게 아니라 표면 위를 확산하듯 흘러가며 풀린다. 그 시간이 T_sphere이고, 논문은 이것이 (R_mirror / R_stroke)² × T_grind 에 비례한다고 제시한다. 원판 반경을 행정 길이로 나눈 값의 제곱이다.
이 비례식이 반직관적인 결론을 낳는다. 행정을 짧게 잡으면 T_sphere가 커진다. 원판 전체의 형상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작은 요철만 빠르게 지워진다. 즉 광학적 완벽은 "잘 문지르는 기술"이 아니라 "두 시간 척도를 얼마나 벌려놓는가"의 문제가 된다. 연마사들이 마무리 단계에서 행정을 짧게, 압력을 가볍게 줄이는 관행은 이 구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중력이 평면을 무너뜨린다
평면은 구면과 함께 평형이지만, 그 평형은 오래가지 못한다. 원판에는 무게가 있고 크기도 유한하다. 중력과 가장자리 효과는 평면을 조금씩 휘게 만들고, 그 휘어짐은 다시 연마 운동에 되먹임되어 스스로를 키운다. 평면은 불안정한 평형이다. 논문은 이 불안정성이 구면에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든다. 행정이 충분히 짧으면 구면이 흐트러지는 시간 T_deform이 구면화 시간 T_sphere보다 훨씬 길어서, 구면은 안정하게 유지된다.
다만 완전히 고정되지는 않는다. 곡률 반경은 아주 느리게 표류한다. 논문의 표현으로는 단열적으로(adiabatically) 변한다. 초점거리가 조금씩 움직인다는 뜻이고, 이것이 실제 연마에서 "형상은 맞는데 초점이 어긋나는" 문제의 정체다. 완벽한 구면은 만들어지지만, 그 구면이 처음 의도한 반경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같은 수학이 돌팔이 통과 사포에도 있다
논문이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다. 이 틀을 망원경 밖으로 가져간다. 돌팔이(rock tumbling)는 거친 원석을 연마재와 함께 통에 넣고 굴려 모서리를 깎는 취미 공정이다. 회전식 통은 원석을 바닥까지 끌어올렸다 떨어뜨리는 운동을 반복하고, 진동식 통은 원석을 제자리에서 빠르게 흔든다. 논문은 회전식이 진동식보다 모서리를 더 많이 둥글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행정이 길고 충격이 큰 쪽이 곡률을 더 빨리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결론. 어느 쪽도 구면을 만들지 못한다. 원석은 자유롭게 굴러다니고, 서로 부딪히고, 통 벽에 닿는다. 연마되는 면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구면이라는 평형에 정착할 수가 없다. 망원경 연마와 돌팔이는 같은 방정식 위에 있지만, 경계 조건이 달라 결과가 갈린다. 사포질도 마찬가지다. 작은 평평한 면을 사포로 문지르면 가장자리가 먼저 깎여 결국 둥글어진다. 평면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는 이유를 논문은 같은 언어로 설명한다.
연마통 안에서 마감된 원석들. 회전식 통은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지만 구면은 만들지 못한다 — 88pathoffroad,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경쟁 가설과 반론
첫 번째 반론은 "이론이 아니라 사후 설명"이라는 것이다. 결과가 구면이라는 걸 알고 나서 대칭성을 끼워 맞추면 무엇이든 설명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논문의 답은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행정 길이를 바꾸면 T_sphere가 제곱으로 변하고, 따라서 형상이 수렴하는 속도가 예측 가능하게 달라진다. 회전식과 진동식 돌팔이의 차이, 작은 평면이 둥글어지는 현상은 구면 결과를 보고 역으로 맞춘 것이 아니라 같은 틀에서 앞으로 계산해 나온 사례다.
두 번째는 미시 기계에 대한 반론이다. 유리가 실제로 깎이는 것은 연마재 입자가 만드는 미세 균열 때문인데, 프레스턴 법칙은 그 단계를 통째로 건너뛴다. 입자 크기, 재료의 취성, 물의 화학 작용이 결과에 영향을 준다면 프레스턴 계수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이 정당한가. 논문의 입장은 이 세부가 평형의 위치를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평형은 운동의 대칭성에서 나오고, 미시 물리는 그 평형에 도달하는 속도만 조절한다. 이 분업이 성립하는지가 이론의 사활이 걸린 지점이다.
논문이 인정하는 한계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이 논문은 프레스턴 법칙을 공리로 삼는다. 프레스턴 법칙 자체가 왜 성립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론이 맞다는 것과 프레스턴 법칙이 맞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후자가 흔들리면 전자도 함께 흔들린다. 요철이 지수적으로 줄어든다는 결론도 그 계수 안에 이미 들어 있는 가정에 기대고 있다.
또 하나, 이 틀이 다루는 것은 구면까지다. 실제 반사망원경의 주경은 구면이 아니라 포물면이다. 포물면은 구면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난 형상이고, 그 단계는 연마사가 판을 국소적으로 눌러 만드는 별도의 공정이다. 논문은 구면이 어떻게 저절로 생기는지를 설명하지, 그 위에 어떻게 의도적으로 비구면을 새기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자동으로 완벽해지는 부분과 손으로 어긋나게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이 이론이 광학 제작의 절반만 설명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엇이 남는가. 이 논문이 남기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다. 무작위한 손놀림이 특정한 기하학을 선택하고, 그 선택은 운동의 대칭성이라는 아주 좁은 통로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라플라스 연산자가 국소 영역의 평균에서 튀어나온다는 논문의 관찰도 같은 이야기다. 평균을 내는 행위가 곧 확산이고, 확산이 곧 매끄러움이다.
그렇다면 질문. 우리가 "정밀한 작업"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사실은 통제가 아니라, 통제를 포기했을 때 남는 안정한 평형에 기대고 있을까. 그리고 그 평형이 존재하지 않는 작업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대신 붙잡고 있는 걸까.
참고 자료
Emmanuel Schaan, "From Rock Tumbling to Telescope Mirror Grinding: How Optical Perfection Emerges from Random Motion", arXiv:2611.01673v1 [physics.ed-ph], 2026년 11월 1일 제출. https://arxiv.org/abs/2611.01673v1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4미터 주경 연마 사진 — NOIRLab/AURA/NSF, CC BY 4.0. 연마통 원석 사진 — 88pathoffroad, CC BY-SA 3.0.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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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3 20:39
평면이 중력 때문에 불안정하다는 대목이 제일 재밌었어 😅 통제를 포기했을 때 남는 평형이라니, 뭔가 위로되는데? 🔥 -
빗방울
2026.11.03 21:41
포물면 얘기가 제일 걸린다. 결국 구면까지는 손이 알아서 만들고, 그 위에 일부러 어긋나게 새기는 건 다시 손의 몫이라는 거잖아? 자동으로 완벽해지는 구간이 있으니까 오히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정확히 남는 셈이라, "정밀함은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결론은 절반만 맞는 거 같음. 사포질에 빗대면 모서리는 공짜로 둥글어지지만 날은 공짜로 안 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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