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홍콩 침사추이(尖沙咀, Tsim Sha Tsui — 구룡 반도 남단의 관광·상업 지구)의 파크 레인 쇼퍼스 불러바드(Park Lane Shopper’s Boulevard)에 금화와 금괴를 파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중국 본토에서 약 100개 점포를 운영해 온 금 투자 전문 소매업체 산 골드 코인스(San Gold Coins)의 홍콩 세 번째 가두 점포다. 앞서 중환(中環, Central)과 코즈웨이베이(Causeway Bay)에도 같은 형식의 점포를 냈다. 이 회사의 총괄 매니저 소피아 천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투자용 금화와 금괴에 대한 수요가 압도적”이라며 확장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가게들이 들어간 자리는 새로 지은 상가가 아니다. 코로나 이후 회복 과정에서 비어 있던 대로변 1층 점포다. 홍콩의 대표 상권에 ‘금’을 파는 가게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뜻이다. 금값이 올라 금 소매업의 수익 구조가 바뀌었고, 그와 동시에 비싼 상권의 임대료가 그 사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내려왔다.
가게가 아니라 사람을 부르는 전략 — 27층에서 1층으로
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업종의 변화가 아니라 판매 방식의 변화다. 전통적으로 금괴 도매상은 오피스 빌딩에 들어가 전문 투자자를 상대했다. 소피아 천의 표현을 빌리면 “예전에 금화를 사던 사람은 전문 고객이었다. 그들은 검색을 해서 건물 27층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산 골드 코인스가 택한 전략은 그 반대다. 지나가는 사람이 들어오게 만드는 것, 즉 ‘원래 고객이 아니던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차이는 상품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장식용 주얼리가 아니라 국제 금 시세에 가깝게 가격이 붙는 표준화된 금화·금괴를 판다. 공식 조폐국에서 직접 사들이고 현물 시세 위에 소폭의 프리미엄만 얹는다. 천은 “모든 것이 투명하기 때문에 마진이 매우 낮다”고 말했다. 대신 은행과 다른 지점을 내세운다. 은행은 가격 경쟁력이 있을 수 있지만 되살 때 계좌 요건이 붙고 대상 상품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이 회사는 자기 가게에서 사지 않은 제품도 조건을 덜 달고 즉시 되사준다는 것이다.
홍콩의 상가 임대·소유 제도 — 한국의 전세·보증금·권리금과 무엇이 다른가
이 기사에는 임대차 계약의 구조가 직접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계약 조건에 관한 설명은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음을 먼저 밝힌다. 다만 기사에 남은 한 줄이 제도적 차이를 보여준다. 산 골드 코인스가 파크 레인의 점포를 두고 천이 “2년 전이라면 이 자리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한 대목이다. 즉 이번 진입은 협상의 결과라기보다 가격 수준 자체가 내려온 결과다.
일반적 배경을 덧붙이면 이렇다. 홍콩의 토지는 대부분 정부가 소유하고 장기 임차권(리스)으로 공급하는 구조여서, 건물 소유권도 기한이 있는 권리로 거래된다. 상업용 점포 임대는 영국식 상업 임대에 가깝다. 보증금은 통상 몇 달치 임대료 수준이고, 한국처럼 계약금과 잔금을 크게 나눠 걸거나 전세처럼 목돈을 맡기고 월세를 면제받는 구조가 시장의 기본 문법은 아니다. 권리금(기존 임차인의 영업권·시설을 새 임차인이 사는 돈)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상호·집기·영업권을 넘길 때 별도 대가를 협상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이 차이는 진입 장벽의 성격을 바꾼다. 한국에서는 목 좋은 자리에 들어갈 때 보증금과 권리금이라는 목돈이 먼저 필요하고, 임대료가 내려가도 그 두 덩어리는 잘 줄지 않는다. 반면 홍콩에서는 임대료 인하가 곧바로 신규 진입의 문턱 인하로 이어지기 쉽다. 금 소매업체가 몇 달 만에 핵심 상권 세 곳에 동시에 들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계약 구조가 있다. 다만 개별 건물마다 조건이 달라 일반화는 조심해야 한다.
2025년 3월 홍콩 침사추이 광둥도(Canton Road) 거리 — BAMAA Nai Kamiao, CC0 (Wikimedia Commons)
숫자로 본 변화 — 점포 348곳에서 358곳으로
금 소매업의 확장은 통계에도 잡힌다. 홍콩의 jewellery, watches and clocks, and valuable gifts(주얼리·시계·귀중품) 범주 매출은 2025년 중반 이후 반등해 9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9.1% 늘며 전체 소매 시장을 웃돌았다. 점포 수도 늘었다. 부동산 중개업체 미들랜드 리얼티(Midland Realty)에 따르면 홍콩 4대 핵심 상권의 주얼리·귀중품 점포 수는 2022년 초 348곳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2년 사이 최대 358곳까지 회복했다.
규모도 커졌다. 저우다푸(周大福, Chow Tai Fook)는 침사추이 광둥도에서 약 1만 제곱피트(약 929㎡) 규모의 1층 점포를 월 약 200만 홍콩달러에 임차했다. 이 지역에서 최근 2년 사이 기록된 대형 점포 임대료 가운데 가장 높은 축에 드는 금액이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라오푸 골드(Laopu Gold)도 주요 쇼핑몰에 새 점포를 내며 해외 확장의 일환으로 홍콩 핵심 상권 출점을 계획하고 있다. 콜리어스(Colliers)의 임차인 서비스 총괄 피오나 응안은 “신생 브랜드와 기존 브랜드의 출점이 함께 늘어난 것은 금 소매 수요가 강해졌고, 프라임 입지가 시장 점유율 경쟁의 핵심 전장이 되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말했다.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이 범주 매출이 19%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왜 지금인가 — 임대료 40% 하락, 공실률 6.6%
배경에는 임대료의 장기 조정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홍콩의 하이스트리트 임대료는 여전히 코로나 이전 수준보다 약 40% 낮다. 반면 4대 핵심 상권의 공실률은 팬데믹 고점에서 크게 내려 2025년 6.6%를 기록했다. 콜리어스는 2025년의 완만한 상승에 이어 2026년 임대료가 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임대료가 여전히 고점 아래에 있는 동안, 프라임 공간은 금 소매업자에게 다시 감당 가능한 가격이 된 것이다. 금값 상승으로 마진은 얇지만 회전이 빠른 사업이 성립하고, 임대료는 낮아진 상태에서 두 조건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반전 — 상권 회복이 아니라 ‘용도’가 바뀐 것
이 기사를 ‘홍콩 상권이 살아났다’로 읽으면 절반만 맞다. 공실률 6.6%는 개선이지만, 그 공간을 채운 것은 명품 패션도, 대형 식당도 아닌 금 투자 소매다. 같은 기사에서 확인되는 범주 매출 증가율은 9.1%이고 딜로이트 전망은 19%인데, 이는 소비 회복이라기보다 금이라는 자산 가격의 움직임이 소매 매출로 옮겨 붙은 성격이 강하다. 금값이 꺾이면 저 마진·고회전 모델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또 하나의 반전은 이 변화를 이끈 주체가 홍콩 자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 골드 코인스는 난징에 본사를 둔 융인 홀딩스 그룹(Yong Yin Holdings Group)의 해외 소매 부문이고, 라오푸 골드는 베이징 기업이다. 홍콩의 빈 점포를 채운 것은 본토 자본의 해외 진출이다. 상권의 회복을 도시 경제의 회복과 등치시킬 수 없는 이유다.
한국과의 비교 — 명동과 홍콩 하이스트리트
한국에서 가장 비슷한 처지는 서울 명동이나 강남대로 같은 대로변 상권이다. 임대료가 높고, 유동인구가 관광과 오피스 수요에 좌우되며, 공실이 늘면 대형 브랜드나 저가 프랜차이즈가 빈자리를 메우는 식으로 업종이 갈아 끼워져 왔다. 홍콩과 같은 점은 임대료가 정점 대비 내려간 국면에서 새로운 업종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두 가지다. 첫째, 한국은 권리금이라는 별도 진입 비용이 남아 임대료 인하가 곧바로 신규 진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둘째, 홍콩은 토지임차 구조 위에서 임대료 조정 폭이 크고 빠르다. 금 소매 같은 저마진 업종이 핵심 상권에 들어올 수 있는지 여부는 결국 이 두 제도가 가른다.
사료의 한계 — 누구의 시각인가
이 기사의 수치는 SCMP 보도와 그 안에서 인용된 미들랜드 리얼티, 콜리어스, 딜로이트의 자료에 기댄다. 미들랜드와 콜리어스는 모두 상업용 부동산 중개·자문 회사다. 이들이 제시하는 ‘회복’과 ‘임대료 상승 전망’은 임대인과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읽히는 서사이기도 하다. 반면 산 골드 코인스와 피오나 응안의 발언은 시장 확장을 설명하는 당사자들의 시각이다. 금값이 실제로 얼마나 더 오를지, 이 모델이 금값 조정기에 버틸 수 있는지는 이 기사로 판단할 수 없다. 세입자 단체나 정부 통계와 교차 검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 읽어야 한다.
독자에게 묻는다
임대료가 내려간 자리에 저마진 금 소매점이 들어오는 도시를 보면, 우리는 그것을 회복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상권이 감당할 수 있는 업종의 눈금 자체가 내려갔다는 신호로 읽어야 할까. 한국의 명동에서도 임대료가 충분히 내려가면 금은방과 환전소 같은 업종이 대로변 1층을 다시 차지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는 그 거리를 살아난 거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참고 자료
Peggy Ye, “Investment gold retailers move into vacant Hong Kong high-street shops on metal’s rise”, South China Morning Post, 2026년 2월 22일. https://www.scmp.com/business/commodities/article/3344102/investment-gold-retailers-move-vacant-hong-kong-high-street-shops-metals-rise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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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2026.11.04 05:30
예전엔 금은방 하면 지하상가 구석에 조용히 앉아 계신 큰어머니가 생각났는데, 이제는 침사추이 대로변 1층에 금괴를 쌓아두다니 허허. 27층에서 1층으로 내려온 걸 보면 결국 사람 손을 잡는 쪽이 이기는가 봅니다. 다만 금값이 안 오르는 날엔 저 유리창 안이 제일 먼저 허전해질 테니, 그게 참 세월이지요.
모든 이야기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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