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COMMUNITY모든 이야기

밤새 어둠 속에서 빛나는 스티커, 왜 충전할수록 오래 가고 겨울에 더 밝은가

빗방울 2026.11.04 06:32 13분 읽기 조회 25 · 추천 2

새벽 두 시, 불을 끈 아이 방 벽에 붙어 있던 별 모양 스티커가 희미한 초록빛을 내고 있다. 낮 동안 창가에 두었더니 저녁 내내 밝았다가, 새벽이 되니 겨우 윤곽만 남을 만큼 어두워졌다. 손전등을 몇 초 비추면 다시 환해지고, 그 빛은 대여섯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앞에서 어른은 이렇게 말한다. '빛을 저장해 두었다가 천천히 내놓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한 문장으로는 다음 질문이 전부 막힌다. 왜 손전등 3초로 몇 시간을 버티는가. 왜 파란 불빛으로 충전하면 더 밝은가. 그리고 왜 여름보다 겨울 밤에 더 오래 빛나는가. 답은 스티커가 담고 있는 형광체(빛을 흡수해 다시 내보내는 물질)의 결정 구조 안에, 아주 작은 '덫'으로 숨어 있다.

빛을 저장한다는 말의 정체: 형광은 10억분의 1초, 인광은 몇 시간

물질이 빛을 흡수해 다시 내보내는 현상을 통틀어 발광(luminescence)이라 한다. 이때 전자는 바닥 상태에서 더 높은 에너지 준위로 뛰어오르고, 다시 내려오면서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광자로 내놓는다. 문제는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같은 발광인데도 어떤 물질은 10억분의 1초(나노초) 만에 빛을 내고, 어떤 물질은 몇 시간을 버틴다.

즉시 내놓는 쪽을 형광(fluorescence)이라 한다. 형광등이나 형광펜, 블랙라이트 아래에서 빛나는 물건이 그렇다. 전원을 끄면 같은 순간에 사라진다. 반면 인광(phosphorescence)은 빛을 내보내는 경로가 '금지된 전이'로 막혀 있어, 전자가 좀처럼 내려오지 못한다. 빛을 저장한다는 통념은 실은 이 지연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전자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스핀과 '금지된 문'

전자에는 스핀이라는 방향 성질이 있다. 대부분의 분자는 바닥 상태에서 짝을 이룬 스핀을 가지며, 이를 단일항(singlet)이라 한다. 빛을 받으면 전자는 같은 스핀을 유지한 채 들뜬 단일항으로 간다. 여기까지는 형광의 경로다. 그런데 일부 물질에서는 전자가 스핀 방향을 뒤집어 삼중항(triplet)으로 넘어간다. 이를 계간 교차(intersystem crossing)라 부른다.

삼중항에서 바닥 상태로 돌아오려면 스핀이 다시 뒤집혀야 하는데, 양자역학적으로 이 전이는 '금지'되어 있어 확률이 매우 낮다. 그래서 전자는 준안정 상태에 머물다가 아주 느리게, 즉 몇 밀리초에서 길게는 1초 정도에 걸쳐 빛을 낸다. 이것이 첫 번째 인광 기구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몇 시간'이 설명되지 않는다. 손목시계의 야광 도료나 스티커가 밤새 버티는 것은 세 번째 기구 덕분이다.

진짜 주인공은 결정 속의 덫: 결함이 전자를 붙잡는다

현대의 야광 스티커는 대개 스트론튬 알루미네이트(SrAl2O4)에 유로퓸(Eu)과 디스프로슘(Dy)을 소량 섞은 형광체를 쓴다. 화학식 SrAl2O4를 보면 스트론튬 1개, 알루미늄 2개, 산소 4개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이다. 그런데 실제 결정에는 원자가 빠진 자리(공공 결함)나 원자가 어긋나게 들어앉은 자리가 생긴다. 유로퓸과 디스프로슘이 들어가면 주변 격자가 미세하게 틀어지면서, 전자를 붙잡아 둘 수 있는 '덫'이 형성된다.

빛을 받은 전자는 들뜬 상태에서 이 덫으로 떨어져 갇힌다. 갇힌 전자는 스스로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정 격자의 열진동이 우연히 충분한 에너지를 밀어줄 때만 덫을 벗어나 유로퓸 이온으로 돌아가 빛을 낸다. 즉 스티커의 빛은 '저장된 빛을 조금씩 흘리는' 것이 아니라, '열이 덫의 문을 하나씩 두드려 열 때마다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밝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수함수적으로 줄어든다. 처음 몇 분 동안 눈에 띄게 밝았다가, 이후로는 아주 느리게 어두워지는 이유다.

jab_s.jpg

들뜬 상태와 바닥 상태 사이의 에너지 준위와 전이 경로를 나타낸 야블론스키 도해. 왼쪽 보라색 화살표가 흡수, 파란 화살표의 형광은 나노초 단위, 오른쪽 분홍 화살표의 인광은 밀리초~초 단위로 표시되어 있다 — LumiChemist, CC BY 4.0 (Wikimedia Commons)

3초 충전으로 몇 시간? 숫자로 확인하는 에너지 수지

먼저 '충전'을 에너지 관점에서 계산해 보자. 손전등의 빛이 스티커에 닿는 면적을 10제곱센티미터, 손전등이 그 면에 전달하는 빛의 세기를 대략 1킬로룩스 수준으로 잡고 3초간 비춘다고 하자. 조도 1킬로룩스는 가시광 영역에서 대략 1제곱미터당 수 와트 수준의 복사속에 해당하는데, 이 가운데 형광체가 흡수하는 비율은 유로퓸의 흡수 대역과 겹치는 파장에만 한정된다. 스트론튬 알루미네이트 계 형광체의 여기 파장 범위는 대략 200~450나노미터로, 보라·청색 영역에 집중된다. 실제로 흡수되어 덫에 저장되는 에너지는 조사된 빛 에너지의 몇 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그 몇 퍼센트조차 적지 않은 이유는 광자의 개수에 있다. 450나노미터 파장의 광자 하나는 약 2.8전자볼트의 에너지를 갖는다. 초당 10의 15승 개 규모의 광자가 3초 동안 쏟아지면, 그중 1퍼센트만 덫에 갇혀도 10의 13승 개 규모의 전자가 저장된다. 이 전자들이 초당 아주 적은 비율로만 풀려나므로, 눈에 보이는 밝기를 몇 시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조도라도 덫에 갇히는 전자 수가 훨씬 적다면, 밝기는 금세 사라진다. 오래 가는 스티커와 금방 꺼지는 스티커의 차이는 대부분 이 저장 용량, 즉 형광체의 조성과 결정 품질에서 갈린다.

충전은 밝기보다 파장이 중요하다: 왜 파란 불빛이 유리한가

여기서 흔한 오해가 하나 있다. '오래 비추면 오래 간다'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맞다. 덫이 포화될 때까지는 충전 시간에 비례해 저장량이 늘어난다. 그러나 포화된 뒤에는 아무리 오래 비춰도 더 밝아지지 않는다. 손전등으로 30분 비추는 것보다, 햇빛이나 형광등 아래 몇 분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은 이유다.

더 중요한 변수는 파장이다. 스트론튬 알루미네이트 형광체는 200~450나노미터의 자외선~청색광에서 잘 여기된다. 가시광선 중에서도 파란 쪽 빛이 에너지가 높아 전자를 단일항에서 삼중항, 다시 덫으로 밀어 올리기에 유리하다. 붉은 빛이나 노란 빛은 광자 하나의 에너지가 작아 형광체를 충분히 들뜨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실내 형광등 아래에서는 잘 충전되지만, 촛불이나 붉은 조명 아래에서는 거의 충전되지 않는다. 형광체가 내보내는 빛도 초록빛 계열이 가장 밝고, 청록 계열이 가장 오래간다. 이는 유로퓸 이온이 놓인 결정장의 세기에 따라 발광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겨울 밤이 더 밝은 이유: 열이 도와주는 양날의 칼

앞서 덫에서 전자를 꺼내는 열쇠는 열진동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곧 온도가 높을수록 빛이 빨리, 그러나 짧게 나온다는 뜻이다. 실제로 온도를 올리면 인광의 초기 밝기는 밝아지지만, 저장된 전자가 더 빨리 소진되어 전체 지속 시간은 짧아진다. 반대로 온도가 낮으면 덫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아 초기 밝기는 낮지만, 전자가 천천히 풀려나며 긴 꼬리를 남긴다. 같은 스티커라도 더운 여름 방 안과 서늘한 겨울 방에서 밝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흔히 '겨울에 더 밝다'고 말할 때 사람이 체감하는 것은 초기 밝기보다 이 긴 꼬리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효과는 형광체 종류와 온도 범위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모든 스티커에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여기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도 있다. 습기다. 스트론튬 알루미네이트는 물에 녹지 않지만, 장기간 수분에 노출되면 표면이 열화되어 인광 특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제조사는 입자 표면을 코팅해 습기와 마모를 막는다. 욕실 타일이나 주방 벽처럼 습기가 많은 곳에 오래 붙어 있는 스티커가 금세 칙칙해지는 이유는 빛을 덜 받아서만이 아니다.

이 설명이 틀리는 경우: 방사성 야광과 형광등의 인광은 다르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축광(蓄光) 안료'에만 해당한다. 세상에는 빛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는 물질도 있다. 20세기 초반 시계판에는 라듐(Ra-226)을 섞은 도료가 발렸다. 라듐이 붕괴하면서 내는 방사선이 황화아연을 들뜨게 해, 빛을 전혀 받지 않아도 밤새 빛났다. '자발광(radioluminescence)'이라 부른다. 1920년대 미국의 시계판 도장 노동자들, 이른바 '라듐 걸스'가 이 도료를 붓끝으로 입에 묻혀 다듬다가 턱뼈가 괴사하는 피해를 입은 사건은 산업안전과 노동법을 바꾼 계기가 됐다. 라듐 도료는 1970년대에 트리튬 계열로,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무해한 스트론튬 알루미네이트 축광 안료로 대체됐다.

undark_s.jpg

1921년 잡지 광고에 실린 '언다크(Undark)' 라듐 야광 도료. '라듐과 황화아연을 결합해 어둠 속에서도 계속 빛난다'고 설명한다. 방사성 물질을 전혀 받지 않아도 빛나는 자발광 방식이었다 — 저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두 번째 예외는 형광등이다. 형광등 안의 형광체도 '인광'을 쓰지만, 그 목적은 빛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류 전원이 초당 수십 번 방향을 바꾸며 자외선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데, 형광체가 수 밀리초 동안 빛을 늦게 내보내면 그 사이의 어두운 순간을 메워 깜빡임이 줄어든다. 즉 같은 인광이라도 축광 안료는 '저장'을 위해, 형광등은 '평활화'를 위해 쓰인다. '빛나는 스티커의 원리'라는 설명을 형광등이나 야광 시계 등 모든 야광 제품에 그대로 갖다 붙이면 틀린다.

여기서 일상에 적용할 판단 세 가지로 넘어가자.

첫째, 스티커를 어디에 붙일지 정할 때는 '빛을 받는가'보다 '무슨 색 빛을 받는가'를 먼저 보자. 창가나 형광등 아래는 좋고, 따뜻한 색 전구 아래나 햇빛이 들지 않는 벽은 나쁘다. 붙인 직후 며칠은 밝기가 점점 좋아질 수 있는데, 이것은 덫이 포화되기 전까지 충전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둘째, 밤새 밝기를 유지하려면 초기 밝기를 전부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열이 많은 곳(난방기 옆, 직사광선이 계속 닿는 곳)은 밝게 시작해 금방 꺼진다. 초저녁엔 강하게, 새벽엔 희미하게 남는 것이 정상이며, 그것이 덫의 물리에서 나오는 결과다.

셋째, '라듐 야광'이라는 말을 들으면 방사성 라듐 도료를 떠올려야 하고, 스트론튬 알루미네이트 스티커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오래된 시계나 항공 계기판처럼 아주 예전 라듐 도료가 남아 있을 수 있는 물건은 분해되거나 파괴되면서 먼지가 나지 않도록 다루는 것이 안전하다. 반면 지금 파는 축광 스티커는 방사성을 전혀 쓰지 않는다.

여러분의 방에는 야광 스티커가 붙어 있는가. 혹시 불을 끈 직후가 가장 밝고 새벽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불량품인가' 하고 의심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감쇠는 고장이 아니라 덫에 갇힌 전자가 하나씩 풀려나는 속도라는 것을 알 것이다. 한 가지 직접 확인해 볼 실험을 권한다. 같은 스티커 두 장을 뜨거운 곳과 서늘한 곳에 각각 붙이고, 손전등을 똑같이 3초씩 비춘 뒤 밝기의 '꼬리'가 어느 쪽이 긴지 비교해 보자. 어느 쪽이 더 오래 빛났는가.

참고 자료

· Wikipedia, 'Phosphorescence' — 형광과 인광의 구분, 삼중항 인광과 지속 인광의 정의, 형광등 형광체의 용도. https://en.wikipedia.org/wiki/Phosphorescence

· Wikipedia, 'Strontium aluminate' — SrAl2O4 화학식, 유로퓸·디스프로슘 도핑, 여기 파장 200~450나노미터, 발광 파장, 황화아연 대비 성능과 1990년대 안료 개발 경위, 습기 대응 코팅. https://en.wikipedia.org/wiki/Strontium_aluminate

· Wikipedia, 'Radium dial' — 라듐 도료의 자발광, 트리튬 및 스트론튬 알루미네이트로의 대체 시기. https://en.wikipedia.org/wiki/Radium_dial

모든 이야기1737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글쓰기
총 1737개의 이야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