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COMMUNITY모든 이야기

플라밍고 그네에 매달린 아이 — 1964년 도서주간 포스터

빗방울 2026.11.04 07:38 7분 읽기 조회 21 · 추천 2

오늘의 그림은 1964년 11월 1일부터 7일까지 열린 미국 도서주간(Book Week) 홍보 포스터다. 세로로 긴 종이 한 장 위에 분홍빛 플라밍고 한 마리가 서 있고, 그 다리 사이에 가로로 팽팽하게 당겨진 두 개의 줄 — 그네 — 에 사람 하나 크기만 한 아이가 매달려 있다. 아이는 그네에 앉은 자세로 초록 표지의 책을 펼쳐 들었다. 인쇄물에는 제목과 발행 정보 외에 사진 한 장도, 배경 풍경도 없다.

화면을 채운 것은 새 한 마리다

구도는 지극히 단순하다. 전체 높이의 3분의 2를 플라밍고의 몸과 구부러진 목이 차지하고, 남은 아래쪽에 아이와 그네줄이 놓인다. 새의 목은 머리를 땅 쪽으로 내민 채 거의 원형에 가까운 곡선을 그리는데, 이 곡선이 화면의 다른 모든 요소를 감싸 안는 틀이 된다. 새의 다리는 사람 다리보다 훨씬 길고, 관절이 뒤로 꺾인 것처럼 보이도록 그렸다. 우측 상단 여백에는 나비 두 마리가 작게 떠 있다. 색은 분홍·초록·검정·아이보리, 네 가지로 끝난다. 회색 중간톤도, 그라데이션도 거의 쓰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나

저작자는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1907~1998)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20세기 이탈리아 디자인에서 미래주의와 구축주의를 거쳐 쓸모없는 기계(macchine inutili) 같은 실험을 거친 인물이다. 그가 1945년에 낸 『ABC』는 글자 대신 그림과 촉감으로 알파벳을 가르치는 어린이 책이었고, 이후에도 『어두운 밤의 책』, 『안개 속의 책』처럼 책 자체를 놀이 기구로 다루는 작업을 이어 갔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런 작업 세계가 이 포스터의 문법과 그대로 겹친다.

Swing_into_books_Book_week_November_1_7_20261104.jpg

1964년 미국 도서주간 포스터. 분홍 플라밍고가 그네줄에 매단 아이가 책을 펼치고 있다 —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퍼블릭 도메인 (미국 의회도서관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ppmsca.42987 / 위키미디어 공용)

발행 맥락은 미국 도서주간이다. 11월 1일부터 7일까지의 이 주간은 1919년부터 이어진 미국의 독서 진흥 캠페인으로, 매년 그해의 주제 포스터가 제작됐다. 이 이미지의 설명에는 「Swing into books. Book week, November 1-7, 1964.」라고만 적혀 있고, 누가 의뢰했는지, 어디에 붙였는지, 몇 부가 찍혔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원본은 미국 의회도서관의 인쇄물·사진부(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가 소장하며, 디지털 ID는 ppmsca.42987이다. 원판은 폭 6,989픽셀, 높이 9,143픽셀의 스캔 파일로 남아 있다.

왜 하필 플라밍고였나

여기서부터는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가 참조하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다. 플라밍고는 실제로 아주 긴 다리와 목을 가진 새이고, 그 두 부위의 길이가 몸통에 비해 눈에 띄게 크다. 이런 체형은 얕은 물에서 서서 먹이를 찾는 생활 방식과 맞물린다. 다리가 길면 몸통을 물 밖에 두고도 깊은 곳까지 발이 닿고, 목이 길면 몸을 움직이지 않고 부리만 물속으로 내밀어 갑각류나 조류를 걸러 낼 수 있다. 그림에서 새가 머리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자세는 그 먹이 찾기 동작을 연상시킨다.

플라밍고의 분홍색 역시 그림의 색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이 색은 깃털에 원래 들어 있는 색소가 아니라, 먹이에서 얻는 카로티노이드 계열 색소가 몸에 쌓여 나타나는 결과다. 갓 태어난 새끼는 회색이나 흰색에 가깝고, 먹이에 따라 색이 짙어지거나 옅어진다. 즉 분홍 플라밍고라는 인상은 새의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사육 환경과 식단에 좌우되는 조건부 성질이다. 포스터가 그 색을 골랐다는 사실 자체가, 이 새를 책 읽는 사람의 대리물로 세우려는 선택이었다고 읽을 수 있다.

그네라는 장치의 반전

재미있는 지점은 그림의 물리다. 그네줄은 플라밍고의 다리 두 개에 각각 걸려 있는데, 새의 다리는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그네의 무게는 결국 새의 다리를 통해 지면으로 전달된다. 그런데 화면에는 그 힘이 어떻게 버텨지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줄이 다리에 묶인 매듭만 작게 표시되어 있을 뿐, 장력이 어느 정도인지, 다리가 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려져 있지 않다. 이 포스터는 물리적으로 정합적인 장면을 그린 것이 아니라, 아이의 무게를 견디는 새라는 은유를 그린 것이다.

통념과 다른 지점이 여기 있다. 흔히 어린이 책 포스터는 아이가 책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다. 이 포스터는 순서를 뒤집는다. 책이 아이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새가 아이를 매달고 있고 아이가 책을 펼치고 있다. Swing into books라는 문구는 책 속으로 뛰어들다로 읽히지만, 그림에서는 이미 공중에 떠 있는 아이가 책을 펼침으로써 그네의 진폭을 유지한다. 읽기가 놀이의 조건이 아니라 놀이의 균형추로 배치된 셈이다.

오늘의 그림이 된 맥락

이 이미지가 오늘의 그림으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서는 제공된 설명에 근거가 없다. 위키미디어 공용의 설명에는 「Swing into books. Book week, November 1-7, 1964.」라는 캡션과 의회도서관 소장 정보만 있고, 선정 사유나 편집자의 코멘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11월 4일이라는 날짜가 이 포스터가 홍보한 주간(11월 1~7일)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선정 이유를 추정해 단정하지는 않겠다.

사료로서의 한계

이 스캔본이 보여주지 않는 것이 적지 않다. 첫째, 종이의 질감과 인쇄 방식은 알 수 없다. 석판인쇄였는지 실크스크린이었는지, 원본 크기가 몇 센티미터였는지는 이 디지털 파일에 담겨 있지 않다. 둘째, 이 포스터가 실제로 어디에 붙었는지, 얼마나 유통됐는지, 당시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이미지에서 읽어낼 수 없다. 셋째, 포스터의 색은 스캔과 색 보정을 거친 값이다. 분홍의 정확한 색조는 원판과 다를 수 있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이 이미지가 사진이 아니라 인쇄물을 찍은 재현물이라는 것이다. 화면에 보이는 여백, 가장자리의 미세한 결, 아래쪽 띠의 초록색은 인쇄된 종이의 상태이지 사진의 피사체가 아니다. 사료로 쓸 때는 1964년의 인쇄물이라는 층위와 2026년에 스캔된 디지털 파일이라는 층위를 구분해야 한다.

독자에게

이 포스터에서 아이는 책을 읽고 있지만, 정작 책장은 화면 어디에도 없다. 그네가 멈추면 아이는 어디로 갈까. 그리고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책에 매달린 기억은 언제였나.

참고 자료

모든 이야기1744

가벼운 안부부터 깊은 생각까지, 함께 나눠요.

글쓰기
총 1744개의 이야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