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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옆 브래드퍼드에서 한네일 빈 점포 다섯 칸 — 영국 상권 보고서를 읽는 법

빗방울 2026.11.04 09:25 10분 읽기 조회 17 · 추천 2

2025년 여름, 영국 도시정책 싱크탱크 센터 포 시티즈(Centre for Cities)가 낸 46쪽짜리 보고서 한 권이 영국 상권 논쟁의 틀을 바꿔 놓았다. 제목은 '체크아웃(Checking out): 전국 하이스트리트의 들쭉날쭉한 성적표'.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는 영국 도시 중심을 지나는 간선 상가거리를 부르는 말로, 우리말로 옮기면 '도심 주상가'쯤 된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잘 도는 거리와 못 도는 거리의 차이는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도시 경제의 문제라는 것. 2,000자 안팎으로 그 논리를 풀어보려 한다.

같은 나라, 열두 칸 중 한 칸과 다섯 칸 중 한 칸

보고서는 런던과 케임브리지 도심에서 점포 열두 곳 중 한 곳꼴(약 8%)이 비어 있는 반면, 뉴포트(Newport)와 브래드퍼드(Bradford)에서는 다섯 곳 중 한 곳에 가까운 수가 비어 있다고 적는다. 블로그 요약본도 '열두 칸 중 한 칸'과 '다섯 칸 중 한 칸'이라는 같은 비유를 쓴다. 2025년 기준 공실률 최저는 런던 도심이었고 케임브리지·에든버러·요크가 뒤를 이었다. 최고는 뉴포트, 그다음이 브래드퍼드와 블랙풀(Blackpool)이었다. 상위 그룹과 하위 그룹의 격차는 두 배가 넘는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단순한 남북 격차가 아니라는 점이다. 요크와 에든버러처럼 큰 경쟁 도시가 옆에 없는 곳은 잘 버티는데, 블랙풀·스완지·스토크온트렌트(Stoke-on-Trent)는 경쟁 도시가 없는데도 공실률이 높다. 반대로 런던 바로 옆 도시들은 대체로 사정이 낫고, 다른 대도시 옆에 붙은 도시들은 대체로 나쁘다.

영국 상가의 뼈대: 프리홀드·리스홀드와 사업세

영국 상가 제도를 한국과 견주려면 세 단어만 알면 된다. 건물과 그 땅을 영구히 소유하는 권리가 프리홀드(freehold), 99년·125년·999년 같은 기간의 사용권만 사는 것이 리스홀드(leasehold)다. 점포를 빌리는 상인은 보통 상업용 리스(commercial lease)를 맺고, 계약기간 동안 정해진 임대료를 낸다. 한국의 전세보증금이나 권리금(장사 자리를 사고파는 대가)처럼 제도화된 관행은 영국에 없다. 대신 사업장에는 사업세(business rates)가 붙는데, 이 세금은 임차인이 아니라 점유자가 부담한다.

이 보고서가 사업세를 다루는 방식이 흥미롭다. '사업세 때문에 하이스트리트가 죽는다'는 흔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잘 안 되는 거리의 상당수 부동산은 애초에 사업세를 한 푼도 내지 않으며(공실이거나 면세 대상), 사업세 제도는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도 자체가 엉망이어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원문에는 영국 상업용 임대료 수준이나 리스 계약 관행에 대한 별도 통계가 없다. 이 부분은 일반적 배경 설명이며, 이 기사에서 확인된 내용이 아님을 밝혀 둔다.

업종은 어디로 옮겨갔나 — 식음료로의 이동

보고서에서 가장 실증적인 대목은 업종 구성 변화다. 공실률이 낮은 도심일수록 전체 소비에서 카페·식당·테이크아웃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런던·요크·맨체스터·에든버러에서는 이 비중이 4분의 1을 넘고, 번리(Burnley)와 버큰헤드(Birkenhead)에서는 20파운드 중 1파운드, 즉 5%를 넘지 않는다. 대도시 도심의 식음료 비중은 주변 중소도시 도심의 두 배 수준이다.

이 변화는 2010년 이후 상업 공간의 용도 전환으로도 확인된다. 성적이 좋은 하이스트리트일수록 상업 면적에서 식음료가 차지하는 몫이 더 크게 늘었다. 반대로 소득이 낮은 곳은 그 수요가 약해 민간이 움직일 유인이 적고, 결과적으로 상당한 면적이 여전히 소매용으로 남아 있다. 보고서는 도심 소매면적을 배후 인구로 나눠 '과잉 공급' 지도를 그리는데, 뉴포트·위건·미들즈브러가 상위권에, 브라이턴과 밀턴킨스가 하위권에 놓인다.

임대료가 아니라 소득 — 보고서의 핵심 주장

보고서는 성과 차이를 설명하는 네 가지 요인을 든다. 배후 시장(캐치먼트)의 크기, 그 시장의 평균 소득, 도시 경제가 도심에 모여 있는지 교외에 흩어져 있는지, 그리고 방문객 소비의 비중이다. 이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이 소득이라고 저자들은 못 박는다. 헐(Hull)과 레딩(Reading)은 배후 인구가 모두 약 40만 명으로 비슷하지만, 레딩의 소득이 26% 높고 공실률은 4퍼센트포인트 이상 낮다. 배후 인구가 커도 소득이 낮으면 점포를 채울 돈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의 정책 제안은 상권 대책이라기보다 지역경제 대책에 가깝다. 도심을 '국가 기간 인프라'로 인정해 정부가 책정한 1,130억 파운드의 자본투자 중 50억 파운드를 투자 전략이 있는 도심에 배분하고, 그 돈을 잉여 공간 철거·공공 공간 개선·신규 사무실 건설에 쓰라는 것이다.

반전: 브래드퍼드의 빈 점포는 '경쟁'이 만든 결과다

통념과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다. 브래드퍼드 도심의 공실은 그 도시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차로 20분 거리의 리즈(Leeds)가 광역 소비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브래드퍼드의 배후 시장을 도시 경계 안쪽으로 눌러 버렸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리즈의 상권이 브래드퍼드 도심의 캐치먼트를 '특히' 압박한다고 서술한다. 반대로 노리치(Norwich)는 인구로는 브래드퍼드보다 작지만, 주변에 경쟁 소비 중심지가 없어 배후 시장이 훨씬 넓게 뻗는다.

그리고 브래드퍼드 안에서도 계층에 따라 이야기가 갈린다. 브래드퍼드 주민은 전체 대면 소비의 5.7%를 도심에서 쓰는데, 소득 상위 동네 주민은 2.9%만 쓴다. 부유한 주민이 도심을 더 외면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권 몰락'이라는 표현은 절반만 맞다. 공간이 남는 것이지, 수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뉴포트의 반전 — 공실 20% 감소와 400개 점포

브래드퍼드 시청사 전경

영국 브래드퍼드 시청사와 도심 전경 — Lynne Kirton,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보고서의 박스 기사는 뉴포트를 별도로 다룬다. 뉴포트는 이 보고서에서 공실률이 가장 높고, 배후 인구 대비 소매면적도 가장 많은 곳이다. 그런데 지방정부는 최근 1년 사이 공실률이 약 20% 떨어졌다고 보고한다. 10년 가까이 제자리였던 수치이고, 변화의 상당 부분은 창업자들이 빈 점포를 채운 결과다. 유동인구도 올해 1분기에 2019년 1분기보다 10% 늘었다.

여기에 보고서가 직접 붙인 각주가 의미심장하다. 공실이 아니라 '점유'로 보면 뉴포트의 400개 점포는 밀턴킨스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즉 과잉 공급이 실제 장사 규모를 가리고 있다. 시의회도 상업 공간이 과잉이라는 점은 인정하되, 과제는 도심 외곽 거리의 공간에 새 용도를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이라는 재해석이 여기서 나온다.

한국과 견주기 — 리즈 옆 브래드퍼드, 수원 옆 서울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사례는 경기 남부의 중소도시다. 서울이라는 거대 소비 중심지 옆에 있으면서, 주민의 소비는 서울로 빠져나가고 자기 도심에는 남지 않는 구조다. 브래드퍼드와 리즈의 관계, 그리고 보고서가 지적한 '런던 근교 도시들은 사정이 낫고 다른 대도시 근교 도시들은 나쁘다'는 비대칭은 국내에서도 그대로 관찰된다. 같은 서울 근교라도 소득 수준과 통근 구조에 따라 상권 성적이 갈리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제도다. 한국 상인은 권리금과 보증금, 그리고 임대료 인상 리스크를 안고 장사를 시작한다. 영국은 계약기간이 긴 상업용 리스와 사업세가 중심이다. 그래서 영국 보고서는 '임대료를 낮추면 상권이 살아난다'는 처방을 거의 쓰지 않는다. 반면 국내 상권 논의는 임대료와 공실률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문제를 어디에 두느냐가 정책의 방향을 가른다는 점이 비교의 핵심이다.

이 자료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센터 포 시티즈는 영국 대도시의 생산성과 경제를 연구하는 독립 싱크탱크다. 이 보고서는 지방정부의 사업세 기록과 민간 카드결제 데이터(데이터 제공: Fable Data), 그리고 상권 데이터 업체(Local Data Company)를 결합해 만들어졌다. 즉 '정부 통계 + 민간 결제데이터'라는 이해관계가 섞인 재료 위에 서 있다. 카드로 결제되지 않는 현금 거래나 배달·온라인 소비의 일부는 빠질 수 있고, 소득 자료는 2018년 기준이라는 한계도 보고서 스스로 밝힌다.

또 하나, 이 보고서는 상권을 살리는 처방을 '지역경제'에 두기 때문에, 상인 입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조언은 적다. 임대료 협상이나 업종 전환 같은 현장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 있다. 그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독자에게

여러분 동네 상권은 어떤가. 점포가 비어 있는 이유가 임대료 때문인가, 아니면 그 동네로 돈이 들어오는 통로 자체가 좁아졌기 때문인가. 만약 후자라면, 빈 점포를 채우는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Centre for Cities, "Checking out: The varying performance of high streets across the country", 2025년 7월 10일. https://www.centreforcities.org/publication/checking-out/ (보고서 PDF: Checking out, July 2025)

같은 기관 블로그 요약: Checking out — 보고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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