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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크셔의 작은 시장도시 셀비(Selby). 2020년 3월 기준으로 이 도시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우리말의 '중심 상가거리')에 늘어선 주소 가운데 가게로 등록된 곳은 63%였다. 같은 시점 잉글랜드 전역의 평균은 29%, 런던 이즐링턴(Islington)은 11%였다. 영국 통계청(ONS)과 국토측량국(Ordnance Survey)이 2019년부터 만든 실험적 '하이스트리트 지리' 데이터가 내놓은 첫 전국 지도다. 흥미로운 건 가게 수가 아니라 나머지 71%다. 영국 거리 주소의 절반 이상이 주거용이고, 약 11%가 사무실이다.

이 숫자들은 2020년 3월, 즉 코로나19 봉쇄 직전의 스냅숏이다. ONS는 2020년 8월 10일 이 보고서를 내면서 "비필수 점포가 거의 전부 닫힌 시점에, 그 이전 거리가 어땠는지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뒤집어 읽으면 이렇다. 영국 상권의 문제는 2020년에 시작된 게 아니라, 이미 2018년 고용 통계에 드러나 있었다.

가게가 아니라 '주소'를 세는 통계 — 하이스트리트는 어떻게 정의됐나

이 보고서의 가장 큰 기여는 상권을 거리 단위로 그려낸 것이다. ONS와 Ordnance Survey는 같은 이름의 거리에 150m 안에 가게 주소가 15개 이상 모여 있으면 하이스트리트로 잡았다. 리테일파크, 산업단지, 외딴 쇼핑센터는 일부러 뺐다. 대신 이 기준에 못 미치는 작은 동네 상가는 지도에서 빠진다. 노리치 대성당 주변처럼 유명한 거리도 자동 판정에서 누락된 사례가 있다고 보고서는 스스로 인정한다. 즉 '영국 상권 전체'가 아니라 '큰 상가거리'의 통계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뒤에 나온다. 전원지역 거점도시의 상가는 다른 곳보다 가게 비중이 높았고, 런던 안쪽은 극단적으로 낮았다. 같은 '하이스트리트'라도 도시의 역할이 다르면 구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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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비(Selby) 마켓 플레이스의 상점가, 2022년 11월 — Mtaylor848,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가게 29%, 주거 50%대, 사무실 11% — 주소로 본 거리의 구성

2020년 3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의 하이스트리트 주소를 분류하면, 가게가 약 3분의 1, 주거가 절반 이상, 사무실이 약 11%, 여가·커뮤니티 시설이 2~3%다. 2019년 대비 주거 비중은 대부분 지역에서 1~2%포인트 늘고 가게 비중은 그만큼 줄었다. 이주 방향이 뚜렷하다. 다만 ONS는 이 데이터가 '주소의 등록 용도'일 뿐 실제 입주나 공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못 박는다. 공실률로 읽으면 안 된다.

전원지역 거점도시의 반전 — 36% 대 29%

잉글랜드 농촌-도시 분류상 '허브 타운(hub town)' 182곳 가운데 179곳의 하이스트리트가 데이터에 잡혔다. 이들 거리의 가게 주소 비중은 36%로, 나머지 지역 평균 29%보다 7%포인트 높다. 시장도시 전통을 가진 독립 정착지들이 소매 기능을 더 많이 지켰다는 뜻이다. 대도시 거리가 사무실·주거·서비스로 재편되는 동안, 작은 도시의 중심가는 여전히 장보는 곳으로 남아 있다.

고용으로 보면 그림이 더 분명하다 — 런던 시티는 85%가 사무실

2018년 영국 하이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사람은 439만 7,240명으로 전체 고용의 14%였다. 업종 비중은 지역마다 크게 갈린다. 소매업 고용 비중은 노스이스트 29%, 런던 15%. 반대로 사무실 중심 '기타 서비스' 업종은 노스이스트 29%에서 런던 49%까지 올라가고, 런던 시티(City of London)는 무려 85%다. 런던 시티의 하이스트리트는 사실상 금융가 직장인을 먹여 살리는 구내식당가다.

숫자로 본 변화 — 가게 일자리는 줄고, 술집·식당 일자리는 늘었다

2015~2018년 소매업 고용이 줄어든 지방자치구는 전체의 4분의 3을 넘었다. 지역별로 유일하게 늘어난 곳은 노스웨스트 4%다. 같은 기간 하이스트리트 밖 소매업 고용은 웨스트미들랜즈와 요크셔·험버에서 최대 6% 늘었다. 대도시 외곽 리테일파크로 일자리가 옮겨간 흔적이다.

대신 먹고 마시는 업종이 자리를 메웠다. 하이스트리트의 술집·바 종사자는 12만 1,440명. 2015~2018년 증가율은 하이스트리트 밖 술집보다 3%포인트 높았다. 정식 레스토랑 종사자는 21만 2,520명으로 노스이스트 4,520명에서 런던 7만 7,610명까지 벌어진다. 무허가 레스토랑·카페까지 합치면 12만 3,260명이 영국 하이스트리트에서 일한다. 미용·헤어 서비스는 7만 6,060명으로 3년간 14% 늘었는데, 같은 업종의 비(非)하이스트리트 증가율 20%에는 미치지 못했다.

체스터필드에서는 소매 고용이 24.5% 줄면서 같은 기간 숙박·음식점 고용이 51.2% 늘었다. 노샘프턴은 소매 -23.5%, 숙박·음식점 +33.9%였다. 가게는 빠지고 테이블이 들어온 것이 수치로 확인된다.

영국 상가 임대 제도 — leasehold와 '수리 의무'라는 함정

이 보고서에는 임대 계약 조건이나 임대료 데이터가 없다. 임대 제도에 관한 서술은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음을 밝혀 둔다. 다만 영국 상가의 구조를 알면 위 숫자가 다르게 읽힌다. 영국 상가는 대개 '리즈홀드(leasehold)' 방식이다. 건물 소유주(프리홀더)에게 25년이나 999년처럼 긴 기간의 사용권을 사서, 그 권리를 다시 세입자에게 빌려주는 구조다. 사용권자는 건물의 구조적 수리까지 책임지는 '풀 리페어링 앤드 인슈어링(full repairing and insuring)' 조항에 묶이는 경우가 많아, 임대료가 낮아도 수리비가 임차인 몫으로 온다. 한국의 전세·보증금 개념과 달리 '보증금을 맡기고 나중에 돌려받는' 구조가 아니라, 수년치 임대료를 선불로 사는 구조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권리금은 영국에 대응 개념이 없다. 영국에서는 가게를 인수할 때 '굿윌(goodwill)'을 사는 경우가 있지만 법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계약 만료 시 건물주가 갱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한국보다 넓다. 그래서 가게 일자리 감소가 곧 '건물주가 더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용도로 바꿨다'는 뜻일 수 있다. 카페와 술집은 단위 면적당 매출과 임대료 감당력이 소매점보다 높은 업종이다.

누가 그 거리에 사는가 — 걸어서 10분 거리의 사람들

영국 인구의 약 16%가 하이스트리트 자체 또는 200m 이내에 산다. 런던 캠든, 해머스미스앤풀럼, 웨스트민스터, 켄징턴앤첼시, 시티오브런던이 60%를 넘고, 리버풀·워싱·브라이턴·사우스엔드온시·포츠머스도 3분의 1이 넘는다. 그 주민의 대다수는 16~64세다. 옥스퍼드·에든버러·애버딘·웨이크필드에서는 하이스트리트 주변 주민의 80% 이상이 이 연령대다. 도시 상권의 실수요자는 관광객이 아니라 걸어서 오는 학생과 직장인이라는 얘기다. ONS는 봉쇄 기간 재택근무가 늘면서 이들 주민이 동네 상가를 더 자주 쓰게 됐을 가능성을 짚는다.

'상권 몰락'이 아니라 용도 전환 — 사료의 한계

이 보고서는 소매업 몰락 담론에 제동을 건다. 거리의 주소 중 가게는 3분의 1뿐이고, 나머지는 주거·사무실·서비스다. 런던 시티처럼 85%가 사무실 직장인인 거리도 '하이스트리트'라 불린다. 가게가 줄어드는 현상을 '거리의 죽음'으로만 부르면, 거리에서 일하는 439만 명과 그 위층에 사는 주민이 사라진다. 문제는 거리의 기능이 바뀌는 속도보다 건물과 계약이 그 변화를 못 따라가는 데 있을 수 있다.

물론 이 보고서는 ONS의 실험적 통계다. 데이터 시점은 2018~2020년이고, 이 기사가 쓰인 뒤(2020년 8월) 5년 넘는 코로나 이후 변화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ONS는 "이용자는 이 수치가 국가 통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다. ONS는 정부 기관이라 특정 상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지만, Ordnance Survey의 주소 데이터와 정부 조사(BRES)에 기반하므로 자영업자·무급 가족 종사자와 소규모 상가는 통계에서 빠지기 쉽다. 거리의 '공식 고용'만 보이는 셈이다.

한국의 처지와 겹친다. 서울 신촌·이대 상권도 공실이 늘지만 그 자리에 스터디카페와 무인 점포, 오피스가 들어오고 있다. 같은 현상의 이름은 '공실'이지만 실제로는 '계약 단위의 변화'다. 다른 점은 임대차 구조다. 한국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으로 계약갱신요구권과 우선변제권이 있어 임차인 보호 장치가 상대적으로 있고, 권리금이라는 별도의 거래 시장이 존재한다. 영국은 계약 자유가 훨씬 넓은 대신, 건물주가 더 잘 버는 용도로 거리를 바꾸는 결정권을 갖는다. 통계가 '용도 전환'을 말할 때, 그 전환의 비용을 누가 치르는지는 임대 제도가 결정한다.

독자에게 — 우리 동네 거리의 51%는 무엇인가

문을 닫은 가게 수만 세면 거리는 점점 비어 보인다. 질문을 바꿔 보자. 우리 동네 중심가의 주소 가운데 몇 퍼센트가 가게이고, 몇 퍼센트가 집이고, 몇 퍼센트가 사무실인가? 그 비율은 지난 3년 동안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나? 그리고 그 변화를 결정한 계약서에는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는가?

참고 자료

모든 이야기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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